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애鄧艾

자 사재(士載) · 미상 ~ 264년 · 형주 의양군 극양현 · 한 세력의 주인

등애 초상

음평의 샛길을 넘어 유선의 항복을 받았으나 모함 속에 죽은 위나라 장수

능력치

통솔94무력87지력89정치81매력70

카드

공격력 5체력 6비용 5값어치 15직군 모사
무쌍 비용 3
지정한 아군이 이번 국면 두 번 친다 · 되받는 반격을 2씩 덜 받는다 (행동 남은 아군만)
경보 비용 1
비밀 · 적이 책략을 쓸 때 · 그 책략을 무효로 한다 · 그 책략은 소모되지 않고 다시 쓸 때 값이 2 오른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등애전 · 종회전 · 관구검전 · 진태전 · 삼소제기와 배송지 주의 『세어』 · 『위씨춘추』 · 『한진춘추』 · 『원자』 · 촉서 강유전 · 후주전 · 제갈량전(제갈첨) · 『진서』 문제기 · 무제기 · 위관전 · 당빈전

등애는 자가 사재이며 의양군 극양현 사람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고, 조조가 형주를 깨뜨리자 여남으로 옮겨져 농민의 송아지를 길렀습니다. 말을 더듬어 문서를 맡는 관리가 되지 못하고 벼논의 풀을 지키는 관리가 되었습니다. 높은 산과 큰 못을 볼 때마다 군영을 세울 자리를 헤아려 그려 보이다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습니다. 뒤에 전농의 강기와 상계리가 되어 심부름으로 태위 사마의를 만났는데, 사마의가 그를 남다르게 여겨 속관으로 삼았고 뒤에 상서랑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 조정은 밭을 넓히고 곡식을 쌓으려고 등애에게 진 · 항에서 수춘까지를 살피게 했습니다. 등애는 물이 적으니 물길을 열어 논에 물을 대고 조운의 길도 트자며 『제하론』을 지었고, 회수 남북에 5만을 두어 농사지으며 지키게 하는 둔전을 두면 예닐곱 해 사이에 10만 무리의 다섯 해 양식을 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마의가 좋게 여겨 모두 시행했고, 정시 2년(241) 넓게 연 조운의 물길로 양식이 쌓이고 물난리가 없었으니 등애가 세운 것이었습니다.

남안태수로 있던 가평 원년(249) 곽회와 함께 촉의 강유를 막았는데, 강유가 물러가자 등애는 적이 다시 올 수 있다며 백수 북쪽에 남았습니다. 사흘 뒤 강유가 요화를 백수 남쪽에 진 치게 하자, 요화가 건널 다리도 놓지 않는 것은 자기를 붙들어 두고 동쪽의 조성을 치려는 것이라 헤아려 밤에 조성을 먼저 차지했고, 과연 물을 건너온 강유를 막아 관내후가 되었습니다. 성양 · 여남태수로서 거친 들을 열었고, 오의 제갈각이 합비 신성을 치다 만을 헤아리는 군사를 잃고 돌아가자 곧 죄를 얻으리라 했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어 연주자사가 되었습니다.

정원 2년(255) 관구검이 난을 일으켜 사자를 보내 무리를 흔들려 하자 등애는 그 사자를 베고 낙가성으로 먼저 가서 부교를 놓았고, 대군에게 깨진 문흠을 구두까지 쫓아 오로 달아나게 했습니다. 그해 강유에게 크게 져 적도에 에워싸인 옹주자사 왕경을 구하러 나섰고, 안서장군이 되었습니다. 조정의 의논은 강유의 힘이 다했다고 보았으나, 등애는 저들이 이긴 기세를 탔고 배로 오며 한곳으로 몰려오는 데다 기산의 보리가 저들을 부른다는 등 다섯 까닭을 들어 반드시 다시 오리라 했습니다. 과연 기산으로 왔다가 대비를 보고 돌아선 강유가 밤에 위수를 건너 상규로 향하자 등애는 단곡에서 그를 크게 깨뜨렸습니다. 감로 원년(256) 진서장군 · 도독농우제군사가 되어 등후에 봉해졌고 아들 등충도 정후가 되었습니다. 이듬해 장성에서 강유를 막아 정서장군이 되었고, 경원 3년(262) 후화에서 또 강유를 깨뜨려 답중으로 물러나게 했습니다.

