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염司馬炎

자 안세(安世) · 236년 ~ 290년 · 사례 하내군 온현 · 사마의 휘하

사마염 초상

위의 선양을 받아 진을 세우고 오를 평정해 천하를 하나로 한 황제

능력치

통솔69무력59지력76정치78매력74

카드

공격력 4체력 4비용 3값어치 10직군 능리
격문 비용 1
다음 소환 둘까지 체력 +1

정사

출전 · 『진서』 무제기와 사론 · 문제기 · 선제기 · 후비전 · 양호전 · 두예전 · 가충전 · 『삼국지』 위서 삼소제기 · 오서 삼사주전과 배송지 주 · 『세설신어』 배조 · 품조와 그 주의 『진양추』

사마염은 자가 안세이며, 하내군 온현을 본관으로 하는 사마씨 집안 사람입니다. 할아버지는 사마의이고 아버지는 진왕에 오른 사마소이며 그 맏아들입니다. 어머니 왕원희는 위의 중령군 왕숙의 딸로 사마염과 아우 사마유 등을 낳았습니다. 『진서』 무제기는 그가 너그럽고 어질며 속이 깊어 도량이 있었다고 적습니다. 위의 가평 연간에 북평정후에 봉해졌고, 중루장군 등을 거쳐 중호군에 올랐습니다.

경원 원년(260) 위의 황제 조모가 죽자 사마염은 부절을 지니고 동무양으로 가서 상도향공 조환을 맞아 명제의 뒤를 잇게 했고, 중무군으로 옮기며 신창향후로 올랐습니다. 함희 원년(264) 8월에는 상국의 일을 버금으로 맡았고, 9월 무군대장군이 되었으며, 10월 진의 세자가 되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사마소는 형 사마사가 아들 없이 일찍 죽자 사마유를 그 뒤로 삼고 몹시 아껴, 자신은 상국 자리를 잠시 맡았을 뿐이니 뒷날 대업은 사마유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늘 「이것은 경왕의 천하이니 내가 어찌 끼겠는가」 하였고 세자를 의논할 때도 사마유에게 마음을 두었습니다. 그러자 하증 등이 「중무군은 총명하고 신무하여 세상을 뛰어넘는 재주가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땅에 닿고 손이 무릎을 지나니 신하의 상이 아닙니다」 하고 굳이 다투어 뒤가 정해졌습니다. 『진서』 가충전은 가충도 사마염이 너그럽고 어질며 맏이라 임금의 덕이 있으니 사직을 받들어야 한다고 말했고, 병이 깊은 사마소에게 사마염이 뒷일을 묻자 「너를 아는 사람은 가공려다」 하였다고 적습니다.

함희 2년(265) 5월 진왕의 태자가 되었고, 8월 사마소가 죽자 상국과 진왕의 자리를 이어 형벌을 너그럽게 하고 부역을 쉬게 했습니다. 위의 황제 조환이 태보 정충을 보내 제위를 넘기는 책문을 내리자 처음에는 예로 사양했으나, 위의 공경 하증 · 왕침 등이 굳이 청하여 따랐습니다. 그해 12월 병인에 남쪽 교외에 단을 쌓고 백관과 흉노 남선우 등 사방에서 모인 수만 사람 앞에서 제위를 받았고,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태시로 고쳤습니다. 이튿날 조환을 진류왕으로 봉해 업의 궁에 머물게 하고, 할아버지 사마의를 선황제, 백부 사마사를 경황제, 아버지 사마소를 문황제로 높였습니다. 또 공을 자랑해 절개를 잃었으나 손을 묶고 죄를 받은 등애의 집안을 사면해 뒤를 잇게 했고, 위 종실의 금고를 풀었으며, 바른말의 길을 열어 간관을 두었습니다.

