동탁董卓

자 중영(仲穎) · 미상 ~ 192년 · 양주 농서군 임조현 · 한 세력의 주인

동탁 초상

황제를 갈아 세우고 낙양을 불사른 뒤 장안에서 여포에게 죽은 권신

능력치

통솔85무력85지력69정치19매력37

카드

공격력 5체력 5비용 4값어치 14직군 맹장
낙양 비용 5
적 전체에 3 피해 · 내 다음 국면 지휘력 −3
위세 속성
서 있는 동안 적 전체의 공격력 −1
미오 절명
적의 지휘력이 0 이 된다 (그 차례에 남은 것을 다 잃는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동탁전과 배송지 주의 『영웅기』 · 『오서』 · 『후한서』 동탁전 · 효헌제기 · 『삼국지』 위서 여포전 · 오서 손견전

동탁은 자가 중영이며 농서군 임조현 사람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영웅기』는 아버지 동군아가 낮은 벼슬에서 영천군의 현위가 되었고, 아들 셋 가운데 맏이는 일찍 죽고 둘째가 동탁, 막내가 동민이었다고 적습니다. 젊어서 협객 노릇을 좋아해 강족의 땅을 노닐며 그 우두머리들과 두루 사귀었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때 우두머리들이 찾아오자 밭갈이 소를 잡아 대접하니 그들이 감복해 가축 천여 마리를 모아 보냈습니다. 힘이 남달라 활집 둘을 차고 말을 달리며 좌우로 활을 쏘니 강족과 호족이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환제 말년에 여섯 군의 양가 자제로 뽑혀 우림랑이 되었고, 군사마로 중랑장 장환을 따라 싸워 낭중이 되었습니다. 상으로 받은 비단 9천 필은 「공은 내가 세웠어도 나눌 것은 군사들이다」 하며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광무령 · 서역무기교위 등을 거쳐 병주자사 · 하동태수가 되었고, 『영웅기』는 그가 강족 · 호족과 앞뒤로 백여 번 싸웠다고 적습니다.

중평 원년(184) 동중랑장으로 노식을 대신해 하곡양에서 장각을 쳤으나 싸움에 져서 죄를 받았습니다. 그해 겨울 양주에서 변장 · 한수가 일어나 이듬해 삼보로 쳐들어오자 다시 중랑장이 되었고, 185년 파로장군으로 거기장군 장온의 지휘를 받아 미양에서 그들을 깨뜨렸습니다. 이어 망원에서 강족 · 호족 수만에게 에워싸이자 고기를 잡는 척 물을 막아 둑 아래로 군사를 빼내고 둑을 터서 추격을 끊었으니, 여섯 갈래 군사 가운데 다섯이 무너질 때 홀로 군사를 온전히 돌려 태향후가 되었습니다. 중평 5년(188)에는 전장군으로 좌장군 황보숭과 함께 진창을 에워싼 왕국을 깨뜨렸습니다. 이듬해 조정이 소부로 부르고 다시 병주목으로 삼으며 군사를 황보숭에게 넘기라 했으나, 거느린 군사들이 수레를 붙든다며 따르지 않고 하동에 머물며 형세를 살폈습니다.

189년 영제가 죽자 대장군 하진은 환관을 없애는 일을 하태후가 듣지 않자 태후를 을러메려고 동탁을 불러들였습니다. 동탁이 닿기 전에 하진이 환관들에게 죽고 단규 등이 소제와 진류왕을 끌고 달아나자, 불길을 보고 달려온 동탁은 북망에서 천자를 맞았습니다. 겁에 질린 소제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고 진류왕은 난리의 앞뒤를 빠짐없이 답했는데, 동탁은 진류왕을 어질게 여긴 데다 그가 동태후 손에서 자랐고 자신이 동태후와 같은 집안이라 하여 폐립할 뜻을 품었습니다. 처음 거느린 군사는 3천이 넘지 않았으나 곧 하진 형제의 부곡을 거두고 여포를 꾀어 집금오 정원을 죽이게 해 그 군사까지 아울렀습니다. 사공 자리에 앉은 동탁이 백관 앞에서 이윤과 곽광의 옛일을 들어 황제를 바꾸겠다고 하자 상서 노식만 홀로 반대했고, 이튿날 소제를 폐해 홍농왕으로 삼고 진류왕을 세우니 이가 헌제입니다. 하태후는 영안궁으로 옮겨져 죽임을 당했습니다.

