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욱荀彧

자 문약(文若) · 163년 ~ 212년 · 예주 영천군 영음현 · 한 세력의 주인

순욱 초상

조조의 패업을 설계했으나 위공 추대를 막다 수춘에서 죽은 참모

능력치

통솔54무력14지력95정치99매력94

카드

공격력 2체력 3비용 3값어치 11직군 능리
왕좌 비용 2
다음에 낼 책략 둘의 값이 1씩 내린다
첩보 비용 1
적의 손패를 본다 + 지휘력 +1
반계 비용 2
비밀 · 적이 책략을 쓸 때 · 그 책략을 무효로 한다 (값은 적이 이미 냈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순욱전과 배송지 주의 『위씨춘추』 · 『순욱별전』 · 『헌제춘추』 · 『후한서』 순욱전 · 『삼국지』 위서 무제기 · 순유전 · 곽가전 · 정욱전

순욱은 자가 문약이며 영천군 영음현 사람입니다. 할아버지 순숙은 낭릉령으로 이름이 높았고 아들 여덟을 두어 「팔룡」이라 불렸으며, 아버지 순곤은 제남상, 숙부 순상은 사공을 지냈습니다. 젊은 날 남양의 하옹이 그를 남다르게 보고 「왕을 보좌할 재주」라 했습니다. 아내는 중상시 당형의 딸로, 『후한서』는 환관을 꺼린 아버지가 맺어 준 혼인이라고 적습니다.

영한 원년(189) 효렴으로 천거되어 수궁령이 되었고, 동탁의 난이 일자 항보령으로 나갔다가 곧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습니다. 그는 영천이 사방으로 트인 싸움터라며 고향 어른들에게 서둘러 떠나자고 했으나 다들 머뭇거렸고, 기주목 한복이 기병을 보내 맞이하자 홀로 일족을 이끌고 기주로 갔습니다. 남은 이들은 뒤에 동탁의 장수 이각 등에게 많이 죽거나 붙잡혔습니다. 기주에 이르니 원소가 이미 한복의 자리를 빼앗아 그를 귀한 손님으로 대했고 형제 순심도 원소에게 쓰였으나, 순욱은 원소가 끝내 큰일을 이루지 못하리라 헤아리고 초평 2년(191) 동군의 조조에게 갔습니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한 고조의 모사 장량에 견주어 「나의 자방이다」라 하고 사마로 삼았으니,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습니다.

흥평 원년(194) 조조가 도겸을 치러 가며 그에게 남은 일을 맡겼는데, 장막과 진궁이 연주에서 등을 돌려 몰래 여포를 맞아들였습니다. 순욱은 군량을 대라는 장막의 말에서 난이 난 것을 알아채고 동군태수 하후돈을 불러들였고, 하후돈은 그날 밤 모반을 꾀한 수십 명을 베었습니다. 예주자사 곽공이 수만의 무리를 이끌고 와 만나자고 하자 그는 말리는 이들을 두고 나가 만났고, 곽공은 그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자 물러갔습니다. 또 정욱과 꾀해 범과 동아를 달래게 하여 끝내 견성과 함께 세 성을 지켜 조조를 기다렸습니다. 195년 조조가 도겸이 죽은 서주를 먼저 차지하려 하자, 순욱은 한 고조의 관중과 광무제의 하내처럼 연주가 조조의 근본이라며 말렸고, 조조는 보리를 거두고 여포를 깨뜨려 연주를 평정했습니다.

건안 원년(196) 헌제가 낙양으로 돌아오자 조조가 천자를 맞아 허에 도읍하는 일을 의논했는데, 산동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다며 망설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순욱은 진 문공이 주 양왕을 받들자 제후가 따랐다며 「주상을 받들어 백성의 바람을 따르는 것이 대순」이라고 권했습니다. 조조가 천자를 맞아 허에 도읍하자 순욱은 한의 시중이 되어 상서령의 일을 맡았고, 조조가 밖에서 싸우는 동안에도 군사와 나라의 일은 다 그와 헤아렸습니다. 무제기는 천자를 맞자고 권한 이를 순욱과 정욱으로, 허에 도읍하자고 권한 이를 동소 등으로 적습니다. 조조가 누가 그를 대신해 꾀를 낼 수 있겠느냐고 묻자 순욱은 순유와 종요를 댔고, 앞서 희지재를 천거했다가 그가 죽자 곽가를 천거했습니다. 『순욱별전』은 그가 천거해 경상에 이른 이가 열을 헤아렸다고 적습니다.

원소가 오만한 편지를 보내 조조가 크게 노하자, 순욱은 도량 · 꾀 · 용병 · 덕의 네 가지에서 조조가 원소를 이긴다며 먼저 여포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원소와 맞서게 되자 공융이 원소의 모사와 장수를 들어 걱정했는데, 순욱은 그들의 흠을 하나하나 짚으며 안량과 문추는 한 번 싸움에 사로잡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건안 5년(200) 관도에서 원소에게 에워싸인 조조가 군량이 다해 허로 물러나려는 뜻을 편지로 묻자, 순욱은 「먼저 물러나는 쪽이 형세가 꺾인다」며 열에 하나의 군사로 반년을 버텼으니 「반드시 변이 있을 것이고 지금은 기이한 꾀를 쓸 때」라고 답했습니다. 조조는 머물러 원소의 별둔을 기습해 순우경 등을 베었고, 허유의 배반과 안량 · 문추의 죽음, 간하다 죽은 전풍까지 모두 순욱이 헤아린 대로 되었습니다. 201년에는 원소를 두고 유표를 치려는 조조를 말렸고, 203년 조조가 그의 앞뒤 공을 모아 만세정후로 봉했으며, 204년에는 옛 구주를 되살리자는 의논을 거두게 했습니다. 조조는 딸을 그의 맏아들 순운에게 시집보냈고, 순욱은 귀해졌어도 녹과 상을 일가와 벗에게 나누어 집에 남는 재물이 없었습니다. 207년 봉읍을 더 받아 2천 호가 되었고, 208년 유표를 칠 때는 샛길로 가볍게 나아가 뜻하지 않은 때를 치라고 했습니다.

