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엽劉曄

자 자양(子揚) · 미상 ~ 미상 (232년 이후) · 양주 회남군 성덕현 · 조조 휘하

유엽 초상

번번이 앞일을 맞히고도 번번이 듣게 하지 못한 조조의 모사

능력치

통솔40무력32지력92정치73매력69

카드

공격력 3체력 3비용 3값어치 10직군 모사
전령 비용 2
이미 쓴 내 책략 하나를 다시 쓸 수 있게 한다
차도 비용 4
내가 짚은 적 하나가 내가 짚은 다른 적을 친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유엽전과 배송지 주의 『부자』 · 『세어』 · 간보 『진기』 · 위서 무제기 · 명제기 · 장로전 배송지 주의 동소의 표 · 가후전의 배송지 말 · 오서 노숙전 · 『진서』 선제기

유엽은 자가 자양이며 회남군 성덕현 사람으로, 후한 광무제의 아들 부릉왕 유연의 후손입니다. 아버지는 유보, 어머니는 수입니다. 형 유환이 아홉 살, 유엽이 일곱 살 때 병이 깊어진 어머니는 남편의 시중드는 이가 아첨하고 해치는 성품이라 집안을 어지럽힐 것이니 자라거든 없애 달라고 일렀습니다. 열세 살이 된 유엽은 형이 머뭇거리자 홀로 방에 들어가 그를 죽이고 어머니의 무덤에 절했고, 노한 아버지에게 돌아와 어머니의 유언을 따랐으니 벌을 받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그를 남다르게 여겨 꾸짖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잘 알아보기로 이름난 여남의 허소는 양주에 피해 와 있으면서 유엽을 세상을 도울 재주가 있다고 일컬었습니다.

양주에는 정보 · 장다 · 허건 같은 이들이 저마다 부곡을 거느렸는데, 가장 사나운 정보가 백성을 몰아 강남으로 건너가려 하면서 이름난 집안의 유엽을 앞세우려 했습니다. 스무 살 남짓이던 유엽은 마침 주에 온 조조의 사자를 집에 머물게 하고, 찾아온 정보와 술을 마시다 손수 칼을 뽑아 그를 베고는 「조공의 명이니 움직이는 자는 정보와 같은 죄」라고 외쳤습니다. 이어 정보의 진영에 가서 우두머리들을 달래 따르게 했으나, 한 왕실이 기우는데 종친인 자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싶지 않다며 그 무리를 여강태수 유훈에게 넘겼습니다. 『삼국지』 노숙전은 벗 노숙에게 소호의 정보에게 오라고 편지를 보낸 이도 유엽이었다고 적습니다. 손책이 많은 예물로 상료를 함께 치자고 꾀자 모두 축하했으나 유엽은 홀로 군사가 밖에서 지치는 사이 손책이 빈 곳을 칠 것이라며 말렸고, 듣지 않은 유훈은 과연 손책에게 뒤를 치여 건안 4년(199) 조조에게 달아났습니다.

조조가 수춘에 이르렀을 때 여강의 산적 진책이 험한 곳에 기대 버티자 모두 칠 것 없다고 했으나, 유엽은 천하가 거의 평정되었으니 상을 내걸고 대군으로 임하면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 했고 그 말대로 이겼습니다. 조조는 돌아가 그를 사공창조연으로 불렀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부자』는 함께 불린 양주의 선비 넷이 앞다투어 말할 때 유엽만 입을 열지 않다가 먼 앞날의 말로 조조를 움직였고, 조조가 넷은 현령으로 내보내고 유엽에게 심복의 일을 맡겨 하룻밤에 수십 번씩 물었다고 적습니다.