동탁은 태위를 거쳐 11월 상국이 되어 조회에서 이름을 불리지 않고 칼을 찬 채 전에 오르게 되었고, 어머니는 지양군에 봉해졌습니다. 진번 · 두무와 당고에 묶였던 이들의 벼슬을 되살리고 순상을 사공으로 삼았으며, 한복 · 유대 · 공주 · 장자를 자사와 태수로 내보냈습니다. 한편 군사를 풀어 부귀한 집을 털고 부녀를 욕보이게 하니 이를 「수뢰」라 했고, 공주를 범하고 궁녀를 아내로 삼았으며, 양성의 사당 제사에 모인 백성을 베어 머리를 수레에 매달고 도적을 쳤다며 돌아왔습니다.

초평 원년(190) 정월 관동의 주와 군이 군사를 일으키자 동탁은 홍농왕을 독주로 죽였습니다. 도읍을 옮기는 일에 황완과 양표가 맞서고 오경과 주비가 굳게 말리자, 두 사람의 천거로 내보낸 이들이 군사를 일으켰다며 둘을 베었습니다. 2월 천자를 장안으로 옮기며 낙양의 백성 수백만을 몰아가니 길에 시체가 쌓였고, 궁궐과 종묘 · 관청 · 민가를 불살라 이백 리 안에 남은 것이 없었으며, 여포를 시켜 황제들의 능을 파헤쳤습니다. 3월에는 원소의 숙부인 태부 원외와 태복 원기의 일족을 죽였습니다. 오수전을 부수고 동인을 녹여 작은 돈을 만드니 물건 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초평 2년(191) 2월 동탁은 스스로 태사가 되어 제후왕보다 윗자리에 섰습니다. 이해 손견이 양인에서 호진과 여포를 깨뜨리고 도독 화웅의 목을 베자, 이각을 보내 화친을 청했다가 거절당했고 몸소 낙양의 능 사이에서 싸우다 져서 민지로 물러났습니다. 4월 장안으로 돌아와서는 천자의 것에 버금가는 수레를 탔고, 아우 동민을 좌장군, 조카 동황을 중군교위로 삼았으며 어린 자손까지 후와 읍군에 봉했습니다. 미에 장안성만큼 높은 성채를 쌓아 서른 해 먹을 곡식을 모으고는 「일이 이루어지면 천하를 차지하고, 못 이루면 여기를 지키며 늙겠다」고 했습니다. 공경들이 횡문 밖에서 그를 전송하는 자리에서 항복한 북지의 반란자 수백 명의 혀를 자르고 눈을 파고 가마솥에 삶아 모두가 떨며 수저를 떨어뜨렸으나 동탁은 태연히 먹고 마셨습니다. 10월에는 대신이 죽을 조짐이 있다는 말에 위위 장온이 원술과 통했다고 꾸며 저자에서 매질해 죽였습니다.

초평 3년(192) 4월 사도 왕윤이 상서복야 사손서 · 여포와 함께 그를 없애기로 꾀했습니다. 천자의 병이 나아 미앙전에서 크게 모이는 날, 동탁은 길 양쪽에 군사를 늘어세우고 여포에게 앞뒤를 지키게 했으나, 여포와 같은 고을 사람인 기도위 이숙이 위사 옷을 입은 용사 십여 명과 북액문 안에서 기다렸습니다. 문 앞에서 말이 놀라 나아가지 않자 동탁은 겁이 나 돌아가려 했으나 여포가 권해 들어갔고, 이숙이 극으로 찔렀으나 옷 속 갑옷에 막혀 팔만 다치고 수레에서 떨어졌습니다. 「여포는 어디 있느냐」고 외치는 그에게 여포는 「조서를 받들어 역적을 친다」며 창으로 찌르고 군사를 재촉해 베게 했습니다. 『후한서』는 백성들이 길에서 노래하며 춤추고 구슬과 옷을 팔아 술과 고기를 사서 서로 축하했다고 적습니다. 황보숭이 미오를 쳐서 일족을 모두 죽였고, 저자에 내건 시신은 기름이 흘러 땅을 적셨는데 지키던 관리가 배꼽에 불을 켜니 새벽까지 밝기를 여러 날 이어 갔습니다. 미오에서는 금 이삼만 근과 은 팔구만 근이 나왔습니다. 두 달 뒤 장안을 빼앗은 이각 등이 그를 미에 장사 지냈으나 폭우가 무덤에 들어 관이 떠내려갔습니다.

