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번虞翻

자 중상(仲翔) · 미상 ~ 미상 (229년 이후) · 양주 회계군 여요현 · 왕랑 휘하

우번 초상

뛰어난 학식과 혜안을 가졌으나 꺾이지 않는 고집 탓에 유배당한 대학자

능력치

통솔43무력47지력86정치81매력43

카드

공격력 3체력 3비용 2값어치 9직군 모사
매복 비용 2
지정한 아군의 이번 공격은 반격을 받지 않는다 (행동 남은 아군만)
천기 속성
어느 편의 국면이 열리든 판의 아무 장수 하나에게 천운(공격력·체력을 1~7 로 새로 뽑는다)이 든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우번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우번별전』 · 『강표전』 · 『오력』 · 『회계전록』 · 위서 왕랑전 · 화흠전 · 오서 손책전 · 유기전 · 제갈근전 · 여몽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우번은 자가 중상이며 회계군 여요현 사람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기개가 높았습니다. 열두 살 때 형을 찾아온 손님이 자기를 들르지 않고 가자 「호박은 썩은 겨자씨를 줍지 않고 자석은 굽은 바늘을 받지 않는다 하니, 지나치고 머물지 않는 것도 마땅하다」는 편지를 뒤쫓아 보냈고, 손님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이름이 났습니다. 『우번별전』에 따르면 그의 집안은 영릉태수를 지낸 고조부 우광 때부터 맹씨의 역을 익혀 다섯 대째 그 학문을 이었고, 아버지 우흠은 일남태수였습니다.

회계태수 왕랑이 그를 공조로 삼았습니다. 건안 원년(196) 손책이 회계를 치러 오자 아버지 상중이던 우번은 상복 차림으로 관부에 나아가 손책을 피하라고 권했으나 왕랑은 듣지 않았고, 맞서 싸우다 져서 바다로 달아났습니다. 우번은 그를 따라 지키며 후관에 이르렀고, 현장이 성문을 닫자 달래어 들게 했습니다. 왕랑이 「그대에게는 늙은 어머니가 있으니 돌아가라」고 하자 그제야 돌아왔습니다. 『우번별전』은 이와 달리 그가 왕랑의 심부름으로 예장에 가다 돌아왔고, 상중에도 집에 들르지 않고 왕랑을 쫓았다고 적습니다. 손책은 돌아온 그를 다시 공조로 삼고 벗의 예로 대하며 몸소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손책이 말 달리고 사냥하기를 좋아하자 우번은 「남의 임금 된 이가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없다」며 가볍게 나다니지 말라고 간했고, 손책은 그 말이 옳다고 했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손책은 황조를 치고 돌아오며 예장을 거두려 할 때 우번을 먼저 보내 자기 뜻을 전하게 했고, 우번이 태수 화흠을 만나 형세를 따져 말하자 화흠은 이튿날 아침 성을 나와 아전을 보내 손책을 맞았습니다. 『오력』도 비슷한 이야기를 적지만, 배송지는 화흠이 제 힘을 헤아려 그친 것이지 반드시 우번의 말 때문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우번은 뒤에 부춘현의 장으로 나갔습니다.

건안 5년(200) 손책이 죽자 여러 현의 장리들이 상을 치르러 떠나려 했으나, 우번은 이웃 현의 산민이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 남아서 상복을 입고 상을 치렀고 여러 현이 이를 본받아 모두 편안했습니다. 『회계전록』은 이때 그가 회계를 노리던 손책의 사촌 형 손고를 달래 물러가게 했다고 적습니다. 뒤에 주에서 무재로 천거되고 한나라 조정이 시어사로, 사공 조조가 불렀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부 공융에게 편지와 함께 자신이 지은 『역주』를 보였고, 공융은 「동남의 아름다운 것이 회계의 대나무 화살만이 아님을 알겠다」고 답했습니다.

