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녕甘寧

자 흥패(興覇) · 미상 ~ 미상 (215년 이후) · 익주 파군 임강현 · 황조 휘하

감녕 초상

백여 명을 이끌고 밤에 조조의 진영을 친 손권의 맹장

능력치

통솔87무력94지력76정치18매력55

카드

공격력 6체력 6비용 5값어치 15직군 맹장
백기 호령
무작위 적 하나에 3 피해 · 그 적은 이번 국면 못 친다
방울 속성
적이 판에 설 때마다 그 적은 다음 제 차례 공격력 −1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감녕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강표전』 · 촉서 유언전 배송지 주의 『영웅기』 · 오서 오주전 · 주유전 · 여몽전 · 능통전

감녕은 자가 흥패이며 파군 임강 사람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는 그가 본디 남양 사람으로 조상이 파군에 와서 살았고, 군의 계연(회계 장부를 올리는 관리)으로 천거되어 촉군의 승이 되었다가 얼마 뒤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적습니다. 젊어서 힘이 셌고 유협을 좋아해 경박한 젊은이들을 모아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무리를 지어 활과 쇠뇌를 끼고 깃털 장식을 등에 지고 방울을 차고 다녔으므로, 백성들은 방울 소리만 듣고도 감녕인 줄 알았습니다. 고을의 관리가 후하게 대접하면 어울려 즐겼으나 그렇지 않으면 무리를 풀어 재물을 빼앗았고, 이런 일이 스무 해 남짓 이어졌습니다. 『오서』는 그가 머물 때는 늘 비단으로 배를 매었다가 떠날 때 잘라 버려 사치를 보였다고 덧붙입니다.

유언전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영웅기』는 유언이 죽은 뒤 유장의 장수 심미 · 누발 · 감녕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이기지 못해 형주로 달아났다고 적습니다. 감녕은 노략질을 그치고 제자백가의 글을 꽤 읽은 뒤 유표에게 가 남양에 머물렀으나 쓰이지 못했고, 다시 황조에게 의탁했으나 황조도 그를 보통 사람으로만 대했습니다. 『오서』에 따르면 그는 식객 팔백 명을 거느리고 유표에게 갔다가 그가 끝내 이루는 것이 없으리라 보고 오로 가려 했는데, 하구의 황조에게 길이 막혀 그에게 머물렀고 황조는 세 해 동안 그를 예우하지 않았습니다. 손권이 황조를 쳐 황조의 군사가 져서 달아날 때 감녕은 활을 잘 쏘아 뒤를 막으며 교위 능조를 쏘아 죽였으나, 황조는 여전히 그를 전과 같이 대했습니다. 도독 소비가 여러 번 천거해도 쓰지 않고 오히려 그의 식객을 꾀어내니, 소비는 술자리를 마련해 「해와 달은 흘러가고 인생은 얼마나 되겠소」라며 그를 주현의 장으로 보내 주었고 감녕은 그 길로 수백 명을 모아 떠났습니다.

오로 오자 주유와 여몽이 함께 그를 천거했고, 손권은 그를 남다르게 여겨 옛 신하와 똑같이 대했습니다. 감녕은 조조가 끝내 찬탈할 것이고 형주는 나라의 서쪽 형세이며 유표는 생각이 멀지 못하고 아들들도 못났으니 조조보다 먼저 도모해야 한다면서, 늙어 정신이 흐리고 배와 싸움 기구를 손보지 않는 황조를 먼저 치고 북을 울리며 서쪽으로 나아가 초관을 차지하면 차츰 파촉을 도모할 수 있다고 아뢰었습니다. 자리에 있던 장소가 오가 어지러워질 것이라며 막자 감녕은 그가 소하의 소임을 맡고도 어지러움만 걱정한다고 맞받았고, 손권은 술잔을 들어 황조를 치는 일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건안 13년(208) 손권이 서쪽으로 나아가 황조를 잡고 그 군사를 다 거두자 감녕은 군사를 받아 당구에 주둔했습니다. 감녕전은 황조를 사로잡았다고 적고, 오주전은 달아나던 황조의 목을 기병 풍칙이 베었다고 적습니다. 『오서』에 따르면 손권은 황조와 소비의 목을 담을 상자 둘을 만들어 두었는데, 감녕이 술자리에서 머리를 조아려 피눈물을 흘리며 소비가 없었다면 자신은 이미 구렁에 뼈를 묻었을 것이라고 빌고, 소비가 달아나면 「제 머리를 대신 상자에 넣겠습니다」라고 해 손권이 소비를 용서했습니다.

