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통凌統

자 공적(公績) · 189년 무렵 ~ 미상 (215년 이후) · 양주 오군 여항현 · 손견 휘하

능통 초상

아버지의 원수 감녕과 갈등했으나 합비에서 손권을 구출한 오나라의 의리남

능력치

통솔77무력89지력58정치40매력70

카드

공격력 6체력 4비용 4값어치 12직군 맹장
일격 호령
무작위 적 하나에게 자기 공격력만큼 피해 (반격 없음)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능통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손성의 말 · 감녕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오주전 · 동습전 · 여몽전 · 주연전 · 낙통전 · 손준전 배송지 주의 『오서』

능통은 자가 공적이며 오군 여항 사람입니다. 아버지 능조는 의협을 좋아하고 담력이 있어 손책이 처음 일어설 때부터 싸움마다 맨 앞에 섰고, 영평현의 장으로 산월을 다스려 파적교위가 되었습니다. 손권이 강하의 황조를 칠 때 능조는 하구로 들어가 앞장섰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었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는 그 화살을 황조 밑에 있던 감녕이 쏘았다고 적습니다. 오주전은 이 싸움을 건안 8년(203)에 둡니다.

능통은 그때 열다섯이었습니다. 주위에서 그를 칭찬하는 이가 많았고, 손권도 능조가 나랏일에 죽었다 하여 그를 별부사마 · 행파적도위로 삼아 아버지의 군사를 거느리게 했습니다. 뒤에 산적을 칠 때 손권이 보둔을 깨뜨리고 먼저 돌아가자, 능통은 독 장이 등과 남아 만 명이 모인 마둔을 에워쌌습니다. 칠 날을 앞두고 독 진근과 술을 마셨는데, 성미가 거친 진근이 좌중을 업신여기고 벌주를 마구 내리자 능통이 그 자리에서 꾸짖었습니다. 노한 진근이 능통과 그 아버지까지 욕했어도 능통은 눈물만 흘리고 대꾸하지 않았으나, 진근이 술기운에 길에서 다시 욕보이자 참지 못하고 칼로 베었고 진근은 며칠 뒤 죽었습니다. 둔을 치는 날 능통은 「죽지 않고서는 죄를 갚을 수 없다」며 몸소 화살과 돌을 무릅써 맡은 쪽을 곧 무너뜨렸고, 장수들이 그 기세를 타 크게 깨뜨렸습니다. 돌아와 스스로 군정에게 갇혔으나, 손권은 그 과감함을 장하게 여겨 공으로 죄를 갚게 했습니다.

건안 13년(208) 손권이 다시 강하를 칠 때 능통은 선봉이 되어, 아끼는 날랜 군사 수십 명과 배 한 척에 타고 본군보다 수십 리 앞서 나아갔습니다. 우강으로 들어가 황조의 장수 장석을 베고 배의 사람을 다 사로잡았으며, 여몽이 황조의 수군을 깨뜨리는 사이 먼저 성을 쳐 크게 이겼습니다. 동습전은 이때 동습과 능통이 앞 부대가 되어 저마다 결사대 백 명을 거느리고 갑옷 두 벌을 입은 채 몽충 사이로 뛰어들었고, 동습이 칼로 몽충을 묶은 밧줄 둘을 끊어 대군이 나아갔다고 적습니다. 손권은 능통을 승렬도위로 삼았고, 능통은 주유 등과 오림에서 조조를 깨뜨리고 이어 조인을 쳐 교위가 되었습니다. 여몽전에 따르면 감녕이 이릉에서 에워싸였을 때 여몽은 「능공적이면 열흘은 지킬 것」이라며 그에게 뒤를 맡기자고 했습니다. 능통은 군중에 있어도 어진 이를 가까이하고 선비를 대접했으며,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의리를 중히 여겨 나라의 선비다운 풍모가 있었습니다.