진수는 「동탁은 사납고 잔인하며 포학하고 어질지 못하니, 글이 생긴 이래 이런 이는 거의 없었다」고 평했습니다. 배송지는 그가 권세를 훔친 지 세 해가 안 되어 화가 산처럼 쌓이고 독이 온 세상에 흘렀다고 했고, 범엽은 그래도 선비들 앞에서는 뜻을 굽히고 빼앗기를 머뭇거렸으니 도적의 도리는 있었다고 평했습니다.

董卓狼戾賊忍,暴虐不仁,自書契以來,殆未之有也
동탁은 사납고 잔인하며 포학하고 어질지 못했으니, 글이 생긴 이래 이런 이는 거의 없었다『삼국지』 위서 동탁전 평
然猶折意縉紳,遲疑陵奪,尚有盜竊之道焉
그래도 선비들 앞에서는 뜻을 굽히고 빼앗기를 머뭇거렸으니, 도적의 도리는 있었다『후한서』 동탁전 논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9회

연의에서 동탁은 제1회에 처음 나옵니다. 노식을 대신해 황건을 치다 장각에게 쫓기던 그를 유비 · 관우 · 장비가 구하지만, 세 사람이 벼슬 없는 몸이라는 말에 업신여겨 예를 차리지 않아 장비가 그를 베려 합니다. 제2회는 그를 농서 임조 사람으로 하동태수이며 본디 교만했다고 소개하고, 싸움에 거듭 져서 황보숭이 그 자리를 이었다고 전합니다.

제3회의 동탁은 황건을 깨뜨리지 못해 죄를 받을 참에 십상시에게 뇌물을 써서 면했고, 서쪽의 대군 20만을 거느린 서량자사입니다. 하진의 밀조를 받자 사위 우보에게 섬서를 지키게 하고 이각 · 곽사 · 장제 · 번조를 거느리고 낙양으로 향하며, 사위이자 모사인 이유의 권유로 표를 올립니다. 돌아오는 천자의 행렬 앞에서는 「천자를 지키러 왔으면 어찌 말에서 내리지 않느냐」는 진류왕의 꾸짖음에 황급히 말에서 내리고, 그의 말솜씨에 놀라 폐립할 뜻을 품습니다. 온명원 잔치에서 폐립을 꺼냈다가 형주자사 정원이 맞서자 칼을 뽑지만 정원 뒤에 선 여포를 본 이유의 만류로 그치고, 이윤 · 곽광의 옛일을 들어 반대하는 노식을 죽이려다 팽백의 만류로 그칩니다. 이튿날 여포에게 크게 진 그는 여포와 같은 고향 사람인 이숙의 말대로 적토마와 황금 · 구슬 · 옥대를 보내 여포를 꾀고, 정원의 목을 들고 온 여포를 의아들로 삼습니다.

제4회에서 이유에게 책문을 읽혀 소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세우니 이가 헌제이며, 홀을 휘둘러 그를 치려던 상서 정관을 베어 버립니다. 상국이 된 뒤에는 소제가 지은 시를 트집 잡아 이유를 보내 소제에게 독주를 먹이고 하태후를 누각 아래로 내던지게 하며, 밤마다 궁녀를 범하고 양성의 마을 제사에 모인 백성을 죽여 도적을 쳤다고 속입니다. 월기교위 오부가 칼로 찌르려다 붙잡히고, 조조가 왕윤에게서 빌린 칠성보도로 그를 찌르려다 거울에 비쳐 들키자 칼을 바치는 척하고 달아납니다.

제5~6회에서 열여덟 제후가 일어나자 화웅을 사수관에 보냈다가 관우에게 잃고, 원소의 숙부 원외의 집안을 몰살한 뒤 몸소 15만을 이끌고 호뢰관을 지킵니다. 손견이 혼인을 맺자는 제안을 물리치자 이유가 들려준 동요를 좇아 장안으로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반대한 양표 · 황완 · 순상을 내치고 주비 · 오경을 벱니다. 낙양의 부호를 죽여 재물을 빼앗고 백성 수백만을 몰아가며 궁궐과 종묘를 불사르고, 여포에게 황제의 능을 파헤치게 합니다.