건안 20년(215) 장로를 칠 때 주부가 된 유엽은, 한중의 산이 험하고 군량이 모자라 물러나려는 조조가 뒤의 군사를 맡기자 장로를 이길 수 있고 물러나도 군사가 온전하지 못하다고 보아 치자고 아뢰었고, 조조가 나아가 쇠뇌를 퍼붓자 장로가 달아나 한중이 평정되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실린 동소의 표는 앞서 간 군사가 밤에 길을 잃고 적진에 잘못 들어가 적이 흩어진 것을 신비 · 유엽 등이 알렸다고 달리 적습니다. 유엽은 이어 유비가 촉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촉 사람들이 아직 믿지 않으니 지금 몰아치면 저절로 기울고, 늦추면 제갈량이 재상으로 다스리고 관우와 장비가 장수가 되어 험한 곳을 지킬 것이라며 촉을 치자고 했으나 조조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이레 뒤 조조가 다시 묻자 유엽이 이제는 조금 안정되어 칠 수 없다고 했다고 적고, 배송지는 세상이 모두 유엽의 계책이 옳았다고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연강 원년(220) 항복해 온 맹달을 조비가 아껴 신성태수로 삼자, 유엽은 그가 구차하게 얻으려는 마음이 있고 재주를 믿고 술수를 좋아해 은혜에 감동하지 않을 것이라 했고 맹달은 끝내 배반했다가 무너졌습니다. 그해 시중이 되고 관내후에 봉해졌습니다. 조비가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으러 오를 칠지 묻자 모두 나오지 못할 것이라 했으나, 유엽은 홀로 관우와 유비는 의리로는 임금과 신하요 은혜로는 아버지와 아들 같다며 반드시 나올 것이라 했고 과연 그리되었습니다. 오가 신하를 일컫는 사신을 보내자 유엽은 오가 안팎으로 몰려 보냈을 뿐이니 그 틈을 타 쳐야 한다고 했으나, 『부자』에 따르면 조비는 왕위를 주지 말라는 말까지 물리치고 221년 손권을 오왕으로 봉했고, 손권은 겉으로 예를 낮추면서 속으로는 따르지 않아 유엽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222년 조비가 오를 치려 하자 유엽은 오가 이제 뜻을 얻어 위아래가 한마음이라 서둘러 이기기 어렵다고 했으나 조비는 듣지 않았고, 224년 광릉에서 손권이 몸소 오지 않으리라 한 말은 들어맞았습니다.

226년 명제가 즉위하자 동정후로 올랐고, 배송지 주의 『세어』는 명제가 홀로 유엽을 불러 하루 종일 이야기했다고 적습니다. 명제가 고황제의 아버지에게까지 시호를 올리려 하자 유엽은 고황제까지만 높이는 것이 옛 법에 맞는다고 해 그대로 되었고, 228년 공손연이 숙부의 자리를 빼앗자 새로 선 틈에 쳐야 한다고 했는데 공손연은 뒤에 끝내 배반했습니다. 그는 조정에서 사람들과 사귀지 않았는데, 한나라의 곁가지로 위나라의 심복을 맡았으니 짝이 적은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태화 6년(232) 병으로 태중대부가 되었고, 얼마 뒤 대홍려를 두 해 지내고 물러나 다시 태중대부가 되었다가 죽었습니다. 시호는 경후이고 아들 유우가 이었으며, 막내아들 유도는 재주가 높았으나 행실이 가벼웠다고 합니다.

『부자』는 유엽이 명제 앞에서는 촉을 칠 수 있다고 하고 밖에서는 칠 수 없다고 했다가, 어떤 이가 그는 임금의 뜻이 향하는 곳을 엿보아 맞춘다고 헐뜯자 명제가 일부러 뜻을 거꾸로 하여 물어 그 말대로임을 알고 그를 멀리했으며, 유엽은 미친 듯이 되어 대홍려로 나갔다가 근심으로 죽었다고 적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밝은 지혜로 덕과 의리에 머물고 충성과 믿음으로 행했다면 옛날의 어진 이라도 더할 것이 없었을 텐데 끝내 스스로 편안하지 못했으니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진수는 정욱 · 곽가 · 동소 · 유엽 · 장제를 두고 「재주와 꾀가 세상의 기이한 선비이니, 맑게 다스리는 덕업은 순유와 다르나 헤아리고 내다본 것은 그와 짝이 된다」고 평했습니다.

程昱、郭嘉、董昭、劉曄、蔣濟才策謀略,世之奇士,雖清治德業,殊於荀攸,而籌畫所料,是其倫也
정욱 · 곽가 · 동소 · 유엽 · 장제는 재주와 꾀가 세상의 기이한 선비이니, 맑게 다스리는 덕업은 순유와 다르나 헤아리고 내다본 것은 그와 짝이 된다『삼국지』 위서 유엽전 평
以曄之明智權計,若居之以德義,行之以忠信,古之上賢,何以加諸
유엽의 밝은 지혜와 꾀로 덕과 의리에 머물고 충성과 믿음으로 행했다면, 옛날의 으뜸가는 어진 이라도 무엇을 더하겠는가『삼국지』 위서 유엽전 배송지 주에 인용된 『부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0~99회

