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원(子遠) · 219년 ~ 256년 · 양주 오군 부춘현 · 손견 휘하
술자리에서 제갈각을 베고 오의 조정을 쥔 종실의 권신
출전 · 『삼국지』 오서 손준전 · 제갈각전 · 등윤전 · 손침전 · 손량전 · 손화전 · 손등전 · 비빈전 · 정봉전 · 여거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오록』 · 『오력』 · 『통어』 · 위서 관구검전 주의 『위서』 · 제갈탄전 · 등애전
손준은 자가 자원이며 손견의 아우 손정의 증손입니다. 할아버지는 손고, 아버지는 산기시랑을 지낸 손공입니다. 집안은 오군 부춘 사람입니다. 『삼국지』 오서 손준전은 그가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고 날래고 과감하며 담이 컸다고 적습니다. 손권의 말년에 무위도위로 옮겨 시중이 되었습니다. 비빈전은 손량의 장인 전상의 아내가 손준의 누이였다고 적습니다.
태자 손화와 노왕 손패를 두고 신하들이 둘로 갈리자, 배송지 주에 인용된 은기의 『통어』는 손권이 시중 손준에게 「자제가 화목하지 못하고 신하들이 갈라서니 원씨처럼 망할 것이다」 하고 걱정한 뒤 후계를 바꿀 뜻을 품었다고 적습니다. 적오 13년(250) 손화가 폐해지고 손량이 태자가 되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는 병든 손권이 뉘우쳐 손화를 다시 불러 세우려 하자 전공주와 손준 · 손홍 등이 굳이 다투어 그만두게 했다고 적습니다.
태원 원년(251) 겨울 손권이 병들어 뒷일을 맡길 사람을 의논할 때, 『오서』는 조정의 신하들이 다 제갈각에게 마음을 두었고 손준이 표를 올려 제갈각의 그릇이 정사를 보필할 만하다고 했다고 적습니다. 손권은 제갈각이 굳세고 사나워 제 뜻대로만 한다며 꺼렸으나, 손준이 지금 조정의 신하 가운데 그만 한 이가 없다며 굳게 보증하자 그를 불러들였습니다. 이듬해(252) 손권은 병이 깊어지자 제갈각 · 손홍 · 태상 등윤 · 장군 여거와 시중 손준을 불러 뒷일을 맡겼습니다. 손준은 유조를 받아 정사를 보필하게 되었고, 무위장군을 겸해 전처럼 숙위를 맡았으며 도향후에 봉해졌습니다. 손권이 죽은 날 제갈각과 사이가 나빴던 중서령 손홍이 죽음을 숨기고 조서를 꾸며 제갈각을 없애려 하자, 손준이 이를 제갈각에게 알려 손홍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건흥 2년(253) 제갈각이 위의 신성을 에워쌌다가 역병으로 군사의 태반을 잃고 돌아와 숙위를 제 측근으로 갈아 세우자, 백성의 원망이 많고 무리가 그를 꺼렸습니다. 손준은 이를 틈타 제갈각이 변을 꾸민다고 얽어 어린 손량과 꾀하고, 10월 술자리를 열어 제갈각을 불렀습니다. 손준은 휘장 안에 군사를 숨겨 두었는데, 제갈각이 제때 들어오지 않아 일이 샐까 두려워 몸소 나가 몸이 편치 않으면 뒤로 미루어도 되고 자기가 주상께 아뢰겠다며 그의 뜻을 떠보았습니다. 산기상시 장약 · 주은이 오늘 차림이 예사롭지 않다고 몰래 글을 보냈으나, 손준의 꾀를 모르던 태상 등윤이 들어가기를 권해 제갈각은 칼을 차고 신을 신은 채 전에 올랐습니다. 제갈각이 술을 의심하자 손준은 늘 드시는 약술을 가져다 드시라고 권해 그를 안심시켰습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손량이 안으로 들어가자, 손준은 측간에 가는 척 일어나 긴 옷을 벗고 짧은 옷을 입은 채 나와 「조서가 있어 제갈각을 잡는다」 하고 외쳤습니다. 놀란 제갈각이 칼을 미처 뽑기도 전에 손준의 칼이 내려졌고, 곁에서 장약이 손준을 쳐 왼손을 다치게 하자 손준은 곧바로 장약의 오른팔을 끊었습니다. 무위의 군사들이 전에 오르자 손준은 잡으려던 것은 제갈각이고 이미 죽었다며 칼을 거두게 하고, 땅을 쓸어 다시 술을 마셨습니다. 『오력』은 제갈각이 「손준 같은 어린것이 무엇을 하겠는가」 하며 들어갔다고 적습니다. 제갈각의 아들들도 쫓겨 죽었고, 외조카 장진과 상시 주은 등은 삼족이 멸해졌습니다.
