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만성(曼成) · 미상 ~ 미상 (215년 이후) · 연주 산양군 거야현 · 조조 휘하
학문을 사랑한 지장으로, 장료와 협력하여 합비에서 손권을 격파한 명장
출전 · 『삼국지』 위서 이전전과 배송지 주의 『위서』 · 위서 무제기 · 장료전 · 조엄전 · 장패전 · 삼소제기 · 촉서 선주전
이전은 자가 만성이며 산양군 거야현 사람입니다. 숙부 이건은 기개가 굳세어 빈객 수천 집을 모아 승씨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초평 연간에 무리를 이끌고 조조를 따라 수장에서 황건을 깨뜨리고 원술을 치고 서주 싸움에도 나섰습니다. 여포의 난이 일자 조조는 이건을 승씨로 돌려보내 여러 현을 달래게 했는데, 여포의 별가 설란과 치중 이봉이 함께 등을 돌리자고 꾀어도 듣지 않자 그를 죽였습니다. 조조는 이건의 아들 이정에게 아버지의 군사를 거느리게 했고, 이정은 여러 장수와 함께 설란 · 이봉을 깨뜨리고 연주의 여러 현을 평정한 공으로 청주자사에 이르렀습니다. 이정이 죽자 이전은 영음령을 거쳐 중랑장이 되어 이정의 군사를 이어 거느렸고, 이호태수로 옮겼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이전이 젊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군사 일을 즐기지 않아 스승에게 가서 『춘추좌씨전』을 읽고 여러 책을 두루 보았으며, 조조가 이를 좋게 여겨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맡겨 보았다고 적습니다.
건안 5년(200)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와 맞서자 이전은 종족과 부곡을 거느리고 곡식과 비단을 날라 군을 댔고, 원소가 깨진 뒤 비장군이 되어 안민에 머물렀습니다. 조조가 여양에서 원담 · 원상을 칠 때는 정욱 등과 함께 배로 군량을 날랐는데, 원상이 보낸 위군태수 고번이 황하 가에 진을 치고 물길을 끊었습니다. 조조는 배가 지나가지 못하면 뭍길로 가라고 일렀지만, 이전은 여러 장수와 의논하며 「고번의 군사는 갑옷이 적고 물만 믿어 게으른 마음이 있으니 치면 반드시 이긴다. 싸움터의 일은 안에서 막지 않는 법이니 나라에 이롭다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며 서둘러 치자고 했습니다. 정욱도 옳다고 여겨 북쪽으로 황하를 건너 고번을 깨뜨렸고, 물길이 다시 열렸습니다.
그 무렵 유표가 유비를 북쪽으로 보내 섭에 이르자 조조는 이전을 하후돈에게 딸려 막게 했습니다. 하루는 유비가 진영을 불사르고 떠나자 하후돈이 여러 군을 이끌고 뒤쫓으려 했는데, 이전은 「적이 까닭 없이 물러나니 반드시 복병이 있을 것이다. 남쪽 길은 좁고 풀과 나무가 깊으니 쫓아서는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하후돈은 듣지 않고 우금과 함께 뒤쫓았고 이전은 남아 지켰는데, 과연 하후돈 등이 복병이 숨은 곳에 들어가 싸움이 불리해지자 이전이 구하러 갔고, 구원병을 본 유비는 흩어져 물러갔습니다. 선주전은 이 싸움이 박망에서 있었고 유비가 복병을 두고 진영을 불사른 뒤 거짓으로 달아났다고 적습니다.
건안 9년(204) 업을 에워싸는 싸움에 따라가 업이 평정된 뒤, 이전은 악진과 함께 호관에서 고간을 에워싸고 장광에서 바다 도적 관승을 쳐 모두 깨뜨렸습니다. 무제기는 고간을 친 것을 건안 10년(205)의 일로, 관승을 깨뜨린 것을 이듬해 8월의 일로 적습니다. 이전은 포로장군이 되고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종족과 부곡 3천여 집이 승씨에 살고 있었는데, 이전이 스스로 위군으로 옮기기를 청하자 조조는 「경은 경순을 본받으려는가」 하고 웃었습니다. 경순은 집을 불사르고 관을 수레에 싣고 한 광무제를 따랐던 사람입니다. 이전은 「저는 둔하고 겁이 많으며 공이 작은데 작위와 총애가 너무 두터우니 온 집안이 힘을 바쳐야 마땅합니다. 게다가 싸움이 그치지 않았으니 도성 둘레를 채워 사방을 누르려는 것이지 경순을 본받으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사양하고, 부곡과 종족 1만 3천여 명을 업으로 옮겼습니다. 조조는 이를 기려 그를 파로장군으로 올렸습니다. 조엄전은 건안 13년(208) 조조가 형주를 칠 때 조엄이 감독한 일곱 군 가운데 이전의 군이 있었다고 적습니다.
