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劉虞

자 백안(伯安) · 미상 ~ 193년 · 서주 동해국 담현 · 하진 휘하

유우 초상

오환을 덕으로 달래고 황제의 자리를 꾸짖어 물리친 유주목

능력치

통솔55무력33지력69정치76매력92

카드

공격력 3체력 3비용 2값어치 8직군 능리
격려 비용 2
아군 전체 공격력 +1 (이번 국면)

정사

출전 · 『후한서』 유우전과 범엽의 논 · 공손찬전 · 영제기 · 헌제기 · 『삼국지』 위서 공손찬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영웅기』 · 『위씨춘추』 · 무제기 · 전주전 · 촉서 선주전 배송지 주의 『전략』

유우는 자가 백안이며 동해 담현 사람입니다. 할아버지 유가는 광록훈을 지냈고, 이현 주에 인용된 사승의 『후한서』는 아버지 유서가 단양태수였으며 유우가 동해 공왕의 후손이라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의 『오서』에 따르면 황실과 멀어진 집안이라 현의 호조리로 벼슬을 시작했고, 효렴으로 낭이 된 뒤 여러 번 옮겨 유주자사가 되었습니다. 『후한서』는 백성과 오랑캐가 그 덕에 감화되어 선비 · 오환 · 부여 · 예맥이 철마다 조공하고 변경을 어지럽히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물러나 고향에 있을 때 고을 사람들은 송사를 관리가 아닌 그에게 가져왔고, 제 소와 닮은 소를 자기 것이라 우기는 이에게 소를 내주었더니 그가 제 소를 찾고 돌아와 사죄했다고 『오서』는 전합니다.

중평 원년(184) 황건이 일어나 기주의 여러 군을 깨뜨리자 감릉상이 되어 남은 백성을 달래고 나물과 검약으로 아랫사람을 이끌었고, 이어 종정이 되었습니다.

중평 4년(187) 전 중산상 장순이 전 태산태수 장거와 함께 오환의 대인들과 맹약하고 일어나, 장거는 천자를 일컫고 장순은 미천장군 안정왕이라 일컬으며 유주와 청주 · 기주를 휩쓸었습니다. 조정은 유우의 위엄과 믿음이 본디 드러났고 은혜가 북방에 쌓였다 하여 이듬해(188) 그를 유주목으로 삼았습니다. 계에 이른 유우는 둔병을 줄이고, 오환의 초왕 등에게 사신을 보내 조정의 너그러움을 알려 은혜와 믿음을 폈으며, 장거와 장순의 목에 상을 걸었습니다. 『삼국지』 공손찬전은 이때 공손찬이 유우가 공을 세울까 시기해 몰래 사람을 시켜 오랑캐의 사신을 죽였으나, 오랑캐가 그 뜻을 알고 샛길로 유우를 찾아왔다고 적습니다. 장거와 장순은 변방 밖으로 달아났고, 중평 6년(189) 3월 장순은 그의 객 왕정에게 죽어 머리가 유우에게 보내졌습니다. 영제는 그를 태위로 삼고 용구후에 봉했으며, 『영웅기』는 그가 태위를 사양하며 조모 · 익주목 유언 · 황완 · 양속을 천거했다고 적습니다.

동탁이 정권을 잡자 유우는 대사마가 되어 양분후로 봉작이 올랐고, 초평 원년(190)에는 원외를 대신할 태부로 불렸으나 길이 막혀 명이 닿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청주와 기주의 부세를 받아 살림을 대던 유주가 그 길마저 끊기자, 유우는 너그러운 정사로 농사를 권하고 상곡에 오랑캐와의 시장을 열고 어양의 소금과 쇠를 통하게 했습니다. 백성이 기뻐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었으며, 황건을 피해 청주와 서주에서 몰려온 백만여 명을 모두 받아 살 길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상공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해진 옷에 새끼 신을 신고 고기 반찬을 둘 두지 않으니, 사치하던 호걸들도 마음을 돌려 그를 따랐다고 합니다.

