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만재(曼才) · 미상 ~ 미상 (241년 이후) · 서주 팽성국 · 손견 휘하
군사적 재능이 없음을 알고 분수에 맞게 벼슬을 사양한 오나라의 명신
출전 · 『삼국지』 오서 엄준전과 배송지 주의 『지림』 · 『오서』 · 오서 장소전 · 보즐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보즐전에 실린 주소의 글 · 여범전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여몽전 · 손등전
엄준은 자가 만재이며 팽성 사람입니다. 젊어서 배우기를 즐겨 『시경』과 『서경』, 세 가지 예서에 밝았고 『설문』도 좋아했습니다. 난을 피해 강동으로 가서 제갈근 · 보즐과 나란히 이름이 나고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는 보즐이 손권의 주기가 되었다가 병으로 물러난 뒤 낭야의 제갈근, 팽성의 엄준과 함께 오의 땅에서 노닐어 셋 다 이름을 떨쳤다고 적습니다. 그는 성품이 곧고 순박하며 두터웠고, 남에게는 진심으로 일러 좋은 길로 이끌며 보탬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장소가 그를 손권에게 천거해 기도위 · 종사중랑이 되었습니다. 건안 22년(217) 횡강장군 노숙이 죽자 손권은 엄준에게 노숙을 대신해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육구를 지키게 했고, 사람들은 모두 엄준을 위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엄준은 「소박한 서생이라 군사에 익숙하지 않으니, 재주 없이 그 자리에 앉으면 허물과 뉘우침이 반드시 이를 것」이라며 앞뒤로 굳게 사양했고, 말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지림』에 따르면 손권이 다시 말타기를 시켜 보자 엄준은 말에 오르다 안장에서 떨어졌습니다. 손권은 마침내 그 뜻을 들어주었고, 세상은 그가 제 실제를 헤아려 사양할 줄 안 것을 칭찬했습니다. 여몽전은 노숙이 죽은 뒤 여몽이 서쪽 육구에 주둔해 노숙의 군사 1만여를 모두 거느렸다고 적습니다.
손권이 오왕이 되고 황제를 칭하는 사이 엄준은 위위가 되었고, 촉에 사신으로 가자 촉의 승상 제갈량이 그를 매우 좋게 여겼습니다. 그는 받은 녹봉과 하사품을 쌓아 두지 않고 모두 친척과 옛 벗에게 나누어 주어 집안이 늘 넉넉지 못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손권이 건업으로 도읍을 옮기고 장수와 문무 관원을 크게 모았을 때, 엄준은 손권이 노숙을 등우에, 여범을 오한에 견준 것을 두고 두 사람이 은혜를 입어 칭찬이 지나쳤다고 했습니다. 손권이 등우가 광무제에게 한의 업을 다시 일으키라고 처음 권했듯 노숙도 처음 만난 자리에서 큰 계책을 말했다고 풀어 주자 엄준은 승복했습니다. 장소전에는 손권이 위위 엄준에게 어릴 때 외운 글을 아직 기억하느냐고 묻자 엄준이 『효경』의 첫머리를 외웠고, 장소가 「엄준은 비루한 선비」라며 나서서 윗사람을 섬기는 대목을 외웠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광릉의 유영은 엄준과 오랜 벗으로 집에서 학문에 힘썼는데, 손권이 그를 불러도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아우 유략이 영릉태수로 있다 죽자 유영이 상례에 달려갔고, 손권은 그의 병이 거짓인 것을 알고 역마로 급히 잡아들이게 했습니다. 엄준이 유영에게 사람을 달려 보내 돌아가 손권에게 사죄하게 하자, 노한 손권은 엄준을 내쳤고 유영은 죄를 면했습니다. 오랜 뒤 손권은 엄준을 상서령으로 삼았습니다. 적오 4년(241) 태자 손등은 죽으며 올린 글에서 제갈근 · 보즐 · 엄준 등을 나라에 충성하고 다스림의 바탕에 통달한 이들로 꼽았습니다. 엄준이 죽은 해는 적혀 있지 않으나,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는 그가 일흔여덟에 죽었고 아들 엄개 · 엄상을 두었으며 엄개는 승평소부에 이르렀다고 적습니다.
엄준은 『효경전』과 『조수론』을 지었고, 또 배현 · 장승과 함께 관중과 자로를 논했는데 모두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보즐전 끝에 실린 영천 사람 주소의 글은 고소 · 제갈근 · 보즐 · 엄준 · 장승을 당대에 빼어난 이들로 들며, 엄준이 배우되 녹을 구하지 않고 구차하게 얻으려는 마음이 없었고, 노숙의 만 군사를 맡을 자리에 뽑혔으나 장수의 재목이 아니라며 끝내 사양했으며, 구경과 상서의 자리에 올라서도 영화와 녹을 탐하지 않았다고 칭찬했습니다. 진수는 엄준 · 정병 · 감택을 「한 시대의 유림」이라 하고, 「엄준이 영화를 사양하고 옛 벗을 건졌으니 덕 있는 어른이 아니겠는가」라고 평했습니다.
至畯辭榮濟舊,不亦長者乎樸素書生,不閒軍事,非才而據,咎悔必至『삼국연의』 제38회 · 제43회
연의에서 엄준은 제38회에 처음 나옵니다. 손권이 오회에 빈관을 열고 고옹과 장굉에게 사방의 빈객을 맞게 하자, 회계의 감택, 패현의 설종 등과 함께 강동에 이른 선비로 「팽성의 엄준, 자는 만재」라 소개됩니다.
제43회에서는 노숙이 데려온 제갈량을 강동의 문무 관원들이 맞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장소 · 우번 · 보즐 · 설종 · 육적이 차례로 말문이 막힌 뒤 「공명의 말은 모두 억지로 이치를 빼앗은 것이니 더 말할 것 없다」며 「공명은 무슨 경전을 익혔소」라고 묻습니다. 제갈량은 「글귀나 뒤지고 구절을 따는 것은 세상의 썩은 선비」라며 이윤 · 강태공 · 장량 · 진평 · 등우 · 경엄 같은 이들이 무슨 경전을 익혔는지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되받고, 엄준은 고개를 숙이고 기가 꺾여 대답하지 못합니다. 연의에서 엄준이 나오는 것은 이 두 대목뿐이고, 노숙의 군사를 사양한 일이나 위위 · 상서령을 지낸 일은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엄개 · 엄상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분수는 아오.
그대는 대체 어떤 경전을 익히셨소?
경전을 모르는 자와는 말을 섞지 않소.
…책에 없던 말이로군.
이런 논법은 배운 바 없소.
글을 읽은 자와 아닌 자는 다르오.
…책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있구려.
분수에 맞게 해냈소.
…분수를 알기에 물러나오.
분수를 알았으니 여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