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덕윤(德潤) · 미상 ~ 243년 · 양주 회계군 산음현 · 손견 휘하
남의 책을 베껴 주며 배워 태자의 스승에 오른 오의 유학자
출전 · 『삼국지』 오서 감택전 · 설종전 · 손등전 · 손화전 · 조달전 · 오주전과 배송지 주의 『오록』
감택은 자가 덕윤이며 회계군 산음현 사람입니다. 집안은 대대로 농사를 지었는데 감택에 이르러 배우기를 좋아했습니다. 가난해 밑천이 없자 늘 남의 책을 베껴 주는 품을 팔아 종이와 붓 값을 댔고, 베끼기를 마치면 그 글을 다 외웠습니다. 스승을 찾아가 강론을 듣고 여러 책을 두루 읽었으며 역법과 셈에도 통해 이름이 드러났습니다. 효렴으로 천거되어 전당의 현장이 되었고 침현의 현령으로 옮겼습니다.
건안 24년(219) 손권이 표기장군이 되자 그를 불러 서조연 자리를 채웠고, 황룡 원년(229) 손권이 황제가 되자 상서로 삼았습니다. 가화 연간에는 중서령이 되고 시중을 더했습니다. 『삼국지』 손화전은 손권의 아들 손화가 열네 살에 따로 궁의 호위를 받게 되자 손권이 중서령 감택에게 그의 글과 글씨를 가르치게 했다고 적습니다. 적오 5년(242) 손화가 태자가 되자 감택은 태자태부가 되어 중서의 일을 그대로 겸했고, 설종이 소부가 되었습니다.
감택은 경전과 그 풀이의 글이 너무 많아 다 쓰기 어렵다고 보고, 여러 학자의 설을 헤아려 예법의 글과 여러 주석을 간추려 두 궁, 곧 태자 손화와 노왕 손패에게 가르쳤으며 드나들 때와 손님을 맞을 때의 예절을 정했습니다. 또 『건상력주』를 지어 날짜를 바로잡았습니다. 조정에서 큰 의논이 있어 경전에 의심나는 데가 있으면 늘 그에게 물었고, 유학에 힘쓴 공으로 도향후에 봉해졌습니다.
성품은 겸손하고 공손하며 도탑고 신중했습니다. 궁과 관청의 낮은 아전이 불러 묻더라도 모두 맞먹는 예로 대했고, 남의 허물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습니다. 생김새는 모자란 듯 보였으나 그가 모르는 것은 드물었습니다. 손권이 책과 글 가운데 무엇이 가장 아름다우냐고 묻자, 감택은 넌지시 다스림과 어지러움의 까닭을 깨우치려고 가의의 『과진론』이 가장 좋다고 답했고 손권은 그 글을 읽었습니다.
적오 원년(238) 교사 여일의 간악한 죄가 드러나자 맡은 관원은 끝까지 캐어 사형을 아뢰었고, 불태우고 찢어 큰 악인임을 드러내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손권이 묻자 감택은 「밝고 성한 세상에 다시 이런 형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고 손권은 그 말을 따랐습니다. 여러 관청이 걱정거리가 있어 법령을 무겁게 해 아랫사람을 단속하려 할 때에도 감택은 늘 예와 율에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수는 그가 부드러우면서도 바름을 지킨 것이 다 이러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록』은 우번이 감택을 두고 「감생은 빼어나니 촉의 양웅이라 할 만하다」 하고, 또 「감자의 유학과 덕행은 지금의 동중서」라고 했다고 적습니다. 같은 책에 따르면 위의 문제 조비가 즉위했을 때 손권이 조비가 한창 나이에 즉위했으니 자신이 따르지 못할까 걱정하자, 감택은 열 해를 못 가 조비가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손권이 그 까닭을 묻자 감택은 조비의 이름 글자를 「아니 불」과 「열 십」으로 풀어 그것이 그 수라고 답했고, 문제는 과연 일곱 해 만에 죽었습니다. 배송지는 손권이 문제보다 다섯 살 많을 뿐이라 나이 차가 작다고 덧붙였습니다.
조달전은 감택과 은례 같은 이름난 선비들이 몸을 굽혀 셈법을 배우려 했으나 조달이 그 술법을 아껴 알려 주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설종전에는 촉의 사신 장봉이 손권 앞에서 상서 감택의 성과 이름을 풀어 놀렸을 때 감택이 대답하지 못하자, 설종이 술을 권하며 촉이라는 글자를 풀어 받아쳐 좌중이 웃었다는 일이 있습니다. 적오 4년(241) 태자 손등은 죽음을 앞두고 올린 글에서 제갈근 · 보즐 · 주연 · 전종 · 주거 · 여대 · 오찬 · 감택 · 엄준 · 장승 · 손이를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다스림의 바탕에 통한 신하로 들었습니다.
