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정남(正南) · 미상 ~ 204년 · 기주 위군 · 원소 휘하
파벌 싸움으로 원씨 가문을 분열시켰으나 마지막까지 항전한 충신
출전 · 『삼국지』 위서 원소전과 배송지 주의 『선현행장』 · 『영웅기』 · 『한진춘추』 ·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위서』 · 순욱전 · 『후한서』 원소전 · 원담전
심배는 자가 정남이며 위군 사람입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그의 일은 원소전과 그 주, 『후한서』 원소전에 남아 있습니다. 『선현행장』은 그가 젊어서부터 충성스럽고 굳세며 의기가 북받쳐 범할 수 없는 절개가 있었다고 적습니다. 『후한서』는 그가 거록의 전풍과 함께 곧은 성품 탓에 한복 밑에서 뜻을 얻지 못했다고 적고, 초평 2년(191) 기주를 얻은 원소는 그를 치중으로 삼아 크게 믿고 맡겼습니다. 『선현행장』은 원소가 그에게 심복의 소임을 맡겨 막부의 일을 아우르게 했다고 적습니다.
건안 4년(199) 원소가 허를 치려 할 때 심배는 봉기와 함께 군사의 일을 거느렸습니다. 저수가 서두르지 말자고 하자 심배는 곽도와 함께 병법에 열 배면 에워싸고 다섯 배면 친다며 지금 쳐야 한다고 했고, 원소는 이 말을 따랐습니다. 순욱은 「심배는 제멋대로 하나 꾀가 없다」고 평하며, 그와 봉기가 뒤를 맡으면 허유의 집안이 법을 어겼을 때 놓아주지 못해 허유가 변할 것이라 헤아렸습니다. 건안 5년(200) 관도에서 맞서던 중 허유의 집안이 법을 어기자 심배가 이를 붙잡아 가두었고, 허유는 조조에게 달아났습니다. 관도의 싸움에서 심배의 두 아들이 사로잡히자 맹대 · 곽도 · 신평이 그가 배반할 것이라 했으나, 사이가 나쁘던 봉기가 그는 옛사람의 절개를 따르는 사람이라 감싸 원소는 그를 내치지 않았습니다.
건안 7년(202) 원소가 죽자 무리는 맏이 원담을 세우려 했습니다. 『후한서』는 본디 교만하고 사치하여 원담의 미움을 받던 심배와 봉기가 원담 편의 신평 · 곽도에게 해를 입을까 두려워 원소의 유명을 거짓으로 꾸며 원상을 세웠다고 적고, 『삼국지』는 원소의 평소 뜻을 좇았다고 적습니다. 여양에서 원담이 군사를 더 청하자 심배 등은 주지 말자고 했고, 원담은 원상이 딸려 보낸 봉기를 죽였습니다. 건안 9년(204) 원상이 다시 원담을 치러 나가며 심배에게 업을 지키게 하자, 심배는 원담에게 글을 보내 형제의 의를 들어 곽도를 버리라고 했으나 원담은 듣지 않았습니다.
조조가 업을 치자 심배는 땅굴을 안에서 참호로 막았고, 장수 풍례가 돌문을 열어 조조의 군사 3백여 명을 들이자 성 위에서 큰 돌로 문을 쳐 닫아 들어온 이들을 모두 죽게 했습니다. 조조가 둘레 40리의 해자를 처음에 얕게 파자 바라보고 웃었으나, 조조는 하룻밤에 너비와 깊이 두 길로 파고 장수의 물을 끌어 성에 대었고, 5월부터 8월까지 성안에서 굶어 죽은 이가 절반을 넘었습니다. 원상의 구원군이 깨져 성안이 무너졌는데도, 『후한서』에 따르면 심배는 굳게 지켜 죽기로 싸우자며 군사를 북돋웠고 성을 돌던 조조를 쇠뇌로 쏘아 거의 맞힐 뻔했습니다.
