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曹真

자 자단(子丹) · 미상 ~ 231년 · 예주 패국 초현 · 조조 휘하

조진 초상

조조가 거두어 기르고 제갈량의 첫 북벌을 막아 낸 위의 대사마

능력치

통솔88무력74지력68정치72매력89

카드

공격력 4체력 6비용 4값어치 12직군 주공
군령 호령
지휘력 +1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조진전과 배송지 주의 『위서』 · 『위략』 · 『한진춘추』 · 위서 문제기 · 명제기 · 제왕기 · 진군전 · 화흠전 · 왕숙전 · 양부전 · 촉서 후주전 · 제갈량전 · 조운전 · 오서 주연전 · 『진서』 선제기

조진은 자가 자단이며 조조의 족자입니다. 조조가 군사를 일으키자 그의 아버지 조소는 무리를 모았다가 주군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예주자사 황완이 조조를 해치려 할 때 조조는 피했으나 조소 혼자 해를 입었다고 적고, 『위략』은 조진이 본래 진씨로 조씨 집에서 길러졌으며, 어떤 이는 그 아버지 백남이 도적에게 쫓기던 조조를 숨겨 주고 자기가 조조라고 나섰다가 죽었다고 한다고 적습니다. 조조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조진을 가엾게 여겨 거두어 여러 아들과 똑같이 기르고 조비와 함께 지내게 했습니다. 한번은 사냥하다 범에게 쫓기자 돌아보며 활을 쏘았는데 시위 소리와 함께 범이 쓰러졌고, 조조는 그 사나운 용맹을 장하게 여겨 호표기를 거느리게 했습니다.

조진은 영구의 도적을 쳐서 빼앗아 영수정후에 봉해졌고, 건안 23년(218) 편장군으로 하변에서 유비의 별장을 깨뜨려 중견장군이 되었습니다. 조조를 따라 장안에 이르러 중령군을 맡았는데, 이듬해 하후연이 양평에서 죽자 조조는 조진을 정촉호군으로 삼아 서황 등을 거느리고 양평에서 유비의 별장 고상을 깨뜨리게 했습니다. 조조가 몸소 한중에 이르러 여러 군을 빼낼 때는 조진을 무도로 보내 조홍 등을 맞아 진창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연강 원년(220) 조비가 위왕이 되자 조진은 진서장군 · 가절로 옹주 · 양주의 군사를 도맡고 동향후로 올랐습니다. 주천의 장진 등이 반란하자 비요를 보내 깨뜨리고 장진을 베었으며, 문제기 배송지 주의 『위서』는 이듬해 그가 여러 장수와 주군의 군사를 이끌고 반란한 호족을 깨뜨려 하서를 평정했다고 적습니다. 황초 3년(222) 도읍으로 돌아와 상군대장군 · 도독중외제군사 · 가절월이 되었고, 조진전은 그가 하후상 등과 손권을 쳐 우저의 둔영을 깨뜨렸다고 적습니다. 오서 주연전은 이때 조진 · 하후상 · 장합 등이 강릉의 주연을 여섯 달 동안 에워싸고 흙산을 쌓고 땅굴을 파고 누대를 세워 화살을 비처럼 쏘았으나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났다고 적습니다. 그 뒤 중군대장군 · 급사중이 되었고, 황초 7년(226) 조비의 병이 깊어지자 진군 · 사마의 등과 함께 유조를 받아 정사를 보필하게 되었습니다. 명제가 즉위하자 소릉후로 올라 대장군이 되었는데, 배송지는 아버지의 이름이 소인데 소릉후에 봉했다니 글자의 잘못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태화 2년(228) 제갈량이 기산을 에우자 남안 · 천수 · 안정 세 군이 등을 돌려 그에게 응했습니다. 명제는 조진에게 여러 군을 거느리고 미에 머물게 하고 장합을 보내 제갈량의 장수 마속을 크게 깨뜨리게 했습니다. 제갈량전은 제갈량이 사곡 길로 미를 치겠다고 소문을 내고 조운 · 등지를 기곡에 두자 위의 대장군 조진이 무리를 들어 막았다고 적고, 조운전은 조운과 등지가 기곡에서 졌다고 적습니다. 안정의 양조 등이 관리와 백성을 이끌고 월지성을 지키자 조진이 나아가 에워쌌는데, 양조는 무리에게 「대장군이 몸소 오셨으니 나는 일찍 항복하고 싶을 뿐」이라며 스스로 몸을 묶고 나왔고 세 군이 모두 평정되었습니다. 조진은 제갈량이 기산에서 혼이 났으니 다음에는 반드시 진창으로 나오리라 보고 장군 학소와 왕생에게 진창을 지키며 성을 고치게 했습니다. 제갈량은 과연 진창을 에웠으나 미리 대비한 성을 떨어뜨리지 못했고, 조진은 봉읍이 2천9백 호가 되었습니다. 조진전은 이 포위를 이듬해 봄으로, 명제기는 그해 12월로 적어 서로 어긋납니다.

