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사계(士季) · 225년 ~ 264년 · 예주 영천군 장사현 · 한 세력의 주인
뛰어난 두뇌로 촉나라를 정벌했으나 야망에 눈이 멀어 자멸한 천재
출전 · 『삼국지』 위서 종회전과 배송지 주의 종회가 지은 어머니의 전기 · 『세어』 · 『위씨춘추』 · 『한진춘추』 · 위서 부하전 · 왕찬전에 붙은 혜강 · 등애전 · 촉서 강유전과 배송지 주의 『화양국지』 · 간보 『진기』 · 『진서』 문제기
종회는 자가 사계이며 영천군 장사현 사람으로, 태부 종요의 막내아들입니다. 배송지 주에 실린, 종회가 손수 지은 어머니의 전기에 따르면 어머니 장씨는 황초 6년(225)에 그를 낳아 네 살부터 경전을 차례로 가르쳤습니다. 종회는 어려서 영리하고 일찍 여물어, 눈동자를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 중호군 장제가 다섯 살의 그를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 했습니다. 자라서는 재주가 많고 명리에 정밀해 밤낮으로 공부하여 이름을 얻었고, 산양의 왕필과 나란히 알려졌습니다.
정시 연간 비서랑이 되어 상서중서시랑으로 옮겼고, 정원 원년(254) 고귀향공이 즉위하자 관내후가 되었습니다. 이듬해 관구검이 난을 일으키자 사마사를 따라가 은밀한 일을 맡았고, 사마사가 허창에서 죽자 조정은 사마소를 허창에 머물게 하려 했으나 종회는 부하와 꾀해 사마소가 군을 이끌고 낙수 남쪽까지 돌아오게 했습니다. 사마소가 대장군으로 정사를 돕게 되자 종회는 황문시랑 · 동무정후가 되었는데, 『삼국지』 부하전은 뽐내는 빛이 있는 그에게 부하가 「그대는 뜻이 그릇보다 크니 공업을 이루기 어렵다.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일렀다고 적습니다.
감로 2년(257) 어머니의 상중이던 종회는 조정이 제갈탄을 사공으로 부르자 그가 따르지 않으리라 보고 사마소에게 달려가 알렸으나 이미 시행된 뒤였습니다. 제갈탄이 일어나자 다시 사마소를 따라 수춘으로 갔고, 제갈탄을 구하러 들어온 오의 전역 등이 성안에 있을 때 전역의 조카 전휘 · 전의가 집안싸움 끝에 건업에서 넘어오자 두 사람의 이름으로 편지를 꾸며 오가 장수들의 집안을 모두 죽이려 한다고 알렸습니다. 두려워진 전역 등이 동쪽 성문을 열고 항복하자 성안의 마음이 흩어졌습니다. 수춘을 깨뜨리는 데 그의 꾀가 많이 쓰여 그때 사람들은 그를 장량에 견주었고, 그는 진후의 봉작도 굳이 사양하고 대장군부에서 기록을 맡는 심복이 되었습니다. 사예교위가 되어서는 조정 밖에 있으면서도 그때의 정사를 두루 맡았고, 혜강 등이 죽임을 당한 것도 모두 그의 꾀였습니다. 배송지 주의 『위씨춘추』는 그가 이름난 혜강을 찾아갔을 때 혜강이 쇠를 두드리며 예로 대하지 않자 깊이 앙심을 품었다가 사마소에게 그를 없애라고 권했다고 전합니다.
강유가 자꾸 변경을 어지럽히자 사마소는 촉을 치려 했는데, 조정에서 종회만 촉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아 둘이 함께 지형과 형세를 헤아렸습니다. 경원 3년(262) 겨울 진서장군 · 도독관중제군사가 되었고, 사마소는 여러 주에 배를 짓게 해 오를 치는 척했습니다. 경원 4년(263) 가을 종회는 10만여 명을 거느리고 사곡과 낙곡으로 나누어 들어갔는데, 앞에서 길을 닦던 허저의 아들 허의가 다리의 구멍에 종회의 말발굽이 빠지게 하자 그를 베어 군을 떨게 했습니다. 한성과 낙성을 에워싸게 두고 곧장 양안 어귀로 나아가며 사람을 보내 제갈량의 무덤에 제사 지내게 했고, 호열 등이 관성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강유가 검각을 지켜 뚫지 못했고, 그 사이 옹주자사 제갈서를 겁이 많아 나아가지 않는다고 몰래 아뢰어 함거로 불러 가게 하고 그 군을 거두었습니다. 강유전은 그가 양식을 나르는 길이 멀어 돌아갈 일을 의논하려 했다고 적습니다.