초평 2년(191) 봄 기주목 한복과 발해태수 원소 등은 어린 황제가 동탁에게 눌려 있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며 종실의 어른인 유우를 황제로 세우려 했습니다. 옛 낙랑태수 장기가 존호를 올리러 오자 유우는 낯빛을 엄하게 하고 「그대들은 힘을 모아 왕실에 마음을 다해야 하거늘 도리어 거스르는 꾀를 꾸며 나를 더럽히려 하는가」라고 꾸짖었습니다. 영상서사가 되어 황제를 대신해 봉작을 내려 달라는 청도 듣지 않고 사자를 베었습니다. 『오서』는 원소 등이 거듭 권하자 그가 흉노로 달아나 스스로 연을 끊으려 해서야 그들이 그쳤다고 적고, 『삼국지』 무제기는 조조도 따르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이 무렵 유우는 종사 전주를 몰래 장안으로 보내 조정에 뜻을 전했습니다.

장안에서 시중으로 있던 아들 유화는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 헌제의 뜻을 받아 몰래 무관을 빠져나왔는데, 유우에게 군사를 이끌고 와서 천자를 맞으라고 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양의 원술이 그를 붙들고 함께 서쪽으로 가자며 유우에게 군사를 청하게 했습니다. 원술의 속셈을 안 공손찬은 말렸으나 유우가 수천 기를 보내자, 원술에게 몰래 유화를 붙잡고 그 군사를 빼앗으라고 권해 두 사람의 원한이 깊어졌습니다. 유화는 빠져나왔으나 다시 원소에게 붙들렸습니다.

공손찬은 유우의 지휘를 받는 몸이었으나, 오랑캐를 쓸어 없애려 한 공손찬과 은혜와 믿음으로 불러들이려 한 유우는 뜻이 맞지 않았습니다. 『위씨춘추』는 유우가 오랑캐에게 내린 상을 공손찬이 번번이 빼앗았다고 적습니다. 공손찬이 원소에게 거듭 지고도 싸움을 그치지 않자 유우는 그의 군량을 줄였고, 두 사람은 서로의 허물을 조정에 아뢰었습니다. 공손찬은 계성에 따로 높은 보루를 쌓아 유우에게 대비했고, 유우가 여러 번 불러도 병을 핑계로 오지 않았습니다. 유우가 그를 치려 하자 동조연 위유가 공손찬의 재주를 아껴야 한다고 말려 그만두었습니다.

위유가 죽은 뒤 초평 4년(193) 겨울 유우는 둔병을 모아 10만으로 공손찬을 치러 나섰습니다. 앞에 나와 말린 종사 정서를 베어 본보기로 삼고, 「다른 사람은 다치게 하지 말고 백규 하나만 죽여라」라고 군사에게 일렀습니다. 그러나 종사 공손기가 밤에 공손찬에게 이를 알렸고, 유우의 군사는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유우가 백성의 집을 아껴 불사르지 못하게 하여 성을 에워싸고도 떨어뜨리지 못했습니다. 공손찬이 날랜 군사 수백으로 바람을 타고 불을 지르며 들이치자 유우는 크게 져서 거용현으로 달아났고, 사흘 만에 성이 떨어져 처자와 함께 계로 끌려왔습니다. 공손찬은 그에게 여전히 주의 문서를 맡겼습니다. 마침 천자가 사자 단훈을 보내 유우의 봉읍을 늘리고 여섯 주를 감독하게 했으나, 공손찬은 유우가 원소 등과 함께 황제를 일컬으려 했다고 무고하고 단훈을 을러 그를 계의 저자에서 베게 했습니다. 공손찬은 유우를 앉혀 놓고 「유우가 천자가 될 사람이라면 하늘이 비를 내려 구할 것」이라고 빌었는데, 가뭄에 볕이 뜨거워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헌제기는 이를 초평 4년(193) 겨울 10월로 적습니다. 머리는 도읍으로 보내졌으나 옛 관리 미돈이 길에서 빼앗아 장사 지냈습니다.

유우는 검소함을 지조로 삼아 해진 관도 바꾸지 않고 기워 썼으나, 죽은 뒤 공손찬의 군사가 집을 뒤지니 처첩이 비단옷을 입고 화려하게 꾸미고 있어 사람들이 그를 의심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북방의 백성은 그를 몹시 애석해했습니다. 유주의 종사 선우보 등은 염유를 오환사마로 세워 원수를 갚으려 했고, 오환의 초왕은 유우의 은덕을 잊지 않아 7천여 기로 유화를 맞았으며, 흥평 2년(195) 원소의 장수 국의와 함께 포구에서 공손찬을 깨뜨렸습니다. 장안에서 돌아온 전주는 무덤에 제사하고 곡했습니다. 『후한서』를 쓴 범엽은 「유우는 도를 지키고 이름을 사모하며 충직하고 너그러움으로 스스로를 길렀다. 아름답도다, 후한의 이름난 종실이여」라고 평했습니다.

