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龐統

자 사원(士元) · 179년 무렵 ~ 214년 무렵 · 형주 남군 양양현 · 유비 휘하

방통 초상

봉추라 불렸고 유비를 따라 촉에 들어가 낙성을 치다 화살에 맞아 죽은 군사

능력치

통솔78무력34지력97정치85매력69

카드

공격력 3체력 4비용 4값어치 14직군 모사
연환 비용 4
적 전체가 서로 묶인다 · 하나가 쓰러지면 나머지도 1 피해 (적이 둘 이상일 때만 · 혼자 남으면 풀린다)
급보 비용 1
다음에 소환하는 아군 하나가 멀미 없이 선다
환수 비용 4
나와 적의 진영을 통째로 바꾼다
낙봉파 절명
다음 책략 세 장의 값이 1 씩 내린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방통전과 배송지 주의 『양양기』 · 『오록』 · 『강표전』 · 『구주춘추』 · 습착치 · 제갈량전과 배송지 주의 『양양기』 · 선주전 · 후주전 · 팽양전 · 양희전의 『계한보신찬』 · 오서 주유전

방통은 자가 사원이며 양양 사람입니다. 방통전은 그가 젊어서 소박하고 어수룩해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고 적습니다. 스무 살 무렵 방통이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던 영천의 사마휘를 찾아가자, 뽕나무 위에서 잎을 따던 사마휘는 그를 나무 아래 앉히고 낮부터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마휘는 그를 몹시 기이하게 여겨 남주 선비의 으뜸이 되리라 일컬었고, 이로써 방통의 이름이 차츰 드러났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양양기』는 제갈량을 와룡, 방통을 봉추, 사마휘를 수경이라 부른 것이 모두 방통의 숙부 방덕공의 말이었다고 적습니다. 방덕공만은 일찍부터 방통을 무겁게 여겨 열여덟 살의 그를 사마휘에게 보냈다고도 적습니다. 제갈량전에 인용된 『양양기』에는 유비가 세상일을 묻자 사마휘가 이곳에 복룡과 봉추가 있다며 제갈량과 방통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방통은 뒤에 군의 공조가 되었습니다. 사람을 평하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길러 내는 데 힘썼는데, 칭찬할 때마다 그 재주보다 넘치게 말해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물었습니다. 방통은 지금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 바른 도가 쇠하고 착한 사람은 적고 악한 사람은 많으니, 이야기를 아름답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명성을 우러르지 않고 착한 일을 하는 이도 적어진다고 답했습니다. 그러고는 「이제 열을 뽑아 다섯을 잃더라도 오히려 절반을 얻으니, 세상의 가르침을 높이고 뜻있는 이가 스스로 힘쓰게 할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오의 장수 주유가 남군태수를 겸하다가 죽자, 방통은 그 상여를 모시고 오에 갔고 오 사람들이 그 이름을 많이 들었습니다. 『강표전』은 그가 주유의 공조였다고 적습니다. 돌아올 무렵 육적 · 고소 · 전종이 모두 전송을 나오자, 방통은 「육자는 느린 말이지만 빨리 달리는 힘이 있고, 고자는 느린 소이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멀리 갈 수 있다」고 했고 전종은 베풀기를 좋아하고 이름을 사모하니 여남의 번자소와 닮았다고 했습니다. 육적과 고소는 그와 깊이 사귀고 돌아갔습니다.

유비가 형주를 다스리게 되자 방통은 종사로서 뇌양현령을 맡았으나 현을 다스리지 않아 벼슬을 잃었습니다. 오의 노숙은 유비에게 글을 보내 「방사원은 백 리를 맡을 재목이 아니니, 치중이나 별가의 자리에 두어야 비로소 천리마의 발을 펼 것」이라 했고, 제갈량도 유비에게 같은 말을 했습니다. 유비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는 큰 그릇으로 여겨 치중종사로 삼았고, 제갈량 다음으로 가까이하다가 마침내 제갈량과 나란히 군사중랑장으로 삼았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유비가 술자리에서 주유가 자신을 오에 붙잡아 두라고 손권에게 몰래 아뢰었느냐고 묻자, 방통은 숨기지 않고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구주춘추』는 방통이 형주는 황폐하고 동쪽의 손씨와 북쪽의 조씨 사이에 끼어 뜻을 얻기 어려우니, 나라가 넉넉하고 호구가 백만인 익주를 빌려 큰일을 정하자고 권했다고 적습니다. 유비가 늘 조조와 반대로 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며 작은 일로 천하에 신의를 잃을 수는 없다고 하자, 방통은 약한 것을 아우르고 어두운 것을 치는 것은 오패의 일이며, 거슬러 얻더라도 순리로 지키고 일이 정해진 뒤 유장을 큰 나라에 봉해 주면 어찌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냐고 했습니다. 건안 16년(211) 제갈량은 형주에 남아 지키고 방통은 유비를 따라 촉으로 들어갔습니다.

