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화廖化

자 원검(元儉) · 미상 ~ 264년 · 형주 양양군 · 유비 휘하

요화 초상

관우의 주부로 시작해 촉이 망할 때까지 싸움터를 지킨 노장

능력치

통솔73무력76지력62정치49매력65

카드

공격력 5체력 4비용 3값어치 11직군 맹장
포효 호령
적 하나가 다음 국면 공격하지 못한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종예전에 붙은 요화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종예전 · 강유전 · 후주전 · 왕평전 배송지 주의 『화양국지』 · 위서 곽회전 · 등애전 · 오서 육손전 · 『화양국지』 유후주지

요화는 자가 원검이고 본래 이름은 순이며 양양 사람입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촉서 종예전 뒤에 짧은 전이 붙어 있습니다. 전장군 관우의 주부였는데, 건안 24년(219) 관우가 무너지자 오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유비에게 돌아가고 싶었던 그는 거짓으로 죽은 체해 사람들이 참으로 믿게 하고,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밤낮으로 서쪽으로 갔습니다. 마침 동쪽으로 오를 치러 나선 유비를 자귀에서 만나니,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그를 의도태수로 삼았습니다. 오서 육손전은 장무 2년(222) 이릉에서 유비의 여러 별독 가운데 요순이라는 이름을 적는데, 요화의 본래 이름이 순입니다.

유비가 죽은 뒤 요화는 승상 제갈량의 참군이 되었고, 뒤에 광무를 지키는 독이 되었습니다. 위서 곽회전은 정시 9년(248) 무렵 강유가 서쪽으로 강족의 우두머리 치무대를 맞으러 가면서 음평태수 요화를 성중산에 남겨 성을 쌓고 강족의 볼모를 거두게 했는데, 곽회가 군사를 나누지 말자는 장수들의 말을 물리치고 요화를 치자 강유가 급히 돌아와 그를 구했다고 적습니다. 가평 2년(250) 위의 조서는 곽회의 공으로 요화를 꺾고 구안을 사로잡은 것을 듭니다. 등애전은 가평 원년(249) 강유가 요화를 백수 남쪽에 보내 등애와 마주 보고 진을 쳐 붙들어 두게 했으나, 등애가 그 꾀를 알아채고 밤에 조성으로 먼저 들어가 막았다고 적습니다.

그 뒤 요화는 우거기장군 · 가절 · 병주자사에 올라 중향후에 봉해졌고, 과감하고 매서운 것으로 이름났습니다. 『화양국지』는 광무독 요화가 경요 2년(259) 우거기장군이 되었다고 적습니다. 벼슬은 장익과 나란했고 종예보다는 위였으니, 배송지가 끌어온 『화양국지』는 장익과 요화가 대장군이 되자 당시 사람들이 「앞에는 왕평과 구부, 뒤에는 장익과 요화」라고 했다고 전합니다. 종예전에 따르면 제갈첨이 처음 조정의 일을 맡았을 때 요화가 종예를 찾아가 함께 제갈첨에게 가자고 하자, 종예는 「우리는 나이가 일흔을 넘어 누릴 것은 이미 넘치게 누렸고 다만 죽음 하나가 남았을 뿐인데, 어찌 젊은이에게 구차하게 문을 두드리겠소」 하며 가지 않았습니다.

배송지가 끌어온 『한진춘추』는 경요 5년(262) 강유가 무리를 이끌고 적도로 나서자 요화가 「군사를 거두지 않으면 반드시 스스로를 태운다 했으니 백약을 두고 한 말이다. 슬기는 적보다 낫지 않고 힘은 적보다 모자라는데 쉼 없이 쓰니 어찌 설 수 있겠는가」 하고 탄식했다고 전합니다. 경요 6년(263) 강유는 종회가 관중에서 군사를 다스린다며 장익과 요화를 보내 양안관 어귀와 음평의 다리목을 지키게 하자고 표를 올렸으나, 황호의 말에 그 일은 덮였습니다. 종회와 등애가 움직인 뒤에야 요화는 답중의 강유를 도우러 떠났고, 음평에 이르러 위의 제갈서가 건위로 향한다는 말을 듣고 한 달 남짓 머물렀습니다. 등애에게 꺾인 강유가 음평으로 돌아오고 관 어귀가 무너지자, 요화는 강유와 함께 음평을 버리고 물러나 장익 · 동궐과 합쳐 검각을 지키며 종회를 막았습니다. 후주가 항복하자 강유를 따라 종회에게 갔고, 이듬해 함희 원년(264) 봄 종예와 함께 낙양으로 옮겨 가다 길에서 병들어 죽었습니다. 요화전에는 태어난 해가 적혀 있지 않고, 진수가 그에게 따로 남긴 평도 없습니다.

