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사(子師) · 137년 ~ 192년 · 병주 태원군 기현 · 하진 휘하
동탁을 주살하고 한나라를 구하려 했던 절개 굳은 충신
출전 · 『후한서』 왕윤전 · 동탁전 · 채옹전 · 하진전 · 헌제기 · 『삼국지』 위서 동탁전 · 여포전과 배송지 주의 장번 『한기』 · 사승 『후한서』 · 『구주춘추』
왕윤은 자가 자사이며 태원군 기현 사람입니다. 집안은 대대로 주와 군에서 벼슬했습니다. 같은 군의 곽태가 그를 보고 「왕생은 하루에 천 리를 가니 왕을 보좌할 재목」이라 하고 벗으로 사귀었습니다. 열아홉 살에 군리가 되었을 때, 진양 출신의 소황문 조진이 한 현의 큰 걱정거리가 될 만큼 탐욕스럽고 방자하자 왕윤이 잡아 죽였습니다. 조진의 형제가 환관에게 붙어 참소해 환제가 크게 노하자 태수 유찬이 불려 가 옥에서 죽었고, 왕윤은 그 상여를 평원까지 모셔다 삼년상을 마치고서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벼슬하여서는 행실 없는 노불을 태수 왕구가 아전으로 쓰려 하자 얼굴을 붉히며 다투다 죽을 뻔했는데, 자사 등성이 그를 별가종사로 불러 살렸고 이 일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젊어서 큰 절개를 좋아하고 공을 세우려는 뜻을 품어, 경전을 외며 아침저녁으로 말 달리며 활쏘기를 익혔습니다.
삼공이 함께 불러 시어사가 되었고, 중평 원년(184) 황건이 일어나자 특별히 뽑혀 예주자사가 되었습니다. 순상 · 공융 등을 종사로 불러 쓰고 당인의 금고를 풀자고 아뢰었으며, 황건의 별수를 크게 깨뜨리고 좌중랑장 황보숭 · 우중랑장 주준과 함께 수십만의 항복을 받았습니다. 이때 황건 무리 속에서 중상시 장양의 손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찾아내 황건과 내통한 일을 아뢰었는데, 영제는 장양을 꾸짖기만 하고 죄를 묻지 못했고 앙심을 품은 장양은 다른 일로 그를 모함했습니다. 이듬해 옥에 갇혔다가 사면으로 풀려 자사로 돌아갔으나 열흘 만에 다시 잡혔습니다. 사도 양사가 사람을 보내 깊이 헤아리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뜻을 전했고 종사들이 울며 약을 바쳤으나, 왕윤은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얻었으면 사형을 받아 천하에 사죄할 일이지 어찌 약을 먹고 죽기를 바라겠느냐」며 잔을 던지고 함거에 올랐습니다. 대장군 하진 · 태위 원외 · 사도 양사가 함께 글을 올려 죽음은 면했으나 그해 겨울 대사면에서도 홀로 빠졌다가 이듬해에야 풀려났고, 이름을 바꾸어 하내와 진류 사이를 떠돌았습니다.
중평 6년(189) 영제가 죽자 도읍으로 달려왔고, 환관을 없애려던 하진이 그를 불러 종사중랑으로 삼았다가 하남윤으로 옮겼습니다. 헌제가 즉위하자 태복이 되고 다시 수상서령이 되었으며, 초평 원년(190) 양표를 대신해 사도가 되었습니다. 동탁이 관중으로 도읍을 옮길 때 왕윤은 난대와 석실의 도서 가운데 중요한 것을 모두 거두어 따라갔고, 『후한서』 는 경적이 온전히 남은 데에 왕윤의 힘이 컸다고 적습니다. 동탁이 낙양에 머무는 동안 조정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왕윤에게 맡겨졌습니다. 왕윤은 속뜻을 숨기고 굽혀 늘 동탁의 뜻을 받들었고, 동탁도 마음을 터놓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동탁의 해독이 깊어지고 찬탈의 낌새가 보이자 왕윤은 사예교위 황완 · 상서 정태 등과 그를 없애기로 꾀했습니다. 양찬과 사손서에게 원술을 친다는 이름으로 군사를 내게 해 길을 나누어 동탁을 치려 했으나, 동탁이 의심해 그들을 붙잡아 두었습니다. 초평 2년(191) 장안으로 돌아온 동탁이 관중에 들어온 공으로 그를 온후에 봉하자 굳이 사양하다가 사손서의 말을 듣고 2천 호만 받았습니다. 초평 3년(192) 봄 비가 60여 일 이어지자 사손서 · 양찬과 날이 개기를 비는 단에 올라 앞의 꾀를 다시 맺었고, 같은 병주 사람으로 두텁게 대해 온 여포를 몰래 끌어들여 안에서 호응하게 했습니다. 『삼국지』 여포전에 따르면 여포가 「부자 사이인데 어찌하오」 하자 왕윤은 「그대는 성이 여씨이니 본디 골육이 아니오」라고 답했습니다. 4월 천자의 병이 나아 미앙전에 크게 모인 날, 하례하러 들어오던 동탁을 이숙과 여포가 북액문에서 죽였습니다.