경원 4년(263) 사마소가 촉을 치려 하자, 『진서』 문제기에 따르면 등애는 아직 틈이 없다며 여러 번 반대하다가 사찬이 그의 사마로 와서 달랜 뒤에야 명을 받들었습니다. 답중의 강유를 붙들던 그는 강유가 검각으로 물러나 종회를 막자, 음평에서 샛길로 덕양정을 지나 부로 나가 성도에서 삼백여 리 떨어진 곳에서 적의 배와 가슴을 찌르자고 했습니다. 겨울 10월 그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 칠백여 리를 산을 뚫어 길을 내고 다리와 잔도를 놓으며 나아갔고, 스스로 모포로 몸을 감싸고 굴러 내려갔으며 장병들은 나무를 붙잡고 벼랑을 따라 한 줄로 나아갔습니다. 강유(사람 강유와 소리만 같은 촉의 고을입니다)에 이르자 촉의 수장 마막이 항복했습니다. 제갈첨이 면죽에 진을 치자 등애는 아들 등충 등을 오른쪽으로, 사마 사찬 등을 왼쪽으로 내보냈는데, 두 사람이 불리해 물러와 적을 칠 수 없다고 하자 「살고 죽는 갈림이 이 한 번에 달렸다」며 꾸짖고 베려 했습니다. 두 사람은 되돌아가 크게 이겨 제갈첨과 상서 장준 등을 베었고, 등애가 낙현에 이르자 유선이 옥새를 보내 항복을 청했습니다.

성도에 이르자 유선이 태자 · 여러 왕과 신하 예순여 명을 이끌고 스스로 몸을 묶고 관을 수레에 실어 군문에 나아왔고, 등애는 부절을 잡고 묶은 것을 풀고 관을 불살라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노략질을 막아 촉 사람들이 그를 기렸으나, 그는 천자의 명을 받든 것처럼 유선에게 표기장군의 일을 맡기고 촉의 신하들에게 벼슬을 내렸고, 촉의 사대부들에게 「그대들은 나를 만났기에 오늘이 있다」고 뽐내 식자들의 비웃음을 샀습니다. 12월 조서는 그를 태위로 삼고 식읍 2만 호를 더했습니다. 사마소가 일은 아뢰어 기다려야 한다고 이르자, 등애는 나라 밖의 대부는 사직에 이로운 일이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춘추』의 뜻을 들어 거듭 글을 올렸습니다.

종회 · 호열 · 사찬 등이 등애가 거스르는 짓을 한다고 아뢰었고, 종회전은 딴마음을 품은 종회가 그의 전횡을 빌미로 반역의 낌새가 있다고 몰래 아뢰었다고 적습니다. 이듬해(264) 정월 조서가 함거로 그를 불러들였고, 『진서』 위관전에 따르면 감군 위관이 새벽에 전각에 들이닥쳐 아직 일어나지 않은 등애 부자를 잡았습니다. 성도에 온 종회는 먼저 등애를 보내고 난을 일으켰는데, 종회가 죽자 등애 본영의 장병들이 함거를 뒤쫓아 그를 빼내 돌아왔고 위관은 전속 등을 보내 면죽 서쪽에서 그를 베었습니다. 아들 등충도 함께 죽었고 낙양의 다른 아들들도 죽임을 당했으며 아내와 손자는 서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까닭을 『삼국지』 본문은 적지 않으나,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는 강유로 내려갈 때 나아가지 않아 목을 베일 뻔한 전속에게 위관이 그때의 치욕을 갚으라 했다고 전하고, 『진서』 위관전은 위관이 종회와 함께 등애를 모함한 일로 변이 날까 두려워했다고 적습니다.

