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휴曹休

자 문열(文烈) · 미상 ~ 228년 · 예주 패국 초현 · 조조 휘하

조휴 초상

조조가 우리 집안의 천리마라 했으나 석정에서 거짓 항복에 속은 대사마

능력치

통솔77무력74지력62정치56매력69

카드

공격력 4체력 4비용 2값어치 8직군 맹장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조휴전과 배송지 주의 『위서』 · 『세어』 · 위서 문제기 · 명제기 · 제왕기 · 동소전 · 가규전 · 만총전 · 장제전 · 손례전 · 왕릉전 · 오서 오주전 · 주방전 · 육손전 · 주환전

조휴는 자가 문열이며 조조의 족자입니다. 천하가 어지러워 일족이 저마다 고향을 떠나 흩어졌을 때, 열 살 남짓이던 조휴는 아버지를 여의고 식객 한 사람과 함께 상여를 메어 임시로 장사 지낸 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강을 건너 오로 갔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그의 할아버지가 일찍이 오군태수를 지냈는데, 조휴가 태수의 관사 벽에 걸린 할아버지의 초상을 보고 자리에서 내려와 절하며 울자 함께 앉은 이들이 모두 감탄했다고 적습니다. 조조가 의병을 일으키자 조휴는 이름을 바꾸고 형주를 거쳐 샛길로 북쪽에 돌아와 조조를 뵈었습니다. 조조는 곁의 사람들에게 「이 아이는 우리 집안의 천리마다」라 하고, 조비와 함께 지내게 하며 아들처럼 대했습니다. 조휴는 늘 싸움을 따라다녔고 호표기를 거느려 숙위를 맡았습니다.

건안 22년(217) 유비가 장수 오란을 하변에 머물게 하자 조조는 조홍을 보내 치게 하고, 조휴를 기도위로 삼아 조홍의 군사에 참여하게 하며 「너는 참군이지만 실은 장수다」라고 일렀습니다. 조홍도 이 말을 듣고 일을 조휴에게 맡겼습니다. 유비가 장비를 고산에 머물게 해 뒤를 끊으려 하자 모두 머뭇거렸는데, 조휴는 「적이 정말 길을 끊으려 한다면 군사를 숨겨 몰래 움직였을 것이다. 지금 먼저 기세를 떠벌리니 그럴 힘이 없는 것이다. 아직 모이기 전에 서둘러 오란을 치면 오란이 깨지고 장비도 스스로 달아날 것」이라 했습니다. 조홍이 그 말을 따라 오란을 크게 깨뜨리자 장비는 과연 물러갔습니다. 건안 24년(219) 조조가 한중에서 군사를 거두어 장안으로 돌아오자 조휴는 중령군이 되었습니다.

연강 원년(220) 조비가 위왕이 되자 조휴는 영군장군이 되고 앞뒤의 공으로 동양정후에 봉해졌습니다. 하후돈이 죽자 진남장군 · 가절로 여러 군의 일을 도맡게 되었는데, 조비는 몸소 배웅을 나와 수레에서 내려 그의 손을 잡고 작별했습니다. 손권이 장수를 보내 역양에 머물게 하자 조휴는 이르자마자 이를 깨뜨렸고, 따로 군사를 보내 강을 건너 무호의 진영 수천 가를 불살랐습니다. 이 공으로 정동장군 · 양주자사가 되고 안양향후로 올랐습니다. 『위서』는 조휴가 어머니를 여의고 몹시 슬퍼하자 조비가 시중을 보내 상복을 벗기고 술과 고기를 들게 했으나 몸이 더욱 여위었고, 초로 돌아가 어머니를 묻게 해 달라고 청하자 하룻밤 사이에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게 한 뒤 몸소 위로했다고 적습니다.

