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도(子度) · 미상 ~ 228년 · 사례 우부풍 · 한 세력의 주인
관우를 버리고 위로 달아났다 다시 배신하려다 처형당한 박쥐
출전 · 『삼국지』 촉서 유봉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위서 명제기와 배송지 주의 『삼보결록주』 · 『위략』 · 간보 『진기』 · 문제기 · 유엽전 · 촉서 법정전 · 비시전 · 이엄전 · 『진서』 선제기
맹달은 부풍 사람입니다. 본래 자가 자경이었으나 유비의 숙부 이름 경을 피해 고쳤고, 유봉전이 그를 맹자도라 부르니 고친 자는 자도입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그의 일은 유봉전과 명제기의 배송지 주, 『진서』 선제기 등에 흩어져 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삼보결록주』는 아버지 맹타가 영제 때 중상시 장양의 집 종들에게 가산을 다 바쳐 친해진 뒤 장양에게 포도주 한 섬을 보내 양주자사가 되었다고 적습니다. 법정전은 건안 초 굶주림이 들자 법정이 같은 군 사람 맹달과 함께 촉에 들어가 유장에게 몸을 맡겼다고 적습니다.
유장은 법정을 보내 유비를 맞게 하며 맹달을 부장으로 딸려 각각 군사 2천을 이끌게 했고, 유비는 맹달에게 두 군사를 아울러 거느리고 강릉에 머물게 했습니다. 촉이 평정되자(214) 의도태수가 되었고, 건안 24년(219) 자귀에서 북쪽으로 방릉을 쳐 방릉태수 괴기를 죽였습니다. 상용으로 나아가려 하자 유비는 그 혼자 맡기 어려울까 걱정해 유봉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게 했고, 두 사람은 상용태수 신탐의 항복을 받았습니다. 관우가 번성과 양양을 에워싸고 거듭 군사를 청했으나 두 사람은 산간의 군이 막 붙어 흔들 수 없다며 따르지 않았고, 관우가 패하자 유비는 이를 한스러워했습니다. 유봉과 다투다 고취(군악대)마저 빼앗긴 맹달은 죄를 두려워하고 유봉에게 분노해, 연강 원년(220) 유비에게 작별의 표를 올리고 부곡 4천여 가를 이끌고 위에 항복했습니다. 배송지 주의 『위략』에 실린 그 표에서 맹달은 「신은 참으로 소인이라 처음과 끝을 다하지 못하니, 알고서 한 일을 어찌 죄가 아니라 하겠습니까」라고 적었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조비는 그를 반겨 초에서 만났는데, 맹달은 몸가짐이 우아하고 말재주가 남보다 뛰어나 모두 눈여겨보았고 조비는 그의 등을 두드리며 「경은 설마 유비가 보낸 자객은 아니겠지」 하고 수레에 함께 탔습니다. 맹달은 산기상시 · 건무장군 · 평양정후가 되어 방릉 · 상용 · 서성을 합친 신성군의 태수로 서남쪽을 맡았고, 하후상 · 서황과 함께 유봉을 쳐 글로 항복을 권했습니다. 대접이 지나치다는 말에 조비는 쑥대 화살로 쑥대밭을 쏘는 격이라며 개의치 않았으나, 유엽은 「맹달은 구차하게 얻으려는 마음이 있고 재주를 믿고 술수를 좋아하니 은혜에 감동해 의리를 품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맹달은 환계 · 하후상과 가까웠는데 조비가 죽고 두 사람도 죽자 오래 떠돌이 신하로 변경에 있는 자신을 불안해했고, 제갈량이 여러 번 글을 보내 꾀자 답장을 주고받았습니다. 비시전에 따르면 건흥 3년(225) 비시는 「맹달은 진위장군을 섬기며 충성하지 않았고 뒤에는 선주를 배반했으니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에게 무슨 글을 보냅니까」라고 말렸으나 제갈량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위흥태수 신의가 맹달이 촉과 통한다고 몰래 아뢰었고, 사마의가 참군 양기를 보내 살피며 조정에 들어오라고 권하자 맹달은 놀라고 두려워 태화 원년(227) 12월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진서』 선제기에 따르면 완에 있던 사마의는 맹달이 서두를까 걱정해 달래는 글을 보내 머뭇거리게 했습니다. 맹달은 제갈량에게 사마의가 표를 올려 조정과 오가자면 한 달은 걸리니 그사이 성을 굳힐 수 있다고 했으나, 사마의는 길을 곱절로 재촉해 여드레 만에 성 아래에 닿았고 맹달은 「어찌 이리 귀신같이 빠른가」 하고 놀랐습니다. 세 면이 물로 막힌 상용성 밖의 목책을 깨고 여덟 갈래로 친 지 열엿새 만에 맹달의 생질 등현과 장수 이보 등이 문을 열고 항복했고, 태화 2년(228) 정월 맹달은 베여 머리가 낙양으로 보내졌습니다. 『위략』은 그 머리를 낙양의 네거리에서 불살랐다고 적습니다. 그의 아들 맹흥은 촉에 남아 의독군이 되었습니다.
