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백여(伯輿) · 미상 ~ 261년 · 청주 동래군 곡성현 · 사마의 휘하
탁월한 전략과 결단력으로 관구검과 제갈탄의 난을 평정한 위나라의 명장
출전 · 『삼국지』 위서 왕기전과 배송지 주의 사마표 『전략』 · 왕수전 · 삼소제기 · 관구검전 · 제갈탄전 · 『진서』 경제기 · 문제기
왕기는 자가 백여이며 동래군 곡성현 사람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 왕옹의 손에 자랐는데, 왕옹이 그를 정성껏 기르자 왕기도 효성으로 이름났습니다. 열일곱 살에 군에서 관리로 불렀으나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며 떠나 낭야로 가서 공부했습니다. 『삼국지』 왕수전은 왕수가 어린 왕기를 남다르게 보았고 그가 끝내 크게 되어 세상이 왕수의 사람 보는 눈을 칭찬했다고 적습니다.
황초 연간에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중이 되었습니다. 그때 막 안정된 청주의 자사 왕릉이 표를 올려 그를 별가로 삼았고, 조정이 비서랑으로 불러도 다시 돌려받았습니다. 사도 왕랑이 그를 부르자 왕릉은 보내지 않았고, 왕랑이 주를 탄핵하는 글을 올려도 끝내 보내지 않았습니다. 진수는 왕릉이 청주에서 이름을 떨친 것도 왕기가 함께 다스린 덕이라고 적습니다. 대장군 사마의가 그를 불렀으나 이르기 전에 중서시랑으로 발탁되었습니다.
명제가 궁궐을 크게 지어 백성이 지치자 왕기는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엎기도 한다는 옛말을 들어 글을 올렸고, 아직 적이 남아 있는데 맹장들이 군사를 쥐고 있으니 자손이 약해지면 사직의 걱정이 되리라 경계했습니다. 산기상시 왕숙이 경전 풀이를 지어 정현의 옛 설을 고치자 왕기는 정현의 뜻을 붙들고 늘 그와 맞섰습니다. 안평태수로 옮겼다가 공무 일로 벼슬을 떠났고, 대장군 조상이 청해 종사중랑이 되었다가 안풍태수로 나갔습니다. 오나라와 맞닿은 고을을 맑고 엄하게 다스리고 방비를 밝게 갖추니 적이 넘보지 못했고, 토구장군이 더해졌습니다. 오나라가 건업에 대군을 모아 양주를 치겠다고 떠들자 자사 제갈탄이 그에게 계책을 물었는데, 왕기는 육손 등이 죽고 손권은 늙었으며 뒤를 이을 어진 아들도 꾀를 낼 신하도 없으니 제 무리를 추스르려는 것일 뿐이라 했고 과연 손권은 나오지 못했습니다. 조상이 권력을 쥐어 풍속이 무너지자 『시요론』을 지어 세상일을 꼬집었고, 가평 원년(249) 조상이 죽임을 당하자 그의 관속이었다 하여 함께 파면되었습니다.
그해 상서가 되었다가 형주자사로 나가 양렬장군이 더해졌고, 정남장군 왕창을 따라 오를 쳤습니다. 가평 3년(251) 왕기는 따로 이릉의 보협을 치는 척하면서 군사를 나누어 웅보의 창고를 빼앗아 쌀 30여만 곡을 거두고 안북장군 담정을 사로잡았으며, 항복한 수천 명을 옮겨 이릉현을 두었습니다. 그 공으로 관내후가 되었습니다. 또 상창에 성을 쌓고 강하의 치소를 옮겨 하구를 누르니 적이 함부로 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조정이 오를 치려 하자 먼저 둔전으로 군량을 쌓고 물길을 갖춘 뒤에야 강을 건널 형세가 선다고 답해 원정이 그쳤습니다. 사마사가 막 정권을 잡자 글을 보내 마음을 바르게 하고 충성스럽고 어진 이를 쓰라며 허윤 · 부하 · 원간 · 최찬을 바른 선비로 들었고, 사마사는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정원 2년(255) 관구검과 문흠이 일어나자 왕기는 행감군 · 가절로 허창의 군을 거느려 그곳에서 사마사와 만났습니다. 사마사가 관구검 등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왕기는 회남의 반란은 백성이 난을 바란 것이 아니라 속고 겁박당한 것이니 대군이 다가가면 무너질 것이라 답했고, 사마사는 그를 군의 앞에 세웠습니다. 조정은 관구검과 문흠이 사나워 맞서기 어렵다 하여 조서로 왕기를 멈춰 세웠습니다. 왕기는 머물러 보루만 높이면 겁먹은 것처럼 보인다며, 남돈의 큰 창고에 40일 군량이 있으니 먼저 차지해야 한다고 거듭 청했습니다. 사마사가 여러 군이 모이기를 기다리며 허락하지 않자 왕기는 「장수가 군에 있으면 임금의 명도 받지 않을 때가 있다」며 스스로 남돈으로 나아갔고, 남돈으로 오려던 관구검의 군은 그가 먼저 이르렀다는 말에 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문흠이 낙가의 등애를 치러 가 세력이 갈린 틈에 왕기가 항으로 다가가니 관구검의 무리가 무너졌습니다. 『삼국지』 관구검전과 『진서』 경제기는 사마사가 왕기를 보내 남돈을 차지하게 했다고 적어 본전과 결이 다릅니다. 난이 평정된 뒤 진남장군 · 예주자사가 되고 안락향후로 올랐으며, 식읍 200호를 떼어 숙부의 아들 왕교에게 관내후를 내려 키워 준 은덕에 보답하게 해 달라고 청해 허락받았습니다.
