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孫和

자 자효(子孝) · 224년 ~ 253년 · 양주 오군 부춘현 · 손견 휘하

손화 초상

이궁의 변이라는 끔찍한 후계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 희생된 태자

능력치

통솔31무력39지력67정치71매력73

카드

공격력 3체력 2비용 1값어치 5직군 능리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오주오자전(손화전 · 손패전) · 오주전 · 삼사주전(손량전 · 손호전) · 비빈전 · 육손전 · 오찬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통어』 · 『오력』 · 『오록』

손화는 자가 자효이며 손등 · 손려의 아우로 손권의 셋째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낭야 사람 왕부인인데,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총애를 받은 덕에 아낌을 받았습니다. 열네 살에 따로 궁의 호위를 두고 중서령 감택에게 글을 배웠으며, 배우기를 좋아하고 선비들에게 몸을 낮추어 크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슬기로워 손권이 늘 곁에 두었고, 글을 좋아하면서 말타기와 활쏘기도 잘했습니다. 제갈일이 거짓으로 위에 항복하는 척하며 제갈탄을 꾀어 손권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기다리자, 손화는 싸움은 흉한 일이라며 근심해 함께 먹고 마시지도 않고 여러 번 글을 올려 신중하라고 간했습니다.

적오 5년(242) 정월 열아홉에 태자가 되어 감택이 태부, 설종이 소부를 맡았습니다. 그는 관리들이 조목조목 적은 글로 남의 일을 들추는 풍조를 간사한 이가 화를 꾸밀 길이라며 끊자고 했고, 도독 유보와 서자 정안이 서로 헐뜯자 「문무로 일하는 이가 몇이나 되는데 틈을 타 서로 해치려 하느냐」 하며 둘을 다 풀어 주었습니다. 선비는 학문과 활쏘기 · 말타기를 익혀야 한다며 바둑과 놀이에 날을 허비하는 것을 나무랐고, 곁에 있던 여덟 사람에게 이를 바로잡는 글을 짓게 하니 중서자 위요가 논을 지어 올렸습니다.

그해 8월 아우 손패가 노왕이 되었는데, 손권은 그를 손화와 다름없이 아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은기의 『통어』에 따르면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한 궁에 살며 예우에 차등이 없다가, 태자와 왕은 위아래의 차례가 있으니 궁과 관속을 나누어야 한다는 의논에 따라 궁을 나누면서 틈이 벌어졌습니다. 시종과 빈객이 두 편을 짓고 그 의심이 대신들에게까지 번져, 승상 육손 · 대장군 제갈각 · 태상 고담 · 표기장군 주거 · 회계태수 등윤 등은 태자를 받들고 표기장군 보즐 · 진남장군 여대 · 대사마 전종 · 좌장군 여거 · 중서령 손홍 등은 노왕에게 붙으니 나라 안팎의 관료가 둘로 갈렸습니다.

그 뒤 손화의 어머니 왕부인과 손권의 큰딸 전공주 사이에 틈이 생겼습니다. 손권이 앓아눕자 손화가 사당에 제사하러 갔는데, 아내의 숙부 장휴의 집이 사당 가까이 있어 그곳을 들렀습니다. 전공주는 사람을 시켜 엿보게 하고는 태자가 사당에 있지 않고 처가에서 일을 꾸민다고 했고, 또 왕부인이 손권이 앓는 것을 보고 기쁜 기색을 띠었다고 했습니다. 손권이 크게 노하자 왕부인은 근심 끝에 죽었고 손화의 총애도 차츰 줄었습니다. 노왕이 넘보는 뜻이 커지자 육손 · 오찬 · 고담 등이 적자와 서자의 의리를 여러 번 아뢰었으나, 전기 · 양축 등 노왕의 무리가 날마다 참소해 오찬은 옥에서 죽고 고담은 교주로 귀양 갔습니다. 육손도 거듭 꾸지람을 받다 적오 8년(245) 울분 속에 죽었습니다. 『통어』에 따르면 손권은 시중 손준에게 「자제가 화목하지 않고 신하가 편을 가르니 원씨처럼 망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겠다」고 걱정하며 후계를 바꿀 뜻을 품었습니다.

손권은 여러 해 망설이다 마침내 손화를 가두었습니다. 표기장군 주거와 상서복야 굴황이 장수와 관리들을 이끌고 머리에 진흙을 바르고 스스로 몸을 묶은 채 여러 날 대궐에 나아가 태자를 청하자, 백작관에 올라 이를 본 손권은 몹시 싫어했습니다. 손화를 폐하고 손량을 세우려 하자 무난독 진정과 오영독 진상이 진 헌공이 신생을 죽이고 해제를 세워 나라가 어지러워진 일을 들어 글을 올렸고, 주거 · 굴황도 그치지 않고 간했습니다. 크게 노한 손권은 진정 · 진상의 일족을 죽이고 주거 · 굴황에게 곤장 백 대를 쳤으며, 적오 13년(250) 손화를 고장으로 옮기니 간하다 죽거나 쫓겨난 신하가 열을 넘어 사람들이 다 원통해했습니다. 같은 때 노왕 손패에게도 죽음이 내려졌습니다. 『오서』에 따르면 손권은 병들어 누운 뒤 뉘우쳐 손화를 불러 다시 세우려 했으나, 전공주와 손준 · 손홍이 굳이 다투어 그만두었습니다.