건안 19년(214) 환성을 깨뜨리는 싸움에 따라나서 탕구중랑장이 되고 패의 상을 겸했으며, 여몽 등과 서쪽으로 세 군을 차지하고 익양에서 돌아와 합비로 가서 오른쪽 부대의 독이 되었습니다. 건안 20년(215) 손권이 군사를 거두어 앞 부대가 이미 떠났을 때 위의 장수 장료 등이 나루 북쪽을 덮쳤습니다. 능통은 가까이 거느린 삼백 명과 함께 포위를 뚫고 들어가 손권을 붙들어 지키며 빠져나오게 했습니다. 적이 다리를 허물어 판자 두 장만 이어져 있었는데, 손권이 말을 달려 건너는 동안 능통은 다시 돌아가 싸웠습니다. 좌우가 다 죽고 자신도 상처를 입었으나 수십 명을 베고 손권이 벗어났으리라 헤아린 뒤에야 돌아섰고, 다리가 무너져 길이 끊기자 갑옷을 입은 채 몰래 빠져나왔습니다. 배에 오른 손권은 그를 보고 놀라 기뻐했지만 능통은 따르던 이들이 하나도 돌아오지 못한 것을 슬퍼해 스스로 이기지 못했습니다. 손권은 소매를 끌어 그 눈물을 닦아 주며 「공적, 죽은 이는 어쩔 수 없소. 그대만 있으면 어찌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겠소」라고 했습니다. 『오서』에 따르면 상처가 깊어 손권이 그를 배에 머물게 하고 옷을 다 갈아입혔으며, 탁씨의 좋은 약 덕분에 죽지 않았습니다. 능통은 편장군이 되고 본래 군사의 두 배를 받았습니다.

『오서』에 따르면 능통은 아버지를 죽인 감녕을 원망해, 감녕은 늘 그를 경계하며 만나지 않았고 손권도 능통에게 원수로 삼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여몽의 집에서 술이 오르자 능통이 칼을 들고 춤을 추었고, 감녕이 쌍극으로 춤추겠다며 일어서자 여몽이 칼과 방패를 들고 몸으로 둘을 갈라놓았습니다. 손권은 능통의 뜻을 알고 감녕을 반주로 옮겨 주둔하게 했습니다. 어떤 이가 같은 군의 성섬을 천거하며 큰 절개가 능통보다 낫다고 하자 손권은 「능통만 같으면 족하다」고 했는데, 뒤에 성섬이 밤에 이르자 이미 누워 있던 능통은 옷을 걸치고 문을 나가 그의 손을 잡고 들였습니다. 능통전은 그가 남의 좋은 점을 아끼고 시기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고 적습니다.

능통은 산속 사람들이 아직 억세니 위엄과 은혜로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았고, 손권은 그를 동쪽으로 보내 거두고 치게 하며 고을들에 그가 구하는 것은 먼저 주고 뒤에 알리게 했습니다. 본디 선비를 아껴 선비들도 그를 따랐으므로 정병 만여 명을 얻었고, 고향 고을을 지날 때는 걸어서 관청에 들어가 현의 관리를 깍듯이 대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떠나려 할 즈음 병으로 죽었습니다. 손권은 이 소식을 듣고 침상을 치며 일어나 앉아 슬픔을 그치지 못했고, 며칠 동안 반찬을 줄였으며 장승에게 명을 지어 기리게 했습니다. 능통전은 그때 나이를 마흔아홉이라 적으나, 열다섯이던 해가 203년이고 그의 군사를 이어받은 낙통이 황무 7년(228)에 죽었으니 이 나이는 맞지 않아 죽은 해를 사서로는 정할 수 없습니다.

두 아들 능렬 · 능봉은 몇 살이었는데, 손권은 이들을 궁에서 길러 여러 아들과 똑같이 아꼈고 손님이 오면 「이 아이들은 나의 범 새끼요」라며 보였습니다. 여덟아홉 살이 되자 갈광에게 글을 가르치게 하고 열흘에 한 번 말을 타게 했으며, 능통의 공을 따져 능렬을 정후에 봉하고 옛 군사를 돌려주었습니다. 뒤에 능렬이 죄를 지어 물러나자 능봉이 작위와 군사를 이었습니다. 배송지가 끌어온 손성은 손권이 선비의 힘을 얻으려 애쓴 예로 「능통의 고아를 길렀다」를 꼽았습니다. 진수는 이 권의 장수들을 두고 「모두 강동의 범 같은 신하로, 손씨가 두터이 대한 이들」이라 평했습니다.