진이 선 태시 원년(265) 조서는 그가 공을 뽐내다 절개를 잃었으나 손을 묶고 벌을 받았다며 뒤를 세우게 했습니다. 태시 3년(267) 의랑 단작은 「일흔 늙은이가 반역해서 무엇을 바라겠는가」라며 종회가 그의 위명을 꺼려 일을 꾸몄다는 상소를 올렸고, 태시 9년(273) 조서는 적손 등랑을 낭중으로 삼았습니다. 『진서』 당빈전은 그가 재주를 뽐내고 아랫사람을 욕보여 인심을 잃었다는 보고를 싣습니다. 진수는 등애가 굳세고 씩씩해 공을 세웠으나 화를 막는 데 어두웠고, 멀리 제갈각의 앞날은 알면서 제 몸은 보지 못했다고 평했습니다.

鄧艾矯然強壯,立功立事,然闇於防患,咎敗旋至,豈遠知乎諸葛恪而不能近自見,此蓋古人所謂目論者也
등애는 굳세고 씩씩해 공과 일을 세웠으나 화를 막는 데 어두워 곧 패망했다. 멀리 제갈각은 내다보고 제 몸은 못 보았으니 옛사람이 말한 눈의 논리다『삼국지』 위서 왕관구제갈등종전 평
艾心懷至忠而荷反逆之名,平定巴蜀而受夷滅之誅,臣竊悼之
등애는 지극한 충성을 품었으나 반역의 이름을 뒤집어썼고, 파촉을 평정하고도 멸족의 벌을 받았으니 신은 가만히 슬퍼합니다『삼국지』 위서 등애전에 실린 단작의 상소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07회 · 제110~119회

연의에서 등애는 제107회에 위에서 넘어온 하후패가 강유에게 일러 주는 위의 두 젊은이 가운데 하나로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높은 산과 큰 못을 보면 군사를 둘 곳과 양식을 쌓을 곳을 헤아려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으나 사마의만 그 재주를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말을 더듬어 아뢸 때마다 「애, 애」 하자 사마의가 애가 몇이냐고 놀리니 「봉이여 봉이여 해도 봉은 하나」라고 받아넘겼다는 이야기도 붙습니다.

제110회에서 그는 연주자사로 낙가성에 나와 문앙과 오십 합을 싸우고, 관구검의 선봉 갈옹을 한 칼에 벱니다. 이어 적도를 구하러 가서 진태와 함께 깊은 골짜기 스무 곳에 북과 봉화를 숨겨 두고 한꺼번에 울려 강유를 물러가게 합니다. 제111회에서는 안서장군이 되어 강유가 다시 올 까닭 다섯을 들어 진태를 감탄시키고, 기산에 아홉 영채를 세워 강유에게서 스승 제갈 승상에 못지않다는 감탄을 들으며, 아들 등충과 사찬을 단곡에 숨겨 강유를 크게 깨뜨립니다. 제113회에서는 땅굴을 파서 촉의 영채를 치지만, 강유와 팔진을 겨루다 장사권지진에 갇혀 사마망에게 구출됩니다. 싸움으로 이기지 못하자 당균을 성도로 보내 황호에게 금과 구슬을 안기고 강유를 불러들이게 합니다. 제114회에서는 왕관의 거짓 항복 꾀가 강유에게 거꾸로 이용되어 갑옷을 버리고 보졸 틈에 섞여 달아나고, 제115회에서는 조양의 빈 성 꾀로 하후패를 화살에 죽게 한 뒤 정서장군이 되어 촉을 치게 됩니다.

제116회에서 그는 산에 올라 발밑에서 샘이 솟는 꿈을 꾸고, 호위 소완이 『역』의 건괘로 풀어 촉은 이기겠으나 돌아오지 못하리라 하자 서운해합니다. 제117회에서는 종회를 찾아가 음평 샛길로 성도를 치자는 꾀를 내놓았다가, 그가 자기를 얕보는 것을 알고 「그가 내가 성도를 못 얻으리라 여기니 기어이 얻겠다」며 떠납니다. 아들 등충에게 갑옷을 입지 않은 정병 오천을 주어 산을 뚫고 다리를 놓게 하고, 삼만을 이끌고 가며 곳곳에 영채를 남겨 칠백여 리를 가니 남은 군사는 이천뿐입니다. 마천령에서 길이 끊겨 모두 울자 「범의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범의 새끼를 얻겠느냐」며 모포로 몸을 감싸 맨 먼저 굴러 내려가고, 고개를 넘어서는 두 선비가 다투다 오래지 않아 스스로 죽으리라는 제갈량의 비석을 보고 두 번 절합니다. 강유성의 마막이 항복하고 그 아내가 목을 매자 후히 장사 지내 주고, 쉬어 가자는 전속을 베려다 장수들의 만류로 놓아줍니다. 면죽에서는 제갈첨에게 낭야왕으로 올려 주겠다는 글을 보냈다가 사자를 잃고, 복병으로 그를 끌어내 무너뜨린 뒤 제갈첨 부자를 함께 장사 지냅니다.

