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계문(季文) · 미상 ~ 257년 · 양주 오군 오현 · 손견 휘하
동흥의 부교를 끊었으나 손침의 손에 죽은 오의 장수
출전 · 『삼국지』 오서 주환전과 배송지 주의 『문사전』 · 『오서』 · 오주전 · 손량전 · 손일전 · 제갈각전 · 손침전 · 주거전 · 위서 왕기전 · 제갈탄전 · 『진서』 문제기
주이는 자가 계문이며, 오군 오현 사람 주환의 아들입니다. 『삼국지』에는 따로 전이 없고 아버지 주환전 끝에 붙어 있습니다. 가화 6년(237) 여강으로 나갔던 주환이 군중에서 사람을 죽이고 미친 척하며 건업으로 가 병을 다스리게 되자, 손권은 주이에게 아버지의 부곡을 맡겼습니다. 적오 원년(238) 주환이 죽자 주이가 뒤를 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공으로 낭이 되었다가 기도위에 올라 아버지 대신 군사를 거느렸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문사전』은 어린 그가 장순 · 장엄과 함께 주거를 찾아갔다가 눈에 보이는 것을 글로 지으라는 말에 쇠뇌를 두고 「남악의 나무와 종산의 구리로 만들어, 때를 맞춰 쏘면 높은 담 위의 매를 잡는다」고 지어 주거를 크게 기쁘게 했다고 전합니다.
적오 4년(241) 주연을 따라 위의 번성을 칠 때 계책을 세워 바깥 에움을 깨뜨렸고, 돌아와 편장군이 되었습니다. 위의 여강태수 문흠이 육안에 머물며 길목마다 둔영을 세우고 달아나는 이들을 꾀어 들이자, 주이는 몸소 군사 2천을 이끌고 그 둔영 일곱을 덮쳐 깨뜨리고 수백 명의 목을 베어 양무장군이 되었습니다. 손권은 그와 싸움을 논해 보고 답이 마음에 들자, 주이의 종부인 표기장군 주거에게 「본디 계문이 담이 굳은 줄 알았는데, 만나 보니 들은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적오 13년(250) 문흠이 거짓으로 항복하겠다며 주이에게 몰래 편지를 보내 맞으러 오게 하려 했습니다. 주이는 그 편지를 올리며 거짓이니 맞아서는 안 된다고 아뢰었습니다. 손권은 속임이 걱정되면 그물을 쳐 두고 군사를 두텁게 하면 된다며 여거에게 2만을 주어 주이와 함께 나가게 했는데, 북쪽 경계에 이르자 문흠은 과연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태원 2년(252) 손권이 죽고 손량이 즉위했고, 주이는 진남장군이 되었습니다. 그해 12월 위의 호준 · 제갈탄 등이 동흥으로 나오자, 주이는 수군을 거느리고 부교를 쳐서 무너뜨렸고 위군은 크게 졌습니다. 이듬해 제갈각을 따라 신성을 에워쌌으나 성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갈각전은 주이가 옳고 그름을 따지자 제갈각이 노해 그 자리에서 군사를 빼앗았다고 하고, 『오서』는 주이가 제갈각이 타이르는 글을 땅에 던지며 「내 계책은 쓰지 않고 혜자의 말을 쓰는구나」 하자 군사를 빼앗고 건업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합니다.
오봉 2년(255) 안풍을 습격했으나 이기지 못했습니다. 태평 원년(256) 손준이 문흠 · 여거 · 당자 등과 함께 주이를 회수와 사수로 보냈으나, 손준이 죽고 사촌 아우 손침이 정권을 잡아 이들을 불러들였습니다.