적오 6년(243) 겨울 감택이 죽자 손권은 몹시 슬퍼하여 며칠 동안 음식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진수는 엄준 · 정병 · 감택을 두고 「한 시대의 유림」이라고 평했습니다.
嚴、程、闞生,一時儒林也盛明之世,不宜復有此刑『삼국연의』 제38회 · 제46~47회 · 제49회 · 제66회 · 제83회
연의에서 감택은 제38회에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손권이 강동을 이어받아 오회에 빈관을 열고 고옹 · 장굉에게 사방의 손님을 맞게 하자 모여든 선비들 가운데 「회계의 감택, 자 덕윤」이 맨 앞에 섭니다.
제46회에서 주유에게 곤장을 맞은 황개가 장막에 누워 있을 때 참모 감택이 찾아와 좌우를 물리게 하고, 도독과 원수진 일이 없다면 이것은 고육계가 아니냐고 묻습니다. 주유의 거동을 보고 여덟아홉은 짐작했다는 것입니다. 황개가 손씨 삼대의 은혜에 보답하려 이 꾀를 바쳤으나 군중에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고 공만은 충의가 있다고 털어놓자, 감택은 거짓 항복 편지를 바치라는 뜻임을 알아채고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제47회는 감택을 집이 가난했으나 배우기를 좋아해 남의 품을 팔며 책을 빌려 보았고, 한 번 보면 잊지 않았으며 말재주와 담력이 있어 손권이 참모로 불렀고 황개와 가장 가까웠다고 소개합니다. 감택은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공을 세우지 못하면 풀과 나무와 함께 썩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그 밤에 어부로 꾸미고 작은 배를 저어 북쪽 기슭으로 가, 삼경에 조조의 수채에 닿습니다. 편지를 열 번 넘게 뒤적인 조조가 황개의 고육계라며 베라 하자 감택은 낯빛도 바꾸지 않고 하늘을 보며 크게 웃습니다. 참으로 항복한다면 왜 날짜를 적지 않았느냐는 조조에게, 주인을 등지고 빠져나오는 일은 날짜를 정할 수 없고 미리 날을 박았다가 손을 쓰지 못하면 일이 샌다고 따져 조조가 자리에서 내려와 사과하게 만듭니다. 때마침 채중 · 채화가 황개가 매 맞은 일을 몰래 알려 오자 조조는 항복을 믿고, 감택은 다시 강동으로 가 달라는 청을 몇 번 사양하다 받아들이며 내린 금과 비단은 받지 않습니다. 돌아온 감택은 감녕의 진영에서 함께 주유를 원망하는 척해 채화 · 채중이 스스로 조조가 보낸 거짓 항복자임을 털어놓게 하고, 따로 조조에게 글을 보내 뱃머리에 푸른 깃발을 꽂은 배가 황개의 배라고 알립니다.
제49회에서 감택은 감녕과 함께 채화 · 채중을 수채에 붙잡아 두고 날마다 술을 마시며, 출진하는 날에는 노숙과 함께 진영을 지킵니다. 끌려 나온 채화가 「너희 감택과 감녕도 함께 꾀했다」고 외치자 주유는 그것이 자신이 시킨 일이라고 답합니다. 제66회에서는 노숙이 관우를 잔치에 불러 칼잡이를 숨겨 두자는 꾀를 내자, 관우는 세상의 범 같은 장수라 일이 어긋나면 도리어 해를 입는다며 말리다가 손권의 노여움을 삽니다.
제83회에서 유비의 대군이 밀려와 손권이 어쩔 줄 모르자 감택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이 있는데 왜 쓰지 않느냐며 형주에 있는 육손을 천거하고, 그가 잘못하면 같은 죄를 받겠다고 합니다. 장소 · 고옹 · 보즐이 육손은 서생이라 맞서자 감택은 육손을 쓰지 않으면 동오는 끝장이라며 온 집안을 걸고 보증하고, 옛 법대로 단을 쌓아 대도독으로 세우라고 권해 손권이 따릅니다. 연의에서 감택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중서령 감택이오.
책은 남의 품을 팔아 베꼈소. 한 글자도 허투루 읽지 않았소.
밝은 세상에는 지나친 말도 어울리지 않소.
…주인을 등지는 일에 어찌 날짜를 박겠소.
그대 말은 앞뒤가 이미 맞지 않소. 베낀 글처럼 다 외워 두었소.
글자를 풀면 답은 저절로 보이는 법이오.
…말문이 막혔소. 이런 날도 있구려.
글로 이긴 싸움이오. 칼은 거두시오.
베낀 책 어디에도 이 길은 없었소.
예와 율을 따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