태시 2년(266) 한 종실의 금고를 풀고 양염을 황후로 세웠으며, 이듬해 아들 사마충을 황태자로 세웠습니다. 태시 4년(268) 새 율령이 이루어지자 천하에 반포하고 몸소 적전을 갈았습니다. 태시 5년(269)에는 양호에게 형주의 군사를 맡기고, 촉의 승상 제갈량의 손자 제갈경을 재주에 따라 벼슬에 쓰게 했습니다. 태시 8년(272) 우장군 황보도가 자신과 말다툼을 했다며 벌을 청한 산기상시 정휘를 도리어 파면하며 「임금은 늘 아첨을 걱정할 일이지 다투는 신하를 어찌 해롭다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함녕 3년(277)에는 꿩을 쏘러 나섰다가 보리 싹을 상할까 걱정해 그만두었고, 함녕 4년(278)에는 태의사마 정거가 바친 꿩 머리 털 갖옷을 기이한 재주와 이상한 옷은 예법이 금하는 것이라 하여 전각 앞에서 불태웠습니다.

오를 치는 일에서는 조정의 의논이 많이 갈렸습니다. 『진서』 두예전은 무제가 몰래 오를 없앨 셈을 품었으나 오직 두예 · 양호 · 장화만이 뜻이 맞았다고 적습니다. 278년 병든 양호가 입조해 오를 칠 계책을 아뢰자 사마염은 중서령 장화를 보내 계책을 묻게 했고, 그해 11월 양호가 두예를 제 뒤로 천거하고 죽자 흰 옷을 입고 슬피 울었는데 그날 몹시 추워 흘린 눈물이 수염과 귀밑털에서 얼음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두예가 출병의 때를 청하자 이듬해를 기다리겠다고 답했으나, 두예가 다시 표를 올렸을 때 마침 장화와 바둑을 두고 있었고 장화가 바둑판을 밀치고 손을 모은 채 지금 치면 힘들이지 않고 평정할 수 있다고 권하자 비로소 허락했습니다. 함녕 5년(279) 11월 낭야왕 사마주 · 왕혼 · 두예 등과 파촉의 군사를 이끈 왕준 · 당빈까지 동서로 이십여만을 내고, 오를 치는 데 반대하던 태위 가충을 대도독으로 삼아 여러 군을 거느리게 했습니다. 태강 원년(280) 2월 두예가 강릉을 떨어뜨리고 왕준이 무창을 떨어뜨린 뒤에도 가충은 군사를 불러들이자는 표를 올렸으나 사마염은 듣지 않았습니다. 3월 왕준의 수군이 건업의 석두성에 이르자 손호가 스스로 몸을 묶고 관을 수레에 싣고 나와 항복했습니다. 이때 얻은 것이 주 넷 · 군 마흔셋 · 호 오십이만 삼천 · 군사 이십삼만이었습니다. 사마염은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태강으로 고쳤으며, 오의 가혹한 정사를 걷어 내니 오 사람이 크게 기뻐했습니다. 『진서』 양호전은 신하들이 축하의 잔을 올리자 그가 잔을 쥐고 울며 「이것은 양태부의 공이다」 하였다고 적습니다. 낙양에 온 손호는 귀명후가 되어 옷과 수레, 밭과 해마다 곡식 · 돈을 받았습니다. 『세설신어』는 사마염이 남쪽 사람의 너나들이 노래를 청하자 손호가 잔을 들어 「예전엔 너와 이웃이더니 이제는 너의 신하라」 하고 불러 사마염이 청한 것을 뉘우쳤다고 전합니다. 그해 신하들이 여러 번 봉선을 청했으나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무제기의 사론은 오를 평정한 뒤 천하가 편안해지자 그가 정사를 게을리하고 놀이와 잔치에 빠졌으며, 황후의 집안을 아껴 그 친척이 권세를 잡았다고 적습니다. 태강 4년(283)에는 아우 사마유가 죽었는데, 『세설신어』 주에 인용된 『진양추』는 중서감 순욱 등의 이간으로 사마염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던 사마유를 제나라로 보내자 그가 근심 끝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적습니다. 태희 원년(290) 4월 황후 양지의 아버지 양준을 태위로 삼은 그달, 함장전에서 쉰다섯으로 죽었고 묘호를 세조라 했습니다. 사론은 그가 혜제가 짐을 감당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갈아 세우지 않았고, 죽음을 앞두고 여남왕 사마량에게 정사를 돕게 하려 했으나 양준이 이를 숨기고 양황후가 조서를 지어 양준에게 맡겼으니 「중조의 어지러움이 실로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적습니다.

