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봉선(奉先) · 미상 ~ 198년 · 병주 오원군 구원현 · 한 세력의 주인
섬기던 정원과 동탁을 죽이고 떠돌다 하비에서 조조에게 죽은 비장
출전 · 『삼국지』 위서 여포전과 배송지 주의 『영웅기』 · 『조만전』 · 『구주춘추』 · 『헌제춘추』 · 『위씨춘추』 · 위서 동탁전 · 무제기 · 장막전 · 전위전 · 순유전 · 촉서 선주전 · 『후한서』 여포전 · 동탁전 · 왕윤전 · 효헌제기
여포는 자가 봉선이며 오원군 구원현 사람입니다. 날래고 용맹하여 병주에서 일했는데, 병주자사 정원이 기도위로 하내에 머물며 그를 주부로 삼아 크게 아꼈습니다. 중평 6년(189) 영제가 죽자 정원은 낙양에 와서 하진과 함께 환관들을 없애려 했고 집금오가 되었습니다. 하진이 죽고 도성에 들어온 동탁은 정원의 군사를 아우르려고, 정원의 믿음을 받는 여포를 꾀어 그를 죽이게 했습니다. 여포가 정원의 목을 베어 바치자 동탁은 그를 기도위로 삼아 부자의 맹세를 맺었습니다. 여포는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고 힘이 남달라 「비장」이라 불렸고, 중랑장에 올라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동탁은 남이 저를 노릴까 두려워 드나들 때마다 여포에게 몸을 지키게 했고, 『후한서』 동탁전은 도읍을 옮길 때 여포를 시켜 황제들의 능을 파헤치게 했다고 적습니다. 초평 2년(191) 여포는 기독으로 대독호 호진과 함께 양인의 손견을 치러 갔으나, 두 사람이 서로 맞지 않아 군중이 놀라 흩어지고 손견에게 쫓겨 달아났습니다. 동탁은 성미가 급해 조금만 뜻에 어긋나도 손에 든 작은 극을 여포에게 던졌고, 여포는 날쌔게 피하고 사죄했으나 속으로 원망을 품었습니다. 또 중합을 지키다 동탁의 시비와 몰래 정을 통해 일이 드러날까 늘 불안했습니다.
같은 병주 사람인 사도 왕윤은 여포를 두텁게 대해 왔습니다. 여포가 찾아가 동탁에게 죽을 뻔한 일을 털어놓자, 복야 사손서와 동탁을 없애기로 꾀하던 왕윤은 안에서 호응해 달라고 했습니다. 여포가 부자 사이를 어찌하느냐 묻자 왕윤은 「그대는 본디 성이 여씨이니 뼈와 살을 나눈 사이가 아니오」라 답했습니다. 초평 3년(192) 4월 천자의 병이 나은 것을 하례하는 모임에서, 여포는 같은 군 사람인 기도위 이숙 등에게 위사의 옷을 입고 액문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숙의 극이 갑옷에 막혀 동탁이 수레에서 떨어지며 「여포는 어디 있느냐」 외치자, 여포는 조서가 있다며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왕윤은 그를 장군으로 삼고 온후에 봉해 함께 조정을 맡았으나, 『후한서』 왕윤전은 왕윤이 여포를 칼잡이로 여겨 가볍게 대해 둘 사이가 벌어졌다고 적습니다.
여포가 양주 사람들을 꺼리자 이각 등이 뭉쳐 장안을 쳤고, 여포는 막지 못해 동탁이 죽은 지 두 달이 못 되어 기병 수백과 무관을 빠져나갔습니다. 원술은 그의 이랬다저랬다 함을 싫어해 받아 주지 않았고, 원소에게 가서는 함께 상산에서 장연을 쳤습니다. 여포는 적토라는 좋은 말을 타고 성렴 · 위월 등과 적진에 뛰어들어 장연을 깨뜨렸는데, 배송지 주에 인용된 『조만전』은 당시 사람들이 「사람 가운데 여포가 있고 말 가운데 적토가 있다」고 했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군사를 더 달라 하고 장졸이 노략질을 일삼자 원소가 밤에 장사들을 보내 죽이려 했고, 여포는 이를 피해 하내의 장양에게 갔습니다.
