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미상 · 미상 ~ 미상 (198년 이후) · 미상 · 여포 휘하
하비가 에워싸이자 진궁을 묶고 조조에게 항복한 여포의 장수
출전 · 『삼국지』 위서 무제기 · 여포전 · 『후한서』 여포전
송헌은 여포의 장수입니다. 자와 출신, 태어나고 죽은 해는 전하지 않고, 『삼국지』 무제기와 여포전에 이름이 한 번씩 나올 뿐입니다.
건안 3년(198) 조조는 하비에서 여포를 에워싸고, 오랜 싸움에 군사가 지쳐 물러나려다 순유와 곽가의 계책으로 사수와 기수를 터 성에 물을 댔습니다. 여포전은 여포가 날쌔고 사나웠으나 꾀가 없고 시기가 많아 무리를 다스리지 못했고, 장수들이 저마다 딴마음을 품어 싸울 때마다 졌다고 적습니다. 에워싸인 지 석 달 만에 위아래의 마음이 갈라지자 여포의 장수 후성 · 송헌 · 위속이 진궁을 묶고 무리를 이끌어 항복했습니다. 무제기는 물을 댄 지 한 달 남짓 만에 여포의 장수 송헌 · 위속 등이 진궁을 붙잡고 성을 들어 항복해, 조조가 여포와 진궁을 사로잡아 모두 죽였다고 적습니다. 『후한서』 여포전은 이 일을 후성이 장수들과 함께 진궁과 고순을 붙잡아 항복한 것으로 적고 송헌의 이름은 들지 않습니다.
사서에 남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항복한 뒤 송헌이 무슨 벼슬을 했는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전하지 않습니다.
月餘,布將宋憲、魏續等執陳宮,舉城降,生禽布、宮,皆殺之太祖塹圍之三月,上下離心,其將侯成、宋憲、魏續縛陳宮,將其衆降『삼국연의』 제11회 · 제16~19회 · 제25회
연의에서 송헌은 제11회에 처음 나옵니다. 복양에서 여포 곁에 늘어선 여덟 건장 가운데, 장료와 장패가 저마다 이끄는 여섯 장수의 하나로 이름이 불리고, 학맹 · 조성 · 성렴과 함께 달아나는 조조의 길을 막습니다. 제16회에서는 위속과 함께 원술의 사자 한윤을 따라 여포의 딸을 보내는 길에 나서지만, 진규의 말을 들은 여포가 장료를 보내 딸을 도로 데려옵니다. 이어 여포의 명으로 위속과 산동에서 말 삼백여 필을 사 오다가 소패 가에서 절반을 빼앗기는데, 산적으로 꾸민 장비의 짓이라고 알리자 여포가 소패를 칩니다. 그날 밤 성을 빠져나가는 유비 일행을 위속과 함께 막아섰다가 장비에게 쫓겨납니다. 제17회에서는 원술의 일곱 갈래 군을 맞아 위속과 갈석으로 나가 진란을 막고, 제18회에서는 위속과 서쪽 여남 · 영천을 치러 갑니다.
제19회에서 송헌은 위속과 함께 여포의 처자와 돈과 곡식을 하비로 옮깁니다. 하비가 물에 잠긴 가운데 후성이 금주령을 어겼다고 곤장 쉰 대를 맞자, 위속과 함께 찾아가 「여포는 처자만 아끼고 우리를 지푸라기처럼 여긴다」 하고는 그를 버리고 달아나자고 합니다. 위속이 차라리 여포를 사로잡아 조조에게 바치자고 하자 셋은 뜻을 모읍니다. 이튿날 문루에서 잠든 여포의 화극을 송헌이 먼저 훔치고 위속과 함께 그를 묶은 뒤, 화극을 성 아래로 던지고 성문을 엽니다. 백문루에서 여포가 장수들을 박하게 대하지 않았다고 하자, 송헌은 처첩의 말만 듣고 장수의 계책은 듣지 않았는데 어찌 박하지 않다 하느냐고 맞받습니다.
제25회 백마에서 조조가 「그대는 여포 밑의 맹장이라 들었다」며 안량과 싸우게 하자, 송헌은 창을 들고 나갔다가 세 합을 넘기지 못하고 안량의 칼에 베입니다. 연의에서 송헌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하비에서 왔소.
주인도 묶어 본 몸이오. 무서울 것 없소.
의리 값이 떨어진 세상 아니오?
…이번 상대는 급이 다른가.
그래도 살길은 찾는다.
결단이 빠른 자가 이기오.
하북의 창은 피했어야 했는데….
고른 길이 옳았소.
…또 목이 위태롭구려.
…여포를 묶은 값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