사론은 그를 두고 「도량이 크고 두터워 다급한 때에도 반드시 어짊과 너그러움을 따랐고, 곧은 말을 받아들여 사람에게 낯빛을 잃은 적이 없었으며, 밝게 통하고 꾀를 잘 내어 큰일을 결단할 줄 알았다」고 평했습니다. 다만 책 끝에 붙은 제왈은 「아들이 못나면 집이 망한다」고 하며, 혜제를 폐할 수 있었는데도 폐하지 않아 끝내 나라의 터전을 기울게 했다고 아쉬워했습니다.

宇量弘厚,造次必於仁恕;容納讜正,未嘗失色於人
도량이 크고 두터워 다급한 때에도 반드시 어짊과 너그러움을 따랐고, 곧은 말을 받아들여 사람에게 낯빛을 잃은 적이 없었다『진서』 무제기 사론
平吳之後,天下乂安,遂怠於政術,耽於遊宴
오를 평정한 뒤 천하가 편안해지자 마침내 다스림을 게을리하고 놀이와 잔치에 빠졌다『진서』 무제기 사론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14회 · 제119~120회

연의에서 사마염은 제114회에 이름이 처음 비칩니다. 조모가 죽은 뒤 가충 등이 사마소에게 위의 선양을 받으라고 권하자 사마소는 주 문왕의 옛일을 들어 물리치고, 가충 등은 그가 아들 사마염에게 뜻을 두었음을 알아차리고 더 권하지 않습니다.

제119회에서 연의는 사마염을 풍채가 크고 머리카락이 땅에 드리우며 두 손이 무릎을 지나고 총명하고 담이 큰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사마소가 형의 뒤로 삼은 둘째 사마유를 세자로 세우려 하자 산도가 맏이를 버리고 어린 아들을 세우는 것은 예에 어긋난다고 간하고, 가충 · 하증 · 배수와 왕상 · 순의도 말려 사마염이 세자가 됩니다. 사마소는 양무현에 큰 사람이 나타났다는 상서로운 말에 기뻐하다 풍을 맞아 말을 잃고, 이튿날 손으로 사마염을 가리키고 죽습니다. 진왕이 된 사마염은 가충과 배수에게 조조가 주 문왕이 되겠다고 한 말의 뜻을 묻고, 조비가 한을 이은 옛일을 본받으라는 답을 듣습니다. 이튿날 칼을 차고 후궁에 들어가 조환에게 글로도 무로도 나라를 다스릴 재주가 없으니 자리를 넘기라 하고, 이를 꾸짖은 황문시랑 장절을 무사들에게 몽둥이로 쳐 죽이게 합니다. 12월 갑자일 가충이 쌓은 수선대에서 조환이 옥새를 받들어 올리자 사마염은 단 위에 앉아 제위를 받고 나라 이름을 대진이라 합니다. 사마부가 조환 앞에 엎드려 울며 끝까지 위의 신하로 남겠다고 하자 그를 안평왕에 봉하나 사마부는 받지 않고 물러납니다.