흥평 원년(194) 조조가 다시 도겸을 치러 간 사이, 장막과 진궁이 여포를 맞아 연주목으로 세우니 군현이 모두 호응했습니다. 복양의 싸움에서 여포는 먼저 기병으로 청주병을 들이쳐 조조의 진을 무너뜨렸고, 조조는 불길을 뚫고 나오다 말에서 떨어져 왼손바닥을 데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헌제춘추』는 여포의 기병이 조조를 붙잡고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백여 일을 맞서다 메뚜기 떼로 양식이 떨어져 물러난 여포는, 이듬해 정도와 거야에서 잇달아 지고 진궁과 이끈 만여 명마저 조조의 복병에 무너지자 동쪽의 유비에게 갔습니다.
건안 원년(196) 유비가 원술을 치러 간 사이 여포는 하비를 기습해 유비의 처자를 사로잡았습니다. 『삼국지』 선주전은 하비를 지키던 조표가 배반해 여포를 맞아들였다 하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영웅기』는 장비가 조표를 죽여 성안이 어지러운 틈에 단양 군사가 성문을 열었다고 적습니다. 여포는 돌아온 유비를 소패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서주자사라 일컬었습니다. 원술의 장수 기령이 3만으로 유비를 치자 여포는 달려가 「나는 싸움을 붙이기를 좋아하지 않고 싸움을 말리기를 좋아한다」 하고, 영문 가운데 세운 극의 작은 가지를 한 발에 맞혀 두 쪽이 군사를 거두게 했습니다. 건안 2년(197) 황제를 일컬은 원술이 여포의 딸을 며느리로 청하자 패국의 상 진규가 말렸고, 여포는 길을 떠난 딸을 되돌리고 원술의 사자 한윤을 허로 보내 목 베게 했으며 좌장군이 되었습니다. 원술이 한섬 · 양봉과 함께 쳐들어오자 여포는 진규 · 진등 부자의 꾀대로 두 사람을 돌려세워 원술의 장수 장훈을 크게 깨뜨렸습니다.
건안 3년(198) 여포는 다시 원술 편에 서서 고순을 보내 소패의 유비를 깨뜨렸습니다. 조조가 몸소 하비에 이르러 글을 보내자 여포는 항복하려 했으나, 조조에게 지은 죄가 깊은 진궁 등이 막았습니다. 『후한서』는 여포가 밖에 진을 치고 진궁이 안을 지키자는 계책을 아내가 막았다고 적습니다. 조조는 순유와 곽가의 계책으로 사수와 기수를 터 성에 물을 댔습니다. 여포전은 여포가 날쌔고 사나웠으나 꾀가 없고 시기가 많아 장수들을 다스리지 못했고, 장수들은 저마다 딴마음을 품었다고 적습니다. 에워싸인 지 석 달, 장수 후성 · 송헌 · 위속이 진궁을 묶고 무리를 이끌어 항복했습니다.
여포는 부하들과 백문루에 올랐다가 포위가 급해지자 내려와 항복했습니다. 묶인 여포가 너무 조이니 늦추어 달라 하자 조조는 「범을 묶는데 조이지 않을 수 없다」 했습니다. 여포가 명공이 보병을, 자신이 기병을 거느리면 천하를 평정하기 어렵지 않다고 하자 조조의 얼굴에 망설임이 떠올랐습니다. 이때 유비가 「명공께서는 여포가 정건양과 동태사를 섬기던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하니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고, 여포는 유비를 가리켜 「이놈이 가장 믿지 못할 자」라 외쳤습니다. 조조는 여포를 목 졸라 죽이고 진궁 · 고순과 함께 그 머리를 허로 보냈습니다. 『후한서』 효헌제기는 이를 12월 계유일의 일로 적습니다. 진수는 「여포는 울부짖는 범의 용맹이 있었으나 뛰어난 꾀가 없었고, 가볍고 교활하며 이랬다저랬다 하여 오직 이익만 보았다. 예부터 지금까지 이러고서 멸망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고 평했습니다. 『후한서』를 쓴 범엽은 「원술은 탐욕스러웠고 여포 또한 뒤집기를 거듭했다」고 적었습니다.
呂布有虓虎之勇,而無英奇之略,輕狡反覆,唯利是視人中有呂布,馬中有赤兔『삼국연의』 제3~6회 · 제8~9회 · 제11~19회
연의에서 여포는 제3회에 처음 나옵니다. 형주자사 정원의 의아들로, 온명원 잔치에서 폐립에 맞선 정원의 등 뒤에 방천화극을 들고 서 있다가 이튿날 동탁의 군사를 크게 깨뜨립니다.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호분중랑장 이숙이 하루 천 리를 달리는 적토마와 황금 · 구슬 · 옥대를 들고 찾아와 달래자, 여포는 그날 밤 정원의 막사에 들어가 「내 어찌 네 아들이 되겠느냐」 하며 목을 베고 동탁을 의부로 모십니다.
