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문위(文偉) · 미상 ~ 253년 · 형주 강하군 맹현 · 유비 휘하
뛰어난 외교와 온화한 중재로 제갈량 사후 촉한을 든든하게 이끈 대장군
출전 · 『삼국지』 촉서 비의전과 배송지 주의 『비의별전』 · 『한진춘추』 · 촉서 후주전 · 동윤전과 주의 『양양기』 · 위연전 · 양의전 · 왕평전 · 장억전 · 위서 삼소제기와 주의 『위씨춘추』 · 조상전 주의 『한진춘추』 · 『진서』 문제기 · 『화양국지』 유후주지
비의는 자가 문위이며 강하군 맹현 사람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일가 어른 백인에게 의지했는데, 백인의 고모가 익주목 유장의 어머니였습니다. 유장이 백인을 맞아들이자 백인은 비의를 데리고 촉에 들어가 배우게 했고, 마침 유비가 촉을 평정해 비의는 그대로 익주에 머물며 남군의 동윤 등과 이름을 나란히 했습니다. 허정의 아들 장례에 갈 때 동윤의 아버지 동화가 허름한 수레를 내주자 동윤은 타기를 꺼렸으나 비의는 귀인들 사이에서도 태연했고, 동화는 이로써 둘의 우열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유비가 태자를 세우자(221) 비의는 동윤과 함께 태자사인이 되었고, 후주가 즉위하자(223) 황문시랑이 되었습니다. 건흥 3년(225) 남정에서 돌아오는 제갈량은 나이와 벼슬이 앞선 이들을 두고 특별히 비의를 불러 수레에 함께 태웠고, 곧 소신교위로 삼아 오에 사신으로 보냈습니다. 손권은 거리낌 없이 놀려 대고 제갈각 · 양도 같은 이들은 날카로운 말로 따져 들었으나, 비의는 말을 순하게 하고 뜻을 도탑게 하며 이치에 근거해 답해 끝내 굽히지 않았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비의별전』은 손권이 좋은 술로 비의를 취하게 한 뒤 나랏일을 물으면 비의는 취했다며 물러나 물은 것을 차례로 적어 빠짐없이 답했다고 적습니다. 손권은 그를 크게 아껴 「그대는 천하의 맑은 덕을 지녔으니 반드시 촉 조정의 팔다리가 될 것이라, 자주 오지 못할까 걱정」이라 했습니다. 돌아와 시중이 되었고, 건흥 5년(227) 제갈량은 북으로 나서며 올린 출사표에서 곽유지 · 비의 · 동윤을 선제가 골라 남긴 사람이라 하며 궁중의 일을 이들에게 물으라 했으나 곧 비의를 참군으로 한중에 불렀습니다. 비의는 사신의 일을 뜻에 맞게 해내 여러 번 오를 오갔습니다.
건흥 8년(230) 중호군이 되었고 뒤에 사마가 되었습니다. 그때 군사 위연과 장사 양의가 서로 미워해, 위연이 칼을 들어 양의를 겨누면 양의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비의는 늘 둘 사이에 들어가 타이르고 갈라놓았으니, 진수는 제갈량이 살아 있는 동안 두 사람을 다 쓸 수 있었던 것이 비의가 바로잡고 구한 힘이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양양기』는 오에서 크게 취한 손권이 위연과 양의를 걱정하자 비의가 얼른 답하지 못했고 부사 동회가 답을 일러 주었다고 전하는데, 배송지는 같은 말을 실은 『한진춘추』에는 동회가 없다며 이를 의심했습니다.
건흥 12년(234) 병이 깊어진 제갈량은 양의 · 비의 · 강유 등과 몰래 죽은 뒤 군을 물릴 차례를 정해 위연에게 뒤를 끊게 했습니다. 제갈량이 죽자 양의는 비의를 보내 위연의 뜻을 떠보게 했는데, 위연은 「승상이 죽었어도 내가 있다」며 양의의 지휘를 받아 뒤를 끊을 수는 없다 하고 비의와 함께 군을 나누는 글을 적게 했습니다. 비의는 돌아가 양 장사를 달래겠다고 속이고 문을 나서자마자 말을 달려 떠났고, 위연은 뉘우쳤으나 뒤쫓지 못했습니다. 비의는 후군사가 되었고, 벼슬에 불만을 품은 양의가 「그때 군을 이끌고 위에 붙었다면 이렇게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하자 그 말을 몰래 아뢰어 양의가 서인으로 내쳐졌습니다.