그해 주유를 따라 오림에서 조조를 깨뜨렸습니다. 남군의 조인을 쳐도 떨어뜨리지 못하자 먼저 이릉을 차지하자는 계책을 내어 곧 그 성을 얻었는데, 거느린 군사가 새로 얻은 이까지 겨우 천 명이었습니다. 조인이 오륙천 명으로 에워싸고 높은 망루에서 비 오듯 활을 쏘아 군사들이 다 두려워했으나 감녕은 태연히 웃으며 이야기했고, 주유가 여몽의 계책을 따라 와서 포위를 풀었습니다. 뒤에 노숙을 따라 익양에서 관우를 막을 때, 관우가 날랜 군사 오천을 골라 밤에 여울을 건너려 하자 군사 삼백뿐이던 감녕은 「오백 명만 더 주시면 관우는 내 기침 소리만 들어도 물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노숙이 천 명을 더 주어 감녕이 밤에 나아가니 관우는 건너지 않고 섶으로 진영을 쳤고, 그곳을 관우의 여울이라 불렀습니다. 손권은 그를 서릉태수로 삼아 양신 · 하치 두 현을 거느리게 했습니다. 건안 19년(214) 환성을 칠 때는 성에 오르는 부대의 독이 되어 손에 줄을 쥐고 몸소 성벽을 타고 올라 앞장섰고 주광을 사로잡았으며, 공이 여몽 다음이라 하여 절충장군이 되었습니다.

그 뒤 조조가 유수로 나오자 감녕은 앞 부대의 독이 되어 적의 앞 진영을 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손권이 내린 술과 안주를 수하 백여 명에게 먹이고 은그릇에 술을 따라 먼저 두 그릇을 마신 뒤 도독에게 따라 주었는데, 도독이 엎드려 받지 않자 칼을 뽑아 무릎에 놓고 「감녕도 죽음을 아끼지 않는데 그대는 어찌 홀로 죽음을 아끼는가」라고 꾸짖었습니다. 이경에 하무를 물고 나가 적을 치니 적이 놀라 물러났고, 감녕은 군사 이천을 더 받았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그는 날랜 군사 백여 명으로 조조의 진영에 들어가 녹각을 뽑고 보루를 넘어 수십 명의 목을 벴고, 북군이 횃불을 별처럼 들었을 때는 이미 돌아와 만세를 불렀습니다. 손권은 기뻐하며 「맹덕에게는 장료가 있고 나에게는 흥패가 있으니 서로 맞설 만하다」고 했습니다.

감녕은 거칠고 사나워 죽이기를 좋아했으나, 시원스럽고 꾀가 있었으며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선비를 공경해 날랜 군사들을 두터이 길렀고 그들도 기꺼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건안 20년(215) 합비에서 물러날 때 소요진 북쪽에서 장료의 습격을 받자 활을 쏘며 능통 등과 죽기로 싸웠고, 어찌 풍악을 울리지 않느냐고 소리 높여 꾸짖어 손권이 특히 기렸습니다. 『오서』에 따르면 능통은 감녕이 아버지를 죽인 것을 원망해, 여몽의 집에서 술이 오르자 칼춤을 추었고 감녕이 쌍극으로 춤추겠다며 일어서자 여몽이 칼과 방패를 들고 둘을 갈라놓았습니다. 손권은 능통의 뜻을 알고 감녕을 반주로 옮겨 주둔하게 했습니다.