제118회에서 유선이 성도 북문 밖 십 리에서 스스로 몸을 묶고 관을 수레에 싣고 나와 항복하자 부축해 일으키고 묶은 것을 풀어 줍니다. 황호를 베려다 뇌물을 받은 좌우의 말로 놓아주고, 잔치에서 촉의 관리들에게 자기를 만났기에 오늘이 있다고 뽐내며, 사마소에게 올린 글로 제멋대로 하려 한다는 의심을 삽니다. 제119회에서는 새벽에 들이닥친 위관에게 침상에서 굴러떨어지며 잡히고, 종회에게 「송아지나 기르던 놈」이라는 욕과 함께 채찍으로 머리를 맞습니다. 종회와 강유가 죽은 뒤 부하들이 함거에서 풀어 주어 성도로 돌아가던 길에, 면죽에서 제 편 군사인 줄 알고 맞이하다가 강유성의 원한을 갚으러 온 전속의 칼에 죽습니다. 연의는 그를 기리는 시를 붙여 공을 이루었으나 몸은 해를 입었다고 적습니다. 연의에서 등애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08조조가 형주를 깨뜨리자 여남으로 옮겨져 농민의 송아지를 길렀습니다.
  2. 241그가 세운 계책대로 정시 2년 조운의 물길을 넓게 열어 회수 가에 군량을 쌓았습니다.
  3. 249백수에서 강유의 속셈을 읽고 밤에 조성을 먼저 차지해 관내후가 되었습니다.국산의 물길을 끊다
  4. 253제갈각의 몰락을 내다보았고, 연주자사 · 진위장군이 되었습니다.
  5. 255관구검의 사자를 베고 낙가성에 부교를 놓았으며 문흠을 구두까지 쫓았습니다.
  6. 255강유가 반드시 다시 오리라며 다섯 까닭을 들었고, 안서장군 · 영호동강교위가 되었습니다.서로를 가장 잘 안 둘
  7. 256단곡에서 강유를 크게 깨뜨려 진서장군 · 등후가 되었고 아들 등충도 정후가 되었습니다.
  8. 257장성에서 강유를 막아 물러가게 하고 정서장군이 되었습니다.
  9. 262후화에서 강유를 깨뜨려 답중으로 물러나게 했습니다.
  10. 263촉 정벌에 여러 번 다른 의견을 올렸다가 사찬의 설득으로 명을 받들었습니다.
  11. 263음평의 샛길 칠백여 리를 넘어 면죽에서 제갈첨을 베었습니다.등씨 부자
  12. 263유선의 항복을 받았고, 12월 태위가 되어 식읍 2만 호를 더했습니다.
  13. 264함거에 갇혔다가 종회가 죽은 뒤 위관이 보낸 전속에게 아들 등충과 함께 죽었습니다.종회의 난
  14. 265진의 조서가 그를 살려고 나쁜 짓을 한 이와 다르다며 뒤를 세우게 했습니다.
  15. 267의랑 단작이 그가 반역하지 않았다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16. 273진 무제가 그의 적손 등랑을 낭중으로 삼았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등충 · 낙양에 있던 다른 아들들 · 아내 · 적손 등랑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벼랑도 넘었다. 이쯤이야.

말을 열며

애… 애가 한마디 하겠소.

되받으며

말은 더뎌도 셈은 빠르오.

말문이 막혀

…음평 길보다 험하구려.

말문이 막혀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소.

설전을 이기고

음평의 벼랑도 넘었소. 이쯤이야.

설전에 지고

…공을 세우고도 이런 꼴이구려.

이긴 뒤

길 없는 곳으로 갔다.

진 뒤

…길을 잘못 골랐군.

쓰러지며

성도를 넘고도 모함에 지는가.

같은 기치 아래

등충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