얼마 뒤 비의는 장완을 이어 상서령이 되었습니다. 『비의별전』은 그가 문서를 잠깐 보기만 해도 뜻을 다 알아 남보다 몇 곱절 빨랐고, 아침과 저녁에 일을 보고 그사이에 손님을 맞아 먹고 마시며 바둑까지 두면서도 일을 그르치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뒤에 상서령이 된 동윤은 그를 본받으려다 열흘 사이에 일이 밀리자 「사람의 재주와 힘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내가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연희 6년(243) 장완이 한중에서 부현으로 물러나자 비의는 대장군 · 녹상서사가 되었습니다. 이듬해 위의 조상이 10만여 무리를 이끌고 흥세로 오자 비의는 부절을 받고 군을 이끌고 나섰는데, 격문이 오가고 군사가 갑옷을 입은 때에도 찾아온 광록대부 내민과 싫은 기색 없이 바둑을 두어 내민이 「그대는 참으로 믿을 만하니 반드시 적을 물리칠 것」이라 했습니다. 왕평과 유민이 흥세를 지키던 터에 비의가 이르자 위군은 물러갔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는 비의가 삼령으로 나아가 물러가는 조상의 길을 끊어 조상이 험한 길을 다투며 겨우 빠져나갔다고 적습니다. 비의는 이 공으로 성향후에 봉해졌습니다.
장완이 익주자사 자리를 사양하자 비의가 다시 익주자사를 겸했고, 진수는 비의가 나라를 맡은 공과 이름이 장완과 거의 같았다고 적습니다. 『비의별전』은 그가 집에 재물을 쌓지 않고 아들들에게 베옷과 거친 밥을 주며 드나들 때 수레와 말을 따르게 하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연희 11년(248) 한중으로 나가 머물렀는데, 재상이 밖에 있어도 상과 벌은 모두 먼저 그에게 물어 정했습니다. 강유가 강족과 호족을 날개로 삼아 농 서쪽을 끊어 가지려 할 때마다 비의는 이를 눌러 1만이 넘는 군사를 주지 않았고, 『한진춘추』에서 강유에게 「우리는 승상에 훨씬 못 미치고 승상도 중원을 평정하지 못했으니,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다스리며 공업은 능한 이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연희 14년(251) 성도로 돌아왔다가 겨울에 다시 북으로 가서 한수현에 머물렀고, 이듬해 부를 열었습니다.
연희 16년(253) 정월 초하루 큰 잔치에 위에서 항복해 온 곽순이 자리에 있었는데, 비의가 즐겁게 마시다 몹시 취하자 곽순이 손수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시호는 경후입니다. 『삼국지』 장억전은 앞서 비의가 새로 귀순한 이들을 너무 믿자 장억이 잠팽과 내흡이 자객에게 해를 입은 옛일을 들어 조금은 경계하라는 글을 보냈는데 뒤에 과연 해를 입었다고 적습니다. 위의 조서와 『위씨춘추』는 그를 곽수라 적고, 강유에게 사로잡혀 촉에서 좌장군이 된 뒤 유선을 찌르려다 가까이 가지 못해 대신 비의를 죽였다고 전합니다. 아들 비승이 뒤를 이어 황문시랑이 되었고 아들 비공은 공주에게 장가들었으며, 맏딸은 태자의 비가 되었습니다.
『화양국지』는 촉 사람들이 제갈량 · 장완 · 비의 · 동윤을 사상 또는 사영이라 불렀다고 적고, 비의가 죽은 뒤 환관이 권세를 아우르고 비의가 누르던 강유가 거듭 군사를 냈으나 공을 세우지 못하고 정사와 형벌이 어긋났다고 적습니다. 배송지는 유선은 평범한 임금이고 비의는 중간 재주의 재상이라 두 사람의 생사가 나라의 흥망과 무관하다고 했습니다. 진수는 「비의는 너그럽고 두루 사랑했다」고 하고, 장완과 함께 제갈량의 법도를 이어 고치지 않아 변경에 걱정이 없고 나라가 화목했다고 평했습니다.
