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全琮

자 자황(子璜) · 미상 ~ 249년 · 양주 오군 전당현 · 손견 휘하

전종 초상

아버지의 쌀을 곤궁한 선비들에게 풀어 준 손권의 사위

능력치

통솔78무력72지력73정치61매력70

카드

공격력 4체력 4비용 2값어치 8직군 주공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전종전과 배송지 주의 서중의 평 · 『오록』 · 『강표전』 · 『오서』 · 오주전 · 비빈전 · 고담전과 배송지 주의 『오록』 · 육손전 · 손화전 배송지 주의 『통어』 · 주연전 · 여범전 · 주환전 · 하전여주종리전 평

전종은 자가 자황이며 오군 전당현 사람입니다. 아버지 전유는 한 영제 때 효렴으로 뽑혀 상서랑 우승이 되었으나 동탁의 난에 벼슬을 버리고 돌아왔고, 회계동부도위를 거쳐 손책이 오에 이르자 군사를 일으켜 먼저 붙었습니다. 손책은 표를 올려 그를 단양도위로 삼았고, 손권이 거기장군이 되자 장사로 삼았다가 계양태수로 옮겼습니다.

전유는 일찍이 전종에게 쌀 수천 섬을 싣고 오로 가서 바꾸어 오게 했는데, 전종은 이르러 그것을 모두 나누어 쓰고 빈 배로 돌아왔습니다. 전유가 크게 노하자 전종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들일 것은 급하지 않은데 사대부들이 거꾸로 매달린 듯한 곤궁에 빠져 있어 곧바로 구하느라 미처 아뢰지 못했습니다」라고 했고, 전유는 오히려 그를 기특하게 여겼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서중의 평은 아들이 아버지의 명을 버리고 재물을 마음대로 써서 이름을 구한 것은 부자의 예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 했고, 배송지는 아들의 도리는 아니나 선비들의 목숨이 아침저녁에 달려 있어 급한 이를 먼저 구한 것이라며 이름을 구했다고만 하면 그 마음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무렵 중원의 선비들이 난을 피해 남쪽으로 와 전종에게 의지한 이가 백을 헤아렸는데, 전종은 집안 재산을 기울여 그들을 돕고 있고 없는 것을 함께 나누어 이름이 멀고 가까운 곳에 드러났습니다.

뒤에 손권은 그를 분위교위로 삼아 군사 수천을 주고 산월을 치게 했습니다. 전종은 사람을 모아 정병 1만여 명을 얻고 우저에 머물렀으며 점차 편장군에 올랐습니다. 건안 24년(219) 관우가 번과 양양을 에워싸자 전종은 관우를 칠 수 있는 계책을 글로 올렸는데, 손권은 이미 여몽과 은밀히 관우를 칠 일을 의논하던 터라 일이 샐까 봐 답하지 않았습니다. 관우를 사로잡은 뒤 손권은 공안에서 술자리를 열고 「경이 앞서 이를 아뢰었을 때 내가 답하지 않았으나 오늘의 승리는 경의 공이기도 하오」 하고 그를 양화정후에 봉했습니다.

