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원개(元凱) · 222년 ~ 285년 · 사례 경조윤 두릉현 · 사마의 휘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로 형주를 평정하고 좌전에 주를 단 진의 장수
출전 · 『진서』 두예전과 사신의 평 · 무제기 · 양호전 · 왕준전 · 『삼국지』 위서 두기전과 배송지 주
두예는 자가 원개이며 경조윤 두릉현 사람입니다. 할아버지 두기는 위의 상서복야, 아버지 두서는 유주자사를 지냈습니다. 그는 널리 배워 두루 통했고 흥하고 망하는 이치에 밝았으며, 늘 「덕은 바라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공을 세우고 말을 남기는 일은 거의 바랄 만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두서가 선제 사마의와 사이가 나빠 갇혀 지내다 죽었기에 그는 오래 벼슬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삼국지』 두기전은 두서가 가평 원년(249) 탄핵을 받아 서인이 되어 장무군으로 옮겨졌다고 적고, 감로 2년(257) 하동의 악상이 두기의 공적을 아뢰자 두서의 아들 두예를 풍락정후에 봉했다고 적습니다. 『진서』는 문제 사마소가 뒤를 잇자 두예가 그의 누이 고륙공주와 혼인하고 상서랑으로 벼슬을 시작했다고 적습니다.
상서랑으로 네 해를 지낸 뒤 상국부의 군사에 참여했고, 경원 4년(263) 종회가 촉을 칠 때 그의 진서장사가 되었습니다. 이듬해 종회가 반란을 일으키자 막료들이 모두 해를 입었으나 두예만은 지혜로 화를 면했고 봉읍 1,150호를 더 받았습니다. 거기장군 가충 등과 율령을 정하자 그 주해를 지어 올리며 「법은 먹줄로 끊는 본보기이지 이치를 다 캐는 책이 아니다」라 했고, 그 주해는 조서로 천하에 반포되었습니다. 태시 연간에는 하남윤을 맡아 관리의 성적을 매기는 법을 아뢰었습니다.
사례교위 석감의 탄핵으로 벼슬을 잃었다가 농우가 노략당하자 안서군사로 나가 진주자사가 되었습니다. 안서장군 석감이 출병을 재촉하자 그는 적은 이긴 기세에 말이 살졌고 관군은 모자라니 힘을 모아 봄을 기다리자며 「다섯 가지 안 되는 것과 네 가지 할 필요 없는 것」을 아뢰었고, 노한 석감은 다시 그를 탄핵해 함거로 정위에게 보냈습니다. 공주의 남편이라 후의 작위로 죄를 대신했는데, 뒤에 농우의 일은 끝내 그의 계책대로 되었습니다. 흉노의 유맹이 반란을 일으키자 탁지상서가 되어 적전을 세우고 상평창을 일으키며 곡식값과 소금 운반, 세금 매기는 법을 정하는 등 나라를 이롭게 하고 변경을 구하는 쉰여 가지를 올려 다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는 달력이 해의 그림자와 맞지 않는다며 『이원건도력』을 올렸고, 맹진의 나루가 험해 배가 뒤집힐 걱정이 있자 부평진에 황하의 다리를 세우자고 했습니다. 은과 주의 성현도 세우지 않은 것이라는 반대를 물리치고 다리가 서자, 무제는 백관을 거느리고 와서 잔을 들며 「그대가 아니었으면 이 다리는 서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한나라 말에 사라진 주나라 사당의 기울어지는 그릇도 그가 뜻을 내어 다시 만들어 바쳤습니다. 조정 안에서 일곱 해 동안 온갖 일을 더하고 덜어 이루 셀 수 없었으므로 조정과 민간이 그를 「두무고」라 불렀으니, 무기고처럼 없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무제가 몰래 오를 없앨 계획을 품었으나 조정의 의논이 대부분 어긋났고, 두예와 양호 · 장화만이 무제의 뜻과 맞았습니다. 함녕 4년(278) 병든 양호가 그를 천거해 자기를 대신하게 하자 그는 평동장군의 일을 맡아 정남군사를 겸했고, 양호가 죽자 진남대장군 · 도독형주제군사가 되었습니다. 진에 이르러 오의 서릉독 장정을 기습해 크게 깨뜨렸는데, 장정이 패한 사실을 손호에게 숨기자 사로잡은 무리를 손호에게 돌려보내 장정이 불려 가고 장수가 바뀌게 했습니다. 이듬해 무제가 큰 정벌을 다음 해로 미루려 하자 두예는 거듭 표를 올려 이번 일은 열에 여덟아홉이 이롭고 그 해로움은 공이 없는 데 그칠 뿐이며, 지금 그만두면 손호가 도읍을 무창으로 옮기고 성을 고쳐 다음 해에는 손쓸 수 없으리라 했습니다. 표가 이르렀을 때 무제와 바둑을 두던 중서령 장화가 바둑판을 밀치며 정벌을 권하자 무제가 허락했습니다.