한번은 잘못을 저지르고 여몽에게 달아난 부엌의 아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돌려받고는, 배로 돌아가 뽕나무에 묶고 손수 쏘아 죽였습니다. 노한 여몽이 군사를 모아 그를 치려 했으나 여몽의 어머니가 맨발로 나와 말렸고, 여몽이 웃으며 부르자 감녕은 흐느끼며 「그대를 저버렸소」 하고 함께 돌아가 하루 내내 즐겼습니다. 여몽전은 감녕이 여몽의 뜻을 자주 거스르고 손권의 명도 어겼으나 여몽이 「감녕 같은 싸움 장수는 얻기 어렵다」며 감싸 손권이 끝내 그를 썼다고 적습니다. 감녕이 죽자 손권은 몹시 애석해했고, 아들 감괴는 죄를 지어 회계로 옮겨졌다가 얼마 안 가 죽었습니다. 본전은 그가 죽은 해를 적지 않습니다. 진수는 이 권의 장수들을 두고 「모두 강동의 범 같은 신하로, 손씨가 두터이 대한 이들」이라고 평했습니다.

寧雖麤猛好殺,然開爽有計略,輕財敬士,能厚養健兒,健兒亦樂爲用命
감녕은 거칠고 사나워 죽이기를 좋아했으나 시원스럽고 꾀가 있었으며,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선비를 공경해 날랜 군사를 두터이 기르니 그들도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삼국지』 오서 감녕전
孟德有張遼,孤有興霸,足相敵也
맹덕에게는 장료가 있고 나에게는 흥패가 있으니 서로 맞설 만하다『삼국지』 오서 감녕전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손권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38~39회 · 제44~47회 · 제49~51회 · 제53회 · 제56회 · 제66~68회 · 제82~83회

연의에서 감녕은 제38회에 처음 나옵니다. 건안 8년 손권이 황조를 칠 때 황조의 부장으로서 앞장선 능조를 화살 한 대로 쏘아 죽이고, 뒤에 여몽의 소개로 손권에게 옵니다. 여몽은 그가 파군 임강 사람으로 글과 역사를 꽤 알고 힘이 세며, 허리에 구리 방울을 차고 다녀 사람들이 그 소리만 들으면 피했고 서천의 비단으로 돛을 삼아 금범적이라 불렸다고 소개합니다. 황조는 그를 강을 터는 도적이라며 쓰지 않았고, 소비가 악현의 장으로 보내 주어 떠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감녕은 먼저 황조를 치고 서쪽으로 파촉을 도모하라는 계책을 올리고, 동습과 함께 부장이 되어 작은 배 백여 척으로 몽충을 묶은 큰 밧줄을 끊고 몽충에 뛰어올라 등룡을 벱니다.

제39회에서는 동문 밖에 숨어 기다리다 달아나는 황조를 쫓고, 정보가 공을 다툴까 봐 등 뒤로 활을 쏘아 떨어뜨린 뒤 목을 벱니다. 손권이 소비를 베려 하자 머리를 조아려 울며 그 목숨을 빌어 살리지만, 잔치 자리에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능통이 칼을 뽑아 덤벼들자 의자를 들어 막고, 손권은 그를 하구로 보내 능통을 피하게 합니다.

적벽에서는 제45회 삼강구 첫 싸움에서 앞장서 채훈을 쏘아 죽이고, 제46~47회에서는 거짓 항복한 채중 · 채화를 맡아 지켜보며 감택과 함께 오를 등지려는 척 꾸며 조조를 속입니다. 결전의 밤인 제49~50회에는 채중을 앞세워 조조의 진영 깊이 들어가 그를 베고 불을 지르며, 달아나는 조조의 길목에서 마연과 장의를 벱니다. 제51회에서는 이릉을 빼앗았다가 조조의 군사에게 에워싸이고, 주유가 이끈 구원군과 안팎으로 쳐서 풀려납니다. 제66회 단도회에서는 여몽과 함께 군사를 숨겨 관우를 노리지만 관우가 노숙의 손을 붙들고 있어 손을 쓰지 못합니다.