제5회에서 여포는 호뢰관 앞에서 방열과 목순을 찔러 떨어뜨리고 무안국의 손목을 끊으며, 연의는 그 모습을 두고 「사람 가운데 여포, 말 가운데 적토」라 적습니다. 공손찬을 뒤쫓던 그에게 장비가 「세 성을 섬긴 종놈」이라 외치며 달려들어 오십여 합을 싸우고, 관우와 유비가 차례로 뛰어들어 셋이 에워싸자 여포는 관 위로 물러납니다. 제6회에서는 동탁의 명으로 황제들의 능을 파헤치고, 형양에서 뒤쫓아 온 조조를 깨뜨립니다.
제8회에서 왕윤은 가기 초선을 여포에게 주기로 해 놓고 동탁에게 바치는 연환계를 씁니다. 초선에게 빠진 여포는 봉의정에서 그를 끌어안았다가 동탁이 던진 화극을 쳐서 떨어뜨리고 달아납니다. 제9회에서 왕윤이 「장군은 여씨요 태사는 동씨이니, 극을 던질 때 부자의 정이 어디 있었느냐」 하자 여포는 팔을 찔러 피로 맹세하고, 북액문에서 「내 아들 봉선은 어디 있느냐」 외치는 동탁의 목을 극으로 찌릅니다. 이어 우보에게 진 이숙을 베지만 이각 · 곽사에게 장안을 잃고, 처자를 버린 채 원술에게로 달아납니다.
제11회에서 원술과 원소, 장양을 거쳐 장막에게 간 여포는 진궁의 권유로 연주를 차지하지만, 태산의 험한 길에 복병을 두자는 진궁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제12회에서는 진궁의 꾀로 복양성에 조조를 끌어들여 불을 지르고, 불빛 속에서 마주친 조조의 투구를 극으로 두드리며 「조조는 어디 있느냐」 묻다가 누런 말 탄 자가 그라는 말에 속아 놓칩니다. 정도에서도 진 그는 제13회에서 서주의 유비에게 몸을 맡기고, 제14회에서 장비에게 매를 맞은 조표의 편지를 받아 서주를 빼앗습니다.
제16회에서 여포는 원술의 장수 기령과 유비를 한자리에 불러, 원문 밖 백오십 보에 제 화극을 꽂게 하고 화살 한 대로 그 작은 가지를 맞혀 싸움을 말립니다. 아내 엄씨가 낳은 딸을 원술의 아들에게 보내려다 진규의 말을 듣고 되돌리며, 장비가 말을 빼앗자 소패를 쳐서 유비를 조조에게로 쫓아 보냅니다. 제17회에서는 진등의 꾀로 한섬 · 양봉을 돌려세워 원술의 일곱 갈래 군을 깨뜨립니다.
제19회에서 여포는 진등의 속임수에 서주와 소패를 잃고 하비에 갇힙니다. 진궁이 성 안팎에서 서로 돕는 계책을 내지만 엄씨의 눈물과 초선의 만류에 주저앉고, 조조가 기수와 사수를 터 성을 물에 잠기게 하자 처첩과 술만 마시다가 금주령을 내립니다. 곤장을 맞은 후성이 적토마를 훔쳐 조조에게 가고, 송헌과 위속이 문루에서 잠든 여포를 묶습니다. 백문루에서 여포는 공이 대장이 되고 자신이 부장이 되면 천하를 평정하기 어렵지 않다고 청하지만, 유비가 정건양과 동탁의 일을 보지 못하셨느냐고 하자 「이놈이 가장 신의 없는 자」라 외치고, 끌려 내려가며 「귀 큰 놈아, 원문에서 극을 쏘아 맞힌 때를 잊었느냐」고 소리칩니다. 조조는 그를 목 졸라 죽인 뒤 머리를 벱니다. 연의에서 여포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내 · 딸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천하제일이 왔다!
천하에 나를 당할 자가 있더냐. 말로든 창으로든.
말로 겨루자니, 사내답지 못하구나.
…적토마가 있었다면.
이 몸이 밀린다고? 있을 수 없다.
사람 중에 여포, 말 중에 적토라 하였다.
…또 밧줄인가. 백문루의 그날처럼.
이만하면 알겠느냐!
…나를 묶을 자가 있단 말인가.
…이 몸을 묶은 것이 부하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