황무 원년(222) 위나라가 수군으로 동구에 크게 나오자 손권은 여범에게 장수들을 거느리고 막게 했습니다. 적이 가벼운 배로 자주 노략하자 전종은 늘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채 쉬지 않고 살폈고, 적 수천이 강 가운데로 나오자 깨뜨리고 장군 윤로를 베었습니다. 수남장군이 되고 전당후로 올려 봉해졌으며, 황무 4년(225) 가절을 받고 구강태수를 맡았습니다. 황무 7년(228) 손권이 환에 이르러 그를 보국장군 육손과 함께 조휴를 치게 했고, 두 사람은 석정에서 조휴를 깨뜨렸습니다. 단양 · 오 · 회계의 산민이 다시 도적이 되자 손권은 세 군의 험한 땅을 나누어 동안군을 두고 전종을 태수로 삼았는데, 그는 상벌을 밝히고 투항하는 이를 불러들여 몇 해 동안 1만여 명을 얻었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돌아오는 길에 전당에 들러 조상의 무덤에 제사하고 고을 사람과 옛 벗, 친척들을 불러 재물을 나누어 주니 고향에서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황룡 원년(229) 전종은 위장군 · 좌호군 · 서주목이 되고 공주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비빈전은 손권의 맏딸 손노반이 처음에 주유의 아들 주순에게 시집갔다가 뒤에 전종에게 갔다고 적습니다. 『오서』에 따르면 전종은 처음 장수였을 때는 용감하고 결단 있어 적 앞에서 몸을 돌보지 않았으나, 도독이 되고서는 위엄을 기르고 신중하여 늘 계책에 맡기고 작은 이익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손권이 아들 손등을 출정시켰을 때 신하들이 감히 간하지 못했는데, 전종이 은밀히 표를 올려 예부터 태자가 홀로 정벌에 나선 적은 없다고 하자 손권이 곧 손등을 불러들였고, 사람들은 그에게 대신의 절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가화 2년(233) 보병과 기병 5만으로 육안을 쳤을 때 백성들이 흩어져 달아나자 장수들이 군사를 나누어 잡으려 했으나, 전종은 「위태로움을 틈타 요행을 바라는 것은 나라의 큰 법이 아니다」라며 공을 탐해 나라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듬해 손권이 신성으로 향할 때 주연과 함께 부월을 받아 좌우 독이 되었습니다. 적오 4년(241) 회남을 쳐 작피의 둑을 터뜨리고 안성의 창고를 불사르며 백성을 거두었고, 위장 왕릉과 작피에서 싸웠습니다. 고담전에 따르면 대도독 전종의 군이 불리했을 때 장휴 · 고승이 적을 막아 세웠고 전종의 아들 전서 · 전단이 뒤이어 쳐서 왕릉이 물러났는데, 공을 매길 때 막아 세운 공을 더 크게 치자 전기 부자가 원망하여 고담을 모함했습니다.

적오 9년(246) 우대사마 · 좌군사가 되었습니다. 사람됨이 공손하고 순하여 손권의 낯빛을 살펴 간언을 잘 드렸고 말이 거슬린 적이 없었습니다. 손권이 주애와 이주를 치려 할 때 먼저 그에게 물었는데, 전종은 풍토와 병을 들어 말렸으나 손권은 듣지 않았고 군사가 열에 여덟아홉이 병으로 죽자 깊이 뉘우쳤습니다. 높이 쓰여 일가 자제가 모두 귀해지고 천금을 받았으나, 그는 여전히 몸을 낮추어 선비를 대하고 얼굴에 교만한 빛이 없었습니다.

태자 손화와 노왕 손패가 맞서던 때, 육손전은 전종의 아들 전기가 노왕에게 붙어 이간질하자 육손이 글을 보내 「전기를 감싸면 끝내 집안에 화가 될 것」이라 했으나 전종이 받아들이지 않아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났다고 적습니다. 손화전 배송지 주에 인용된 『통어』는 대사마 전종을 노왕에게 붙은 대신의 하나로 듭니다. 전종전은 그가 적오 12년(249)에 죽었다고 적고, 오주전은 적오 10년(247) 정월에 죽었다고 적습니다. 아들 전역이 뒤를 이었으나 뒤에 수춘의 제갈탄을 구하러 갔다가 먼저 위에 항복했고, 『오서』에 따르면 전기는 노왕에게 붙은 죄로 죽음을 받았습니다. 진수는 「전종은 당세의 재주가 있어 그때에 귀하고 무거웠으나, 간사한 아들을 단속하지 못해 헐뜯음을 받고 이름을 더럽혔다」고 평했습니다.