태강 원년(280) 정월 두예는 강릉에 군사를 벌여 두고 여러 장수를 보내 강을 따라 서쪽으로 올라가 열흘 사이에 잇달아 성을 떨어뜨렸습니다. 아문장 주지 등에게 날랜 군사 8백을 주어 밤에 배로 강을 건너 낙향을 치게 하고 산에 불을 올리자, 오의 도독 손흠은 「북쪽에서 온 군사들이 날아서 강을 건넜다」며 떨었습니다. 주지 등은 숨어 있다가 왕준을 막으러 나갔다 지고 돌아오는 손흠의 군사에 섞여 들어가 그를 장막 아래에서 사로잡았습니다. 이어 강릉으로 나아가 거짓 항복하며 성가퀴에 군사를 세운 오연을 쳐 성을 떨어뜨리니, 원수와 상수 남쪽에서 교주 · 광주에 이르는 오의 주군이 바람을 보고 인수를 바쳐 왔습니다. 이때 여러 장수가 모인 자리에서 어떤 이가 더위가 오고 물이 불어 돌림병이 일 것이니 겨울을 기다리자고 하자, 두예는 「지금 군사의 위세가 이미 떨치니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아, 몇 마디가 갈라진 뒤에는 모두 칼날을 맞아 저절로 갈라진다」 하고 여러 장수에게 길을 가리켜 곧장 말릉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손호가 평정되자 그는 당양현후로 올라 앞의 것과 아울러 9,600호를 받았고 아들 두탐은 정후가 되었습니다.
진으로 돌아온 그는 천하가 편안해도 싸움을 잊으면 위태롭다며 무예를 익히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옛 물길을 고쳐 치수와 육수의 물을 끌어 논밭 1만여 경에 대니 백성들이 그를 「두부」라 불렀고, 양구를 열어 파릉까지 1천여 리의 물길을 내어 장강의 험함을 피하고 남쪽의 조운이 통하게 했습니다. 공을 후세에 남기기를 좋아해 공적을 새긴 비석 둘을 만들어 하나는 만산 아래 물에 잠그고 하나는 현산 위에 세웠습니다. 『진서』는 그가 몸소 말에 오르지 않았고 활을 쏘아도 갑옷의 미늘을 꿰지 못했으나 큰일을 맡을 때마다 장수의 반열에 섰다고 적습니다. 공을 세운 뒤에는 경전에 마음을 쏟아 『춘추좌씨경전집해』와 『석례』 · 『맹회도』 · 『춘추장력』을 지어 늙어서야 한 집안의 학문을 이루었습니다. 그가 말을 잘 알아보는 왕제에게는 말 버릇, 재물을 모으는 화교에게는 돈 버릇이 있다고 하자, 무제가 그에게는 무슨 버릇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신에게는 『좌전』 버릇이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뒤에 사례교위로 불려 가다 등현에 이르러 죽었으니 태강 5년(284) 윤12월로 서력으로는 285년 초이며, 나이 예순셋이었습니다. 정남대장군 · 개부의동삼사로 추증되고 시호는 성입니다. 미리 남긴 유언대로 낙양 동쪽 수양산 남쪽에 낙수의 둥근 돌로 소박하게 묻혔고, 아들 두석이 뒤를 이었습니다. 『진서』의 사신은 그가 「긴 채찍을 휘둘러 치고 빼앗으면서 선비의 풍모를 겸해 싸움터를 옮겨 다녔다」 하고, 『춘추』의 다섯 전 가운데 홀로 하나를 차지했다고 평했습니다.
振長策而攻取,兼儒風而轉戰今兵威已振,譬如破竹,數節之後,皆迎刃而解,無復著手處也『삼국연의』 제120회
연의에서 두예는 마지막 회인 제120회에 나옵니다. 병이 위독한 양호가 사마염에게 우장군 두예를 천거하고, 사마염은 그를 진남대장군 도독형주사로 삼습니다. 연의는 그가 노련하고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아 좌구명의 『춘추전』을 가장 즐겨 읽었고, 앉으나 누우나 곁에 두며 드나들 때도 사람을 시켜 『좌전』을 말 앞에 들게 해 사람들이 「좌전 버릇」이라 불렀다고 소개합니다.
왕혼의 아룀으로 사마염이 군사를 멈추게 했을 때 두예의 표가 이르고, 장화가 바둑판을 밀치며 권하자 사마염은 두예를 대도독으로 삼아 군사 10만으로 강릉으로 나가게 하고 여러 길의 군사가 다 그의 지휘를 받게 합니다. 두예는 아장 주지에게 수군 8백을 주어 몰래 강을 건너 낙향을 치고 파산에 숨어 깃발을 세우고 불을 올리게 합니다. 손흠과 싸우다 물러나는 척해 끌어낸 뒤 사방에서 쳐 크게 이기고, 섞여 들어간 주지가 「북쪽 군사가 날아서 강을 건넜다」며 놀라는 손흠을 벱니다. 성을 버리고 달아나던 오연이 잡히자 그를 베고 강릉을 얻으며, 원수와 상수 일대가 다 항복하고 무창도 항복합니다.
여러 장수가 모인 자리에서 호분이 봄물이 불어 오래 머물기 어려우니 내년 봄을 기다리자고 하자, 두예는 악의의 옛일을 들어 「지금 군사의 위세가 크게 떨쳐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와 같으니, 몇 마디 뒤에는 모두 칼날을 맞아 갈라진다」 하고 건업을 칠 날을 여러 장수와 약속합니다. 가충이 군사를 거두자고 할 때도 그의 표가 이르러 진격이 이어집니다. 손호가 왕준에게 항복한 다음 날 두예도 이르러 삼군을 크게 먹이고 창고를 열어 오의 백성을 구합니다. 연의에서 두예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할아버지 두기 · 아버지 두서 · 아내 고륙공주(사마소의 누이) · 아들 두석 · 두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진의 두원개요.
두원개요. 대나무를 쪼개듯 하겠소.
책에서 읽은 것을 그대로 쓰겠소.
…마디 하나가 걸리는군.
여기만 지나면 쪼개지오.
몇 마디만 갈라지면 나머지는 저절로 쪼개지오.
…칼날이 무뎌졌구려.
막는 것이 없었소.
…대나무가 질겼구려.
파죽지세라 하였다.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