제8회에서 동탁은 스스로 상보라 일컫고 장안에서 250리 떨어진 곳에 미오를 쌓아 스무 해 먹을 곡식과 미녀 800명을 채우며, 항복한 북지의 군사를 잔치 자리에서 참혹하게 죽이고 장온의 목을 베어 쟁반에 담아 보입니다. 왕윤이 초선을 먼저 여포에게 허락했다가 동탁에게 바치는 연환계를 쓰자 초선에게 빠져 달포나 정사를 돌보지 않고, 봉의정에서 초선을 끌어안은 여포를 보고 화극을 던집니다. 제9회에서 이유가 초선을 여포에게 주라고 권하지만 듣지 않고 초선을 데리고 미오로 갑니다.

왕윤과 여포가 뜻을 모으자, 이숙이 천자가 병이 나아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는 조서를 들고 미오로 옵니다. 크게 기뻐한 동탁은 아흔이 넘은 어머니의 걱정을 뒤로하고 길을 나서, 수레바퀴가 부러지고 말이 고삐를 끊고 아이들이 「천리초」 노래를 불러도 좋은 징조라는 이숙의 풀이를 믿습니다. 북액문에서 왕윤이 부른 무사들에게 찔렸으나 갑옷 덕에 팔만 다치고 수레에서 떨어진 그는 「내 아들 봉선은 어디 있느냐」 하고 외치지만, 여포가 조서를 받들어 역적을 친다며 화극으로 목을 찌르고 이숙이 그 머리를 벱니다. 저자에 내걸린 시신의 배꼽에는 지키던 군사가 불을 켜 등불로 삼고, 지나는 백성들이 머리를 치고 몸을 짓밟습니다. 연의에서 동탁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뒤에는 이각 · 곽사가 그의 원수를 갚겠다며 장안을 칩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84동중랑장으로 노식을 대신해 하곡양에서 장각을 쳤으나 싸움에 져서 죄를 받았습니다.
  2. 185미양에서 변장 · 한수를 깨뜨렸고, 망원에서 에워싸였다가 군사를 온전히 이끌고 돌아와 태향후가 되었습니다.
  3. 188전장군이 되어 좌장군 황보숭과 함께 진창을 에워싼 왕국을 깨뜨렸습니다.
  4. 189소부와 병주목으로 불렀으나 군사를 넘기라는 명을 거스르고 하동에 머물렀습니다.
  5. 189하진의 부름을 받고 낙양에 와서 북망에서 소제와 진류왕을 맞았습니다.
  6. 189여포를 꾀어 집금오 정원을 죽이게 하고 그 군사를 거두었습니다.
  7. 189소제를 폐해 홍농왕으로 삼고 진류왕을 세웠으니 이가 헌제입니다.황제를 갈아 세우다
  8. 189상국이 되어 이름을 불리지 않고 칼을 찬 채 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9. 190관동의 주와 군이 군사를 일으키자 홍농왕을 독주로 죽였습니다.
  10. 190천자를 장안으로 옮기고 낙양의 궁궐과 종묘 · 민가를 불살랐습니다.낙양의 불
  11. 190원소의 숙부인 태부 원외와 태복 원기의 일족을 죽였습니다.
  12. 191스스로 태사가 되어 제후왕보다 윗자리에 섰습니다.
  13. 191양인에서 손견에게 도독 화웅을 잃고, 몸소 싸우다 져서 민지로 물러났습니다.
  14. 191장안으로 돌아와 천자에 버금가는 수레를 타고 일족을 모두 제후와 읍군으로 삼았습니다.
  15. 191위위 장온이 원술과 통했다고 꾸며 저자에서 매질해 죽였습니다.
  16. 192천자의 병이 나은 것을 하례하러 가다 북액문에서 이숙에게 찔리고 여포에게 죽었습니다.동탁의 죽음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동군아 · 어머니 지양군 · 아우 동민 · 조카 동황 · 손녀 동백 · 사위 우보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천하가 내 손에 있다!

말을 열며

누가 감히 나에게 말대꾸를 하는가.

되받으며

짧게 하라. 나는 참을성이 없다.

말문이 막혀

…봉선은 어디 있느냐.

말문이 막혀

감히 나를 거스르다니.

설전을 이기고

천하는 힘 있는 자의 것이다.

설전에 지고

…봉선아, 네가 어찌 나에게!

이긴 뒤

이것이 힘이라는 것이다!

진 뒤

…내 곁에 사람이 없구나.

쓰러지며

봉선아… 네가 나를 찌르느냐!

같은 기치 아래

화웅곽사이각이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