태원 2년(252) 정월 손화는 남양왕에 봉해져 장사로 갔습니다. 그해 4월 손권이 죽고 정사를 쥔 제갈각은 손화의 아내 장씨의 외삼촌이었습니다. 장씨가 황문 진천을 건업에 보내 안부를 묻자 제갈각이 「비에게 반드시 남보다 낫게 해 드리겠다고 전하라」고 한 말이 새어 나갔고, 제갈각이 도읍을 옮길 뜻으로 무창궁을 손보게 하자 민간에서는 손화를 맞으려 한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건흥 2년(253) 10월 제갈각이 손준에게 죽자, 손준은 이를 빌미로 손화의 인수를 빼앗고 신도로 옮긴 뒤 사자를 보내 죽음을 내렸습니다. 손화가 장씨와 작별하자 장씨는 「길하든 흉하든 서로 따라야 하니 끝내 홀로 살지 않겠다」며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온 나라가 슬퍼했습니다. 비빈전에 따르면 손준은 본디 전공주를 섬겼고, 손호를 낳은 하희는 「모두 따라 죽으면 누가 아이들을 기르겠는가」 하며 손호와 세 아우를 길렀습니다.

영안 7년(264) 손호가 황제가 되자 그해 아버지를 문황제로 추존해 명릉에 다시 장사 지내고 원읍 2백 호를 두었는데, 『오록』은 처음에 소헌황제로 높였다가 곧 문황제로 고쳤다고 적습니다. 손호는 오군과 단양의 아홉 현을 떼어 오흥군을 두고 철마다 제사하게 했으며, 보정 2년(267)에는 도읍에 청묘를 지어 그 신주를 맞아들이고 이레 동안 세 번 제사하며 밤낮으로 풍악을 울리다 「제사가 잦으면 더럽힌다」는 유사의 말에 그쳤습니다. 『오력』에 따르면 손화의 아들은 손호 · 손덕 · 손겸 · 손준 넷이었고, 총명해 이름이 났던 손준은 손호에게 죽었습니다. 손겸은 반란을 일으킨 시단에게 끼였다가 붙잡혔는데, 손호전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적고 『오력』은 손호가 독살했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손려와 손화는 모두 선을 좋아하는 자질이 있어 스스로 갈고닦았으나, 하나는 일찍 죽고 하나는 제명에 죽지 못했으니 슬프다」고 평했습니다. 배송지는 원소 · 유표는 본디 아들을 어질다 여겨 뒤를 잇게 하려 했으나, 손권은 손화를 세워 놓고 다시 손패를 아껴 스스로 집안의 화를 지었으니 그들보다 더 어둡고 어그러졌다고 했습니다.

慮、和並有好善之姿,規自砥礪,或短命早終,或不得其死,哀哉
손려와 손화는 모두 선을 좋아하는 자질이 있어 스스로 갈고닦았으나, 하나는 일찍 죽고 하나는 제명에 죽지 못했으니 슬프다『삼국지』 오서 오주오자전 평
吉凶當相隨,終不獨生活也
길하든 흉하든 서로 따라야 하니, 끝내 홀로 살지 않겠습니다『삼국지』 오서 손화전에 실린 아내 장씨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08회 · 제120회

연의에서 손화는 제108회에 손권의 뒤를 잇는 이야기 속에 나옵니다. 연의는 손권의 태자 손등이 서부인의 아들로 적오 4년에 죽자 둘째 아들 손화를 태자로 세웠는데, 그는 낭야 왕부인의 아들이라고 적습니다. 손화가 전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아 공주의 참소를 입자 손권이 그를 폐했고, 손화는 근심과 원한 끝에 죽었다고 합니다. 손권은 이어 반부인이 낳은 셋째 아들 손량을 태자로 세웁니다. 연의는 노왕 손패와의 다툼이나 신하들이 두 편으로 갈린 일은 그리지 않습니다. 제113회에서 손휴는 형의 아들 손호를 오정후에 봉하고, 제120회에서 손호는 대제 손권의 태자 손화의 아들로 소개되며 즉위한 뒤 아버지를 문황제로 추존합니다. 연의에서 손화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37열네 살에 따로 궁의 호위를 받고 중서령 감택에게 글을 배웠습니다.
  2. 242적오 5년 정월 열아홉에 태자가 되었습니다.
  3. 242아우 손패가 노왕이 되어 같은 대우를 받자 조정이 두 편으로 갈렸습니다.태자를 받든 두 사람
  4. 245그를 감싸던 승상 육손이 거듭 꾸지람을 받다 울분 속에 죽었습니다.
  5. 250주거 · 굴황 등의 간언에도 폐해져 고장으로 옮겨졌습니다.태자에서 내려오다
  6. 250같은 때 노왕 손패도 죽음을 받아 두 궁의 다툼이 끝났습니다.두 궁
  7. 252남양왕에 봉해져 장사로 갔습니다.
  8. 253제갈각이 죽은 뒤 손준이 보낸 사자에게 죽음을 받았고 아내 장씨도 따라 죽었습니다.
  9. 264아들 손호가 황제가 되어 그를 문황제로 추존했습니다.
  10. 267손호가 도읍에 청묘를 지어 그의 신주를 맞아들였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손권 · 어머니 왕부인 · 아내 장씨 · 하희 · 아들 넷(손호 · 손덕 · 손겸 · 손준)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태자가 나선다.

말을 열며

태자였던 몸이오. 예는 아직 잊지 않았소.

되받으며

궁중의 혀보다는 그대가 낫겠지요.

말문이 막혀

…또 모함이 두렵구려.

말문이 막혀

바르게 서 있을 뿐이오.

설전을 이기고

시비는 언젠가 가려지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궁에서도 판에서도 밀리는구려….

이긴 뒤

태자의 이름을 지켰소.

진 뒤

…이궁의 다툼이 삼키는구나.

쓰러지며

이궁의 다툼이… 나를 삼켰다.

같은 기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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