태화 4년(230) 조진은 낙양에 들어와 대사마가 되었고, 칼을 차고 신을 신은 채 전각에 오르며 조회에 들 때 종종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예우를 받았습니다. 조진은 촉이 잇달아 변경을 침범하니 여러 길로 함께 들어가 치면 크게 이길 수 있다고 청했고, 명제는 그 계책을 따라 몸소 배웅했습니다. 조진은 8월 장안을 떠나 자오도로 남쪽으로 들어가고, 사마의는 한수를 거슬러 올라가 남정에서 만나기로 했으며, 다른 군은 사곡이나 무위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큰 장마가 30여 일이나 이어져 잔도가 끊어지기도 하자 명제는 조진에게 군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진군 · 화흠 · 왕숙 · 양부 등이 잇달아 글을 올려 이 원정을 말렸고, 촉의 후주전은 조진이 사곡으로 나왔다고 적어 길이 조진전과 다릅니다.

조진은 젊어서 일족 조준, 고향 사람 주찬과 함께 조조를 섬겼는데, 두 사람이 일찍 죽자 이를 가엾게 여겨 제 봉읍을 나누어 그 아들들에게 주기를 청했습니다. 명제는 조진에게 숙향이 고아를 돌본 어짊과 안평중이 옛 사귐을 도탑게 지킨 도리가 있다며 두 사람의 아들을 관내후로 삼았습니다. 조진은 싸우러 나갈 때마다 장병과 고생을 함께했고, 상으로 줄 것이 모자라면 늘 제 집 재물을 나누어 주어 군사들이 모두 그를 위해 힘쓰기를 바랐습니다. 태화 5년(231) 조진은 병이 들어 낙양으로 돌아왔고, 명제가 몸소 그 집에 가서 병을 살폈으나 그해 3월 죽으니 시호는 원후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는 조진이 병들자 명제가 사마의에게 서쪽을 맡겼다고 적습니다.

아들 조상이 뒤를 이었습니다. 명제는 조진의 공을 돌아보며 「대사마는 충절을 밟아 두 임금의 천명을 도왔고, 안으로는 친척의 총애를 믿지 않고 밖으로는 가난한 선비에게 교만하지 않았다」는 조서를 내리고 다른 아들 다섯을 모두 열후로 삼았습니다. 조비는 앞서 조진의 봉읍 2백 호를 나누어 아우 조빈을 열후로 삼았습니다. 정시 4년(243) 조진은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나, 가평 원년(249) 사마의가 조상 형제를 죽이자 장제가 조진의 공훈은 제사를 끊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도 사마의가 듣지 않았다고 『진서』 선제기는 적습니다. 진수는 조진을 하후돈 · 조인 · 조홍 · 조휴 등과 함께 가까운 친척으로 그 시대에 귀하게 쓰여 곁에서 공업을 도운 이로 평했습니다.

故惇、淵、仁、洪、休、尚、真等並以親舊肺腑,貴重於時,左右勳業,咸有効勞
하후돈 · 하후연 · 조인 · 조홍 · 조휴 · 하후상 · 조진 등은 가까운 친척으로 그 시대에 귀하게 쓰였고, 곁에서 공업을 도와 모두 공을 세웠다『삼국지』 위서 제하후조전 평
大司馬蹈履忠節,佐命二祖,内不恃親戚之寵,外不骄白屋之士
대사마는 충절을 밟아 두 임금의 천명을 도왔고, 안으로는 친척의 총애를 믿지 않고 밖으로는 가난한 선비에게 교만하지 않았다『삼국지』 위서 조진전에 실린 명제의 조서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84~100회 · 제106회

연의에서 조진은 제84~85회에 조비가 세 길로 오를 칠 때 남군으로 나서는 장수로 처음 나오고, 하후상과 남군을 에워쌌다가 육손과 제갈근의 복병에 크게 집니다. 제85회에서 조비가 다섯 길로 촉을 치자는 사마의의 꾀를 따르자 조진은 대도독으로 10만을 이끌고 양평관으로 나서지만, 제86회에서 조운이 험한 길을 막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조비가 광릉으로 나설 때는 앞장을 서고, 거센 바람에 용주가 뒤집힐 뻔하자 문빙을 시켜 조비를 구하게 합니다.