그 뒤 왕윤은 상서의 일을 맡아 조정을 총괄했습니다. 처음에는 동탁의 부곡을 사면하자고 의논했으나 「이들은 주인을 따랐을 뿐인데 악역이라 이름 붙여 특별히 사면하면 도리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든다」며 망설였고, 동탁의 재물을 공경과 장교에게 나누어 주자는 여포의 청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여포를 검객으로만 대해 둘 사이도 벌어졌습니다. 『후한서』 는 왕윤이 굳세고 악을 미워하는 성품이라 처음에는 동탁을 두려워해 절개를 굽혔으나, 동탁이 죽자 더 걱정이 없다 여기고 따뜻한 낯빛 없이 바른 것만 지키며 임기응변을 따르지 않아 아랫사람들이 잘 따르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동탁의 죽음을 탄식한 채옹을 정위에게 넘겼는데, 태위 마일제가 말렸으나 「무제가 사마천을 죽이지 않아 비방하는 글이 후세에 흘렀다」며 듣지 않았고, 채옹은 옥에서 죽었습니다. 왕윤은 뉘우쳐 멈추려 했으나 늦었습니다.
동탁의 장수들은 대부분 양주 사람이었는데, 왕윤이 그 군사를 해산하려 하자 양주 사람을 모두 죽인다는 헛소문이 돌았습니다. 이각 등이 사면을 청했으나 왕윤은 한 해에 두 번 사면할 수 없다며 허락하지 않았고, 가후의 말을 들은 이각 · 곽사 등은 군사를 돌려 장안을 에워쌌습니다. 성이 무너지자 여포가 청쇄문 밖에 말을 세우고 「공도 떠날 수 있겠소」 하고 불렀으나, 왕윤은 「어린 천자가 나만 믿고 있는데 어려움을 만나 구차하게 벗어나는 일은 차마 못 하겠다, 관동의 여러분에게 나라를 생각하라고 전해 달라」며 남았습니다. 천자를 모시고 선평성문 누각에 올랐던 왕윤은 「태사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는 이각 등의 물음에 궁지에 몰려 내려왔고, 며칠 뒤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이 56세였고 아들 왕개 · 왕경 · 왕정과 일족 10여 명이 함께 죽었으며 조카 왕신 · 왕릉만 고향으로 달아났습니다.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못했는데 옛 아전 조전이 벼슬을 버리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뒤에 도읍을 허로 옮기자 헌제는 왕윤의 충절을 생각해 다시 장사 지내게 하고 본래 벼슬의 인수를 내렸으며, 손자 왕흑을 안락정후에 봉했습니다. 범엽은 「왕윤이 동탁을 받들어 그 권세를 끌어오고 틈을 엿보아 그 죄를 치니, 이때에 천자가 매인 데서 풀렸다」며 그 바탕이 충의의 정성이라고 평했고, 배송지는 「왕윤의 충정은 안으로 살펴 부끄러움이 없다고 할 만하다」고 했습니다.
若王允之推董卓而引其權,伺其閒而敝其罪,當此之時,天子懸解矣朝廷幼少,恃我而已,臨難苟免,吾不忍也『삼국연의』 제3~4회 · 제8~9회
연의에서 왕윤은 제3회에 사도로 처음 나옵니다. 십상시의 난 뒤 북망산에서 돌아오는 소제와 진류왕을 백관과 함께 맞고, 동탁을 서둘러 없애자는 포신의 말에는 「좀 더 의논하자」고 미룹니다.
제4회에서 원소의 밀서를 받고도 꾀가 없던 왕윤은 제 생일이라 핑계 대고 옛 신하들을 집으로 불러 잔치를 열고, 술이 돌자 한나라가 동탁 손에 망하게 되었다며 얼굴을 가리고 웁니다. 모두 따라 울 때 손뼉 치며 웃은 조조가 동탁을 찌르겠다고 나서자, 왕윤은 손수 술을 따라 주고 칠성보도를 건넵니다.
제8회에서 동탁이 잔치 자리에서 사공 장온의 머리를 쟁반에 받쳐 들이게 하자, 집에 돌아온 왕윤은 잠을 못 이루고 뒤뜰에 나갔다가 친딸처럼 기른 가기 초선을 만납니다. 왕윤은 초선을 먼저 여포에게 주기로 하고 뒤에 동탁에게 바쳐 두 사람을 등지게 하는 연환계를 꾸미고, 금관을 보내 여포를 불러 혼인을 약속한 뒤 동탁을 청해 초선을 바칩니다.
제9회에서 봉의정의 일을 털어놓는 여포에게 「장군은 여씨요 태사는 동씨이니, 창을 던질 때 무슨 부자의 정이 있었소」 하고 부추기고, 여포는 팔을 찔러 피로 맹세합니다. 사손서 · 황완과 의논해 이숙을 미오로 보내 천자가 자리를 물려준다는 조서로 동탁을 불러들이고, 북액문에서 칼을 들고 「반적이 여기 왔다, 무사는 어디 있느냐」고 외칩니다. 동탁의 주검 위에서 운 채옹을 마일제가 말려도 듣지 않고 옥에서 목매어 죽이며, 사면을 청하는 이각 · 곽사 · 장제 · 번조 네 사람만은 사면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장안이 무너지자 함께 떠나자는 여포의 거듭된 권유를 물리치고, 천자 곁에 있다가 선평문 누각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왕윤이 여기 있다」고 외치고 이각 · 곽사를 꾸짖다 죽습니다. 일족도 모두 죽임을 당합니다. 연의에서 왕윤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왕개 · 왕경 · 왕정 · 조카 왕신 · 왕릉 · 손자 왕흑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조정의 법도가 여기 있소.
역적을 벨 칼은 잔칫상에도 숨어 있소.
노신의 충심을 시험하지 마시오.
…초선아, 미안하구나.
한실을 위해서라면.
동탁도 이렇게 잡았소.
이각·곽사를 얕본 것이 한이오.
한실을 위한 승리요!
…한실의 앞날이 어둡구려.
한실을 위해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