劉虞守道慕名,以忠厚自牧。美哉乎,季漢之名宗子也
유우는 도를 지키고 이름을 사모하며 충직하고 너그러움으로 스스로를 길렀다. 아름답도다, 후한의 이름난 종실이여『후한서』 유우전 논
今天下崩亂,主上蒙塵。吾被重恩,未能清雪國恥
지금 천하가 무너지고 주상께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계신다. 나는 무거운 은혜를 입고도 나라의 수치를 씻지 못했다『후한서』 유우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2회

연의에서 유우는 제2회에 한 번 나옵니다. 장거와 장순이 어양에서 일어나자 조정은 유우를 유주목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치러 가게 합니다. 대주의 유회가 편지를 써서 유비를 천거하자 유우는 크게 기뻐하며 유비를 도위로 삼고, 유비는 군사를 이끌고 적의 소굴로 곧장 쳐들어가 여러 날 크게 싸워 그 기세를 꺾습니다. 사납기만 하던 장순은 군사들의 마음이 떠나 장막 아래의 우두머리에게 찔려 죽고 그 머리가 바쳐지며, 형세가 기운 것을 본 장거도 스스로 목을 매어 어양이 모두 평정됩니다. 유우가 유비의 큰 공을 표문으로 아뢰자 조정은 독우를 매질한 유비의 죄를 사면하고 하밀현의 승을 거쳐 고당현의 위로 삼으며, 공손찬도 그의 지난 공을 아뢰어 별부사마로 평원현령을 맡게 합니다. 유우는 도적을 평정한 공으로 태위가 됩니다. 연의에서 유우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원소 등이 그를 황제로 세우려 한 일과 공손찬에게 죽은 일은 그리지 않습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84황건이 기주를 휩쓸자 감릉상이 되어 남은 백성을 달랬습니다.
  2. 188장순과 장거의 난을 맞아 유주목이 되어 계로 갔습니다.
  3. 189장순이 객 왕정에게 죽어 그 머리가 유우에게 보내졌습니다.
  4. 189영제가 그를 태위로 삼고 용구후에 봉했습니다.
  5. 189동탁이 정권을 잡자 대사마가 되어 양분후로 봉작이 올랐습니다.
  6. 190태부로 불렸으나 길이 막혀 가지 못하고 유주에 머물렀습니다.
  7. 190종사 전주를 뽑아 몰래 장안의 천자에게 보냈습니다.
  8. 191한복과 원소가 그를 황제로 세우려 하자 꾸짖어 물리쳤습니다.
  9. 191아들 유화에게 군사를 보냈으나 공손찬이 원술에게 그 군사를 빼앗으라 권해 원한이 깊어졌습니다.
  10. 193겨울에 10만으로 공손찬을 쳤으나 크게 져서 거용현으로 달아났습니다.
  11. 193거용이 떨어져 사로잡혔고, 공손찬은 그에게 주의 문서를 계속 맡겼습니다.
  12. 193공손찬의 무고로 겨울 10월 계의 저자에서 죽었습니다.
  13. 195선우보와 오환의 초왕이 아들 유화를 받들어 포구에서 공손찬을 깨뜨렸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할아버지 유가 · 아버지 유서 · 아들 유화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유주목 유우요. 북방을 맡았소.

말을 열며

주상께서 먼지를 쓰고 계시오. 그대는 어디에 서려 하오?

되받으며

말은 그럴듯하오. 그러나 신하가 꾸밀 꾀는 아니구려.

말문이 막혀

…무거운 은혜를 입고도 나라의 수치를 못 씻었소.

말문이 막혀

백규 하나만 치라 했건만, 내 말이 이리 무르구려.

설전을 이기고

칼보다 은혜와 믿음이 더 멀리 가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천자가 될 몸이었다면 하늘이 비를 내렸겠지요.

이긴 뒤

남은 이는 다치게 말라. 백규 하나면 족하다.

진 뒤

백성의 집을 태울 수는 없었소.

쓰러지며

끝내 비는 오지 않는구려.

같은 기치 아래

노식하진왕윤장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