稍遷至右車騎將軍,假節,領并州刺史,封中鄉侯,以果烈稱
차츰 올라 우거기장군 · 가절 · 병주자사가 되고 중향후에 봉해졌으며, 과감하고 매서운 것으로 이름났다『삼국지』 촉서 요화전(종예전에 붙음)
智不出敵,而力少於寇,用之無厭,何以能立
슬기는 적보다 낫지 않고 힘은 적보다 모자라는데 쉼 없이 쓰니, 어찌 설 수 있겠는가『삼국지』 촉서 요화전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27~119회

연의에서 요화는 제27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를 떠나 두 형수의 수레를 지키며 가던 관우 앞에, 누런 두건에 비단옷을 입은 젊은이가 창을 들고 말 목에 사람 머리 하나를 매단 채 백여 명을 이끌고 나타납니다. 그는 양양 사람 요화로, 난세에 강호를 떠돌며 오백여 무리를 모아 노략질로 살아왔는데 동료 두원이 유황숙의 부인들을 잘못 붙잡아 오자 그를 베고 그 머리를 바치러 왔다고 합니다. 관우는 고마워하면서도 그가 끝내 황건의 남은 무리라 여겨 따라오겠다는 청도, 금과 비단도 받지 않습니다. 제28회에서 감부인은 요화를 물리친 일을 들어 주창의 무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립니다.

제60회에서 유비가 서천으로 떠나려 할 때 요화가 군사를 이끌고 와서 항복하자 유비는 그에게 관우를 돕게 하고, 그는 형주에 남습니다. 제73회에서는 번성을 치는 관우의 선봉이 되어 조인의 장수 적원과 싸우다 달아나는 척해 적을 끌어들이고, 제76회에서 형주를 잃은 관우가 맥성에 갇히자 스스로 나서 관평의 호위로 포위를 뚫고 상용으로 달려가 유봉과 맹달에게 구원을 빕니다. 두 사람이 산성이 갓 붙어 군사를 나눌 수 없다며 거절하자 요화는 머리를 땅에 찧으며 관공이 끝장났다고 외치다가 말을 달려 성도로 갑니다. 제77회에서 성도에 이르러 관우의 패전을 알리고, 제79회에서는 관우 부자가 죽은 것은 유봉과 맹달의 죄라며 울면서 두 사람을 베라고 청합니다.

제갈량의 북벌에서 요화는 제97회 진창에서 삼천 군사로 밤에 땅굴을 파고, 왕평과 함께 왕쌍의 유성추에 맞은 장억을 구합니다. 제103회에서는 숲으로 달아나는 사마의를 쫓아 칼을 휘둘렀으나 나무에 박히고, 사마의가 동쪽에 버리고 간 금투구를 주워 오니 제갈량은 이를 으뜸 공으로 기록합니다. 강유의 시대에는 장익과 함께 선봉을 맡아, 제113회에서 등애의 꾀를 미리 읽고 복병을 이끌고 나가 정륜을 한 칼에 벱니다. 제115회에서 강유가 어디부터 칠지 묻자 요화는 해마다 싸워 군사와 백성이 편치 못하고 위에는 등애가 있다며 말리다 한중에 남겨집니다. 제116회에서는 음평의 다리목을 지키러 나섰다가 강유와 만나고, 제117회에서 강유 · 장익과 함께 검각으로 물러나 동궐을 만납니다. 촉이 망한 뒤 제119회는 요화와 동궐이 병을 핑계로 일어나지 않다가 근심 속에 죽었다고 맺습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19관우의 주부였다가 관우가 무너지자 오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2. 221죽은 체하고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도망쳐 자귀에서 유비를 만나 의도태수가 되었습니다.
  3. 223유비가 죽은 뒤 승상 제갈량의 참군이 되었습니다.
  4. 248음평태수로 성중산에 성을 쌓다가 곽회의 공격을 받았고, 강유가 돌아와 그를 구했습니다.
  5. 249강유의 명으로 백수 남쪽에 진을 쳐 등애를 붙들어 두려 했습니다.
  6. 259광무독에서 우거기장군 · 병주자사가 되었다고 『화양국지』는 적습니다.
  7. 262강유가 다시 군사를 내자 슬기도 힘도 적만 못한데 쉼 없이 싸운다고 탄식했습니다.
  8. 263위군이 들어오자 음평을 거쳐 강유와 함께 검각을 지키며 종회를 막았습니다.끝까지 든 창
  9. 264종예와 함께 낙양으로 옮겨 가다 길에서 병들어 죽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어머니(이름 미상)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아직 창을 놓지 않았다.

말을 열며

황건 때부터 싸운 몸이오. 관록이 다르오.

되받으며

촉에 사람이 없다는 말, 내 앞에서 마시오.

말문이 막혀

…몸이 예전 같지 않군.

말문이 막혀

그래도 선봉은 내 자리요.

설전을 이기고

노병은 죽지 않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다음 세대가 없는 것이 한이오….

이긴 뒤

늙은 창도 아직 뚫소.

진 뒤

…길이 길구나.

쓰러지며

황건부터 여기까지… 길었다.

같은 기치 아래

관우제갈량조운장비위연방통장완서서왕평관색마속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