제갈각을 벤 손준은 승상 · 대장군이 되어 안팎의 군사를 거느리고 부절을 받았으며 부춘후로 올랐습니다. 등윤이 제갈각의 아들 제갈송의 장인이라 하여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자, 손준은 「곤과 우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다」며 붙들고 그의 작위를 고밀후로 올렸습니다. 둘은 속으로는 어울리지 않았으나 겉으로는 서로 감싸며 전처럼 일했습니다. 손준은 본디 이름이 무겁지 않은데 교만하고 음험해 형벌로 죽인 이가 많아 백성이 들끓었고, 궁인들을 어지럽히고 손권의 맏딸로 전종의 아내인 공주 손노반과 사통했습니다.
손준은 손노반을 섬기며 비위를 맞추었는데, 손노반은 손화의 어머니와 틈이 있었습니다. 제갈각이 죽은 뒤 손준은 손화의 옥새와 인끈을 빼앗아 신도로 옮기게 하고 사자를 보내 죽음을 내렸으며, 손화의 정실 장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오봉 원년(254) 손등의 아들 오후 손영이 손준을 죽이려다 일이 새어 스스로 죽었습니다. 이듬해(255) 7월에는 장군 손의 · 장이 · 임순 등이 손준을 죽이려다 일이 드러나 손의는 스스로 죽었습니다. 비빈전은 이때 손노반이 동생인 주공주 손노육(처음 주거에게 시집갔다)도 손의와 함께 꾀했다고 말해 손준이 그를 억울하게 죽였다고 적습니다.
오봉 2년(255) 정월 위의 관구검 · 문흠이 회남의 무리를 이끌고 일어나자, 손준은 윤달에 표기장군 여거 · 좌장군 유찬과 함께 수춘을 치러 나섰습니다. 동흥에 이르러 문흠 등이 졌다는 소식을 듣고 탁고로 나아가니 문흠이 손준에게 항복했고, 회남의 남은 무리 수만 명이 넘어왔습니다. 위의 제갈탄이 이미 수춘에 들어가 있어 손준은 군을 돌렸고, 유찬은 제갈탄의 별장 장반에게 져 죽었습니다. 위서 관구검전 주에 인용된 『위서』는 오에 들어간 문흠을 손준이 두터이 대했고, 남에게 굽히지 못하는 문흠을 여거 · 주이 같은 대장들이 다 미워했으나 손준만은 늘 그를 감쌌다고 적습니다. 그해 손준은 광릉에 성을 쌓으려 했는데, 신하들이 두려워 말을 못 하는 가운데 등윤만이 말렸으나 듣지 않았으며 일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태평 원년(256) 문흠이 위를 치자고 권하자, 손준은 8월 문흠과 여거 · 주이 · 당자 등을 강도에서 회수와 사수로 들여보내 청주와 서주를 노리게 했습니다. 손준은 등윤과 석두까지 나가 전송하고 종자 백여 명을 거느리고 여거의 진영에 들어갔는데, 여거의 군이 가지런한 것을 보고 꺼려 가슴이 아프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그 뒤 제갈각에게 맞는 꿈을 꾸고 두려워하다 병이 나 9월에 죽으니 나이 서른여덟이었고, 뒷일을 사촌 아우 손침에게 맡겼습니다.