태평 2년(257) 6월 주이는 호림에서 하구를 쳤고 하구독 손일은 위로 달아났습니다. 그 무렵 위의 제갈탄이 수춘을 들어 항복을 청했고 사마소가 대군으로 수춘을 에웠습니다. 주이는 절을 받고 대도독이 되어 포위를 풀러 나섰습니다. 손침전에 따르면 주이는 3만으로 안풍성에 머물다 위의 연주자사 주태에게 양연에서 져 2천을 잃었습니다. 손침이 다시 정봉 · 여비 등 5만을 붙이자 주이는 도륙에 짐을 두고 여장에 머물며 군사 6천을 시켜 밤에 부교를 놓아 건너가 보루를 쌓게 했으나 감군 석포와 주태에게 깨졌고, 수레를 둘러 오목성으로 나아갔다가 또 졌습니다. 그 사이 위의 태산태수 호열이 군사 5천으로 샛길을 돌아 도륙을 덮쳐 군량을 모두 태웠습니다. 『진서』 문제기는 남은 군사가 몹시 굶주려 칡잎을 먹으며 달아났다고 적습니다.
손침은 3만을 주며 죽기로 싸우라 했으나 주이가 따르지 않자, 9월 초하루 확리에서 그를 죽였습니다. 『오서』는 손침이 만나자고 하자 주이가 「자통은 집안사람인데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하며 갔다가 자리에서 붙잡혀 「나는 오나라의 충신인데 무슨 죄가 있는가」 하고 죽었다고 전합니다. 자통은 손침의 자입니다. 손침전은 그가 스스로 이름난 장수를 죽여 원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하고, 사마소는 주이가 수춘에 이르지 못한 것은 그의 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진수는 여거와 주이가 허물이 없었는데도 화를 입은 것은 만난 때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평했습니다.
呂據、朱異、施績咸有將領之才,克紹堂構異不得至壽春,非其罪也,而吳人殺之『삼국연의』 제111~112회
연의에서 주이는 제111회에 처음 나옵니다. 수춘의 제갈탄이 아들 제갈정을 볼모로 보내며 도움을 청하자, 손침은 전역 · 전단을 주장으로, 우전을 뒤를 받치는 장수로, 주이와 당자를 선봉으로, 문흠을 길잡이로 삼아 군사 7만을 세 갈래로 냅니다. 사마소가 위주 조모를 앞세워 26만으로 회남에 이르자 오의 선봉 주이가 나가 맞서지만, 위의 정선봉 왕기와 세 합도 싸우지 못하고 달아나고, 뒤이어 나선 당자도 세 합 만에 크게 져 오군은 50리를 물러나 진을 칩니다.
제112회에서 제갈탄은 주이를 왼쪽에, 문흠을 오른쪽에 두고 위의 진으로 몰려가는데, 종회의 꾀대로 위군이 소 · 말 · 노새를 들판에 풀어 두자 남쪽 군사가 그것을 다투어 줍다가 석포와 주태의 복병, 왕기 · 진건의 정병에게 크게 집니다. 안풍에 머문 손침은 주이를 불러 「수춘성 하나도 구하지 못하면서 어찌 중원을 삼키겠느냐, 또 이기지 못하면 반드시 베겠다」고 꾸짖습니다. 진영으로 돌아온 주이에게 우전이 남문으로 성에 들어가 함께 지키다가 안팎에서 치자고 하자 주이는 그 말을 따르고, 우전은 전역 · 전단 · 문흠 등과 1만으로 남문을 지나 성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사마소가 이를 꿰뚫어 보고 왕기와 진건에게 주이가 오는 길을 끊고 뒤에서 치게 하니 주이는 크게 집니다. 돌아온 주이에게 손침은 「거듭 진 장수를 어디에 쓰겠느냐」며 크게 노해 군사를 시켜 끌어내 베게 합니다. 연의에서 주이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며, 동흥과 신성 싸움의 주이는 연의에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주환 · 종부 주거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오나라 진남장군 주이요.
아버지의 군사를 이었소. 말로도 물러서지 않겠소.
들은 것보다 나은지는 겪어 보면 알 것이오.
…부교만 끊으면 되는 일이었소.
내 계책은 어디로 가고 남의 말만 쓰시오.
거짓은 편지 한 장에서 이미 드러났소.
군량이 다 탔소. 더는 버틸 수 없소.
부교는 끊었소. 저들은 물에 빠질 것이오.
칡잎을 씹으며 물러가오. 죄는 내게 없소.
나는 오나라의 충신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