雖在軍旅,親賢接士,輕財重義,有國士之風
군중에 있으면서도 어진 이를 가까이하고 선비를 대접했으며,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의리를 중히 여겨 나라의 선비다운 풍모가 있었다『삼국지』 오서 능통전
公績,亡者已矣,苟使卿在,何患無人
공적, 죽은 이는 어쩔 수 없소. 그대만 있다면 어찌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겠소『삼국지』 오서 능통전 · 손권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38~39회 · 제44회 · 제49~51회 · 제53회 · 제56회 · 제67~68회 · 제82~84회

연의에서 능통은 제38회에 처음 나옵니다. 건안 8년 아버지 능조가 하구에서 감녕의 화살에 맞아 죽자, 열다섯 살의 능통이 힘을 다해 아버지의 시신을 빼앗아 돌아옵니다. 제39회에서 황조를 깨뜨린 공을 기리는 잔치가 열리자 능통은 크게 울며 칼을 뽑아 감녕에게 덤벼들고 감녕은 앉았던 의자를 들어 막습니다. 손권이 그때는 각자 제 주인을 위한 것이라며 말려도 능통은 하늘을 함께 일 수 없는 원수라며 노려보고, 손권은 감녕을 하구로 보내 그를 피하게 하고 능통을 승렬도위로 올립니다.

적벽 싸움에서는 제44회 주유의 셋째 부대를 반장과 함께 맡고, 제49~50회 결전의 밤에는 이릉 쪽에서 오림의 불길을 보고 호응해 달아나는 조조 앞을 막아섭니다. 제51회에서는 주유가 이릉에 갇힌 감녕을 구하러 가는 동안 열흘이면 감당하겠다며 남군 앞의 진영을 맡고, 주유가 화살에 맞아 무너질 때 옆에서 쳐들어와 조조의 군사를 막습니다.

제67회에서는 환성을 얻은 잔치에서 여몽이 감녕의 공을 크게 칭찬하자 아버지의 원수를 떠올리고 칼을 뽑아 「잔치에 풍악이 없으니 내 칼춤을 보라」며 나섰다가, 두 자루 극을 든 감녕과 맞서고 여몽이 둘을 가릅니다. 이어진 합비 싸움에서는 소요진 북쪽에서 장료의 복병을 만나 거느린 삼백여 기로 손권을 지키며 어서 소사교를 건너라고 외치고, 손권이 다리를 뛰어넘는 동안 장료를 막습니다. 삼백여 명이 다 죽고 자신도 창에 여러 군데 찔린 채 끊어진 다리를 피해 강을 따라 달아나다 동습의 배에 건져집니다.

제68회 유수에서는 장료와 쉰 합을 겨루고, 감녕이 밤 습격으로 공을 세우자 분발해 다시 나가 악진과 쉰 합을 싸웁니다. 조휴가 몰래 쏜 화살에 말이 쓰러져 악진의 창에 찔리려는 순간 감녕의 화살이 악진의 얼굴을 맞히고, 능통은 손권에게서 자신을 구한 이가 감녕이라는 말을 듣고 머리를 조아려 감사하며 그와 생사를 함께할 벗이 됩니다.

그 뒤로도 연의의 능통은 살아 있어, 제82~83회 유비가 쳐들어오자 뒤를 맡는 부대로 나가 황충을 에워싸는 데 끼고, 제84회에서는 육손 앞에서 한당 · 주태와 함께 나가 싸우겠다고 나섭니다. 연의는 그의 죽음을 그리지 않고, 능통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03열다섯 살에 아버지 능조가 죽자 별부사마가 되어 그 군사를 거느렸습니다.능씨 부자
  2. 208강하를 칠 때 선봉이 되어 황조의 장수 장석을 베고 먼저 성을 쳤습니다.
  3. 208동습과 함께 저마다 결사대 백 명을 거느리고 앞 부대가 되어 몽충 사이로 뛰어들었습니다.밧줄을 끊은 두 장수
  4. 208주유 등과 오림에서 조조를 깨뜨리고 이어 조인을 쳐 교위가 되었습니다.
  5. 214환성을 깨뜨리는 싸움에 따라나서 탕구중랑장이 되고 패의 상을 겸했습니다.
  6. 215합비에서 물러날 때 삼백 명으로 장료의 포위를 뚫고 손권을 지켜 내 편장군이 되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능조 · 아들 능렬 · 능봉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강동의 의리를 보아라.

말을 열며

의리 하나로 여기까지 온 몸이오.

되받으며

원한은 깊어도 예는 지키겠소.

말문이 막혀

…아버님, 지켜봐 주시오.

말문이 막혀

여기서 꺾이면 낯이 없다.

설전을 이기고

합비의 빚은 이렇게 갚소.

설전에 지고

분하지만… 은원은 잊지 않소.

이긴 뒤

합비의 빚을 갚았소.

진 뒤

…원수 갚을 날이 미뤄졌군.

쓰러지며

아버지의 원수와… 벗이 되었다.

같은 기치 아래

주유여몽손견손책육항육손노숙황개주태서성손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