감로 2년(257) 제갈탄이 일어나자 왕기는 행진동장군으로 양주와 예주의 군을 거느렸습니다. 오나라의 주이가 구하러 오자 군을 북산으로 옮기라는 조서가 내려왔는데, 왕기는 에워싼 보루가 굳어 가는데 옮기면 인심이 흔들린다며 「적과 마주해서는 산처럼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허락받았습니다. 대장군 사마소가 군을 나누어 에워싸자 왕기는 성의 동쪽과 남쪽의 스물여섯 군을 맡았고, 양식이 떨어진 성안의 군이 밤낮으로 보루를 쳐 오자 막아 깨뜨렸습니다. 이듬해(258) 수춘이 떨어지자 사마소는 장군이 홀로 굳은 뜻을 지켜 위로는 조명을 거스르고 아래로는 뭇 의논을 물리쳐 끝내 적을 사로잡았으니 옛사람도 이보다 낫지 않다는 글을 보냈습니다. 사마소가 가벼운 군사를 오나라 깊이 들여보내려 하자 왕기는 크게 이긴 뒤에는 적을 얕보기 쉽다며 제갈각의 신성 싸움과 강유의 상규 싸움을 들어 말렸고, 사마소는 그만두었습니다. 정동장군이 되어 동무후로 올랐으나 공을 참모들에게 돌려 장사와 사마 등 일곱 명이 후가 되었습니다. 그해 어머니가 죽자 조정은 상을 알리지 않고 아버지 왕표의 시신을 맞아 낙양에 합장했습니다.
감로 4년(259) 정남장군 · 도독형주제군사로 옮겼습니다. 경원 2년(261) 양양태수가 오나라의 등유 등이 항복해 오려 한다고 아뢰자, 왕기는 거짓 항복이라 의심해 역마로 알리고 지금은 사직을 안정시키고 백성을 편안히 할 때이지 군을 움직여 밖의 이익을 구할 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마소는 그 말을 따랐고 등유 등은 끝내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사마표의 『전략』은 왕기가 한 고조가 역이기의 말로 여섯 나라를 봉하려다 장량의 꾀로 거둔 일을 들어, 양양의 보고가 역이기의 잘못이 될까 두렵다고 했다고 전합니다. 왕기는 그해 죽어 사공에 추증되고 경후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진나라가 선 뒤 조서는 그가 몸가짐이 맑고 소박해 살림을 늘리지 않았고 오래 무거운 자리에 있었어도 집에 쌓인 재물이 없었다며 노비 둘을 내렸습니다. 진수는 그의 학문과 행실이 굳고 깨끗했다고 평하며 나라의 좋은 신하라 했습니다.
王基學行堅白,皆掌統方任,垂稱著績將在軍,君令有所不受『삼국연의』 제69회 · 제110~112회
연의에서 왕기의 이름은 제69회에 처음 나옵니다. 점술가 관로의 지난 일을 들려주는 대목에서, 안평태수 왕기가 관로를 집에 맞아 신도령의 아내와 아들이 앓는 까닭을 점치게 했다고 합니다.
제110회에서 사마사가 관구검과 문흠을 칠 때 예주자사 감군 왕기는 앞 군을 이끌고 나섭니다. 광록훈 정포가 보루를 깊이 파고 지키자고 하자 왕기는 회남의 반란은 군사와 백성이 난을 바란 것이 아니라 관구검의 세력에 눌려 따른 것이니 대군이 다가가면 무너진다며 맞서고, 남돈이 군사를 두기 좋으니 밤새 차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마사는 그에게 앞 군을 이끌고 남돈성 아래에 진을 치게 합니다. 뒤에 왕기는 호준 · 등애와 함께 항성으로 다가가 관구검을 사방에서 칩니다.
제111회에서 사마소가 제갈탄을 치러 나서며 진남장군 왕기를 정선봉으로 삼습니다. 왕기는 오나라 선봉 주이와 맞붙어 몇 합 만에 물리치고 당자도 깨뜨려 오군을 50리 물러나게 합니다. 제112회에서는 종회의 꾀에 따라 진건과 함께 정병을 이끌고 뒤에 있다가 제갈탄을 깨뜨리고, 남문의 군을 거두라는 명을 받으며, 진건과 함께 주이의 뒤를 쳐 크게 이깁니다. 수춘이 떨어질 때 서문에서 오나라 장수 우전을 만나 어찌 일찍 항복하지 않느냐고 꾸짖고, 우전은 투구를 내던지고 싸우다 죽습니다. 연의에서 왕기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왕표 · 숙부 왕옹 · 아들 왕휘 · 손자 왕이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난은 여기서 끊는다.
왕백여요. 난은 빨리 끊는 것이 답이오.
형세를 보고 답하겠소.
…포위가 헐거워지는가.
고삐를 다시 죄어야겠군.
서두르지 않고 조이면 무너지는 법이오.
…한 수를 놓쳤구려.
불씨까지 밟아 두었소.
…불씨가 남았군.
…난을 셋 평정했으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