연의에서 유엽은 제10회에 처음 나옵니다. 연주의 조조에게 곽가가 광무제의 적파 자손인 회남 성덕 사람 유엽을 천거하자 조조가 곧 그를 불러들이고, 유엽은 다시 만총과 여건을 천거합니다. 제12회에서는 복양의 전씨가 성안에서 호응하겠다는 밀서를 보내오자 진궁의 꾀일지 모르니 군사를 셋으로 나누라고 하고, 여포가 복양을 잃자 지친 범을 쉬게 해서는 안 된다며 쫓기를 권하고 복양을 지킵니다. 제14회에서 조조가 허도에 자리 잡은 뒤 사공연조가 되고, 제23회에서는 장수를 찾아가 가후와 함께 그를 조조에게 귀순하게 합니다. 제29회에서는 벗 노숙에게 소호의 정보에게 가자고 권한 이로 이름이 나옵니다. 제30회 관도에서는 원소가 흙산을 쌓고 망루에서 화살을 퍼붓자 발석거를 만들어 망루를 부수게 하니 원소의 군사들이 그것을 벽력거라 부르고, 원소가 땅굴을 파자 진영 둘레에 긴 도랑을 파게 합니다. 제41회에서는 형주에 든 조조에게 먼저 민심을 사야 한다며 서서를 보내 유비에게 항복을 권하게 하자고 합니다.

제67회에서 한중을 얻은 뒤 사마의가 곧바로 촉을 치자고 하자 조조는 사람은 만족을 모른다며 농을 얻고 또 촉을 바라느냐고 하고, 유엽이 늦추면 제갈량과 관우 · 장비가 촉을 굳힐 것이라며 거들자 군사들이 먼 길에 지쳤으니 돌보아야 한다며 물리칩니다. 제71회에서 한중이 위태롭자 유엽이 조조에게 몸소 나서라고 권하고, 조조는 그때 경의 말을 쓰지 않아 이렇게 되었다며 뉘우칩니다. 제79회에서는 화흠 · 왕랑 등과 함께 헌제에게 위왕 조비에게 자리를 물리라고 청하는 무리에 섭니다. 제82회에서 손권이 항복을 청해 오자 촉과 오가 싸우는 지금 오를 치면 열흘이 못 가 망할 것이라 하고, 손권에게 왕의 자리를 주는 것은 범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라며 말리지만 조비는 손권을 오왕으로 봉합니다.

제85회에서는 이긴 오를 지금은 칠 수 없다며 세 갈래 원정을 말리고, 세 길이 다 지자 조비는 가후와 유엽의 말을 듣지 않아 졌다며 탄식합니다. 제86회에서는 광릉의 강가에 이른 조비에게 사흘에서 닷새쯤 적의 움직임을 보자고 합니다. 제99회에서는 조예 앞에서는 촉을 치자고 하고 밖에서는 칠 수 없다고 했다가 양기가 따지자 군사의 일은 새면 안 된다고 풀어 조예의 존중을 더 받고, 조진의 촉 원정에 군사로 따라갑니다. 연의에서 유엽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9손책의 꾐에 상료를 치려는 유훈을 홀로 말렸으나, 유훈은 뒤를 치여 조조에게 달아났습니다.
  2. 215한중에서 물러나려는 조조에게 치자고 권해 이겼고, 이어 촉을 치자고 했으나 듣지 않았습니다.듣지 않은 계책
  3. 220항복한 맹달이 은혜에 감동하지 않으리라 했으나 조비가 듣지 않았습니다.
  4. 220조비가 즉위하자 시중이 되어 관내후에 봉해졌습니다.
  5. 221손권이 신하를 일컫자 받지 말고 오를 치자고 했으나 조비는 손권을 오왕으로 봉했습니다.
  6. 222유비를 이긴 오를 서둘러 치려는 조비를 말렸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7. 224광릉에 나간 조비에게 손권이 몸소 오지 않으리라 해 들어맞았습니다.
  8. 226명제가 즉위하자 동정후로 올랐습니다.
  9. 228숙부의 자리를 빼앗은 공손연을 새로 선 틈에 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10. 232병으로 태중대부가 되었고, 대홍려를 두 해 지낸 뒤 물러나 죽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유보 · 어머니 수 · 형 유환 · 아들 유우 · 막내아들 유도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유엽이 한 말씀 올리오.

말을 열며

옳은 말을 하고도 안 쓰인 적이 많소.

되받으며

이번에는 들어 주시겠소.

말문이 막혀

…한중에서 곧바로 촉을 쳤어야 했소.

말문이 막혀

손권이 청한 화친은 속이 달랐소.

설전을 이기고

늦게라도 들으면 값이 있소.

설전에 지고

또 늦었구려.

이긴 뒤

먼저 보면 반은 이긴 것이오.

진 뒤

보고도 말하지 못하면 소용없소.

쓰러지며

그때 들었더라면.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하후돈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악진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