그 뒤 이전은 장료 · 악진과 함께 합비에 머물렀습니다. 장료전에 따르면 세 사람이 거느린 군사는 7천여 명이었고, 조조는 장로를 치러 떠나며 호군 설제에게 「적이 오면 열어 보라」고 쓴 함을 맡겼습니다. 건안 20년(215) 손권이 10만 무리로 합비를 에워싸자 함을 열었는데, 「손권이 오면 장 · 이 두 장군은 나가 싸우고 악 장군은 호군을 지키며 싸우지 말라」는 명이 들어 있었습니다. 악진 · 이전 · 장료는 본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장료는 이전이 따르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이전은 「이것은 나라의 큰일이니 그대의 계책이 어떠한지만 볼 뿐이다. 내가 사사로운 원한으로 공의를 잊겠는가」라고 선뜻 말하고, 무리를 이끌고 장료와 함께 나가 손권을 깨뜨려 쫓았습니다. 장료전도 여러 장수가 의심할 때 이전이 장료와 뜻을 같이했다고 적고, 무제기는 그해 8월 손권이 합비를 에워싸자 장료와 이전이 깨뜨렸다고 적습니다. 이전은 이 공으로 봉읍 백 호를 더 받아 모두 3백 호가 되었습니다.
이전은 학문을 좋아하고 선비다운 기품을 귀히 여겼으며, 여러 장수와 공을 다투지 않았습니다. 어진 사대부를 공경해 늘 모자란 듯 삼갔으므로 군중에서는 그를 장자(덕 있는 어른)라 불렀습니다. 서른여섯에 죽었고 아들 이정이 뒤를 이었는데, 앞서 군사를 넘겨준 사촌 이정과는 다른 글자를 쓰는 이름입니다. 죽은 해는 적혀 있지 않으나 조비가 즉위했을 때는 이미 아들이 뒤를 이은 뒤였습니다. 황초 원년(220) 조비는 합비의 공을 기려 이정의 봉읍을 백 호 늘리고 이전의 다른 아들 하나에게 관내후의 작위와 봉읍 백 호를 내렸으며, 이전에게는 민후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삼소제기는 정시 4년(243) 7월 조정이 조진 · 장료 · 악진 · 문빙 등과 함께 파로장군 이전을 태조의 사당 뜰에 모셔 제사하게 했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이전은 선비다운 기품을 귀히 여기고 의리로 사사로운 틈을 잊었으니 아름답다」고 평했습니다.
李典貴尚儒雅,義忘私隙,美矣此國家大事,顧君計何如耳,吾可以私憾而忘公義乎『삼국연의』 제5~68회
연의에서 이전은 제5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가 진류에서 의병을 모을 때 악진과 함께 찾아온 「산양 거록 사람」으로 소개되고, 조조는 두 사람을 장막 앞의 관리로 둡니다. 제6회에서 동탁을 뒤쫓는 조조를 따르고, 제12회에서는 복양성에 먼저 들어가겠다고 청하며, 황건의 우두머리 황소를 사로잡고 달아나는 설란을 성 앞 다리 곁에서 가로막습니다. 제23회에서 예형은 조조의 신하들을 하나하나 헐뜯으며 「이전은 글을 전하고 격문을 보내는 일이나 시킬 만하다」고 합니다.
제35회와 제36회에서는 번성의 조인을 따라 신야의 유비를 치는데, 조운에게 져 돌아와 번성으로 물러나자고 했다가 조인에게 목이 달아날 뻔하고, 밤에 진영을 치자는 조인을 말렸으나 듣지 않아 크게 집니다. 제39회 박망파에서는 하후돈의 부장으로 나서, 좁은 길에 이르자 우금에게 적이 불로 치면 어찌하느냐고 걱정하다가 불길 속에서 관우에게 길을 막히고 겨우 빠져나갑니다. 제40회에서 하후돈이 이전과 우금이 미리 말했었다고 뉘우치자 조조는 두 사람에게 상을 줍니다. 제42회에서는 장비가 끊고 간 장판교를 두고 제갈량의 꾀일지 모르니 서둘러 나아가지 말자고 하지만 조조는 듣지 않습니다.
제50회에서 조조는 합비를 장료에게 맡기며 악진과 이전을 그 버금으로 삼고, 제53회에서 손권이 합비를 치자 이전은 활로 오의 장수 송겸을 쏘아 떨어뜨립니다. 제67회에서 손권이 10만으로 다시 합비를 치자, 장료와 사이가 나빴던 이전은 나가 싸우자는 장료의 말에 처음에는 잠자코 있다가 「장군이 이러한데 제가 어찌 사사로운 원한으로 나랏일을 잊겠습니까」 하며 따르고, 소요진 북쪽에 숨었다가 소사교를 끊고 손권의 군을 칩니다. 제68회 유수 싸움에서도 장료를 따라 싸우는데, 연의에서 이전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그의 죽음은 그리지 않습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숙부 이건 · 사촌 이정 · 아들 이정(뒤를 이음)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글도 읽고 창도 든다.
이만성이오. 사사로운 감정은 접어 두었소.
글을 읽는 무장이오. 이치로 답하겠소.
…판을 다시 읽어야겠군.
감정에 흔들릴 때가 아니오.
나라의 일 앞에 묵은 원한은 없소.
…내 헤아림이 짧았구려.
글과 창이 함께 이겼소.
…책으로는 못 배우는 것이 있군.
글도 칼도… 짧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