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원(子遠) - 추정 · 미상 ~ 237년 · 연주 진류군 · 유비 휘하
누이가 유비의 황후가 되고 제갈량이 죽은 뒤 한중을 맡은 외척 장수
출전 · 『삼국지』 촉서 양희전(『계한보신찬』과 진수가 덧붙인 글) · 목황후전과 배송지 주의 손성 『촉세보』 · 선주전 · 후주전 · 마량전의 마속 대목 · 위연전 · 왕평전 · 유언전 · 이엄전 배송지 주의 제갈량 공문 · 『화양국지』 유이목지 · 유선주지 · 유후주지
오의는 『삼국지』에 제 전이 없고, 진수가 양희전의 『계한보신찬』에 덧붙인 한 대목과 목황후전 · 선주전 · 후주전 등에 흩어진 몇 줄, 그리고 『화양국지』에 그의 일이 남아 있습니다. 『삼국지』는 그의 이름을 오일로 적고 『화양국지』와 연의는 오의로 적으며, 자는 자원이고 진류 사람입니다. 목황후전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는데, 아버지가 본디 유언과 옛 사귐이 있어 온 집안이 유언을 따라 촉으로 들어갔습니다. 딴 뜻을 품고 있던 유언은 관상을 잘 보는 이가 오의의 누이를 두고 크게 귀해질 상이라 하자 누이를 아들 유모의 아내로 삼았고, 누이는 유모가 죽은 뒤 과부로 지냈습니다.
유장 때 오의는 중랑장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부에서 유비를 막다가 항복했습니다. 선주전은 유장이 보낸 유괴 · 냉포 · 장임 · 등현 등이 부에서 모두 져서 면죽으로 물러났다고 적고, 『화양국지』는 이 무리에 오의를 함께 적으며 건안 18년(213) 오의가 유비의 군중에 와서 항복해 토역장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건안 19년(214)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오의는 호군 · 토역장군이 되었습니다. 선주전은 유비가 유장이 쓰던 동화 · 황권 · 이엄과 유장의 인척인 오의 · 비관 등을 모두 드러난 자리에 앉혀 그 재능을 다하게 했다고 적습니다. 그 무렵 손부인이 오로 돌아가자 신하들이 과부로 지내던 오의의 누이를 맞으라고 권했고, 유비가 유모와 같은 집안이라 망설이자 법정이 진 문공과 자어의 옛일을 들어 권해 부인으로 맞았습니다. 누이는 건안 24년(219) 한중왕후, 장무 원년(221) 황후가 되었습니다.
장무 원년(221) 오의는 관중도독이 되었고, 『화양국지』는 건흥 원년(223) 후주가 즉위하자 그가 위연과 함께 도정후에 봉해졌다고 적습니다. 건흥 6년(228) 제갈량이 기산으로 나설 때, 마량전의 마속 대목은 위연 · 오의 같은 노장이 있어 논하는 이들이 모두 이들을 선봉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으나 제갈량이 무리의 뜻을 어기고 마속을 뽑았고, 마속은 가정에서 장합에게 졌다고 적습니다.
건흥 8년(230) 오의는 위연과 함께 남안의 경계로 들어가 위나라 장수 비요를 깨뜨렸고, 고양향후로 올려 봉해지고 좌장군이 되었습니다. 위연전은 이 싸움을 위연이 서쪽으로 강중에 들어가 양계에서 위나라 후장군 비요 · 옹주자사 곽회를 크게 깨뜨린 일로 적고, 『화양국지』는 위연과 오의가 함께 양계에서 두 사람을 깨뜨렸다고 적습니다. 이듬해 제갈량이 이평을 탄핵하며 올린 공문(배송지 주)에 이름을 함께 올린 장수들 가운데, 오의는 좌장군으로 형주자사를 겸한 고양향후로 나옵니다.
