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윤董允

자 휴소(休昭) · 미상 ~ 246년 · 형주 남군 지강현 · 유비 휘하

동윤 초상

환관 황호를 억누르고 제갈량 사후 촉한을 굳건히 지탱한 사영(四英)

능력치

통솔47무력28지력78정치91매력73

카드

공격력 3체력 3비용 3값어치 10직군 능리
아사 비용 2
적의 다음 국면 지휘력 −2
급보 비용 1
다음에 소환하는 아군 하나가 멀미 없이 선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동윤전과 배송지 주의 『화양국지』 · 동화전 · 진지전 · 제갈량전의 출사표 · 비의전과 배송지 주의 『비의별전』 · 위연전 · 강유전 배송지 주의 『화양국지』 · 선주전 · 후주전

동윤은 자가 휴소이며 남군 지강현 사람으로, 장군중랑장 동화의 아들입니다. 동화는 유장 밑에서 현령과 태수를 지내며 검소하게 살아 백성과 만이의 믿음을 얻었고, 유비가 촉을 평정한 뒤 장군중랑장이 되어 군사장군 제갈량과 함께 좌장군 대사마부의 일을 맡았습니다. 스무 해 넘게 녹을 받았으나 죽는 날 집에 곡식 한 섬도 없었다고 합니다.

비의전에 따르면 동윤은 유비가 촉을 평정한 뒤 비의 · 여남의 허숙룡과 이름을 나란히 했습니다. 허정이 아들을 잃었을 때 동윤과 비의가 장례에 함께 가려 하자 동화는 뒤가 트인 작은 수레를 내주었습니다. 동윤은 타기를 꺼리는 낯빛이었으나 비의는 먼저 올라탔고, 장례 자리에 제갈량과 귀인들의 화려한 수레가 모였는데도 동윤은 낯빛이 편치 않았고 비의는 태연했습니다. 이를 들은 동화는 「나는 늘 너와 문위의 낫고 못함을 가리지 못했는데, 이제야 내 뜻이 분명해졌다」고 했습니다.

장무 원년(221) 유비가 태자를 세우자 동윤은 뽑혀 태자사인이 되었다가 세마로 옮겼고, 건흥 원년(223) 후주가 자리를 잇자 황문시랑이 되었습니다. 건흥 5년(227) 북벌에 나서 한중에 머물게 된 제갈량은 후주가 아직 어려 옳고 그름을 가리기 어렵다고 걱정해, 마음가짐이 공정하고 밝은 동윤에게 궁중의 일을 맡기려 했습니다. 그는 출사표에서 시중 · 시랑인 곽유지 · 비의 · 동윤은 선제께서 골라 폐하께 남기신 사람들이니 궁중의 일은 크고 작고 없이 모두 이들에게 물으라 하고, 덕을 일으키는 말이 없으면 이들을 벌해 그 게으름을 드러내라고 했습니다. 얼마 뒤 제갈량이 비의를 참군으로 불러 가자 동윤은 시중이 되어 호분중랑장을 겸하고 숙위하는 친병을 거느렸습니다. 곽유지는 성품이 부드러워 자리만 채울 뿐이었으므로, 임금에게 말씀을 올리는 일은 모두 동윤이 맡았습니다.

동윤은 일을 처리할 때 미리 막고 바로잡는 도리를 다했습니다. 후주가 늘 여인을 골라 후궁을 채우려 하자, 동윤은 옛날 천자의 후비는 열둘을 넘지 않았고 이제 비빈이 이미 갖추어졌으니 더 늘려서는 안 된다며 끝내 들어주지 않았고, 후주는 그를 더욱 어려워했습니다. 건흥 12년(234) 제갈량이 죽은 뒤 위연과 양의가 서로 반역했다는 표를 올리자, 후주의 물음에 동윤은 장완과 함께 양의를 믿고 위연을 의심했습니다. 상서령 장완은 익주자사를 맡게 되자 표를 올려 이를 비의와 동윤에게 사양하고, 동윤이 여러 해 궁중에서 모시며 왕실을 도왔으니 작위와 봉토를 내려 공을 기려야 한다고 했으나 동윤은 굳이 사양했습니다.

후주는 자라면서 환관 황호를 아꼈습니다. 황호는 아첨을 잘하고 약삭빨라 임금 곁으로 파고들려 했으나, 동윤이 위로는 낯빛을 바로 하여 임금을 바로잡고 아래로는 황호를 여러 번 꾸짖었으므로 황호는 동윤을 두려워해 감히 그른 짓을 하지 못했습니다. 동윤이 살아 있는 동안 황호의 벼슬은 황문승을 넘지 못했습니다. 동윤은 바른 도리를 지키면서도 아랫사람에게 몸을 낮추었습니다. 한번은 비의 · 호제 등과 놀러 나가기로 하여 수레까지 채비했는데, 젊고 벼슬이 낮은 낭중 동회가 인사를 왔다가 그가 나가려는 것을 보고 물러가려 했습니다. 동윤은 본래 나가려던 것은 뜻 맞는 이와 이야기하려는 것인데 그대가 몸을 굽혀 왔으니 이 이야기를 두고 저 잔치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며 말을 풀게 했고, 비의 등도 수레를 멈추었습니다.

