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孫皓

자 원종(元宗) · 242년 ~ 284년 · 양주 오군 부춘현 · 손견 휘하

손호 초상

잔혹한 폭정으로 오나라를 파멸시킨 삼국시대 최후의 황제

능력치

통솔13무력28지력31정치6매력4

카드

공격력 3체력 1비용 1값어치 4직군 모사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삼사주전(손호전) · 비빈전 · 복양흥전 · 육개전 · 육항전 · 왕번전 · 하소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오록』 · 『진서』 무제기 · 왕준전 · 왕제전

손호는 손권의 손자이자 손화의 아들로 자는 원종이며, 다른 이름은 팽조, 다른 자는 호종입니다. 어머니 하희는 단양 구용 사람으로 기병의 딸이었는데, 손권이 군영을 돌다 길가에서 그녀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손화에게 주었고 사내아이가 태어나자 기뻐하며 팽조라 이름 지었습니다. 건흥 2년(253) 아버지 손화가 손준에게 죽음을 받고 정실 장씨도 따라 죽자, 하희는 「모두 따라 죽으면 누가 아이들을 기르겠는가」 하며 손호와 세 아우를 길렀습니다. 손휴가 즉위하자 그는 오정후에 봉해져 봉국으로 갔고, 서호의 백성 경양이 그의 관상을 보고 크게 귀해지리라 하자 남몰래 기뻐하면서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영안 7년(264) 손휴가 죽었을 때 촉은 막 망했고 교지는 등을 돌려 나라 안이 두려워하니, 사람들은 나이 든 임금을 바랐습니다. 일찍이 오정령으로 손호와 사이가 좋았던 좌전군 만욱이 그가 재주와 식견이 밝고 결단이 있어 장사환왕(손책)과 같은 부류이며 학문을 좋아하고 법도를 따른다고 승상 복양흥과 좌장군 장포에게 여러 번 말했고, 두 사람이 손휴의 황후 주씨를 설득해 스물셋의 손호를 맞아 세웠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 너그러운 조서를 내려 창고를 열어 가난한 이를 돕고 궁녀를 내보내 아내 없는 이와 짝지어 주어 밝은 임금이라 일컬어졌습니다. 그러나 뜻을 얻자 거칠고 교만해져 꺼리는 것이 많고 술과 여색을 좋아하니 위아래가 실망했습니다. 그를 세운 일을 속으로 뉘우치던 복양흥과 장포는 참소를 입어 그해 11월 광주로 귀양 가는 길에 죽임을 당하고 삼족이 멸해졌습니다.

그해 9월 손호는 주태후를 경황후로 낮추고 아버지를 문황제로 추존했으며, 감로 원년(265) 7월에는 경황후를 핍박해 죽이고 손휴의 아들 가운데 큰 둘을 죽였습니다. 그해 9월 서릉독 보천의 표를 따라 도읍을 무창으로 옮겼고, 12월 위가 진에게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이듬해 큰 잔치에서 상시 왕번이 술에 취해 쓰러지자 의심하다 그 자리에서 베게 했고, 산적 시단이 아우 손겸을 끼고 일어나자 이를 꺾은 뒤 12월 건업으로 돌아왔습니다. 보정 2년(267)에는 현명궁을 크게 지었는데, 『강표전』에 따르면 2천 석 이하의 관리가 몸소 산에 들어가 나무 베기를 감독하고 비용이 억만을 헤아렸으며 육개가 굳이 간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건형 3년(271) 정월 그는 어머니와 처자, 후궁 수천을 이끌고 화리로 나섰다가 동관령 화핵 등이 굳이 다투어 돌아왔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그는 「오의 천자가 올라간다」는 수춘의 동요를 듣고 천명이라 기뻐하며 「푸른 일산이 낙양에 들어간다」고 서쪽으로 나섰는데, 큰 눈에 길이 무너져 갑옷 입은 군사 백 명이 수레 하나를 끌며 얼어 죽을 지경이 되자 군사들이 「적을 만나면 창을 거꾸로 들겠다」고 하니 그제야 돌아왔습니다. 봉황 원년(272) 서릉독 보천이 진에 항복하자 육항이 그를 에워싸 무너뜨렸고, 이해 승상 만욱이 꾸지람을 받고 근심 끝에 죽었습니다. 『강표전』은 화리에서 몰래 한 말이 새어 원한을 품은 손호가 독주를 내렸고 만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적습니다.