익주목 유장이 부에서 유비와 만나자, 방통은 이 모임에서 그를 사로잡으면 군사를 쓰는 수고 없이 앉아서 한 주를 얻는다고 권했습니다. 유비는 남의 나라에 처음 들어와 은혜와 믿음이 아직 서지 않았다며 물리쳤고, 선주전은 장송이 법정을 시켜 같은 뜻을 아뢰게 했다고 적습니다. 유장이 성도로 돌아가고 유비가 그를 위해 북쪽의 한중을 치러 가맹에 머물자, 방통은 세 계책을 올렸습니다. 날랜 군사를 몰래 뽑아 밤낮으로 달려 곧장 성도를 치는 것이 상책이고, 관두를 지키는 유장의 이름난 장수 양회 · 고패에게 형주가 급해 돌아간다고 알려 그들이 가벼운 기병으로 만나러 오면 사로잡고 그 군사를 거두어 성도로 향하는 것이 중책이며, 백제로 물러나 형주와 이어진 뒤 천천히 도모하는 것이 하책이라 했습니다. 머뭇거리며 떠나지 않으면 크게 곤란해진다는 말에 유비는 중책을 옳게 여겨 양회 · 고패를 베고 성도로 향했고, 지나는 곳마다 이겼습니다.

부에서 크게 모여 술과 풍악을 벌인 날, 유비가 「오늘 모임은 즐겁다 할 만하다」고 하자 방통은 「남의 나라를 치고서 기뻐하는 것은 어진 이의 군사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취한 유비는 무왕이 주를 칠 때 앞에서 노래하고 뒤에서 춤추었으니 어진 이가 아니냐며 어서 나가라고 성을 냈고, 방통은 머뭇거리다 물러났습니다. 유비가 곧 뉘우쳐 다시 부르자 방통은 제자리에 돌아와 사과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히 먹고 마셨습니다. 유비가 아까의 논의는 누가 잘못했느냐고 묻자 방통은 「군주와 신하가 모두 잘못했습니다」라고 답했고, 유비는 크게 웃으며 처음처럼 즐겼습니다. 배송지 주의 습착치는 방통이 뭇사람 앞에서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았다고 기렸고, 배송지 자신은 잘못은 유비에게만 있었으니 그 대답은 비방을 나누어 진 말이라고 보았습니다.

유비가 나아가 낙현을 에워싸자 방통은 무리를 이끌고 성을 치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죽으니 서른여섯이었습니다. 방통전은 그해를 적지 않는데, 선주전에 따르면 낙성은 한 해 가까이 에워싸였다가 건안 19년(214) 여름에 떨어졌습니다. 유비는 몹시 애석해하며 그를 말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양희의 『계한보신찬』에 따르면 평소 방통에게 복종하지 않던 광한태수 장존이 방통은 충성을 다해 아깝지만 대아의 뜻에는 어긋난다고 하자, 유비는 「방통은 몸을 죽여 인을 이루었는데 그것도 잘못이란 말이오」라며 노해 그의 벼슬을 빼앗았습니다. 유비는 방통의 아버지를 의랑으로 삼았다가 간의대부로 옮겼고, 제갈량이 몸소 그에게 절했습니다. 방통에게는 관내후를 추증했고, 경요 3년(260) 후주는 관우 · 장비 · 마초 · 황충과 함께 그에게 정후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아들 방굉은 자가 거사로 굳세고 간결하며 옳고 그름을 따졌는데, 상서령 진지를 가벼이 여기다 그에게 눌려 부릉태수로 죽었습니다. 아우 방림은 형주 치중종사로 진북장군 황권을 따라 오를 치다가 싸움에 지자 황권을 따라 위에 들어가 열후에 봉해지고 거록태수에 이르렀습니다. 진수는 방통이 인물을 평하기를 즐기고 경학과 꾀를 닦아 그때 형주와 초 땅에서 높고 뛰어나다 일컬어졌다고 하고, 위의 신하에 견주면 순욱의 버금이라고 평했습니다.

龐統雅好人流,經學思謀,于時荊﹑楚謂之高俊
방통은 인물을 평하기를 즐기고 경학과 꾀를 닦아, 그때 형주와 초 땅에서 높고 뛰어나다 일컬어졌다『삼국지』 촉서 방통법정전 평
伐人之國而以為歡,非仁者之兵也
남의 나라를 치고서 기뻐하는 것은 어진 이의 군사가 아닙니다『삼국지』 촉서 방통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35~36회 · 제47~48회 · 제57회 · 제60~63회

연의에서 방통의 이름은 제35회에 처음 나옵니다. 단계를 뛰어넘어 달아난 유비가 수경장에 이르자, 사마휘의 동자는 스승이 양양의 방덕공 · 방통과 벗한다고 말하고, 사마휘는 「복룡과 봉추 가운데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일러 주면서도 그들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제36회에서 떠나는 서서가 봉추는 양양의 방통, 복룡은 제갈량이라고 알려 줍니다.

