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공기(公紀) · 188년 무렵 ~ 219년 무렵 · 양주 오군 오현 · 손견 휘하
6살에 어머니를 위해 귤을 품은 '회귤' 고사의 주인공이자 천재 학자
출전 · 『삼국지』 오서 육적전과 배송지 주의 사승 『후한서』 · 요신의 표 · 『후한서』 육강전 · 『삼국지』 오서 육손전 · 고소전 · 손파로토역전
육적은 자가 공기이며 오군 오현 사람입니다. 아버지 육강은 한나라 말에 여강태수를 지냈습니다. 『후한서』 육강전에 따르면 육강은 무릉 · 계양 · 낙안의 태수를 지내며 가는 곳마다 칭송을 받았고, 영제가 구리 사람을 지으려고 논밭에 세금을 매기자 이를 간하다 함거에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여강의 황양이 강하의 만이와 손잡고 일어나자 여강태수가 되어 깨뜨렸습니다. 수춘의 원술이 군량과 병기를 대라 하자 그를 역적으로 여겨 성문을 닫았는데, 원술은 손책을 보내 그를 쳤습니다. 육강은 두 해를 버티다 성이 떨어지고 한 달 남짓 뒤 일흔의 나이로 죽었으며, 일족 백여 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굶주림 속에 죽었습니다. 육적은 그의 막내아들입니다. 육손전은 육강의 종손인 육손이 육적보다 몇 살 위여서 그를 대신해 집안을 꾸렸다고 적습니다.
육적은 여섯 살 때 구강에서 원술을 만났습니다. 원술이 귤을 내오자 육적은 세 개를 품에 넣었다가, 떠나며 절을 할 때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원술이 「육랑은 손님으로 와서 귤을 품었는가」 하고 묻자 육적은 무릎을 꿇고 「돌아가 어머니께 드리고 싶었습니다」라고 답했고, 원술은 그를 크게 기특하게 여겼습니다. 『후한서』 육강전도 그가 어려서 원술을 찾아갔다가 품은 귤을 떨어뜨린 일로 이름이 났다고 적습니다.
손책이 오에 있을 때 장소 · 장굉 · 진송이 윗자리의 손님이 되어, 천하가 아직 평안하지 않으니 무력으로 다스려 평정해야 한다고 함께 논했습니다. 나이가 어려 끝자리에 앉아 있던 육적은 멀리서 큰 소리로, 관중은 제 환공을 도와 제후를 아홉 번 모으고 천하를 바로잡을 때 병거를 쓰지 않았고 공자는 「먼 데 사람이 따르지 않으면 문덕을 닦아 오게 하라」 했는데, 지금 논하는 이들은 도덕으로 품는 길을 힘쓰지 않고 무력만 높이니 어린 자신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장소 등은 그를 남다르게 여겼습니다.
자라서 그는 몸집이 크고 굳셌으며 두루 배워 아는 것이 많았고, 별자리와 역법과 셈을 다 꿰었습니다. 이름 높던 원로 우번과 형주의 이름난 선비 방통은 나이가 조금 많았으나 모두 그와 벗했습니다. 고소전은 고소가 젊어서 외삼촌 육적과 이름을 나란히 했고 육손 등이 그 다음이었다고 적습니다. 손권이 일을 맡자 주조연으로 불렸으나 곧은 길을 가다 꺼림을 받아 울림태수로 나가 편장군을 더하고 군사 2천을 받았습니다. 육적은 다리를 저는 병이 있었고 뜻이 선비의 길에 있어 이 일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군사의 일이 있는 가운데 저술을 그치지 않아 『혼천도』를 짓고 『역』에 주를 달고 『태현』을 풀었으며, 모두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그는 죽을 날을 미리 알고 「한나라의 뜻 있는 선비 오군 육적은 어려서 『시』와 『서』를 두텁게 익히고 자라서 『예』와 『역』을 즐겼는데, 명을 받아 남쪽으로 가서 병을 만났다」는 글을 짓고, 「지금부터 예순 해 뒤에는 수레의 바퀴 폭이 같아지고 글이 같아질 텐데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했습니다. 나이 서른둘에 죽었습니다. 맏아들 육굉은 회계 남부도위, 둘째 육예는 장수교위가 되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따르면 울림에서 낳은 딸 육울생은 열세 살에 장온의 아우 장백에게 시집갔는데, 석 달 만에 남편이 집안의 화로 귀양 가 죽자 다시 시집가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남편의 누이들을 보살폈으며, 요신은 표를 올려 그를 기려 달라고 청했습니다.
진수는 육적이 양웅의 『태현』에 대해서는 공자에게 좌구명, 노자에게 장주와 같다고 하고, 그런 큰 그릇을 남쪽 끝 고을의 태수로 보낸 것은 사람을 해친 일이 아니냐고 아쉬워했습니다.
陸績之於揚《玄》,是仲尼之左丘明,老聘之嚴周矣;以瑚璉之器,而作守南越,不亦賊夫人歟術謂曰:“陸郎作賓客而懷橘乎?”績跪答曰:"欲歸遺母。"『삼국연의』 제38회 · 제43회
연의에서 육적은 제38회에 손권이 강동에 널리 맞아들인 선비들 가운데 「오군의 육적, 자는 공기」로 이름이 처음 나옵니다. 제43회에서 제갈량이 손권과 손잡으러 강동에 오자 장소를 비롯한 선비들이 차례로 그를 따져 묻는데, 육적도 그 하나입니다. 육적은 조조가 천자를 끼고 제후를 부리지만 그래도 상국 조참의 후손이고, 유예주는 중산정왕의 후손이라 하나 상고할 길이 없어 그저 돗자리를 짜고 신을 팔던 사내일 뿐이라며 어찌 조조와 맞서겠느냐고 합니다. 제갈량은 웃으며 「공은 원술의 자리에서 귤을 품던 육랑이 아니오」라 하고, 조조가 조참의 후손이라면 대대로 한의 신하이면서 임금을 업신여기니 조상까지 욕보인 도적이라 받아칩니다. 또 유예주는 족보를 따라 황제가 벼슬을 내린 황실의 후손이고 한 고조도 정장에서 일어나 천하를 얻었으니 돗자리를 짜고 신을 판 것이 무슨 욕이냐며 「어린아이의 소견」이라 몰아붙이고, 육적은 말이 막힙니다. 연의에서 육적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육강 · 아들 육굉 · 육예 · 딸 육울생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품은 귤을 아시오?
여섯 살에 귤을 품던 사람이오.
효를 아는 자는 이치도 아는 법이오.
…어머니께 드릴 것이 남지 않았구려.
몸이 약한 것이 한이오.
근본을 아는 자가 이기는 법이오.
…아직 배움이 모자라오.
품은 뜻이 이겼소.
…품은 귤이 부끄럽구려.
품은 귤은… 어머니의 것이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