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문향(文嚮) · 미상 ~ 미상 (224년 이후) · 서주 낭야국 거현 · 손견 휘하
수백 리 가짜 성벽으로 위황제 조비를 기겁하게 만든 오의 철벽
출전 · 『삼국지』 오서 서성전과 배송지 주의 『위씨춘추』 · 장흠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오주전과 배송지 주의 간보 『진기』 · 반장전 · 하제전 · 육손전 · 여범전 · 위서 문제기
서성은 자가 문향이며 낭야국 거현 사람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오군에 와서 머물렀고, 용기로 이름이 났습니다. 건안 5년(200) 손권이 일을 맡자 그를 별부사마로 삼아 군사 5백을 주고 시상장으로 보내 황조를 막게 했습니다. 황조의 아들 황사가 수천 명을 이끌고 내려와 서성을 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서성의 아전과 군사는 2백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서성은 맞서 싸워 황사의 군사 천여 명을 다치게 하고, 이어 성문을 열고 나가 크게 깨뜨렸습니다. 황사는 그 뒤로 다시 쳐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손권은 그를 교위 · 무호령으로 삼았고, 임성 남쪽 아산의 산적을 친 공으로 중랑장이 되어 교병을 거느렸습니다.
무호령이던 때 서성은 선성에 주둔하던 장흠의 둔리를 붙잡아 베겠다고 표를 올렸으나, 손권은 장흠이 멀리 있다며 허락하지 않았고 서성은 이 일로 장흠을 꺼렸습니다. 뒤에 조조가 유수로 나와 장흠이 여몽과 함께 여러 군을 지휘하게 되자, 서성은 장흠이 일을 핑계로 자신을 해칠까 늘 두려워했으나 장흠은 오히려 늘 그의 좋은 점을 일컬었습니다. 서성이 그 덕에 감복하니 사람들이 이를 기렸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손권이 그 까닭을 묻자 장흠은 「서성은 충성스럽고 부지런하며 굳세고, 담력과 꾀와 그릇이 있어 만 명을 거느릴 만하다」며 사사로운 원한으로 어진 이를 가리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건안 20년(215) 합비 싸움에서는 장료가 갑자기 들이치자 진무가 싸우다 죽고 송겸과 서성의 군이 흩어져 달아났다고 반장전이 적고, 하제전은 성안에서 나와 싸울 때 서성이 다쳐 창을 잃자 하제가 군사를 이끌고 막아 그 창을 되찾았다고 적습니다. 조조가 유수로 나왔을 때 서성은 손권을 따라 막았습니다. 위군이 크게 횡강으로 나오자 장수들과 함께 나섰는데, 몽충을 타고 가다 거센 바람을 만나 배가 적의 기슭 아래로 밀려 닿았습니다. 장수들이 겁에 질려 아무도 나서지 못했으나 서성은 홀로 군사를 이끌고 올라가 적을 쳤고, 적은 흩어져 달아나며 죽거나 다친 이가 생겼습니다. 바람이 자자 돌아오니 손권이 그를 크게 장하게 여겼습니다.
손권이 위에 번국을 칭하자 위는 황초 2년(221) 태상 형정을 보내 손권을 오왕으로 봉했습니다. 손권이 도정으로 나가 형정을 기다렸는데 형정이 교만한 빛을 보이자, 장소가 노했고 서성은 분해 동료들을 돌아보며 「우리가 몸을 떨치고 목숨을 내어 나라를 위해 허와 낙양을 아우르고 파촉을 삼키지 못하고, 우리 임금이 형정과 맹약하게 하니 욕되지 않은가」 하고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이를 들은 형정은 일행에게 「강동의 장수와 재상이 이러하니 오래 남의 아래에 있을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뒤에 건무장군이 되어 도정후에 봉해지고 여강태수를 겸했으며 임성현을 봉읍으로 받았습니다. 황무 원년(222) 유비가 서릉에 머물자 서성은 촉의 여러 둔영을 쳐서 빼앗아 가는 곳마다 공을 세웠습니다. 육손전은 육손이 주연 · 반장 · 한당 등과 함께 거느린 5만 군의 장수로 그를 적고, 유비가 백제에 머문 뒤 서성이 반장 · 송겸 등과 다투어 표를 올려 유비를 사로잡을 수 있으니 다시 치게 해 달라고 청했다고 적습니다. 손권이 육손에게 묻자 육손 등은 조비가 군사를 크게 모으고 있다며 군을 돌려야 한다고 했고, 얼마 안 가 위군이 과연 나왔습니다. 그해 조휴가 동구로 나오자 서성은 여범 · 전종과 함께 강을 건너 막았는데, 큰 바람을 만나 배의 사람을 많이 잃었습니다. 서성은 남은 군사를 거두어 조휴와 강을 끼고 맞섰고, 조휴가 군사와 장수를 배로 보내 그를 치게 했으나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막아 내 적이 이기지 못하니 양쪽이 각기 군을 물렸습니다. 오주전은 전종 · 서성이 위의 장수 윤로를 쫓아가 베었다고 적습니다. 서성은 안동장군이 되고 무호후에 봉해졌습니다.