제67회 환성에서는 쇠사슬을 쥐고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올라가 그 쇠사슬로 주광을 쳐 쓰러뜨리고, 공을 기리는 잔치에서 능통이 칼춤을 추며 다가오자 두 자루 극을 들고 맞서다 여몽이 둘을 가릅니다. 제68회 유수에서는 능통이 삼천 명을 청하자 백 기면 넉넉하다고 맞서고, 손권이 내린 술과 양고기를 백 명과 나누어 먹고 은그릇으로 먼저 두 잔을 마신 뒤, 투구에 흰 거위 깃털을 꽂고 밤에 조조의 진영을 휘저어 한 사람 한 기도 잃지 않고 돌아옵니다. 손권은 「맹덕에게 장료가 있다면 나에게는 감흥패가 있다」고 기뻐합니다. 이튿날 능통이 악진과 겨루다 조휴의 화살에 말이 쓰러지자 감녕이 악진의 얼굴을 쏘아 맞혀 그를 구하고, 능통은 머리를 조아려 감사하며 그와 생사를 함께할 벗이 됩니다.

마지막은 제82~83회입니다. 유비가 쳐들어오자 장소의 아룀으로 구원하는 부대를 맡아 이질을 앓는 몸으로 나섰다가, 배에서 앓던 중 촉군이 이른다는 말에 말에 올라 만왕 사마가의 군사와 마주칩니다. 맞서지 못하고 달아나다 사마가의 화살을 머리에 맞고 부지구에 이르러 큰 나무 아래 앉아 죽으니, 나무 위의 까마귀 수백 마리가 그 시신을 둘러쌌고 손권은 예를 갖추어 장사 지내고 사당을 세웁니다. 연의에서 감녕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03『오서』에 따르면 황조 밑에서 뒤를 막으며 손권의 교위 능조를 쏘아 죽였습니다.
  2. 208오로 와서 먼저 황조를 치고 서쪽으로 파촉을 도모하자는 계책을 올렸습니다.강하의 금방울
  3. 208손권이 황조를 깨뜨리자 군사를 받아 당구에 주둔했습니다.강하의 강물
  4. 208『오서』에 따르면 은인 소비의 목숨을 손권에게 빌어 살렸습니다.
  5. 208주유를 따라 오림에서 조조를 깨뜨리고, 이릉을 차지해 조인의 포위를 버텼습니다.
  6. 214환성을 칠 때 앞장서 성벽을 올라 주광을 사로잡고 절충장군이 되었습니다.
  7. 215익양에서 관우가 여울을 건너지 못하게 막고 서릉태수가 되었습니다.
  8. 215합비에서 물러날 때 소요진 북쪽에서 장료의 습격을 받자 능통 등과 죽기로 싸웠습니다.
  9. 217유수에서 수하 백여 명으로 밤에 조조의 앞 진영을 쳐 군사 이천을 더 받았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감괴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금범적이 왔다!

말을 열며

감흥패요. 방울 소리를 들었으면 각오하시오.

되받으며

길게 끌 것 없소. 곧장 갑시다.

말문이 막혀

…기세가 꺾이는군.

말문이 막혀

이럴 때가 아니오.

설전을 이기고

백 기로 조조의 영채를 흔든 사람이오.

설전에 지고

…한 번 더 갔어야 했소.

이긴 뒤

백 기면 족했다!

진 뒤

…돛을 접어야겠군.

쓰러지며

백 기로 영채를 흔들었다.

같은 기치 아래

황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