연희 6년(243) 보국장군이 더해졌고, 7년(244)에는 시중으로서 상서령의 일을 맡아 대장군 비의의 버금이 되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비의별전』은 비의가 아침과 저녁에 일을 보고 그 사이에 손님을 맞아 먹고 마시며 바둑까지 두어도 일을 그르치지 않았는데, 그 뒤를 이어 상서령이 된 동윤이 비의를 본받으려다 열흘 만에 일이 많이 밀리자 「사람의 재주와 힘이 이토록 멀리 떨어지니 내가 미칠 바가 아니다. 종일 일을 보아도 오히려 틈이 없다」고 탄식했다고 적습니다. 동윤은 연희 9년(246)에 죽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화양국지』는 그 무렵 촉 사람들이 제갈량 · 장완 · 비의와 동윤을 사상이라 부르고 달리 사영이라고도 했다고 적습니다.

동윤을 이어 시중이 된 진지가 황호와 안팎으로 손을 잡자 황호는 비로소 정사에 끼어들었고, 진지가 죽은 뒤에는 황문령에서 중상시 · 봉거도위가 되어 권세를 휘두르다 끝내 나라를 엎었습니다. 촉 사람들은 모두 동윤을 그리워했습니다. 진지가 총애를 받은 뒤로 후주는 동윤이 자신을 가볍게 여겼다며 날로 깊이 원망했는데, 진수는 이것이 진지의 아첨과 황호의 이간이 스며든 탓이라고 적었습니다. 강유전 배송지 주의 『화양국지』에 따르면 경요 5년(262) 강유가 황호를 죽이자고 하자 후주는 황호는 심부름하는 하찮은 신하일 뿐이며 예전에 동윤이 이를 갈았을 때도 자신은 늘 못마땅했다고 했습니다. 손자 동굉은 진나라에서 파서태수를 지냈습니다.

진수는 평에서 「동윤은 임금을 바로잡아 의로움이 낯빛에 드러났다」 하고 동화 · 유파 · 마량 · 진진과 함께 모두 촉의 어진 신하라고 했습니다. 배송지는 다른 전들이 아들을 아버지의 전에 붙였는데 동윤만 따로 전을 세운 것은 그의 이름과 자리가 무겁고 행적이 아버지보다 나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董允匡主,義形於色
동윤은 임금을 바로잡아 의로움이 낯빛에 드러났다『삼국지』 촉서 동윤전 평
允以為古者天子后妃之數不過十二,今嬪嬙已具,不宜增益
동윤은 옛날 천자의 후비는 열둘을 넘지 않았고 이제 비빈이 이미 갖추어졌으니 더 늘려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삼국지』 촉서 동윤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85회 · 제91회 · 제105회

연의에서 동윤은 제85회에 처음 나옵니다. 위가 다섯 길로 쳐들어온다는 급보에도 제갈량이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자, 후주는 황문시랑 동윤과 간의대부 두경을 승상부로 보내지만 두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고 탄식하며 돌아옵니다. 태후가 몸소 가려 하자 동윤은 승상에게 반드시 높은 생각이 있을 것이니 먼저 주상께서 가 보시라고 말립니다.

제91회에서 제갈량이 올리는 출사표에는 시중 · 시랑인 곽유지 · 비의 · 동윤이 선제가 골라 남긴 사람이니 궁중의 일은 크고 작고 없이 이들에게 물으라는 대목이 그대로 실리고, 제갈량은 떠나며 곽유지 · 동윤 · 비의를 시중으로 남겨 궁중의 일을 맡깁니다.

제105회에서 제갈량이 죽은 뒤 위연과 양의가 서로 반역했다는 표를 올리자, 동윤은 위연이 공을 믿고 늘 불평을 품었으며 승상이 두려워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라며 양의는 반역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룁니다. 후주는 동윤에게 부절을 주어 두 사람을 달래게 하지만, 동윤이 한중의 남정에 닿기도 전에 마대가 위연을 벱니다. 그 뒤로 동윤은 이름으로만 불립니다. 제107회에서 비의는 장완과 동윤이 잇달아 죽어 안을 다스릴 사람이 없다며 강유의 출병을 말리고, 제115회에서 후주는 황호를 죽이라는 강유에게 예전에 동윤이 늘 황호를 이를 갈며 미워했으나 자신은 그것을 이상히 여겼다고 말합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21유비가 태자를 세우자 뽑혀 태자사인이 되었고 뒤에 세마로 옮겼습니다.
  2. 223후주가 자리를 잇자 황문시랑이 되었습니다.
  3. 227제갈량이 출사표에서 곽유지 · 비의와 함께 그를 들어 궁중의 일을 맡기려 했습니다.촉의 두 문신
  4. 227비의가 참군으로 간 뒤 시중이 되어 호분중랑장을 겸하고 숙위하는 친병을 거느렸습니다.
  5. 234위연과 양의가 서로 반역했다는 표를 올리자 장완과 함께 양의를 믿고 위연을 의심했습니다.
  6. 243연희 6년 보국장군의 칭호가 더해졌습니다.
  7. 244시중으로서 상서령의 일을 맡아 대장군 비의의 버금이 되었습니다.
  8. 246죽었고, 뒤를 이은 진지가 황호와 손을 잡으면서 황호가 비로소 정사에 끼어들었습니다.낯빛으로 누르던 사람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동화 · 손자 동굉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조정의 기강을 세운다.

말을 열며

환관의 아첨은 내 앞에서 통하지 않소.

되받으며

바른말에는 지위가 없소.

말문이 막혀

…조정이 걱정이구려.

말문이 막혀

내가 무너지면 누가 막나.

설전을 이기고

황호도 내 앞에선 고개를 못 들었소.

설전에 지고

내가 없으면 궁이 흐려질 텐데….

이긴 뒤

기강이 서면 이깁니다.

진 뒤

…황호가 웃겠구려.

쓰러지며

황호를 눌러 둔 것이 내 공이다.

같은 기치 아래

관우제갈량조운장비위연방통장완서서왕평관색마속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