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미상 · 미상 ~ 미상 (275년 이후) · 양주 오군 무진현 · 손견 휘하
손오의 멸망을 막기 위해 목숨 걸고 간언했던 강직한 역사가
출전 · 『삼국지』 오서 화핵전 · 위요전 · 누현전 · 설종전에 붙은 설영전 · 주소전 · 육개전에 붙은 육윤전 · 손호전
화핵은 자가 영선이며 오군 무진현 사람입니다. 처음에 상우현의 위와 농사를 맡은 도위를 지냈고, 글재주로 조정에 들어가 비부랑이 되었다가 중서승으로 옮겼습니다. 그가 뒤에 올린 글에 따르면 손권 말년에 태사령 정부와 낭중 항준이 오나라의 역사인 『오서』를 짓기 시작했으나 둘 다 사관의 재주가 아니었고, 손량 때 다시 위요 · 주소 · 설영 · 양광과 화핵까지 다섯을 뽑아 지난 일을 찾아 함께 짓게 했습니다. 위요전도 손량이 즉위하고 제갈각이 정사를 보필할 때 태사령 위요가 『오서』를 지었고 화핵 · 설영 등이 함께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는 위요의 본디 이름이 위소인데 진나라의 휘를 피해 고쳐 적었다고 말합니다.
손휴 때 주소가 죄를 얻어 옥에 갇히자 화핵은 글을 올려 구하려 했으나 손휴는 듣지 않았고 주소는 죽었습니다. 중서승이던 그는 교주에서 돌아온 육윤을 천거하며, 그가 은혜와 믿음으로 백성을 품어 떠돌던 이들이 돌아오고 바닷가가 맑아졌다고 했습니다. 영안 6년(263) 촉이 위에 아울러지자 그는 궁문에 나아가 표를 올려, 육항의 표가 이르러 성도가 지켜지지 못하고 임금과 신하가 떠돌며 사직이 무너졌다는 것을 들었다며, 옛날 위나라가 오랑캐에게 망했을 때 제 환공이 그를 살렸으나 지금은 길이 멀어 구할 수 없으니 기대어 오던 나라를 잃었다고 슬퍼했습니다.
손호가 즉위하자 그는 정후에 봉해졌습니다. 보정 2년(267) 손호가 새 궁을 크게 짓기 시작해 구슬과 옥으로 꾸미며 재물을 많이 들였는데, 마침 한여름에 공사를 일으켜 농사와 지킴이 다 버려졌습니다. 화핵은 긴 상소를 올려, 한 문제 때 모두가 태산처럼 편안하다 여길 때 가의만은 불을 안고 쌓인 섶 위에 누운 것과 같다고 했던 일을 들었습니다. 그는 지금 큰 적이 아홉 주의 땅과 태반의 무리를 차지했고, 서쪽의 울타리이던 촉이 무너져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형국이며, 교지 · 구진 두 군도 이미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궁 짓는 일을 멈추어 먼저 대비하고 개간에 힘써 굶주림을 막으라고 했으며, 『월령』을 들어 늦여름에는 흙일을 일으키지 않는 법이라 하고, 궁이 서는 사이 죽거나 달아나는 백성이 오천이면 북쪽 군사가 오만이 느는 셈이라고 했습니다. 손호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뒤에 그는 동관령이 되어 우국사를 겸했습니다. 사양하는 글을 올리자 손호는 그가 옛 책을 깊이 익히고 널리 보아 아는 것이 많다며 양웅 · 반고 · 장형 · 채옹의 무리를 넘도록 힘쓰라고 답했습니다. 창고가 비고 세상의 풍속이 사치해지자 그는 다시 글을 올려, 백성이 때를 맞춰 농사짓게 하고 여러 관청의 부역을 잠시 쉬게 하며, 쓸모없는 비단 수놓은 장식을 금하고 집마다 여자 하나가 한 해에 베 한 묶음씩 짜게 하면 몇 해 안에 베와 비단이 쌓일 것이라 했습니다. 손호전은 건형 3년(271) 정월 손호가 어머니와 비빈까지 이끌고 화리로 나가자 동관령 화핵 등이 굳게 다투어 돌아오게 했다고 적습니다.