제91회에서 조비는 죽음을 앞두고 조진 · 진군 · 사마의를 불러 조예를 부탁하고, 조진은 대장군이 됩니다. 제93회에서 하후무가 세 군을 잃자 왕랑의 천거로 대도독이 되어 20만을 이끌고 나서며, 일족 조준과 주찬을 선봉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함께 간 왕랑이 제갈량에게 꾸짖음을 듣고 말에서 떨어져 죽고, 밤에 촉의 진영을 치려던 꾀가 들켜 크게 집니다. 제94회에서는 곽회의 말에 따라 서강에 구원을 청했다가 강병마저 지고, 뒤쫓다가 조준과 주찬을 위연과 조운에게 잃습니다. 조정에서 종요는 조진이 제갈량의 적수가 못 된다며 사마의를 다시 쓰자고 하고, 제95회에서 조진은 사마의가 가정을 얻은 뒤 곽회와 함께 세 군을 되찾아 제 공으로 삼습니다.

제97회에서 조진은 전에 사마의에게 공을 빼앗긴 것을 만회하려 다시 대도독이 되어 왕쌍을 선봉으로 삼지만, 강유의 거짓 항복 편지에 속아 비요를 잃습니다. 제98회에서는 손례의 꾀로 제갈량을 꾀려다 도리어 지고, 제갈량이 물러간 뒤에야 빈 진영을 알아채며, 왕쌍이 죽자 근심으로 병이 나 낙양으로 돌아갑니다. 제99회에서는 대사마 · 정서대도독이 되어 사마의와 촉을 치러 나서지만 한 달 가까운 장마에 막혀 돌아옵니다.

제100회에서 조진은 촉군이 오지 않으리라며 사마의와 내기를 걸어, 촉군이 오면 천자가 내린 옥대와 어마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 쪽 골짜기로 들어온 촉군에게 크게 지고 부끄러워 병이 나 누웠는데, 제갈량이 보낸 편지에서 「중달은 진을 보고 떨고 자단은 바람만 보고 허둥댄다」는 조롱을 읽고 분이 가슴에 차 그날 밤 군중에서 죽습니다. 연의에서 조진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제106회에서 명제는 조진의 아들 조상을 대장군으로 삼습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18편장군으로 하변에서 유비의 별장을 깨뜨려 중견장군이 되었습니다.
  2. 219하후연이 죽자 정촉호군으로 서황 등을 거느려 양평에서 유비의 별장 고상을 깨뜨렸습니다.
  3. 220조비가 위왕이 되자 진서장군 · 가절로 옹주 · 양주의 군사를 도맡고 동향후가 되었습니다.
  4. 221여러 장수와 주군의 군사를 이끌고 반란한 호족을 깨뜨려 하서를 평정했습니다.
  5. 222상군대장군 · 도독중외제군사가 되어 하후상 등과 강릉의 주연을 에워쌌습니다.
  6. 226조비의 유조를 받아 정사를 보필하게 되었고, 명제가 즉위하자 대장군이 되었습니다.
  7. 228제갈량이 기산을 에우자 미에서 여러 군을 거느리고 등 돌린 세 군을 평정했습니다.옹량의 수비
  8. 228제갈량이 진창으로 오리라 보고 학소 · 왕생에게 성을 고쳐 지키게 했습니다.진창을 내다본 사람
  9. 230대사마가 되어 칼을 차고 전각에 오르는 예우를 받았습니다.
  10. 2308월 자오도로 촉을 치러 나섰으나 30여 일의 장마로 돌아왔습니다.
  11. 231병들어 낙양에 돌아와 명제의 문병을 받았고, 3월에 죽었습니다.
  12. 243정시 4년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조소 · 아우 조빈 · 아들 조상 · 조희 · 조훈 등 여섯 · 족부 조조(태조)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조씨의 군권이 여기 있다.

말을 열며

위의 국경을 맡은 사람이오. 넘보지 마시오.

되받으며

허풍은 통하지 않소. 실속을 말하시오.

말문이 막혀

…또 저 사람인가.

말문이 막혀

몸이 따라 주지 않는구려.

설전을 이기고

지키는 것도 이기는 것이오.

설전에 지고

…이 분함을 못 이기겠구려.

이긴 뒤

촉군은 또 물러갔소.

진 뒤

…분하구나. 참으로 분하다.

쓰러지며

그 글 한 장에… 분하구나.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하후돈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악진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