손호는 잔치 때마다 신하들을 모두 취하게 하고, 술을 주지 않은 황문랑 열 명을 세워 허물을 살피게 했습니다. 잔치가 끝나면 그들이 잘못 본 눈길과 그릇된 말을 빠짐없이 아뢰었고, 큰 것은 무거운 형벌로, 작은 것도 죄로 다스렸습니다. 물을 끌어들인 궁에서 뜻에 맞지 않는 궁인을 죽여 흘려보냈고,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기거나 눈을 파내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첩의 사람을 법으로 다스린 사시중랑장 진성은 달군 톱으로 목을 잘랐고, 천책 원년(275)에는 말을 못 하게 된 중서령 하소를 꾀병이라 의심해 천 번 가까이 매질한 끝에 죽였습니다.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잇따를 때마다 연호를 바꾸고 사면했고, 천새 원년(276)에는 양선의 국산에 봉선했습니다. 정사는 이 때문에 위아래의 마음이 떠나 그를 위해 힘쓰는 이가 없었다고 적습니다.

천기 3년(279) 겨울 진은 사마주 · 왕혼 · 왕융 · 호분 · 두예 · 왕준 등을 여러 길로 보내 오를 쳤습니다. 이듬해 왕준과 두예가 이르는 곳마다 성이 무너졌고, 강을 건너 맞서던 승상 장제는 져서 죽었습니다. 3월 궁중의 가까운 신하 수백이 머리를 조아려 환관 잠혼을 죽이라 하자 손호는 당황해 따랐고, 도준에게 부절을 주어 큰 배로 맞서게 했으나 떠나기로 한 밤에 군사들이 모두 달아났습니다. 손호는 설영 · 호충의 계책에 따라 왕준 · 사마주 · 왕혼에게 인수를 바치며 항복하는 글을 보냈고, 『강표전』에 실린 외숙 하식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늘이 오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부른 것」이라 했습니다. 『진서』 왕준전에 따르면 왕준이 석두에 들어오자 손호는 흰 수레와 흰 말로 웃통을 벗고 손을 뒤로 묶은 채 구슬을 입에 물고, 관을 수레에 싣는 망국의 예를 갖추어 태자 손근 등 스물한 명과 군문에 나왔고, 왕준은 몸소 결박을 풀고 관을 태웠습니다.

그는 집안을 이끌고 태강 원년(280) 5월 낙양에 이르렀고, 무제는 귀명후라는 호를 주고 밭 30경과 해마다 곡식 5천 곡 등을 내렸습니다. 『진서』 왕제전은 무제와 왕제가 바둑을 두던 자리에서 곁의 손호에게 어찌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기기를 좋아했느냐고 묻자 「임금에게 무례한 자를 보면 벗겼다」고 답하며 바둑판 아래로 다리를 뻗고 있던 왕제를 비꼬았다고 적습니다. 태강 5년(284) 그는 낙양에서 죽었고, 『오록』은 태강 4년 12월에 마흔둘로 죽었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그가 흉악하고 완고해 잔혹한 짓을 멋대로 하여 바르게 간하는 이를 죽이고 아첨하는 이를 올렸으니 허리와 목이 잘려 백성에게 사죄해야 마땅했는데, 죽이지 않는다는 조서에 귀명후의 은총까지 받았으니 지나치게 두터운 은혜였다고 평했습니다.

皓凶頑,肆行殘暴,忠諫者誅,讒諛者進,虐用其民,窮淫極侈,宜腰首分離,以謝百姓
손호는 흉악하고 완고해 잔혹한 짓을 멋대로 했다. 간하는 이는 죽이고 아첨하는 이는 올리며 백성을 학대하고 사치를 다했으니, 허리와 목이 잘려 사죄해야 했다『삼국지』 오서 삼사주전 평
天匪亡吳,孤所招也
하늘이 오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불러들인 것이다『삼국지』 오서 손호전 배송지 주의 『강표전』에 실린 손호의 편지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13회 · 제120회

연의에서 손호는 제113회에 손휴가 형의 아들 손호를 오정후에 봉했다는 데서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제120회에서 손휴가 죽자 승상 복양흥은 태자를 세우려 하지만, 좌전군 만욱이 태자가 어려 정사를 맡을 수 없다며 손호를 세우자 하고 좌장군 장포도 「재주와 식견이 밝고 결단이 있어 제왕이 될 만하다」고 거듭니다. 주태후가 경들이 헤아려 세우라고 하자 복양흥이 그를 맞아 세웁니다. 연의는 그를 대제 손권의 태자 손화의 아들이라 소개하고, 즉위한 뒤 아버지를 문황제로 추존하고 어머니 하씨를 태후로 높였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그는 날로 흉포해져 술과 여색에 빠지고 중상시 잠혼을 아끼며, 간하던 복양흥 · 장포를 베고 삼족을 멸해 조정이 입을 닫게 합니다. 무창에 머물러 양주 백성이 물자를 대느라 괴로워하자 육개가 상소하지만 기뻐하지 않고 소명궁을 크게 지으며, 술사 상광에게서 「경자년에 푸른 일산이 낙양에 들어간다」는 점괘를 듣고 크게 기뻐합니다. 촉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며 어디를 먼저 칠지 묻다가 덕을 닦으라는 화핵을 내쫓고, 육항에게 양양을 엿보게 했다가 진을 칠 수 없다는 그의 상소에 적과 내통한다며 병권을 빼앗습니다. 승상 만욱 · 장군 유평 · 대사농 누현이 간하다 죽는 등 열 해 남짓 충신 마흔여 명을 죽이고, 드나들 때마다 철기 5만을 거느려 신하들이 두려워 떱니다.