제120회에서 사마염은 양호를 형주에 두고 오를 노립니다. 양호가 표를 올려 오를 치자고 하자 크게 기뻐하나 가충 · 순욱 · 풍순 세 사람이 힘써 말려 그만두고, 함녕 4년 입조한 양호에게 계책을 듣고 크게 깨닫습니다. 그해 11월 몸소 수레를 몰아 병든 양호의 집을 찾아가 함께 울고, 양호는 두예를 천거하고 숨을 거둡니다. 사마염은 왕준의 상소를 받고 뜻을 정했다가 왕혼의 말에 다시 군사를 멈추는데, 장화와 바둑을 두던 중 두예의 표가 오고 장화가 바둑판을 밀치며 권하자 마침내 군사를 냅니다. 오가 평정되자 잔을 들고 울며 「이것은 양태부의 공인데 그가 몸소 보지 못한 것이 아깝다」 합니다. 낙양에 온 손호에게 「짐이 이 자리를 마련해 경을 기다린 지 오래요」 하자 손호가 「신도 남쪽에 이 자리를 마련해 폐하를 기다렸습니다」 하고 답해 크게 웃고, 손호를 귀명후에 봉합니다. 연의는 이로써 삼국이 진의 사마염에게 돌아가 하나가 되었다며 「나뉜 지 오래면 반드시 합친다」는 첫머리의 말로 이야기를 닫습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60위 조정의 중루장군으로 동무양에서 상도향공 조환을 맞아 와 중무군 · 신창향후가 되었습니다.
  2. 264상국의 일을 버금으로 맡고 무군대장군이 되었으며, 10월 진의 세자가 되었습니다.
  3. 2655월 진왕의 태자가 되었고, 8월 사마소가 죽자 상국과 진왕의 자리를 이었습니다.
  4. 26512월 조환에게서 제위를 물려받아 진의 황제가 되고 조환을 진류왕으로 봉했습니다.
  5. 266한 종실의 금고를 풀고 양염을 황후로 세웠습니다.
  6. 267아들 사마충을 황태자로 세웠습니다.
  7. 268새 율령이 이루어지자 천하에 반포하고 몸소 적전을 갈았습니다.
  8. 269양호에게 형주의 군사를 맡기고 제갈량의 손자 제갈경을 재주에 따라 쓰게 했습니다.
  9. 272다투는 신하를 벌하자고 아뢴 정휘를 도리어 파면했습니다.
  10. 277꿩을 쏘러 나섰다가 보리 싹을 상할까 걱정해 그만두었습니다.
  11. 278바쳐 온 꿩 머리 털 갖옷을 전각 앞에서 불태웠습니다.
  12. 278양호가 죽자 슬피 울었고 그의 천거대로 두예에게 형주를 맡겼습니다.
  13. 279장화와 바둑을 두다 두예의 표를 받고 오 정벌을 허락했으며, 11월 가충을 대도독으로 삼아 이십여만을 냈습니다.
  14. 2803월 손호가 왕준에게 항복해 천하가 하나가 되었고 연호를 태강으로 고쳤습니다.
  15. 280낙양에 온 손호를 귀명후로 삼고 신하들이 청한 봉선은 사양했습니다.
  16. 283제나라로 보낸 아우 사마유가 3월에 죽었습니다.
  17. 2904월 양준에게 정사를 맡긴 채 함장전에서 쉰다섯으로 죽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사마소 · 어머니 왕원희 · 아우 사마유 · 황후 양염 · 양지 · 아들 사마충(혜제)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진의 사마염이오.

말을 열며

천하가 하나로 돌아갈 때가 왔소. 그대 말부터 들어 보겠소.

되받으며

다투는 신하를 해롭다 하지 않소. 더 말해 보시오.

말문이 막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길이 있다 들었소.

말문이 막혀

강 건너 임금은 이미 백성을 잃었소.

설전을 이기고

말로도 강을 건널 수 있구려.

설전에 지고

곧은 말에 졌으니 부끄럽지 않소.

이긴 뒤

이것은 먼저 간 이들의 공이오.

진 뒤

물러나 다시 때를 기다리겠소.

쓰러지며

여남왕은 아직 안 왔느냐…

같은 기치 아래

사마의양호곽회사마사사마소왕준손례진태위관왕기왕창가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