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본초(本初) · 미상 ~ 202년 · 예주 여남군 여양현 · 한 세력의 주인
하북을 통일하고 조조와 중원의 패권을 겨루었던 사세삼공 명문가의 대군벌
출전 · 『삼국지』 위서 원소전과 배송지 주의 『위서』 · 『영웅기』 · 『헌제춘추』 · 『선현행장』 · 위서 무제기 · 순욱전 · 장합전 · 『후한서』 원소전과 이현 주의 『헌제춘추』 · 하진전 · 공손찬전
원소는 자가 본초이며 여남군 여양현 사람입니다. 『삼국지』는 고조부 원안이 사도가 된 뒤로 네 대에 걸쳐 삼공을 내어 그 세력이 천하를 기울였다고 적습니다. 『후한서』는 그를 사도 원탕의 손자이자 원성의 아들로 적지만,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원봉의 서자로 태어나 백부 원성의 뒤를 이었다고 하며, 배송지는 어느 쪽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풍채와 위엄이 있고 몸을 낮추어 선비를 대해 많은 선비가 따랐고, 조조도 젊어서 그와 사귀었습니다. 배송지 주의 『영웅기』는 그가 어머니의 상을 마친 뒤 아버지의 상까지 다시 치러 여섯 해를 무덤 곁에서 지냈다고 적습니다. 중상시 조충이 「원본초가 앉아서 이름값을 올리며 죽을 각오의 사람을 기른다」고 하자 숙부 원외가 그를 꾸짖었고, 원소는 비로소 대장군 하진의 부름에 나섰습니다.
중평 6년(189) 영제가 죽자 원소는 하진과 함께 환관을 없애려 했고, 태후가 따르지 않자 사방의 장수를 불러 태후를 누르자는 꾀를 냈습니다. 하진은 그를 사예교위로 삼았으나 머뭇거리다 환관들에게 죽었고, 원소는 궁문을 닫고 군사를 풀어 환관을 늙고 젊음 없이 모두 죽였습니다. 수염이 없어 잘못 죽은 이도 있었고 죽은 이가 2천여 명이었습니다. 동탁이 황제를 폐하자고 하자 원소는 『삼국지』에 따르면 태부와 의논하겠다고 둘러댄 뒤 칼을 비껴 든 채 읍하고 나가 기주로 달아났습니다. 『후한서』는 그가 「천하에 굳센 자가 어찌 동공뿐이겠소」 하고 나갔다고 적는데, 배송지는 같은 말을 실은 『헌제춘추』를 터무니없다고 했습니다. 동탁은 원씨가 네 대에 걸쳐 은혜를 심었으니 달래라는 주비 · 오경 등의 말을 듣고 그를 발해태수로 삼았습니다.
초평 원년(190) 원소가 발해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원술 · 한복 · 장막 등 관동의 장수들이 함께 일어나 그를 맹주로 받들었고, 원소는 스스로 거기장군이라 일컬었습니다. 동탁은 이에 태부 원외를 비롯한 도성의 원씨 일족을 모두 죽였습니다. 이듬해 원소는 봉기의 꾀를 따라 공손찬을 남쪽으로 끌어들여 기주목 한복을 두렵게 한 뒤 고간 · 순심을 보내 기주를 넘기라고 달랬고, 겁 많은 한복은 말리는 이들을 뿌리치고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기주목이 된 원소는 네 주를 아우르고 천자를 맞자는 저수의 계책에 「이것이 내 마음이다」 하며 그를 감군으로 삼았고, 전풍을 별가로, 심배를 치중으로 삼았습니다.
그 뒤 기주를 넘보는 공손찬과 계교에서 맞섰을 때, 원소는 국의에게 군사 8백을 앞세우고 강한 쇠뇌 천 장으로 받치게 했습니다. 『영웅기』에 따르면 적은 수를 얕본 공손찬의 기병이 짓밟으러 달려들자 방패 밑에 엎드려 있던 국의의 군사가 한꺼번에 일어나 쇠뇌를 퍼부어 크게 이겼습니다. 뒤처져 쉬던 원소가 공손찬의 기병 2천여에게 에워싸이자, 빈 담장으로 피하자는 전풍에게 투구를 땅에 내던지며 「대장부는 앞에서 싸우다 죽을 일」이라며 버텼습니다. 초평 3년(192) 용주에서 다시 지고 나서 공손찬은 유주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어 업을 뒤엎은 흑산적 우독 등을 깨뜨렸습니다. 흥평 2년(195) 우장군이 되었고, 저수가 쫓기는 천자를 업으로 맞아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자고 했으나 곽도와 순우경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습니다.