손권은 그를 기도위로 삼았습니다. 우번은 여러 번 얼굴을 맞대고 간해 손권이 좋아하지 않았고, 성품이 세속과 어울리지 않아 헐뜯김을 많이 받다가 죄를 얻어 단양군 경현으로 옮겨졌습니다. 여몽은 관우를 치려 꾀하며 병을 핑계로 건업에 돌아왔을 때, 우번이 의술도 안다며 데려가기를 청했는데 이로써 그를 풀려나게 하려는 뜻도 있었습니다. 여몽전 배송지 주의 『오서』에 따르면 공안을 지키던 장군 사인이 만나 주지 않자 우번은 편지를 보내 그를 항복시키고, 사인을 데리고 남군으로 가라고 여몽에게 일렀습니다. 남군태수 미방이 성문을 열고 항복했는데 여몽이 성에 들기 전에 모래톱에서 풍악을 벌이자, 우번은 「지금 한마음인 이는 미 장군뿐이니 성 안 사람을 다 믿을 수 없다」며 서둘러 성에 들라고 권했고, 성 안에 숨어 있던 꾀가 이 덕에 틀어졌습니다. 관우가 패하자 손권이 점을 치게 했는데 우번은 「이틀을 넘기지 않아 반드시 머리가 잘릴 것」이라 했고 과연 그 말대로 되었습니다. 손권은 「경은 복희에는 못 미치나 동방삭과는 견줄 만하다」고 했습니다.

손권은 관우에게 사로잡혀 있던 위나라 장수 우금을 풀어 주고 말을 나란히 타고 나갔는데, 우번은 「항복한 포로가 어찌 우리 임금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는가」 하며 채찍으로 치려다 손권에게 제지당했습니다. 누선의 잔치에서 우금이 음악을 듣고 울자 「거짓으로 살길을 구하려 하느냐」고 해 손권을 언짢게 했습니다. 손권이 오왕이 된 뒤 잔치 끝에 몸소 일어나 술을 돌리자, 우번은 땅에 엎드려 취한 척하며 잔을 받지 않다가 손권이 지나가자 일어나 앉았습니다. 크게 노한 손권이 칼을 들어 치려 하자 대사농 유기가 그를 끌어안고 말렸고, 손권이 「조맹덕도 공문거를 죽였는데 내가 우번쯤이야」 하자 「맹덕은 선비를 가벼이 해쳐 천하가 그르다 했다」며 거듭 간해 우번은 죽음을 면했습니다. 손권은 이 뒤로 술 뒤에 죽이라 한 말은 따르지 말라고 일렀습니다.또 배를 타고 가다 미방의 배와 마주치자 「충과 신을 잃고서 무엇으로 임금을 섬기는가. 남의 두 성을 기울게 하고 장군이라 일컬어도 되는가」 하고 꾸짖어, 미방은 문을 닫고 대꾸 없이 비켜 갔습니다.

우번은 성품이 거칠고 곧아 술로 인한 실수가 잦았습니다. 손권이 장소와 신선을 이야기하자 그는 장소를 가리키며 「저들은 모두 죽을 사람인데 신선을 말하니 세상에 어찌 신선이 있겠는가」라고 했고, 노여움이 쌓일 대로 쌓인 손권은 마침내 그를 교주로 옮겼습니다. 제갈근전은 귀양 간 우번을 위해 오직 제갈근만이 여러 번 변호했다고 적습니다. 죄를 입고 쫓겨나서도 그는 강학을 게을리하지 않아 문도가 늘 수백 명이었고, 『노자』 · 『논어』 · 『국어』에 풀이를 달아 모두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우번별전』에 따르면 그는 손권이 황제가 되자 귀양지에서 축하하는 글을 올렸고, 남쪽에서 그는 「살아서는 함께 말할 이가 없고 죽어서는 쉬파리가 조문객이 될 것이니, 천하에 나를 알아주는 이가 한 사람만 있어도 한이 없겠다」고 했습니다.

남쪽에 십여 년 있다가 일흔 살에 죽었습니다. 『오서』에 따르면 그는 귀양 중에도 나라를 잊지 않아, 바다 건너 요동에 사람과 재물을 보내 말을 구하는 것이 나라에 이롭지 않다는 글을 지어 교주의 여대에게 보였는데, 여대가 답하지 않았고 미워하는 이의 고발로 다시 창오군 맹릉현으로 옮겨졌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뒷날 요동으로 보낸 장병이 바다에서 바람을 만나 많이 잃자 손권은 우번이 밝고 곧아 말을 다하는 나라의 바른 신하였다며 뉘우치고, 살아 있으면 도읍으로 돌려보내라고 일렀으나 그는 이미 죽은 뒤였습니다. 그는 고향의 옛 무덤에 돌아가 묻혔고 처자도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열하나였는데 넷째 우사가 가장 이름났고, 우충은 의도태수, 우용은 월기교위, 우병은 제음태수를 지냈습니다. 진수는 「우번은 옛날의 미친 듯 곧은 사람이라 말세에 화를 면하기 어려웠으나, 손권이 그를 품지 못한 것도 넓은 도량은 아니다」라고 평했습니다.