孟達小子,昔事振威不忠,後又背叛先主,反覆之人,何足與書邪吾舉事八日,而兵至城下,何其神速也『삼국연의』 제60회 · 제62회 · 제65회 · 제70~73회 · 제76~77회 · 제79회 · 제85~86회 · 제94~95회
연의에서 맹달은 제60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에게 푸대접을 받고 돌아가던 장송은 유비에게 서천의 지도를 바치며 믿을 만한 벗으로 법정과 맹달을 꼽고, 법정과 같은 고향 사람인 맹달은 두 사람의 뜻을 먼저 알아채고 유비가 아니면 안 된다며 함께 손뼉을 치며 웃습니다. 유장의 명으로 정예병 5천을 이끌고 유비를 맞으러 가고, 제62회에서는 곽준을 천거해 함께 가맹관을 지킵니다. 제70회에서는 곽준의 말을 듣지 않고 나가 싸우다 장합에게 지고, 늙은 장수 둘을 보낸 제갈량을 속으로 비웃으며 황충이 거듭 진다고 유비에게 알렸다가 황충을 따라 적의 영채와 군량을 거둡니다. 제71~73회 한중에서는 유봉과 함께 정군산을 차지하고 조조의 군량을 불사르며, 유봉 · 왕평 등과 상용을 쳐 신탐의 항복을 받습니다.
제76회에서 맥성에 갇힌 관우가 요화를 보내 구원을 청하자, 맹달은 유봉에게 관우가 그를 조카로 여기지 않고 후계에서 밀어냈다고 부추겨 거절하게 합니다. 제79회에서는 벗 팽양이 죽고 유봉이 불려 가자 겁이 나서 신탐 · 신의의 말대로 표를 남기고 위로 달아나고, 조비에게 산기상시 · 건무장군 · 평양정후 · 신성태수를 받습니다. 유봉에게 항복을 권하는 글을 보냈다가 유봉이 글을 찢자 하후상 · 서황과 함께 그를 깨뜨립니다. 제85~86회에서 사마의가 다섯 길로 촉을 칠 때 상용의 군사 10만을 이끄는 한 길을 맡지만, 제갈량이 이엄의 필적으로 꾸며 보낸 글을 받고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제94회에서 조비가 죽은 뒤 조정의 시기를 받아 불안해진 맹달은 이엄의 아들 이풍을 통해 제갈량과 손잡으려 합니다. 제갈량이 사마의를 조심하라고 이르자 맹달은 표를 올려 오가는 데 한 달은 걸리리라며 웃어넘기고, 답장을 받은 제갈량은 글을 땅에 던지며 맹달이 사마의의 손에 죽을 것이라고 탄식합니다. 신의의 집 사람과 맹달의 심복 이보 · 생질 등현의 고발로 모든 것을 안 사마의가 하루에 이틀 길을 달려오자, 맹달은 앞장선 서황의 이마를 화살로 맞혀 죽이지만, 구원군인 줄 알고 성문을 열고 나갔다가 신탐 · 신의에게 속고 이보 · 등현이 성을 바친 가운데 신탐의 창에 찔려 죽습니다. 연의에서 맹달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맹타 · 아들 맹흥 · 생질 등현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살길은 늘 있는 법이오.
몸 둘 곳은 형세가 정하는 법이오.
의리 타령은 이긴 다음에나 하시오.
…낌새가 좋지 않군.
갈아탈 때를 재야겠소.
보시오, 줄을 잘 서면 이기오.
여드레 만에 올 줄은 몰랐소….
때를 고르는 것이 재주요.
…또 여드레인가.
여드레 만에… 올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