황초 3년(222) 조비가 손권을 치자 조휴는 정동대장군 · 가황월로 장료 등 여러 주군의 스무 남짓 군을 거느려 동포에서 손권의 대장 여범 등을 깨뜨리고 양주목이 되었습니다. 동소전은 이때 조휴가 날랜 군사를 이끌고 강남으로 건너가겠다고 표를 올리자 조비가 걱정했으나, 동소가 장패 등 다른 장수들이 따르지 않으면 조휴도 뜻을 접을 것이라 했다고 적습니다. 오주전은 그해 11월 큰바람에 여범 등의 군사 수천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적습니다. 황초 7년(226) 명제가 즉위하자 조휴는 장평후로 올랐고, 그해 심양에서 오의 별장을 깨뜨린 뒤 12월 대사마가 되어 전처럼 양주를 도맡았습니다. 환에 머물던 오의 장수 심덕을 쳐서 그 목을 베었고, 오의 장수 한종과 적단 등이 잇달아 무리를 이끌고 항복해 와 봉읍이 2천5백 호가 되었습니다.

태화 2년(228) 명제는 두 길로 오를 치게 해 사마의는 한수를 따라 내려가고 조휴는 여러 군을 거느려 심양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오서 주방전에 따르면 손권은 파양태수 주방에게 조휴를 꾀어내게 했고, 주방은 조휴에게 투항하겠다는 편지 일곱 통을 보냈습니다. 조정의 낭관이 여러 번 와서 따져 묻자 주방은 군의 문 앞에 나아가 머리카락을 잘라 사죄했고, 이 말을 들은 조휴는 더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조휴는 보병과 기병 10만을 이끌고 짐수레가 길을 메운 채 환으로 들어갔습니다. 만총은 「조휴는 밝고 과감하나 군사를 부린 일이 드물고, 지금 가는 길은 호수를 등지고 강을 끼고 있어 들어가기는 쉬우나 물러나기 어렵다」고 상소했고, 장제도 적지에 깊이 들어가는 것은 이롭지 않다고 했으며, 손례는 조휴에게 깊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간했으나 조휴는 듣지 않았습니다.

조휴는 속은 것을 알고도 군사가 많은 것을 믿고 싸웠습니다. 육손전에 따르면 육손은 스스로 가운데를 맡고 주환 · 전종을 좌우 날개로 삼아 세 길로 나아가 조휴의 복병을 들이치고 협석까지 쫓아가 만여 명을 베거나 사로잡았으며, 수레 만 대와 군수품을 거의 다 빼앗았습니다. 조휴전은 조휴가 싸움에 져 석정에 물러나 머물렀는데 밤에 군이 놀라 어지러워지며 갑옷과 무기, 짐수레를 많이 버렸다고 적습니다. 오가 협석의 길을 끊었을 때, 본디 조휴와 사이가 나빴던 가규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협석을 차지하고 군량을 대어 조휴의 군이 겨우 떨쳐 일어났고, 왕릉도 힘껏 싸워 에움을 뚫어 조휴를 구했습니다.

조휴는 글을 올려 죄를 빌었으나 명제는 둔기교위 양기를 보내 위로하고 예우를 더했습니다. 그러나 조휴는 이 일로 등에 종기가 나서 그해 9월에 죽었고, 시호는 장후입니다. 아들 조조가 뒤를 이었는데 태조 조조와 우리 음만 같은 다른 사람으로, 자는 장사이며 산기상시 · 둔기교위를 지냈고, 명제가 병들었을 때 연왕 조우 등과 함께 뒷일을 맡을 뻔했다가 명제의 뜻이 바뀌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조비는 앞서 조휴의 봉읍 3백 호를 나누어 그 아우 조찬을 열후로 삼았습니다. 정시 4년(243) 조휴는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진수는 조휴를 하후돈 · 조인 · 조홍 등과 함께 가까운 친척으로 그 시대에 귀하게 쓰여 곁에서 공업을 도운 이로 평했고, 석정 싸움 앞서 오의 주환은 「조휴는 본디 친척이라서 쓰였을 뿐 지혜와 용맹을 갖춘 이름난 장수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故惇、淵、仁、洪、休、尚、真等並以親舊肺腑,貴重於時,左右勳業,咸有効勞
하후돈 · 하후연 · 조인 · 조홍 · 조휴 · 하후상 · 조진 등은 가까운 친척으로 그 시대에 귀하게 쓰였고, 곁에서 공업을 도와 모두 공을 세웠다『삼국지』 위서 제하후조전 평
此吾家千里驹也
이 아이는 우리 집안의 천리마다『삼국지』 위서 조휴전에 실린 조조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56~97회

연의에서 조휴는 제56회 동작대의 활쏘기에서 처음 크게 나옵니다. 붉은 전포를 입은 조씨 일족의 대열에서 젊은 장수 조휴가 먼저 말을 달려 과녁 한가운데를 맞히자, 조조는 「우리 집안의 천리마」라며 기뻐합니다. 제68회 유수 싸움에서는 조조의 명으로 몰래 활을 쏘아 능통의 말을 맞히고, 제69회에서는 경기 · 위황이 허도에서 난을 일으키자 왕필의 알림을 받고 성안에서 맞서 싸운 뒤 어림군을 도맡습니다. 제71회 한중 싸움에서는 대군의 뒤를 맡습니다.