등애가 음평으로 들어가 면죽에서 제갈첨을 베고 유선의 항복을 받자, 칙서를 받은 강유가 부현의 종회에게 와서 항복했습니다. 간보의 『진기』는 종회가 「어찌 이리 늦었소」 하자 강유가 눈물을 흘리며 「오늘 여기 온 것도 빠르다」고 해 종회가 그를 남다르게 여겼다고 전합니다. 종회는 강유와 나갈 때 수레를 함께 타고 앉을 때 자리를 나란히 하며, 장사 두예에게 중원의 명사 제갈탄 · 하후현도 그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12월 조서로 사도가 되어 현후로 올랐습니다.
그러나 딴마음을 품은 종회는 등애가 조정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일을 처리한 것을 빌미로 반역의 낌새가 있다고 몰래 아뢰었고, 『세어』는 그가 남의 글씨를 잘 흉내 내어 등애의 표문을 오만한 말로 고쳐 썼다고 전합니다. 등애가 함거에 실려 가자 대군을 홀로 쥔 그는 제 공이 세상을 덮어 다시 남의 아래에 있을 수 없다며, 강유에게 촉병을 주어 앞세우고 사곡으로 나가 낙양을 칠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마소가 스스로 10만을 이끌고 장안에 머문다는 편지를 보내오자 그는 「일이 이루어지면 천하를 얻고, 이루지 못해도 촉한으로 물러나 지키면 유비 노릇은 할 수 있다」며 서둘렀습니다. 경원 5년(264) 정월 15일 성도에 이른 그는 이튿날 곽태후의 상을 핑계로 장수와 촉의 옛 관리들을 모아 사마소를 폐하라는 태후의 거짓 유조를 보이고 모두 관청 건물에 가두었습니다.
갇힌 호열이 종회가 큰 구덩이를 파고 몽둥이로 모두 때려 묻으려 한다는 말을 퍼뜨리자 하룻밤 새 온 군에 퍼졌습니다. 18일 한낮 호열의 군사와 그 아들이 북을 치며 나오자 여러 군이 따라 성으로 몰려들었고, 강유가 종회 곁의 군사를 이끌고 싸워 손수 대여섯을 죽였으나 베였으며, 군사들이 다투어 종회를 죽이니 나이 마흔이었습니다. 『진서』 문제기는 위관과 호열이 종회를 쳐서 베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는 강유가 촉을 되찾으려고 그를 부추겼다 하고, 『화양국지』는 강유가 북에서 온 장수들을 죽이게 한 뒤 그마저 죽이고 촉을 되살리려 했다고 전합니다. 조카 종옹도 함께 죽었고 기르던 조카 종의도 죽임을 당했으나, 종요 · 종육의 공을 생각한 사마소의 표로 종준 · 종천은 용서받았습니다. 앞서 사마소는 종회를 걱정하는 소제에게, 촉이 망하면 장병은 돌아가기를 생각하니 그가 딴마음을 품어도 이룰 수 없다고 했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가 죽은 뒤 집에서 『도론』 스무 편이 나왔는데 실은 형명가의 글이었습니다. 진수는 왕릉 · 관구검 · 제갈탄과 함께 그를 두고, 계책에 정밀하고 익숙해 이름을 날리고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마음은 크고 뜻은 엇나가 화를 헤아리지 않다가 쇠뇌가 튀듯 변을 일으켜 일족을 망쳤다고 평했습니다.
鍾會精練策數,咸以顯名,致茲榮任,而皆心大志迂,不慮禍難,變如發機,宗族塗地,豈不謬惑邪事成,可得天下;不成,退保蜀漢,不失作劉備也『삼국연의』 제107회 · 제110회 · 제112회 · 제115~119회
연의에서 종회는 제107회에 위에서 넘어온 하후패가 강유에게 일러 주는 위의 두 젊은이 가운데 하나로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태부 종요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담력과 지혜가 있었고, 일곱 살 때 여덟 살인 형 종육과 함께 문제(조비)를 뵈었는데 땀을 흘리는 형과 달리 「두려워 떨려 땀이 감히 나지 못합니다」라고 답해 문제가 기이하게 여겼다고 하며, 자라서는 병서를 즐겨 읽어 사마의와 장제가 그 재주를 칭찬했다고 합니다.