그는 죄를 얻은 이들을 위해서도 여러 번 글을 올렸습니다. 함께 『오서』를 짓던 설영이 광주로 쫓겨나자, 사관의 일이 멈추어 있으니 자신은 설영 등의 기록이나 맡을 재주라며 그를 불러 책을 마치게 하자고 했고, 손호는 설영을 불러 좌국사로 삼았습니다. 위요가 옥에 갇혔을 때에는 거듭 글을 올려, 한 무제가 이릉을 감쌌던 사마천을 죽이지 않고 책을 마치게 한 것처럼 위요도 오나라의 사마천이니 죄를 한 등급 덜어 『오서』를 마치게 하자고 청했으나, 손호는 듣지 않고 위요를 죽였습니다. 광주로 보내진 누현을 풀어 재상의 자리에 쓰자고도 했고, 육개의 아들 육의를 거느리는 재주는 노숙도 그보다 낫지 않다며 요충인 하구를 맡기라고 천거했습니다.
손호는 화핵이 늙었다 하여 그에게 표의 초안을 쓰라고 했으나 그가 감히 하지 못하자, 다시 글을 짓게 하고 서서 기다렸습니다. 진수는 화핵이 앞뒤로 올린 형편에 맞는 계책과 어진 이의 천거, 죄를 풀어 달라는 청이 백여 통이었고 모두 보탬이 되었으나 글이 많아 다 싣지 못한다고 적었습니다. 천책 원년(275) 그는 작은 허물로 벼슬에서 물러났고 몇 해 뒤에 죽었으며, 그가 논한 일과 상소는 모두 세상에 전했습니다. 진수는 평에서 호충의 말을 옮겨 「화핵은 문장과 부를 짓는 재주가 위요보다 낫지만 조서와 고문 같은 글은 미치지 못한다」고 했고, 자신은 「화핵이 여러 번 좋은 계책을 올려 제 마음을 다하기를 바랐으니 충신에 가깝다」고 평했습니다.
予觀覈數獻良規,期於自盡,庶幾忠臣矣華覈文賦之才,有過於曜,而典誥不及也『삼국연의』 제119~120회
연의에서 화핵은 제119회에 처음 나옵니다. 촉이 망하자 오의 장수 정봉이 군사를 거두어 돌아오고, 중서승 화핵이 오주 손휴에게 「오와 촉은 입술과 이이니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립니다」 하며 사마소가 곧 오를 칠 것이니 깊이 대비하라고 아룁니다. 손휴는 그 말을 따라 육손의 아들 육항을 진동대장군 · 형주목으로 삼아 강구를 지키게 하고, 좌장군 손이에게 남서의 길목을 맡기며, 강을 따라 수백 영채를 세워 노장 정봉에게 거느리게 합니다.
제120회에서 손호가 크게 토목을 일으키고 점쟁이 상광에게 천하를 얻을 일을 묻자, 경자년에 푸른 덮개가 낙양에 들 것이라는 길한 점괘가 나옵니다. 크게 기뻐한 손호는 중서승 화핵에게 선제가 그대의 말을 들어 강가에 수백 영채를 세웠으니 이제 촉의 원수를 갚으려면 어디부터 칠지 묻습니다. 화핵은 성도가 무너졌으니 사마염이 반드시 오를 삼키려 할 것이라며, 덕을 닦아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이 상책이고 억지로 군사를 일으키면 삼을 걸치고 불을 끄다 제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고 간합니다. 손호는 크게 노해 옛 신하의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목을 베었을 것이라며 그를 쫓아내고, 화핵은 「아깝구나, 비단 같은 강산이 머지않아 남의 것이 되겠구나」 하고 탄식하며 숨어 살면서 나오지 않습니다. 연의에서 화핵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바른 기록을 남기겠소.
붓을 든 자로서 마지막까지 간하겠소.
듣기 싫은 말일수록 새겨들으시오.
…나라가 기우는 소리가 들리오.
그래도 쓰고 또 간하오.
역사는 바른말 편이오.
내 상소가 또 묻히는구려.
간언한 보람이 있소.
…간언이 또 닿지 않았구려.
간언은 끝내 닿지 않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