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태陳泰

자 현백(玄伯) · 미상 ~ 260년 · 예주 영천군 허창현 · 사마의 휘하

진태 초상

강유의 북벌을 번번이 읽어내 옹주를 지켜낸 위나라의 눈

능력치

통솔84무력73지력86정치78매력77

카드

공격력 4체력 5비용 3값어치 11직군 모사
분전 비용 1
지정한 아군에게 공격력 +2 (이번 국면)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진군전에 붙은 진태전과 배송지 주의 『진기』 · 『위씨춘추』 · 배송지의 말 · 조상전 · 곽회전 · 삼소제기와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촉서 강유전 · 『진서』 문제기

진태는 자가 현백이며, 영천군 허창현 사람인 사공 진군의 아들입니다. 그의 일은 『삼국지』 진군전 뒤에 붙어 있습니다. 청룡 연간에 산기시랑이 되었고, 정시 연간에 병주자사가 되어 이민족을 달래니 위엄과 은혜가 있었습니다. 도읍의 귀인들이 보물을 맡기며 노비를 사 달라고 하자 그는 모두 벽에 걸어 두고 봉함을 뜯지 않았다가, 상서로 불려 갈 때 다 돌려주었습니다. 조상전에 따르면 가평 원년(249) 사마의가 군사를 일으켰을 때 상서 진태는 시중 허윤과 함께 조상에게 일찍 스스로 죄를 인정하라고 권했고, 조상은 두 사람을 사마의에게 보냈습니다.

가평 초에 곽회를 대신해 옹주자사가 되었습니다. 촉의 강유가 국산에 두 성을 쌓고 아문장 구안 등을 두어 여러 군을 핍박하자, 진태는 곽회에게 「국성은 굳으나 촉에서 멀고 험해 군량을 날라야 하니, 에워싸면 피를 흘리지 않고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곽회가 따르자 그는 서질 · 등애 등과 성을 에워싸 군량길과 성 밖의 물을 끊었고, 구안 등은 양식을 나누고 눈을 녹여 버텼습니다. 강유가 우두산으로 구하러 오자 진태는 「병법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며 싸우지 말게 하고, 곽회에게 우두산으로 가서 강유의 돌아갈 길을 끊자고 했습니다. 곽회가 조수로 나아가자 강유는 두려워 달아났고 고립된 구안 등은 모두 항복했습니다. 『한진춘추』에 따르면 가평 4년(252) 그가 병주와 힘을 합쳐 호족을 치자고 청했다가 안문과 신흥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사는 「현백의 허물이 아니라 나의 허물」이라 했습니다. 이듬해 강유가 남안을 에워쌌을 때는 진태가 낙문까지 구하러 오자 강유가 군량이 다해 물러났다고 강유전은 적습니다.

곽회가 죽자(255) 정서장군 · 도독옹량제군사가 되었습니다. 그해 옹주자사 왕경이 조수 서쪽에서 강유에게 크게 지고 적도성으로 쫓겨 들어가 에워싸였습니다. 등애 등은 이긴 적의 칼날을 피해 험한 곳을 지키며 틈을 보자고 했으나, 진태는 강유가 이긴 기세로 동쪽으로 나와 강족과 호족을 불러 관중을 다투는 것이 두렵고, 가벼운 군사로 멀리 와서 군량이 이어지지 않으니 지금이 빨리 나아가 칠 때라며 물리쳤습니다. 그는 고성령을 넘어 몰래 나아가 밤에 적도 동남쪽 높은 산에 올라 봉화를 많이 피우고 북과 뿔피리를 울렸고, 성 안의 장병들은 구원이 온 것을 보고 들끓었습니다. 강유가 산을 따라 달려들었으나 진태가 맞서 싸우자 물러갔고, 왕경과 함께 돌아갈 길을 치기로 했다는 말에 강유가 달아나 성 안의 장병이 풀려났습니다. 왕경은 「군량이 열흘도 못 갈 참이었으니 구원이 늦었다면 온 성이 도륙되었을 것」이라 탄식했습니다. 사마소는 「현백은 침착하고 용감하며 결단할 줄 안다. 무너지려는 성을 구하면서도 군사를 더 청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뒤 상서우복야로 불려 가 인재를 고르는 일을 맡았고, 오의 손준이 회수와 사수로 나오자 진군장군 · 도독회북제군사가 되었다가 돌아와 상서좌복야로 옮겼습니다. 감로 2년(257) 제갈탄이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행대의 일을 맡았습니다. 경원 원년(260) 죽어 사공으로 추증되고 시호를 목후라 했으며, 아들 진순이 잇고 진순이 죽자 아우 진온이 작위를 이었습니다. 배송지 주의 『진기』와 『위씨춘추』는 그해 고귀향공 조모가 시해되자 진태가 사마소에게 「가충을 베어야 조금이나마 천하에 사죄할 수 있다」고 했다고 적고, 『위씨춘추』는 그가 이어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덧붙입니다. 배송지는 손성이 진태의 말을 제 뜻대로 고쳤다고 꾸짖었습니다.