뒤에 위 문제가 크게 나와 강을 건널 뜻을 품자, 서성은 건업에서부터 울타리를 쌓고 그 위에 가짜 누각을 세우며 강 가운데에 배를 띄우자는 계책을 냈습니다. 장수들은 쓸모가 없다고 했으나 서성은 듣지 않고 굳이 세웠습니다. 광릉에 이른 문제는 울타리가 수백 리에 걸쳐 뻗은 것을 바라보고 놀랐고, 강물도 크게 불어나 있자 곧 군을 물렸습니다. 그제야 장수들이 서성에게 굴복했습니다. 오주전은 이 일을 황무 3년(224) 9월로 적고, 문제가 큰 강을 바라보며 「저쪽에 사람이 있으니 도모할 수 없다」 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간보의 『진기』는 오나라 사람들이 석두에서 강승까지 나무 기둥에 갈대 자리를 씌우고 채색으로 꾸민 의성을 하룻밤에 세웠다고 적고, 『위씨춘추』에 따르면 문제는 「위에 날랜 기병이 천 무리 있어도 쓸 데가 없구나」 하고 탄식했습니다.
서성은 황무 연간에 죽었고, 아들 서해가 작위를 잇고 군사를 거느렸습니다. 진수는 이 권에 함께 실린 장수들을 두고 「모두 강동의 범 같은 신하로 손씨가 두터이 대한 이들」이라 평했습니다.
凡此諸將,皆江表之虎臣,孫氏之所厚待也江東將相如此,非乆下人者也『삼국연의』 제38~96회
연의에서 서성은 제38회에 손권이 얻은 좋은 장수의 하나로 「낭야의 서성」이라 소개됩니다. 적벽 싸움을 앞둔 제49회에서 동남풍이 불자 주유는 제갈량을 없애려 서성과 정봉에게 각각 백 명을 주어 칠성단으로 보냅니다. 서성은 배로 물길을, 정봉은 뭍길을 맡아 뒤쫓지만, 배 꼬리에 선 조운이 화살로 서성의 배의 돛 줄을 끊어 돛이 떨어지고 배가 가로놓이는 바람에 놓치고 맙니다. 이어 주유의 좌우 호위로 적벽의 불싸움에 나서고, 제51회 남군 싸움에서는 화살에 맞은 주유를 정봉과 함께 목숨을 걸고 구합니다. 제55회에서는 주유의 명으로 정봉과 함께 길목에서 유비를 기다리지만, 손부인의 꾸짖음에 길을 열어 줍니다.
제68회 유수에서는 동습과 함께 큰 배를 이끌고 매복하다 조조의 다섯 갈래 군이 몰려오자 「임금의 녹을 먹으면 임금의 일에 충성해야 하니 무엇이 두려우냐」 하며 날랜 군사 수백과 작은 배로 강을 건너 이전의 군 속으로 뛰어들고, 에워싸인 그를 주태가 다시 뛰어들어 구해 냅니다. 제82회에서는 손권을 오왕으로 봉하러 온 형정의 수레 뒤에서 소리 내어 울며 위를 아우르고 촉을 삼키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형정은 「강동의 장수와 재상이 이러하니 끝내 오래 남의 아래 있을 이들이 아니다」라고 탄식합니다. 제83~84회 이릉에서는 정봉과 함께 육손의 호위가 되고, 오반이 관 앞에서 욕을 퍼붓자 나가 치겠다고 청하지만 적을 꾀어내는 계책이라는 육손에게 막힙니다. 불길이 오른 날에는 풍습과 맞붙고 달아나는 유비를 정봉과 함께 앞뒤로 에워싸지만 장포가 뛰어들어 유비를 구해 갑니다.
제86회에서 조비가 쳐들어오자 서성은 스스로 나서 안동장군이 되어 건업과 남서의 군을 거느립니다. 강을 건너 싸우자는 손소가 군령을 듣지 않자 끌어내 베라고 하지만 손권이 달려와 말리고, 그래도 몰래 강을 건넌 손소를 도우라고 정봉에게 계책을 주어 보냅니다. 서성은 갈대를 묶어 사람처럼 만들어 푸른 옷을 입히고 깃발을 들려 가짜 성과 누각 위에 세웠고, 안개가 걷히자 남서에서 석두성까지 수백 리에 성곽이 하룻밤 새 늘어선 것을 본 조비는 「위에 무사가 천 무리 있어도 쓸 데가 없다. 강남의 인물은 도모할 수 없다」고 탄식합니다. 조비는 사나운 바람과 조운의 출병 소식에 물러나다 손소 · 정봉에게 크게 지고, 연의는 이 공이 모두 서성에게 돌아갔다고 적습니다. 마지막인 제96회 석정 싸움에서는 육손의 선봉으로 위의 장보를 물리치고, 달아나는 조휴를 쫓다가 가규가 세운 깃발을 보고 매복을 의심해 돌아옵니다. 연의에서 서성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서해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오의 서문향이오.
서문향이오. 막는 일이라면 자신 있소.
허세라면 나도 쓸 줄 아오.
…벽이 흔들리는구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소.
수백 리 성벽으로 천자를 돌려보냈소.
…한 겹이 모자랐구려.
성벽 하나로 족했소.
…이번엔 속지 않는군.
성은 하룻밤이면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