그러나 형의 아들 심영이 지키던 동문을 밤에 열어 조조의 군사를 들였고, 심배는 성안에서 맞서다 사로잡혔습니다. 『선현행장』에 따르면 그는 성이 열리자 신평 · 곽도가 기주를 망쳤다고 노해 옥에 있던 신평의 집안을 죽이게 했고, 끌려가는 길에 신평의 아우 신비가 말채찍으로 머리를 치자 「개 같은 놈들, 바로 너희 때문에 우리 기주가 깨졌다. 너를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라고 맞받았습니다. 조조가 성문을 연 이가 그의 조카라 알리자 「어린것이 쓸모없어 이 지경에 이르렀다」 했고, 쇠뇌가 어찌 그리 많았느냐 묻자 「적은 것이 한스러울 뿐」이라 답했습니다. 조조는 원씨 부자에게 충성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살리려 했으나, 그가 끝내 굽히지 않고 신비 등이 울부짖기를 그치지 않자 그를 베었습니다. 『삼국지』는 그의 목소리와 기운이 굳세어 끝내 굽히는 말이 없었고 보는 이들이 다 탄식했다고 적고, 『선현행장』은 그가 형장에서 칼 든 이를 꾸짖어 북쪽을 향하게 하고 「우리 임금은 북쪽에 계신다」고 했다고 전합니다.
그가 우물에 숨었다가 잡혔다는 『산양공재기』와 『헌제춘추』의 말을 두고 배송지는 「심배는 한 시대의 열사요 원씨를 위해 죽은 신하」라며 믿을 수 없다고 물리쳤습니다. 한편 업을 얻은 조조는 원씨의 다스림에서 호족이 멋대로 굴어 심배의 일족은 죄인을 숨겨 주기까지 했다는 영을 내렸습니다.
配聲氣壯烈,終無撓辭,見者莫不歎息臣松之以爲配一代之烈士,袁氏之死臣『삼국연의』 제13회 · 제22회 · 제26~27회 · 제30~32회
연의에서 심배는 제13회에 원소의 모사로 처음 나와, 여포가 연주를 얻으면 기주를 노릴 것이니 조조를 돕자고 권합니다. 제22회 조조를 치는 의논에서는 명공의 신무로 하북의 강성함을 거느리면 손바닥 뒤집듯 쉽다며 서두르자고 하고, 봉기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는 통군이 됩니다. 순욱은 그를 두고 「제멋대로 하나 꾀가 없다」고 합니다. 제26회에서는 곽도와 함께 문추를 벤 이도 관우라며 유비를 헐뜯습니다.
제30회 관도에서 심배는 쇠뇌수 1만을 양쪽에 숨겨 조조를 물리치고, 흙산을 쌓아 높은 망루에서 화살을 퍼붓게 하며, 땅굴을 파는 굴자군을 내지만 조조의 벽력거와 긴 참호에 막힙니다. 오소는 군량을 쌓아 둔 곳이니 굳게 지켜야 한다고 했다가 업으로 돌아가 군량을 대라는 명을 받고, 허유가 민간의 재물을 함부로 받았다며 그 자식과 조카를 옥에 가두었다는 글을 보내 허유가 조조에게 달아나게 합니다.
제31~32회에서 원소가 뒤를 의논하자 봉기와 함께 원상을 돕고, 죽어 가는 원소가 유부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머리맡에서 유언을 씁니다. 원상과 함께 원담에게 구원병을 보내지 말자고 하고, 원상이 평원을 치러 가자 업을 지킵니다. 풍례가 땅굴로 들어오자 돌로 문을 쳐 막고, 조조가 얕은 해자를 파자 비웃다가 장하의 물에 성이 잠깁니다. 신비가 원상의 인수와 옷을 창에 걸어 항복을 부르자 성 위에서 신비의 가족 80여 명을 베고, 이에 원한을 품은 조카 심영이 서문을 열어 조조의 군사를 들입니다. 서황에게 사로잡힌 심배는 신비와 서로 꾸짖고, 「살아서는 원씨의 신하요 죽어서는 원씨의 귀신」이라며 항복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인은 북쪽에 계시니 남쪽을 향해 죽게 하지 말라」 하고 북쪽을 향해 꿇어앉아 목을 내밀고, 조조는 그 충의를 가엾게 여겨 성 북쪽에 묻어 줍니다. 연의에서 심배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형의 아들 심영 · 아들 둘(관도에서 조조에게 사로잡힘)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업성은 아직 있다!
하북의 신하요. 두 마음은 없소.
말이 길면 의심을 사오.
…성이 흔들리는구려.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아프오.
끝까지 남는 자가 충신이오.
…북쪽을 향해 목을 내밀겠소.
업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북쪽을 보고 지겠소.
내 주군은 북에 있다. 북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