玄伯沈勇能断,荷方伯之重,救將陷之城,而不求益兵
현백은 침착하고 용감하며 결단할 줄 안다. 한 방면의 무거운 짐을 지고 무너지려는 성을 구하면서도 군사를 더 청하지 않았다『삼국지』 위서 진태전 · 사마소의 말
兵法贵在不戰而屈人。今绝牛头,维无反道,則我之禽也
병법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지금 우두산을 끊으면 강유는 돌아갈 길이 없으니 우리에게 사로잡힐 것이다『삼국지』 위서 진태전 · 국산에서 한 진태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07회 · 제109~111회 · 제114회

연의에서 진태는 제107회에 곽회의 부장으로 처음 나옵니다. 반기를 든 하후패를 곽회와 협공해 몰아내고, 강유가 국산에 두 성을 쌓자 군사 5만으로 에워싸 군량길을 끊습니다. 성을 빠져나간 이흠이 강유에게 구원을 청하리라 보고 강유가 우두산으로 돌아 뒤를 칠 것이라 내다보아, 곽회에게 조수를 차지해 군량길을 끊게 하고 자신은 우두산에서 강유를 막습니다. 제109회에서는 철롱산에 갇힌 사마소를 구하러 가며 거짓으로 강족의 왕 미당에게 항복해 그 군을 함정으로 이끌고, 미당을 사로잡게 합니다.

제110회에서 정서장군 진태는 조수에서 크게 진 왕경을 구하러 나서고, 등애가 적도 동남쪽 깊은 골짜기에 깃발과 북, 봉화를 숨겨 두자고 하자 「참으로 묘한 의논」이라며 따릅니다. 제111회에서는 등애가 강유가 반드시 다시 올 까닭 다섯을 들자 「내가 농서를 이삼십 년 지켰으나 이처럼 땅의 이치를 밝게 살핀 적이 없다」며 감탄해 그와 나이를 잊은 사귐을 맺고, 기산의 촉군 영채를 깨뜨린 뒤 물러가는 강유를 에워싸지만 장억이 뛰어들어 강유를 구해 냅니다.

마지막은 제114회입니다. 고귀향공 조모가 시해되자 상서복야 진태는 홀로 오지 않다가 외삼촌 순의의 부름에 상복을 입고 들어와 통곡하고, 어떻게 처리하겠느냐는 사마소의 물음에 「가충을 베어야 조금이나마 천하에 사죄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연의는 그의 죽음은 그리지 않습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49고평릉의 변 때 상서로서 조상에게 일찍 죄를 인정하라고 권했습니다.
  2. 249옹주자사가 되어 국산의 두 성을 에워싸 물을 끊고 구안 등을 항복시켰습니다.국산의 물길을 끊다
  3. 252병주와 힘을 합쳐 호족을 치자고 청했으나 안문과 신흥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4. 253남안을 에워싼 강유를 구하러 낙문까지 나아가 물러가게 했습니다.
  5. 255곽회의 뒤를 이어 정서장군 · 도독옹량제군사가 되었습니다.서쪽을 이어받다
  6. 255적도에 갇힌 왕경을 구하러 밤에 높은 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강유를 물리쳤습니다.
  7. 257제갈탄이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행대의 일을 맡았습니다.
  8. 260고귀향공이 시해된 해에 죽어 사공으로 추증되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할아버지 진기 · 아버지 진군 · 아들 진순 · 진온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옹주의 진태가 여기 있소.

말을 열며

서쪽 국경을 지켜 온 사람이오. 서두르지 않소.

되받으며

멀리서 온 말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오.

말문이 막혀

…적도의 밤에도 이렇게 버티었소.

말문이 막혀

길목을 끊으면 절로 물러가는 것을 보았소.

설전을 이기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으뜸이오.

설전에 지고

이번에는 내가 멀리서 온 쪽이었구려.

이긴 뒤

높은 곳을 잡으면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오.

진 뒤

길목을 내주었으니 할 말이 없소.

쓰러지며

이 나라의 기강이 먼저 무너졌소.

같은 기치 아래

사마의양호곽회사마사사마소왕준손례위관왕기왕창가충두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