제80회에서는 조홍과 함께 칼을 차고 궁에 들어가 헌제에게 옥새를 내놓으라 하고, 제84~85회에서는 조비의 명으로 동구로 나섰다가 여범에게 집니다. 제91회에서 조비가 죽을 때 뒤늦게 들어와 조진 · 진군 · 사마의와 함께 조예를 부탁받고 대사마가 되며, 사마의가 모반한다는 방이 붙자 안읍에서 그를 맞아 따져 묻고 옹주 · 양주의 군사를 넘겨받습니다.

제96회에서 조휴는 양주 도독으로서 파양태수 주방이 군을 들어 항복하겠다며 보낸 일곱 가지 일을 조정에 올립니다. 주방이 조휴 앞에서 칼로 머리카락을 잘라 던지며 충심을 맹세하자 조휴는 그를 깊이 믿고, 머리를 자른 맹세는 속임수라며 말리는 가규를 베려다가 장수들의 청으로 그 군사만 빼앗습니다. 조휴는 석정에 진을 치고 장보 · 설교에게 복병을 맡겼으나, 육손이 보낸 주환 · 전종이 복병을 깨뜨리고 서성이 가운데로 쳐들어오자 크게 져 협석 길로 달아나고, 가규가 산길에 깃발을 늘어세워 오군을 속인 덕에 겨우 빠져나옵니다. 조휴는 공의 말을 듣지 않아 과연 이렇게 졌다며 부끄러워합니다. 제97회에서 조휴는 몹시 두려워하고 근심한 끝에 병이 들어 낙양에 이르러 등창으로 죽고, 명제는 후히 장사 지내게 합니다. 연의에서 조휴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17기도위로 조홍의 군사에 참여해 하변으로 갔고, 조조는 그를 이름은 참군이나 실은 장수라 했습니다.
  2. 218장비의 허세를 꿰뚫고 먼저 오란을 치자고 해 크게 깨뜨리니 장비가 물러갔습니다.
  3. 219조조가 한중에서 군사를 거두어 장안으로 돌아오자 중령군이 되었습니다.
  4. 220조비가 위왕이 되자 영군장군이 되고 동양정후에 봉해졌습니다.
  5. 220하후돈이 죽자 진남장군 · 가절로 여러 군을 거느렸고, 조비가 수레에서 내려 손을 잡고 작별했습니다.
  6. 222정동대장군 · 가황월로 스무 남짓 군을 거느려 동포에서 여범을 깨뜨리고 양주목이 되었습니다.
  7. 226명제가 즉위하자 장평후가 되었고, 심양에서 오의 별장을 깨뜨린 뒤 12월 대사마가 되었습니다.
  8. 228주방의 거짓 항복을 믿고 10만 군사로 환에 들어갔다가 육손에게 크게 졌습니다.거짓 항복에 속다
  9. 228가규 · 왕릉의 구원으로 협석을 빠져나왔으나 이 일로 등창이 나서 9월에 죽었습니다.석정으로 가는 길
  10. 243정시 4년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조조(자는 장사) · 조찬 · 손자 조흥 · 족부 조조(태조)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위의 천리마다.

말을 열며

조가의 천리마라 불리던 몸이오.

되받으며

빈말인지 아닌지는 달려 보면 아오.

말문이 막혀

…이 말도 속임수인가.

말문이 막혀

두 번은 안 속소.

설전을 이기고

천리마는 하루에 천 리를 보오.

설전에 지고

석정의 분함이 또 도지는구려.

이긴 뒤

천리마의 걸음이오.

진 뒤

…거짓 항복에 넘어갔소.

쓰러지며

…속은 것이 분해 견딜 수 없다.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하후돈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악진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