건안 원년(196) 조조가 천자를 맞아 허에 도읍하자 원소는 뉘우쳤고, 견성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했으나 조조가 거절했습니다. 태위가 되자 대장군 조조의 아래를 부끄러워해 받지 않았고 조조가 대장군 자리를 넘겼습니다. 원소는 맏아들 원담을 청주에 내보내며 저수가 「반드시 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 말렸어도 듣지 않았고, 둘째 원희를 유주에, 생질 고간을 병주에 두었습니다. 건안 4년(199) 역경에서 공손찬을 깨뜨려 네 주를 아울렀습니다.
원소가 날랜 군사 10만과 기병 1만으로 허를 치려 하자 저수는 백성이 지쳤으니 먼저 농사에 힘쓰며 조조의 변경을 흔들자고 했으나, 원소는 지금 쳐야 한다는 심배 · 곽도의 말을 따랐고 저수가 거느린 감군을 셋으로 나누었습니다. 건안 5년(200) 조조가 유비를 치러 동쪽으로 나서자 전풍은 그 뒤를 치자고 했으나, 원소는 아들의 병을 들어 따르지 않았고 전풍은 지팡이로 땅을 치며 애석해했습니다. 원소가 허로 나아가려 하자 전풍은 오래 버티며 날랜 군사로 번갈아 흔들어 조조를 지치게 하자고 거듭 말렸는데, 원소는 그가 군사의 마음을 꺾는다며 칼을 씌워 가두었습니다. 싸움이 시작되자 안량과 문추가 백마와 연진에서 잇달아 조조에게 베였습니다. 관도에서는 흙산과 망루를 쌓아 화살을 퍼부었으나 조조의 돌 날리는 수레에 망루가 부서졌고, 군량 수레는 기습에 불탔습니다. 백여 일을 맞선 끝에 법을 어긴 집안사람이 심배에게 갇히자 허유가 조조에게 달아났고, 조조는 몸소 5천 군사를 이끌고 밤에 오소를 쳐 군량을 지키던 순우경 등을 베었습니다. 원소는 원담에게 「저들이 순우경을 치는 사이 그 진영을 빼앗으면 돌아갈 곳이 없을 것」이라 하고 장합 · 고람에게 조조의 진영을 치게 했으나 떨어뜨리지 못했고, 두 장수는 조조에게 항복했습니다. 무너진 원소는 원담 등과 기병 8백으로 황하를 건너 달아났고, 『후한서』는 앞뒤로 죽은 이가 8만이라고 적습니다.
돌아온 원소는 「전풍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과연 그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하고 그를 죽였습니다. 배송지 주의 『선현행장』은 봉기가 「전풍이 패전 소식에 손뼉을 치며 웃었다」고 헐뜯었다고 적습니다. 원소는 건안 6년(201) 창정에서 다시 졌으나 흩어진 군사를 거두어 등을 돌린 성들을 평정했고, 패전 뒤 얻은 병으로 건안 7년(202)에 근심 속에 죽었습니다. 무제기는 피를 토하다 여름 5월에 죽었다고 적고, 『후한서』의 주에 인용된 『헌제춘추』는 하북의 남녀가 부모를 잃은 듯 눈물을 뿌렸다고 전합니다. 원소는 막내 원상을 아껴 뒤를 잇게 하려 했으나 드러내 정하지 못했고, 심배와 봉기가 원상을 받들자 맏아들 원담과 원상이 갈라져 싸웠습니다. 건안 9년(204) 업을 떨어뜨린 조조는 원소의 무덤에 제사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진수는 원소와 유표가 겉은 너그럽고 속은 시기하며, 꾀를 좋아하나 결단이 없고 인재가 있어도 쓰지 못했으며, 맏이를 버리고 아랫자식을 세워 뒤가 무너졌으니 불행 때문이 아니라고 평하고, 원소가 전풍을 죽인 것은 범증을 저버린 항우보다 훨씬 심하다고 했습니다. 범엽은 싸움터에서는 사나운 장수들이 목숨을 다투고 깊은 꾀에는 지혜로운 선비들이 마음을 기울였으니 그 밑천이 성대했다고 하면서도, 고집 세고 이기기를 좋아하며 맏아들을 가볍게 여긴 것을 망할 징조로 들었습니다.