제110회에서는 중서시랑으로 눈의 혹을 째고 누운 사마사에게 관구검을 몸소 치러 가야 한다고 권하고, 사마사가 죽자 허창에 머물라는 조서를 두고 망설이는 사마소에게 낙수 남쪽으로 돌아가라고 권해 대장군이 되게 합니다. 제112회 수춘 싸움에서는 오의 군사를 재물로 꾀어 깨뜨리고 남문을 열어 두고 치자는 꾀를 내어 사마소에게서 「그대는 참으로 나의 자방이오」라는 말을 듣고, 넘어온 문앙 형제를 살리자고 간하며 오의 항병을 묻어 죽이지 말고 돌려보내자고 합니다.
제115회에서 사마소가 오를 치러 가겠느냐고 떠보자 본뜻이 촉에 있음을 알아채고 미리 그려 둔 촉의 지도를 바치며, 진서장군이 되어서는 배를 지어 오를 치는 척하는 꾀를 냅니다. 제116회에서는 다리를 제대로 고치지 않아 자기 말굽이 빠지게 한 선봉 허의를 베어 군을 떨게 하고, 양평관을 얻은 뒤 정군산에서 음병을 만나자 제갈량의 무덤에 제사를 지냅니다. 그날 밤 꿈에 나타난 제갈량이 백성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하자 「보국안민」이라 쓴 흰 깃발을 세웁니다. 제117회에서는 교두를 잃은 제갈서를 베려다 위관의 만류로 함거에 실어 낙양에 보내고, 찾아온 등애가 음평 샛길로 성도를 치자는 꾀를 내놓자 겉으로는 칭찬하고 뒤에서는 용렬한 재주라 비웃으며 검각만 칩니다.
제118회에서 강유가 항복해 오자 「어찌 이리 늦었소」 하고, 나라의 온 군사가 자기에게 있었으니 오늘 온 것도 빠르다는 대답에 감탄해 화살을 꺾어 형제를 맺습니다. 사도가 된 뒤 강유의 말을 따라 등애의 반역을 아뢰고, 등애의 표문을 가로채 그 글씨를 흉내 내어 오만한 말로 고쳐 씁니다. 제119회에서는 강유의 꾀대로 위관을 보내 등애 부자를 잡게 하고, 묶인 등애의 머리를 채찍으로 치며 「송아지나 기르던 놈」이라 꾸짖습니다. 한신과 문종의 일을 들어 물러나기를 권하는 강유에게는 자기 나이가 아직 마흔이 안 되었다며 웃고, 사마소가 장안에 머문다는 편지를 받자 이루면 천하를 얻고 못 이루어도 서촉으로 물러나 유비 노릇은 한다며 곽태후의 거짓 유조를 꾸밉니다. 정월 대보름 잔치에서 칼을 뽑아 장수들의 서명을 받고 가둔 뒤 따르지 않는 이들을 구덩이에 묻으려 하다가, 큰 뱀 수천 마리에 물리는 꿈을 꿉니다. 호연의 군이 궁으로 밀려들자 칼을 뽑아 몇을 베지만 어지러이 쏟아지는 화살에 쓰러지고 목이 베입니다. 연의는 그를 두고 어려서 영리해 당시 자방이라 불렸으나 도주공처럼 물러나 숨지 않아 넋이 고향을 그리며 슬퍼한다는 시를 붙입니다. 연의에서 종회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종요 · 어머니 장창포 · 형 종육 · 조카 종옹 · 종준 · 종천 · 기르던 조카 종의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이 재주를 보아라.
재주로 겨루자는 것이오? 좋소.
그대의 말을 어디에 쓸지 헤아리며 듣겠소.
…뜻대로 되지 않는군.
이만한 판이 아니었는데.
천하는 재주 있는 자의 것이오.
…내 욕심이 과했는가.
셈대로 되었소.
…재주가 나를 배신하는군.
…내 재주가 나를 죽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