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미상 · 미상 ~ 203년 · 양주 오군 여항현 · 손견 휘하
항상 선봉에서 적진을 돌파하다 감녕의 화살에 전사한 오나라의 돌격 대장
출전 · 『삼국지』 오서 능통전 · 감녕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오주전
능조는 오군 여항 사람으로 능통의 아버지입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그의 일은 아들 능통전의 첫머리에 몇 줄로 실려 있으며 배송지가 감녕전에 끌어온 『오서』에 한 줄이 더 있습니다. 자와 태어난 해는 사서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능통전은 그가 의협을 좋아하고 담력과 기개가 있었다고 적습니다. 손책이 처음 일어설 때부터 싸움마다 따라나섰고, 늘 군의 맨 앞에서 칼날을 밟았습니다. 영평현의 장을 맡아 산월을 다스리자 간교한 무리가 손을 거두었고, 그 공으로 파적교위에 올랐습니다.
손권이 군사를 거느리게 된 뒤 능조는 강하의 황조를 치는 싸움에 따라나섰습니다. 오주전은 건안 8년(203) 손권이 서쪽으로 황조를 쳐 그 수군을 깨뜨렸으나 성은 떨어뜨리지 못했고, 그사이 산의 도적이 다시 움직였다고 적습니다. 능통전에 따르면 능조는 하구로 들어가 먼저 올라 적의 선봉을 깨뜨리고 가벼운 배를 타고 홀로 나아가다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오서』에 따르면 황조의 군사가 져서 달아나고 손권의 군사가 급히 뒤쫓을 때, 황조 밑에 있던 감녕이 활을 잘 쏘아 군사를 거느리고 뒤를 막다가 교위 능조를 쏘아 죽였고, 그 덕에 황조는 화를 면했습니다.
그때 아들 능통은 열다섯이었습니다. 주위에서 능통을 칭찬하는 이가 많았고, 손권도 능조가 나랏일에 죽었다 하여 능통을 별부사마 · 행파적도위로 삼아 아버지의 군사를 거느리게 했습니다. 『오서』는 뒤에 감녕이 오로 오자 능통이 아버지를 죽인 그를 원망해, 감녕은 늘 능통을 경계하며 만나지 않았고 손권도 능통에게 원수로 삼지 말라고 명했다고 적습니다. 능조에 대해 사서에 남은 것은 이것뿐이고, 진수가 그에게 따로 남긴 평은 없습니다.
輕俠有膽氣,孫策初興,每從征伐,常冠軍履鋒入夏口,先登,破其前鋒,輕舟獨進,中流矢死『삼국연의』 제15회 · 제38~39회
연의에서 능조는 제15회에 처음 나옵니다. 손책에게 쫓겨 오군을 버린 엄백호가 여항으로 달아나며 길에서 노략질하자, 그 고을 사람 능조가 고을 사람들을 이끌고 그를 쳐서 물리쳐 엄백호는 회계로 달아납니다. 능조는 아들과 함께 손책을 맞으러 오고, 손책은 그를 종정교위로 삼아 함께 강을 건넙니다.
제38회에서는 건안 8년 11월 손권이 황조를 치러 장강 한가운데서 싸워 황조의 군사가 집니다. 능조는 가벼운 배로 앞장서 하구로 쳐들어가다 황조의 부장 감녕이 쏜 화살 한 대에 맞아 죽고, 열다섯 살 아들 능통이 힘을 다해 아버지의 시신을 빼앗아 돌아옵니다. 손권은 형세가 불리하다고 보고 군사를 거두어 오로 돌아갑니다. 같은 회에서 감녕이 오로 오려 할 때 여몽은 감녕이 황조를 구하고 능조를 죽인 일을 오가 원망할까 그가 걱정한다고 전하고, 제39회에서 능통은 잔치 자리에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며 감녕에게 칼을 뽑습니다. 연의에서 능조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능통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선봉은 내가 선다!
선봉은 양보 못 하오. 그게 내 성미요.
머뭇거리는 것은 지는 것이오.
…화살이 어디서 날아오나.
그래도 앞으로 간다.
돌격이 답이었소.
아들아, 아비 몫까지 부탁한다….
선봉이 뚫었소!
…화살이 어디서 왔는가.
…그 화살, 누구의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