적벽 싸움을 앞둔 제47회에서 강동에 머물던 방통은 노숙을 통해 주유에게, 화공을 쓰려면 적의 배들을 한데 묶어 두게 하는 연환계를 바쳐야 한다고 일러 줍니다. 다시 건너온 장간이 서산 뒤 초가에서 병서를 읽던 방통을 만나 조조에게 데려가자, 방통은 조조의 진채를 칭찬한 뒤 북쪽 군사가 배에 익숙하지 않아 병이 나니 큰 배와 작은 배를 서른이나 쉰씩 한 줄로 짝지어 머리와 꼬리를 쇠고리로 잇고 널을 깔면 사람도 말도 다닐 수 있다고 권합니다. 조조는 그날 밤으로 대장장이를 불러 배를 묶게 합니다. 강가에서 서서에게 붙잡힌 방통은 제48회에서 그에게 몸을 빼낼 꾀를 일러 줍니다.

제57회에서 주유의 조문을 마친 제갈량을 강가에서 붙잡고 웃은 이도 방통이고, 제갈량은 손권이 그를 쓰지 않거든 형주로 오라는 글을 남깁니다. 노숙의 천거로 손권을 만나지만 짙은 눈썹에 들린 코, 검은 얼굴에 짧은 수염의 생김새와 주유와는 크게 다르다는 대답 때문에 쓰이지 못합니다. 형주의 유비도 그의 못난 생김새를 언짢아해 뇌양현령 자리를 주고, 방통은 백여 일 술만 마시다가 살피러 온 장비와 손건 앞에서 밀린 일을 반나절도 안 되어 다 처결합니다. 노숙과 제갈량의 글을 본 유비는 사죄하고 그를 부군사중랑장으로 삼습니다.

제60회에서 방통은 망설이는 유비에게 약한 것을 아우르고 어두운 것을 치며 거슬러 얻고 순리로 지키는 것이 탕왕 · 무왕의 길이라고 설득해 촉으로 들어가게 하고, 부에서 유장을 만난 뒤에는 벽 뒤에 칼과 도끼를 든 군사를 숨겨 두었다가 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그를 죽이자고 합니다. 제61회에서는 법정과 짜고 위연에게 칼춤을 추게 하지만 유비가 막습니다. 제62회에서 상 · 중 · 하 세 계책을 올려 양회 · 고패를 베고 부관을 얻으며, 잔치 자리에서 남의 나라를 치고 즐거워하는 것은 어진 이의 군사가 아니라고 했다가 군신이 모두 잘못했다고 받아 유비를 웃게 합니다.

제63회에서 방통은 흉한 별을 조심하라는 제갈량의 편지를 제 공을 시기한 것으로 여기고 낙성으로 나아갑니다. 타던 말이 앞발을 헛디뎌 그를 떨어뜨리자 유비는 자기가 타던 흰 말을 내주어 바꿔 타게 합니다. 샛길에 숨어 있던 장임의 군사는 흰 말을 탄 사람을 유비로 여기고, 좁은 골짜기에 이른 방통은 그곳 이름이 낙봉파라는 말을 듣고 제 호가 봉추이니 이롭지 않다며 물러나려 하지만 어지러운 화살에 맞아 서른여섯으로 죽습니다. 형주의 제갈량은 칠석 잔치에서 서쪽 하늘에 큰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통곡합니다. 연의에서 방통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8스무 살 무렵 사마휘를 찾아가 낮부터 밤까지 이야기하고 남주 선비의 으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2. 210주유가 죽자 그 상여를 모시고 오에 가서 육적 · 고소 · 전종과 사귀었습니다.
  3. 210뇌양현령으로 있다가 다스리지 않아 벼슬을 잃었으나 노숙과 제갈량의 말로 치중종사가 되었습니다.봉추
  4. 210유비가 제갈량 다음으로 가까이하여 제갈량과 나란히 군사중랑장으로 삼았습니다.와룡봉추
  5. 211유비를 따라 촉에 들어가 부에서 유장을 사로잡자고 권했으나 유비가 물리쳤습니다.
  6. 212가맹의 유비에게 세 계책을 올렸고, 유비는 중책을 따라 양회 · 고패를 베었습니다.
  7. 212부의 잔치에서 남의 나라를 치고 기뻐하는 것은 어진 이의 군사가 아니라고 간했습니다.
  8. 214낙성을 에워싸고 성을 치다 흐르는 화살에 맞아 서른여섯에 죽었습니다.
  9. 214유비가 관내후를 추증하고 그의 아버지를 의랑으로 삼으니 제갈량이 몸소 절했습니다.
  10. 260후주가 관우 · 장비 · 마초 · 황충과 함께 그에게 정후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이름 전하지 않음) · 숙부 방덕공 · 아우 방림 · 아들 방굉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봉추가 왔소.

말을 열며

봉추요. 얼굴로 사람을 재지 마시오.

되받으며

백 일 치 일을 반나절에 끝내는 사람이오.

말문이 막혀

…이 길이 아니었는가.

말문이 막혀

낙봉파라는 이름이 마음에 걸리오.

설전을 이기고

와룡과 봉추, 하나만 얻어도 천하라 하였소.

설전에 지고

…내 여기서 끝나는가.

이긴 뒤

봉추의 계책이오.

진 뒤

…언덕을 조심하라 하였건만.

쓰러지며

…봉이 떨어지는 언덕이었구나.

같은 기치 아래

관우제갈량조운장비위연장완서서왕평관색마속법정이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