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張昭

자 자포(子布) · 156년 ~ 236년 · 서주 팽성국 · 손견 휘하

적벽에서 홀로 항복을 주장했으나 손씨 삼대를 떠받친 강동의 대들보

능력치

통솔33무력3지력84정치97매력81

카드

공격력 1체력 2비용 2값어치 9직군 능리
독계 비용 3
적 전체가 매 국면 1 피해를 입는다 (지속)
험로 비용 1
적의 다음 소환이 한 국면 더 멀미
격문 비용 1
다음 소환 둘까지 체력 +1

정사

장소는 서주 팽성 사람으로, 중원의 난을 피해 강동으로 건너왔다가 손책에게 발탁되어 오나라의 기틀을 세운 문신입니다. 손책은 그를 스승처럼 대하며 내정을 통째로 맡겼고, 스물여섯에 죽음을 앞두고는 아우 손권의 뒷일까지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손책이 죽은 뒤 슬픔에 잠겨 있던 손권의 상복을 손수 벗기고 말에 태워 군영을 돌게 함으로써 흔들리던 강동의 인심을 붙잡은 것도 그였습니다. 그러나 208년 조조가 남하하자 조정에서 홀로 항복을 주장하여 주유·노숙과 갈라섰고, 이 일은 평생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손권이 황제에 오른 날 "그때 장공의 말을 따랐더라면 지금쯤 밥을 빌어먹고 있었을 것"이라 꼬집은 것은 유명합니다. 225년 백관이 그를 승상으로 천거했으나 손권은 성정이 너무 강직하다며 고옹을 앉혔습니다. 231년 요동의 공손연을 번왕으로 세우는 일을 두고는 손권이 칼을 빼 들 만큼 격렬히 맞섰고, 뒤에 손권이 그 집 문을 흙으로 막자 장소도 안에서 흙을 더 쌓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만년에는 좌씨전과 논어에 주석을 다는 데 힘썼으며, 236년 여든하나로 세상을 떠나 문후(文侯)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삼국지연의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강동으로 건너와 벌이는 설전군유(舌戰群儒)의 첫 상대로 나섭니다. 유비가 조조에게 쫓겨 다니는 처지를 들어 제갈량을 몰아세우지만 도리어 논박당하며, 이후로도 줄곧 항복을 주장하는 문관들의 우두머리로 그려집니다. 주유와 노숙의 항전론에 밀려 빛을 잃는 배역이지만, 정사에서의 그는 오나라 내정을 떠받친 첫째가는 기둥입니다.

가족

아들: 장승(張承), 장휴(張休)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제 열전에서 한 자락씩 따 왔습니다.

싸움터에 들며

강동의 대들보요.

말을 열며

강동의 늙은 신하요. 예를 갖추어 묻겠소.

되받으며

말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오. 들어 보겠소.

말문이 막혀

…내 말이 가벼웠는가.

말문이 막혀

손씨 삼대를 모신 몸이거늘.

설전을 이기고

옛 글을 읽은 자를 얕보지 마시오.

설전에 지고

…노신의 말이 통하지 않는구려.

이긴 뒤

강동의 문신도 싸울 줄 아오.

진 뒤

…항복을 말하던 입이 부끄럽소.

쓰러지며

그때 항복을 말한 것을 뉘우친다.

근거 · 손책이 후사를 맡긴 오의 문신 수좌·적벽 때 항복론·설전군유의 첫 상대. · 손씨 삼대를 떠받친 강동의 대들보. · 적벽에서 홀로 항복을 주장. 뒤에 손권과 문을 막고 다툼. 236년 죽음. · 적벽에서 항복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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