건흥 12년(234) 제갈량이 죽고 위연이 양의와 다투다 죽자, 오의는 거기장군 · 가절이 되어 한중을 거느리고 옹주자사를 겸했으며 제양후로 올려 봉해졌습니다. 왕평전은 왕평이 거기장군 오의의 버금이 되어 한중에 머물며 한중태수를 겸했다고 적습니다. 오의는 건흥 15년(237)에 죽었고, 왕평이 그를 이어 한중을 거느렸습니다. 목황후전은 오의가 거기장군에 올라 현후에 봉해졌다고 적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손성의 『촉세보』는 손자 오교가 이웅의 땅에 떨어져 서른 해를 지내면서도 끝내 이웅에게 굽히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진수는 그의 행적을 잃어 전을 짓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양희는 연희 4년(241)에 지은 『계한보신찬』에서 「거기장군은 높고 굳세며 두루 사람을 아꼈고, 약한 힘으로 강한 적을 눌러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았다」고 기렸습니다. 사서에 남은 오의의 일은 이것뿐입니다.
車騎高勁,惟其汎愛,以弱制強,不陷危墜時有宿將魏延、吳壹等,論者皆言以為宜令為先鋒『삼국연의』 제62~65회 · 제77회 · 제91~92회 · 제98~102회 · 제105회
연의에서 오의는 제62회에 처음 나오며, 연의는 그를 유장의 외숙으로 그립니다. 등현을 잃었다는 소식에 유장의 맏아들 유순이 낙성을 지키러 나서자, 누가 도울지 묻는 유장 앞에 외숙 오의가 스스로 가겠다고 나섭니다. 그는 오란 · 뇌동을 부장으로 삼아 2만을 이끌고 낙성에 이르고, 부강의 물을 터서 유비군을 잠기게 하자는 냉포의 꾀를 따릅니다.
제64회에서 장임이 거짓으로 져서 장비를 끌어내자 오의가 한 무리 군사로 길을 막아 장비를 에워싸지만, 강가에서 나타난 조운과 맞붙어 한 합 만에 사로잡힙니다. 유비가 항복하겠느냐고 묻자 「이미 붙잡혔는데 어찌 항복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항복하며, 제갈량에게 낙성을 지키는 이들과 성 동쪽 다리의 이름이 금안교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장임이 죽은 뒤에는 엄안과 함께 촉의 항장으로 앞장서 낙성에 항복을 외치고, 장익과 함께 조운을 이끌고 외수 쪽의 강양 · 건위를 평정하러 갑니다. 제65회에서는 성도를 얻은 유비가 벼슬을 내린 항장들 가운데 이름이 오릅니다.
제77회에서 법정은 한중왕 유비에게 오의의 누이를 왕비로 맞으라고 권합니다. 관상 보는 이가 크게 귀해질 상이라 한 여인으로, 유언의 아들 유모와 혼인하기로 했으나 유모가 일찍 죽어 과부로 지낸다는 것입니다. 유비가 유모와 같은 집안이라 꺼리자 법정은 진 문공과 회영의 옛일을 들어 권합니다.
제91회 제갈량의 첫 출사에서 오의는 좌장군 · 고양후로 이름이 오르고, 제92회에서는 남안을 지킵니다. 제98회에서는 오반과 함께 영채 밖에 숨었다가 장호 · 악침의 돌아갈 길을 끊고, 제99회에서는 마충 · 장억 · 오반과 함께 장합 · 대릉을 맞아 싸우다 물러나며 적을 끌어들입니다. 제100회에서는 오반과 함께 진량을 복병으로 치고, 위군의 옷을 입은 군사를 이끌고 조진의 영채로 쳐들어갑니다. 제101회에서는 기산의 영채를 지키다가 서천으로 물러나고, 제102회에서는 오반과 함께 뗏목 군사를 맡아 위수의 뜬다리를 태우러 가는데, 오반은 화살에 맞아 죽고 오의의 군사는 위연 · 마대의 패잔병을 구해 강가에서 막아 냅니다. 제105회에서 제갈량이 죽자 후주는 그의 유언에 따라 오의를 거기장군으로 삼고 가절을 주어 한중을 거느리게 하며, 강유와 함께 한중에 머물러 위를 막게 합니다. 연의에서 오의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누이 목황후(유비의 황후) · 일족 아우 오반 · 손자 오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촉의 외척 오자원이오.
한중을 맡은 사람이오. 여기는 조용하오.
요란하게 할 것 없소. 차분히 갑시다.
…방비를 다시 살펴야겠군.
흔들리면 국경이 흔들리오.
국경이 조용한 것이 내 공이오.
…한 곳을 놓쳤구려.
최전선은 흔들리지 않았소.
…문 하나가 헐거웠소.
한중의 문은 굳게 닫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