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진樂進

자 문겸(文謙) · 미상 ~ 218년 · 기주 양평군 위국현 · 조조 휘하

악진 초상

작은 체구에도 항상 선봉에 서서 적진을 함락시킨 위나라 오자양장

능력치

통솔80무력84지력53정치51매력65

카드

공격력 5체력 5비용 4값어치 12직군 맹장
포효 호령
적 하나가 다음 국면 공격하지 못한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악진전 · 장료전 · 우금전 ·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위서』 · 문제기 · 삼소제기 · 이전전 · 문빙전 · 조엄전 · 촉서 선주전 · 오서 오주전과 배송지 주의 『헌제춘추』

악진은 자가 문겸이며 양평군 위국현 사람입니다. 생김새가 작았으나 담력이 굳세어 조조를 따라 장하의 관리가 되었습니다. 조조가 그를 고향 군으로 보내 군사를 모으게 하자 천여 명을 얻어 돌아왔고, 군가사마와 함진도위가 되었습니다. 무제기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조조가 우금과 악진을 싸움터의 대오 가운데서 뽑아 올렸다고 적습니다.

흥평 원년(194) 복양에서 여포를, 이듬해 옹구에서 장초를, 건안 2년(197) 고현에서 원술의 장수 교유를 칠 때 악진은 모두 먼저 성벽에 올라 공을 세워 광창정후에 봉해졌습니다. 이어 안중에서 장수를 치고 하비에서 여포를 에워싸 그의 딴 장수를 깨뜨렸으며, 사견에서 휴고를, 패에서 유비를 쳐 모두 깨뜨려 토구교위가 되었습니다. 건안 5년(200)에는 황하를 건너 획가를 치고 돌아왔는데, 우금전은 이때 우금과 악진이 보병과 기병 5천을 이끌고 연진에서 서남쪽으로 강을 따라 원소의 진지 서른여 곳을 불태우고 원소의 장수 스무여 명을 항복시켰다고 적습니다. 관도에서 원소와 맞서서는 힘껏 싸워 원소의 장수 순우경을 베었습니다.

여양에서 원담과 원상을 칠 때 그 대장 엄경을 베어 유격장군의 일을 맡았고, 따로 황건을 쳐 낙안군을 평정했습니다. 업을 에워싸 떨어뜨린 뒤 건안 10년(205) 남피에서 원담을 칠 때 먼저 성벽에 올라 원담의 동문으로 들어갔고, 원담이 무너지자 따로 옹노를 쳐 깨뜨렸습니다. 건안 11년(206) 조조는 한 황제에게 표를 올려 악진 · 우금 · 장료를 두고 「싸움마다 늘 앞장서 이끌어 굳센 적을 떨치고 굳은 곳을 들이쳐 무너뜨리지 못한 곳이 없으며, 스스로 북채를 잡아 손이 지칠 줄 모른다」고 기렸고, 악진은 절충장군이 되었습니다.

악진은 따로 고간을 치러 북쪽 길로 상당에 들어가 그 뒤로 돌아 나왔고, 고간이 호관으로 물러나 지키자 잇달아 싸워 적의 목을 베었으며, 조조가 몸소 오자 호관이 떨어졌습니다. 같은 해 조조가 순우에 머물며 바다의 도적 관승을 치게 하자 이전과 함께 쳐서 관승을 섬으로 쫓아냈습니다. 형주가 아직 복종하지 않자 양적에 머물렀는데, 조엄전은 그 무렵 영음의 우금, 양적의 악진, 장사의 장료가 저마다 기세를 부려 서로 화합하지 못했으나 조엄이 세 군을 함께 살피며 타일러 사이가 좋아졌다고 적습니다.

건안 13년(208) 형주를 평정한 뒤 악진은 양양에 남아 관우와 소비 등을 쳐서 모두 달아나게 했고, 남군 여러 군의 산골짜기 만이가 그에게 와서 항복했습니다. 오주전도 적벽 뒤 조조가 북쪽으로 돌아가며 악진에게 양양을 지키게 했다고 적습니다. 또 유비가 둔 임저장 두보와 정양장 양대를 쳐 크게 깨뜨렸습니다. 문빙전은 문빙이 악진과 함께 심구에서 관우를 쳐 공을 세웠다고 적고, 선주전은 건안 17년(212) 유비가 유장에게 「악진이 청니에서 관우와 맞서고 있어 가서 구하지 않으면 악진이 크게 이길 것」이라며 군사를 청했다고 적습니다.

뒤에 조조를 따라 손권을 치러 가서 부절을 받았고, 조조가 돌아가며 장료 · 이전과 함께 합비에 남아 지키게 해 식읍이 모두 1,200호가 되었습니다. 건안 20년(215) 손권이 합비를 에워쌌을 때 조조의 교령은 「악 장군은 호군을 지키며 싸우지 말라」는 것이었고 나가 싸운 이는 장료와 이전이었습니다. 이전전은 세 사람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오주전 배송지 주에 인용된 『헌제춘추』는 물러나는 손권을 쫓은 뒤 장료와 악진이 만나, 자줏빛 수염의 장군이 손권인 줄 일찍 알았더라면 쫓아가 잡았을 것이라며 온 군이 아쉬워했다고 적습니다. 여러 번 공을 세웠다 하여 식읍 500호를 떼어 아들 하나가 열후에 봉해졌고 악진은 우장군이 되었습니다. 건안 23년(218)에 죽었고 시호는 위후입니다.