然皆外寬內忌,好謀無決,有才而不能用,聞善而不能納及臨場決敵,則悍夫爭命;深籌高議,則智士傾心『삼국연의』 제2~32회
연의에서 원소는 제2회에 처음 나옵니다. 영제가 죽자 하진 앞에 나서서 정예 5천으로 새 황제를 세우고 환관을 쓸어버리겠다고 하는데, 연의는 그를 사도 원봉의 아들이자 원외의 조카로, 이때 사예교위로 소개합니다. 원소는 사방의 영웅을 불러 환관을 없애자고 권하고, 제3회에서 하진이 궁 안에서 죽자 궁문 밖에서 크게 외치며 군사를 이끌고 들어가 환관을 벱니다. 동탁이 잔치 자리에서 황제를 폐하겠다며 칼을 뽑자 「네 칼이 날카롭다면 내 칼도 날카롭지 않은 적이 없다」며 칼을 뽑아 맞서고, 제4회에서 부절을 동문에 걸어 두고 기주로 달아납니다.
제5회에서 원소는 조조의 격문에 응해 발해에서 3만 군사를 이끌고 오고, 조조가 네 대에 걸쳐 삼공을 낸 집안이라며 추천하자 몇 번 사양한 끝에 단에 올라 맹주가 됩니다. 화웅에게 장수들을 잃자 「안량과 문추가 오지 않은 것이 아깝다」고 합니다. 제6회에서는 동탁을 쫓자는 조조에게 군사가 지쳤다며 움직이지 않고, 옥새를 숨겼다며 손견을 몰아세웁니다. 제7회에서 봉기의 꾀로 한복에게서 기주를 얻고 반하에서 공손찬과 싸우는데, 앞장선 국의가 조운의 창에 떨어지고, 뒤이어 나타난 유비 · 관우 · 장비에 놀란 원소는 보도를 떨어뜨리고 달아납니다.
제21회에서 조조는 원소를 「겉은 사나우나 속은 겁이 많고 꾀를 좋아하나 결단이 없다」며 영웅이 아니라고 하고, 원소는 역경의 공손찬을 땅굴로 무너뜨립니다. 제22회에서 정현의 편지를 받고 유비를 도와 조조를 치기로 해 30만을 일으키고, 진림에게 격문을 짓게 합니다. 제24회에서는 막내아들의 병을 걱정하느라 조조의 뒤를 치자는 전풍의 말을 물리치고, 청주의 원담을 거쳐 온 유비를 업 밖 30리까지 나가 맞습니다. 제25회에서 오래 버티자는 전풍을 죽이려다 유비의 만류로 옥에 가두고, 안량이 관우에게 베이자 유비를 죽이려다 그의 말에 거둡니다. 제26회에서 문추마저 관우에게 베입니다.
제30회에서 원소는 70만 대군으로 관도에 진을 치고 천천히 싸우자는 저수를 가둡니다. 허유가 조조의 군량 편지를 가로채 허를 치자고 하지만, 심배의 편지로 허유가 기주에서 재물을 함부로 받은 일을 알게 되자 그를 꾸짖어 내쫓고, 허유는 조조에게 가서 오소를 치라고 일러 줍니다. 오소가 불타자 곽도의 말을 따라 장합 · 고람에게 조조의 진영을 치게 하고 장기를 오소로 보내지만 모두 지고, 곽도의 참소를 두려워한 장합 · 고람이 항복하며, 원소는 두건에 홑옷 차림으로 8백 기병과 달아납니다. 제31회에서 돌아가는 길에 전풍의 말을 들었더라면 하는 군사들의 울음을 듣고 뉘우치지만, 봉기가 「전풍이 옥에서 손뼉을 치며 웃었다」고 헐뜯자 칼을 보내고 전풍은 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어 창정에서 정욱의 십면매복 계책에 크게 져 피를 토합니다. 제32회에서 원상이 장료에게 지고 돌아오자 다시 피를 토하고, 유부인이 원상에게 뒤를 잇게 할지 묻자 고개를 끄덕인 뒤 피를 한 말 넘게 쏟고 죽습니다. 연의에서 원소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원성(생부는 원봉이라고도 함) · 숙부 원외 · 사촌 아우 원술 · 아내 유씨 · 아들 원담 · 원희 · 원상 · 생질 고간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사세삼공의 원본초다.
사세삼공의 집안이오. 격을 갖추시오.
명문의 말을 함부로 끊지 마시오.
…전풍의 말을 들을 것을.
이럴 리가 없다.
가문과 병력, 무엇이 모자라겠소.
…내가 사람 쓸 줄을 몰랐구려.
하북의 군세를 보았느냐.
…내가 또 결단을 못 했구나.
…피가 넘친다. 하북이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