費禕寬濟而博愛,咸承諸葛之成規,因循而不革,是以邊境無虞,邦家和一君天下淑德,必當股肱蜀朝,恐不能數來也『삼국연의』 제65회 · 제87~107회
연의에서 비의는 제65회에 익주를 얻은 유비가 벼슬을 준 유장의 옛 신하들 가운데 이름이 처음 보입니다. 제87회 남정에서는 장사가 되어 제갈량을 따르고, 제90회에서 맹획이 마침내 복종하자 관리를 두어 함께 지키자고 권했다가, 사람을 남기면 군사를 남겨야 하는데 먹일 것이 없는 등 세 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제갈량의 답을 듣습니다. 제91회에서는 출사표에 곽유지 · 동윤과 함께 이름이 오르고, 시중으로 성도에 남아 궁중의 일을 맡습니다.
제96회에서는 가정에서 진 제갈량이 스스로 벼슬을 깎아 달라고 하자 시중으로서 법을 받드는 것이 중하다며 그 뜻을 따르게 하고, 조서를 들고 한중에 가서 제갈량이 부끄러워할까 봐 네 현을 얻은 일과 강유를 얻은 일을 치하했다가 도리어 꾸중을 듣습니다. 제99회에서는 승상의 자리를 되돌려 주는 조서를 가져가 사양하는 제갈량에게 받으라 권하고, 제101회에서는 이엄의 아룀을 들은 후주의 명으로 군을 물린 까닭을 물으러 한중에 갔다가, 이엄의 거짓이 드러나 그를 베려는 제갈량을 선제가 뒷일을 맡긴 뜻을 들어 말립니다. 제102회에서는 제갈량의 글을 들고 오에 가는데, 잔치 자리에서 손권이 앞장서는 장수를 묻자 위연이라 답하고, 손권이 위연은 용맹은 넘치나 마음이 바르지 않아 제갈량이 없으면 반드시 화가 되리라 하자 그 말이 옳다며 제갈량에게 전합니다. 제103회에서는 오의 세 갈래 군이 헛되이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 제갈량이 쓰러지게 합니다.
제104회에서 비의는 위연의 꿈을 풀이한 조직에게서 그것이 흉한 조짐이라는 말을 먼저 듣고, 제갈량이 죽은 뒤 위연의 진영에 가서 뒤를 끊으라는 명을 전합니다. 위연이 양의 밑에서 뒤를 끊을 수 없다고 하자 양의를 달래 병권을 넘기게 하겠다며 빠져나오고, 양의는 강유에게 뒤를 끊게 하고 군을 물립니다. 제105회에서는 위연의 반역을 후주에게 아뢰고, 제갈량을 정군산에 묻으라는 유언을 전하며, 상서령이 되어 승상의 일을 함께 봅니다. 원망을 품은 양의가 「그때 온 군을 이끌고 위에 항복했더라면」 하고 말하자 그 말을 몰래 아뢰어 양의가 내쳐지게 합니다. 제107회에서 상서령 비의는 하후패를 얻어 북벌에 나서려는 강유에게, 장완과 동윤이 잇달아 죽어 안을 다스릴 사람이 없고 우리는 승상에 훨씬 못 미치는데 승상도 중원을 되찾지 못했다며 말립니다. 연의에서 비의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곽순에게 죽는 일은 그리지 않습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비승 · 비공 · 맏딸(태자비)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안을 다스리는 자가 왔소.
다투는 자리를 고르는 것도 재주요.
웃으며 듣겠소. 편히 말하시오.
…중재로도 안 되는 것이 있구려.
자리를 고쳐 앉아야겠소.
싸우지 않고 얻는 것이 상책이오.
…술자리를 조심했어야 했소.
안이 편하니 밖도 이겼소.
…중재로 될 일이 아니었군.
연회의 칼을… 헤아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