정봉 · 육항이 죽은 뒤에는 잔치 때마다 신하들을 취하게 하고 황문랑 열 명에게 허물을 아뢰게 해, 어긴 이의 얼굴 가죽을 벗기거나 눈을 파냅니다. 진의 대군이 이르자 잠혼의 꾀로 강의 요해마다 쇠사슬을 가로지르고 쇠송곳을 박지만 왕준의 뗏목과 횃불에 뚫리고, 신하들이 몰려 들어가 잠혼을 찢어 죽입니다. 장상이 석두성의 문을 열어 주자 손호는 스스로 목을 찌르려다 호충과 설영이 「어찌 안락공 유선을 본받지 않느냐」 하자 관을 수레에 싣고 몸을 묶어 왕준의 군문에 항복합니다. 낙양에서 사마염이 「짐이 이 자리를 마련하고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다」 하자 「신도 남쪽에 이 자리를 마련하고 폐하를 기다렸습니다」 하고 받아쳐 사마염을 웃게 하고, 사람의 눈을 파고 얼굴 가죽을 벗긴 까닭을 묻는 가충에게는 임금을 죽인 신하와 간사하고 불충한 자에게 쓴 벌이라 답해 그를 부끄럽게 합니다. 귀명후에 봉해진 그는 연의 끝에 태강 4년에 죽었다고 적힙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53아버지 손화가 죽음을 받자 어머니 하희가 그와 세 아우를 길렀습니다.
  2. 258손휴가 즉위하자 오정후에 봉해져 봉국으로 갔습니다.
  3. 264촉이 망한 때 나이 든 임금을 바란 신하들이 스물셋의 그를 세웠습니다.
  4. 264그를 세운 일을 뉘우친 복양흥과 장포를 귀양 길에서 죽이고 삼족을 멸했습니다.
  5. 265경황후 주씨를 핍박해 죽이고 도읍을 무창으로 옮겼습니다.
  6. 266잔치에서 취해 쓰러진 상시 왕번을 베었고, 12월 건업으로 돌아왔습니다.
  7. 267현명궁을 크게 지어 그해 12월 옮겨 살았습니다.
  8. 269좌승상 육개가 죽었고, 진수는 그가 손호를 간한 스무 가지 일을 그의 전에 실었습니다.스무 가지 간언
  9. 271푸른 일산이 낙양에 든다며 화리로 나섰다가 큰 눈에 군사가 원망해 돌아왔습니다.
  10. 272서릉독 보천의 반란을 육항이 꺾었고, 승상 만욱이 꾸지람 끝에 죽었습니다.
  11. 275중서령 하소를 꾀병이라 의심해 매질 끝에 죽였습니다.
  12. 276양선의 국산에 봉선하고 이듬해 연호를 바꾸었습니다.
  13. 279겨울에 진의 대군이 여러 길로 오를 치러 내려왔습니다.
  14. 280몸을 묶고 관을 수레에 실어 왕준의 군문에 나와 항복했습니다.스스로 몸을 묶다
  15. 280낙양에 이르러 귀명후라는 호를 받았습니다.
  16. 284낙양에서 죽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할아버지 손권 · 아버지 손화 · 어머니 하희 · 아내 등황후 · 태자 손근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오의 황제가 왔다.

말을 열며

오의 천자다. 무릎을 꿇어라.

되받으며

짐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마라.

말문이 막혀

…감히 짐에게.

말문이 막혀

누가 이 자를 끌어내지 않는가.

설전을 이기고

거스르는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설전에 지고

…짐도 이 자리를 마련해 두었노라.

이긴 뒤

누가 감히 짐에게 맞서느냐!

진 뒤

…남쪽에도 자리를 두어야겠소.

쓰러지며

남쪽에도 이 자리를 두고 기다렸소.

같은 기치 아래

주유여몽손견손책육항육손노숙황개주태서성손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