아들 악침이 뒤를 이었는데 과감하고 굳세어 아버지의 풍모가 있었고 양주자사에 이르렀습니다. 감로 2년(257) 제갈탄이 반란을 일으켜 악침을 습격해 죽이자, 위나라는 조서를 내려 애도하고 위위로 추증했으며 시호를 민후라 했습니다. 손자 악조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정시 4년(243) 악진은 장료 · 장합 · 서황 등과 함께 조조의 사당 뜰에 모셔졌습니다. 진수는 평에서 조조 때의 좋은 장수 다섯 가운데 그를 넣으면서도 「악진은 날래고 과감함으로 이름을 드러냈으나 그 행적을 살펴보면 들리는 이름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고, 기록에 빠진 것이 있어 장료나 서황처럼 자세하지 못한 탓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樂進以驍果顯名,而鑑其行事,未副所聞
악진은 날래고 과감함으로 이름을 드러냈으나, 그 행적을 살펴보면 들리는 이름에 미치지 못한다『삼국지』 위서 장악우장서전 평
容貌短小,以膽烈從太祖,爲帳下吏
생김새가 작았으나 굳센 담력으로 태조를 따라 장하의 관리가 되었다『삼국지』 위서 악진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5~68회

연의에서 악진은 제5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가 의병을 모을 때 「양평 위국 사람 악진, 자는 문겸」이 이전과 함께 찾아오고, 조조는 둘을 장막 앞의 관리로 둡니다. 제6회에서는 낙양을 버리고 달아나는 동탁을 쫓는 조조를 따르고, 제11회 복양에서는 여포의 장수 장패와 삼십여 합을 겨루며 우금과 함께 여포와 싸우다 당해 내지 못합니다. 제12회에서는 정도 근처 둑에 숨었던 복병으로 나와 달아나는 여포의 장수 성렴을 화살 한 대로 쏘아 죽입니다. 제31회에서는 장비를 에워쌌다가 관우에게 쫓겨나고, 제33회 남피에서는 성안으로 달아나는 곽도를 활로 쏘아 사람과 말이 함께 해자에 빠지게 하며, 이어 이전과 함께 호관을 빼앗습니다.

제50회에서 조조는 적벽에서 돌아가며 합비를 장료에게 맡기고 악진과 이전을 부장으로 붙입니다. 제53회 합비에서는 장료가 태사자와 겨루는 틈에 칼 한 자루를 들고 손권에게 번개처럼 달려들어, 막아서는 송겸과 가화의 극 두 자루를 한꺼번에 부러뜨립니다. 제67회에서는 조조의 교령에 성을 지키라 적혀 있어 적이 많으니 굳게 지키자고 했다가, 장료를 따라 나가 감녕과 몇 합 싸우다 거짓으로 져 달아나며 오나라 앞 부대를 끌어내고, 소요진 싸움이 벌어지자 되돌아 뒤쫓습니다. 제68회 유수에서는 장료의 명으로 능통과 오십 합을 겨루다가, 조휴가 몰래 쏜 화살에 능통의 말이 쓰러지자 창으로 찌르려 했으나 감녕이 쏜 화살을 얼굴에 맞고 말에서 떨어집니다. 조조는 몸소 막사로 가서 그를 돌봅니다. 연의에서 악진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제98회에는 아들 악침이 장료의 아들 장호와 함께 선봉으로 나옵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4복양에서 여포를 칠 때 먼저 성벽에 올라 공을 세웠습니다.
  2. 195옹구에서 장초를 칠 때 먼저 성벽에 올랐습니다.
  3. 197고현에서 원술의 장수 교유를 칠 때 먼저 성벽에 올라 광창정후에 봉해졌습니다.
  4. 198하비에서 여포를 에워싸 그의 딴 장수를 깨뜨렸습니다.
  5. 200패에서 유비를 깨뜨려 토구교위가 되었습니다.
  6. 200관도에서 원소와 맞서 힘껏 싸워 원소의 장수 순우경을 베었습니다.
  7. 203여양에서 원담 · 원상의 대장 엄경을 베고 유격장군의 일을 맡았습니다.
  8. 205남피에서 먼저 성벽에 올라 원담의 동문으로 들어갔습니다.남피의 끝
  9. 206고간이 지키는 호관을 잇달아 치다가 조조가 몸소 오자 떨어뜨렸습니다.등 뒤를 눌러 두다
  10. 206조조의 표에 우금 · 장료와 함께 기려져 절충장군이 되었습니다.
  11. 206이전과 함께 바다의 도적 관승을 쳐서 섬으로 쫓아냈습니다.
  12. 208형주를 평정한 뒤 양양에 남아 관우와 소비 등을 쳐서 달아나게 했습니다.
  13. 212청니에서 관우와 맞섰습니다.
  14. 215손권이 합비를 에워쌌을 때 조조의 교령은 그에게 호군을 지키며 싸우지 말라 했습니다.
  15. 218우장군으로 있다가 죽었고 시호는 위후입니다.
  16. 243장료 · 장합 · 서황 등과 함께 조조의 사당 뜰에 모셔졌습니다.
  17. 257아들 악침이 양주자사로 있다가 반란을 일으킨 제갈탄에게 죽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악침 · 손자 악조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선봉은 늘 나다!

말을 열며

체구는 작아도 깃발은 늘 맨 앞이었소.

되받으며

높은 성벽일수록 먼저 오르는 법이오.

말문이 막혀

…성벽이 높구나.

말문이 막혀

그래도 먼저 오른다.

설전을 이기고

선봉의 맛이 어떻소!

설전에 지고

앞장서다 보면 넘어질 때도 있소.

이긴 뒤

선봉이 뚫었다!

진 뒤

…앞이 막혔군.

쓰러지며

언제나 앞이었다. 뒤는 몰랐다.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하후돈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조진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