손침이 조정을 이어 쥐자 여거는 크게 노해 등윤을 승상으로 천거하고 손침을 폐하려 했으나, 등윤과 여거는 모두 손침의 손에 죽었습니다. 영안 원년(258) 손휴가 손침을 벤 뒤 손준의 관을 파헤쳐 인수를 거두었는데, 손노육 등을 죽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손휴는 손준 · 손침과 같은 일가인 것을 부끄러워해 족보에서 이름을 지우고 「고 준」 「고 침」이라고만 부르게 했으며, 제갈각 · 등윤 · 여거가 죄 없이 두 형제에게 해를 입었다며 다시 장사 지내게 했습니다. 진수는 「손준 · 손침은 흉악한 소인으로 넘쳐흘렀으니 따질 것도 없다」고 평했습니다.
峻、綝兇豎盈溢,固無足論者峻素無重名,驕矜險害,多所刑殺,百姓囂然『삼국연의』 제108회 · 제110~111회 · 제113회
연의에서 손준은 제108회에 처음 나옵니다. 연의는 그를 손견의 아우 손정의 증손이고 손공의 아들이라 소개하며, 손권이 살았을 때 그를 몹시 아껴 어림군을 맡겼다고 합니다. 제갈각이 장약 · 주은 두 사람에게 어림군을 맡겨 그의 권한을 빼앗자 손준은 크게 노합니다. 제갈각과 틈이 있던 태상경 등윤이 「공은 종실인데 어찌 일찍 도모하지 않느냐」고 부추기자, 손준은 「내가 그 마음을 품은 지 오래」라며 등윤과 함께 손량을 뵙고 몰래 아룁니다. 손량의 허락이 떨어지자 등윤이 술자리를 열고 벽의 휘장 속에 무사를 숨겨 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삼자는 꾀를 냅니다.
누런 개가 옷을 물고 흰 무지개가 서는 흉조에 제갈각이 수레를 돌리려 하자, 손준과 등윤이 말을 타고 와서 굳이 들어가기를 권합니다. 제갈각이 술을 사양하자 손준은 부중에서 늘 드시는 약술을 가져오게 해 그를 안심시킵니다. 술이 몇 순배 돌아 손량이 먼저 일어나자, 손준은 짧은 옷 안에 갑옷을 받쳐 입고 칼을 든 채 전에 올라 「천자의 조서가 있어 역적을 벤다」고 외칩니다. 제갈각은 칼을 뽑기도 전에 목이 떨어지고, 덤벼든 장약에게 왼쪽 손가락을 다친 손준은 몸을 돌려 그의 오른팔을 벱니다. 손준은 제갈각과 장약의 주검을 갈대 자리에 싸서 남문 밖 석자강의 무덤 구덩이에 버리게 하고, 손량은 그를 승상 · 대장군 · 부춘후로 삼으니 권세가 다 손준에게 돌아갑니다.
제110회에서는 관구검이 동오의 손준이 강을 건너 수춘을 치러 온다는 소식에 놀라 항성으로 물러나고, 싸움에 진 문흠은 끝내 동오의 손준에게로 갑니다. 제111회는 손준이 병으로 죽고 사촌 아우 손침이 정사를 보좌하게 되었다고 짧게 적습니다. 제113회에서 손침을 벤 손휴는 군사를 시켜 손준의 무덤을 파헤치고 주검을 욕보이며, 제갈각 · 등윤 · 여거 등의 무덤을 다시 지어 줍니다. 연의에서 손준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증조 손정 · 아버지 손공 · 누이(전상의 아내) · 사촌 아우 손침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무위장군 손준이오.
조정에 그만 한 이가 없다 한 것은 나였소. 말도 내가 끝내겠소.
곤과 우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 법이오.
…휘장 뒤에 무엇이 있는지 묻지 마시오.
늘 드시던 약술이오. 마음 놓고 드시오.
조서가 있소. 오늘 말은 여기서 거두시오.
…꿈에 그 얼굴이 또 보이는구려.
칼은 이미 거두었소. 술을 드시오.
가슴이 아프오. 오늘은 물러가겠소.
뒷일은 침에게 맡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