全琮有當世之才,貴重於時,然不檢姦子,獲譏毀名云
전종은 당세의 재주가 있어 그때에 귀하고 무거웠으나, 간사한 아들을 단속하지 못해 헐뜯음을 받고 이름을 더럽혔다『삼국지』 오서 하전여주종리전 평
琮既親重,宗族子弟並蒙寵貴,賜累千金,然猶謙虛接士,貌無驕色
전종은 가까이 높이 쓰여 일가 자제가 모두 귀해지고 천금을 받았으나, 여전히 몸을 낮추어 선비를 대하고 교만한 빛이 없었다『삼국지』 오서 전종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96회

연의에서 전종은 제96회에 한 번 나옵니다. 위의 조휴가 파양태수 주방의 거짓 항복에 속아 환성으로 내려오자, 손권은 육손을 보국대장군 · 평북도원수로 삼아 몸소 채찍을 잡아 줍니다. 육손은 좌우 도독으로 분위장군 주환과 수남장군 전종을 천거하고, 손권은 주환을 좌도독, 전종을 우도독으로 삼습니다. 주환은 조휴가 지면 협석과 계거 두 길로 달아날 것이니 「전자황과 함께 각각 한 군을 이끌고 험한 산길을 나무와 돌로 막으면 조휴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계책을 내지만, 육손은 좋은 계책이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석정에서 조휴가 장보와 설교에게 각각 2만을 주어 남북에 숨겨 두자, 육손은 주환과 전종에게 각각 3만을 주어 석정산을 돌아 조휴의 진영 뒤로 가서 불을 놓게 합니다. 그날 밤 전종은 위군 진영 뒤에 이르러 설교의 군과 맞닥뜨려 크게 싸우고, 설교가 패해 달아나자 주환과 함께 두 길로 쳐들어가 조휴의 진영을 어지럽힙니다. 싸움이 끝나 서성 · 주환 · 전종이 노획한 수레와 군수품, 항복한 군사 수만을 거느리고 돌아오자 육손은 크게 기뻐합니다. 연의에서 전종이 나오는 것은 이 싸움뿐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19관우를 칠 계책을 올렸고, 관우를 사로잡은 뒤 양화정후가 되었습니다.
  2. 222동구에서 위군을 깨뜨려 장군 윤로를 베고 수남장군 · 전당후가 되었습니다.
  3. 225가절을 받고 구강태수가 되었습니다.
  4. 226오주전에 따르면 이해에 세 군의 험한 땅으로 둔 동안군의 태수가 되었습니다.
  5. 228육손과 함께 석정에서 조휴를 깨뜨렸습니다.
  6. 229위장군 · 좌호군 · 서주목이 되고 손권의 딸 손노반을 아내로 맞았습니다.강동의 혼인
  7. 233보병과 기병 5만으로 육안을 쳤으나 달아난 백성을 쫓지 않았습니다.
  8. 234손권이 신성으로 향할 때 주연과 함께 좌우 독이 되었습니다.
  9. 241회남을 쳐 작피의 둑을 터뜨리고 위장 왕릉과 싸웠습니다.
  10. 246우대사마 · 좌군사가 되었습니다.
  11. 249전종전은 이해에 죽었다고 적고, 오주전은 247년 정월로 적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전유 · 아내 손노반(손권의 딸) · 아들 전서 · 전기 · 전오 · 전역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우대사마 전종이오.

말을 열며

쌀을 나누어 주고 빈 배로 돌아온 적이 있소.

되받으며

아버지도 나무라지 않으셨소.

말문이 막혀

…굶는 사람을 두고 쌀을 팔 수는 없었소.

말문이 막혀

만년의 일은 내가 부끄럽소.

설전을 이기고

베푼 것은 돌아오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말에서도 편을 잘못 들었구려.

이긴 뒤

따르는 마음으로 이겼소.

진 뒤

편을 가른 값을 치르오.

쓰러지며

젊은 날이 나았소.

같은 기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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