虞翻古之狂直,因難免乎末世,然權不能容,非曠宇也
우번은 옛날의 미친 듯 곧은 사람이라 말세에 화를 면하기 어려웠으나, 손권이 그를 품지 못한 것도 넓은 도량은 아니다『삼국지』 오서 우번전 평
乃知東南之美者,非徒會稽之竹箭也
동남의 아름다운 것이 회계의 대나무 화살만이 아님을 알겠다『삼국지』 오서 우번전에 실린 공융의 답장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5회 · 제29회 · 제43회 · 제75회

연의에서 우번은 제15회에 처음 나옵니다. 회계태수 왕랑이 손책에게 쫓긴 엄백호를 구하려 하자 군리 우번이 「손책은 인의의 군사이고 엄백호는 포악한 무리이니 엄백호를 사로잡아 손책에게 바치라」고 말립니다. 연의는 그를 회계 여요 사람으로 자가 중상이라 소개하고, 왕랑이 노해 꾸짖자 그는 길게 탄식하고 물러납니다. 뒤에 주태가 크게 다치자 동습이 예전에 회계의 어진 군리 우번이 천거한 의원 덕에 반달 만에 나았다고 하고, 손책은 장소와 동습을 보내 우번을 맞아 공조로 삼습니다. 우번은 패국 초군 사람 화타를 천거합니다.

제29회에서 손책이 여강을 빼앗고 유훈을 깨뜨린 뒤 우번에게 격문을 들려 예장으로 보내자 태수 화흠이 항복합니다. 제43회에서 제갈량이 강동의 선비들과 말을 겨룰 때 우번은 「조공은 군사 백만에 장수 천을 거느리고 강하를 삼키려 하니 공은 어찌 여기는가」 하고 묻습니다. 제갈량이 원소의 개미 떼 같은 군사와 유표의 오합지졸을 거둔 것이라 받아치자, 우번은 당양에서 지고 하구에서 꾀가 다해 남에게 구원을 청하면서 두렵지 않다고 하니 큰소리로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 비웃습니다. 제갈량이 강동은 군사와 군량이 넉넉하고 장강의 험함이 있는데도 주인을 도적에게 무릎 꿇게 하려 한다고 되받자 우번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제75회에서 형주를 얻은 손권이 공안의 부사인과 남군의 미방을 어떻게 거둘지 묻자, 우번이 나서서 활 한 번 쏘지 않고 세 치 혀로 부사인을 항복시키겠다고 하며 자신은 어려서부터 부사인과 사이가 두터웠다고 말합니다. 군사 오백을 이끌고 공안에 이른 그는 성문이 닫혀 있자 편지를 화살에 매어 성 안으로 쏘아 보내고, 관우를 두려워하던 부사인은 성문을 열어 그를 맞아 함께 인수를 들고 항복합니다. 연의에서 우번이 이름으로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6손책이 회계를 치자 왕랑에게 피하라고 권했으나 듣지 않았고, 달아난 왕랑을 후관까지 따라갔습니다.
  2. 196돌아오자 손책이 그를 다시 공조로 삼고 벗의 예로 대했습니다.
  3. 200손책이 죽자 상을 치르러 떠나지 않고 고을을 지켜 여러 현이 이를 본받았습니다.
  4. 219여몽을 따라 형주로 가서 항복한 남군에 서둘러 들라고 권했고, 관우가 이틀 안에 죽으리라 점쳤습니다.
  5. 221오왕이 된 손권이 술을 돌릴 때 취한 척하다가 칼에 맞을 뻔했으나 유기가 말렸습니다.
  6. 229『우번별전』에 따르면 손권이 황제가 되자 귀양지에서 축하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우흠 · 아들 열하나(넷째 우사 · 우충 · 우용 · 우병 등)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곧은 말을 하겠소.

말을 열며

바른말이 거슬리거든 미리 이르시오.

되받으며

듣기 좋은 말을 바라지는 마시오.

말문이 막혀

…또 말이 지나쳤는가.

말문이 막혀

이러다 교주로 쫓겨나겠구려.

설전을 이기고

바른말은 끝내 이기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혀가 화를 부르는구려.

이긴 뒤

곧은 말이 이겼소.

진 뒤

…또 남쪽으로 가겠구려.

쓰러지며

곧은 말이 나를 남쪽으로 보냈다.

같은 기치 아래

왕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