건안 17년(212) 동소 등이 조조를 국공으로 올리고 구석을 갖추어야 한다며 은밀히 순욱에게 뜻을 물었습니다. 순욱은 조조가 본래 의병을 일으켜 조정을 바로잡고 나라를 편안히 하려 했으니, 군자는 덕으로 사람을 아끼는 법이라 이래서는 안 된다고 했고, 조조는 이 일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손권을 치러 가던 조조는 순욱을 초로 불러 군사를 위로하게 하고는 그대로 붙들어 승상의 군사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군이 유수에 이르렀을 때 순욱은 병으로 수춘에 머물다 근심으로 죽었으니 나이 쉰이었고, 시호는 경후입니다. 이듬해 조조는 위공이 되었습니다.

『삼국지』 본문은 이처럼 근심으로 죽었다고만 적지만,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씨춘추』는 조조가 보낸 음식을 열어 보니 빈 그릇이라 약을 마시고 죽었다고 전하고, 『후한서』 순욱전은 이 빈 그릇과 약을 본문에 올려 적었습니다. 두 사서가 그의 죽음을 달리 적는 것입니다. 『후한서』는 헌제가 그의 죽음을 슬퍼해 제삿날의 잔치를 거두었다고도 적습니다. 『헌제춘추』는 그가 복황후의 편지 일을 숨겼다가 조조의 원한을 샀다고 적는데, 배송지는 이를 저속한 말로 군자를 모함한 것이라 물리쳤습니다.

맏아들 순운이 후를 이어 호분중랑장에 이르렀고, 아들 순의는 함희 연간에 사공이 되었습니다. 배송지 주는 함희 2년(265)에 그가 태위로 추증되었다고 적고, 『순욱별전』에서 사마의는 백 수십 년 사이에 순욱만 한 어진 인재를 보지 못했다고 일컬었습니다. 진수는 「왕을 보좌할 풍모가 있었으나, 기미를 살피고 앞일을 내다보는 데서는 그 뜻을 다 채우지 못했다」고 평했습니다. 배송지는 한 왕실의 명을 스무 해 남짓 늘인 것이 그의 본뜻이었고 끝내 몸을 버려 절개를 지켰다며 진수의 평을 모함에 가깝다고 했고, 범엽은 논에서 그가 동소의 의논을 막다가 제명에 죽지 못한 것을 「몸을 죽여 인을 이룬 의리」라 했습니다.

荀彧淸秀通雅,有王佐之風,然機鑒先識,未能充其志也
순욱은 맑고 빼어나며 통달하고 고아해 왕을 보좌할 풍모가 있었으나, 기미를 살피고 앞일을 내다보는 데서는 그 뜻을 다 채우지 못했다『삼국지』 위서 순욱전 평
蓋取其歸正而已,亦殺身以成仁之義也
끝내 바른 데로 돌아간 것을 취할 따름이니, 이 또한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는 의리다『후한서』 순욱전 논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0~61회

연의에서 순욱은 제10회에 처음 나옵니다. 연주에서 인재를 모으던 조조에게 조카 순유와 함께 찾아오는데, 원소를 섬기다 버리고 왔다고 소개되고 조조는 「이 사람은 나의 자방」이라며 크게 기뻐해 그를 행군사마로 삼습니다. 순욱은 곧 동아의 정욱을 천거하고, 정욱이 순욱의 고향 사람 곽가를 일깨우자 다시 곽가를 천거합니다. 조조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러 서주로 떠나며 순욱과 정욱에게 견성 · 범현 · 동아를 맡기고, 제11회에서 여포가 연주를 휩쓸 때 이 세 곳만은 두 사람의 계책으로 지켜집니다. 제12회에서는 도겸이 죽자 서주를 치려는 조조를 한 고조의 관중과 광무제의 하내를 들어 말립니다.

제14회에서 헌제가 낙양으로 돌아오자 진 문공과 한 고조의 옛일을 들어 천자를 받들라고 권하고, 허도로 옮기는 일에는 한은 화덕이고 조조는 토의 운이며 허도는 토에 속하니 그곳에 가면 반드시 일어난다고 풀이합니다. 시중 상서령이 된 뒤에는 유비와 여포를 서로 싸우게 하는 「이호경식지계」와, 원술을 부추겨 유비를 치게 하는 「구호탄랑지계」를 냅니다. 제16회에서는 몸을 의탁해 온 유비를 일찍 없애야 한다고 권하지만 곽가가 말립니다. 제18회에서는 곽가가 원소를 이길 열 가지를 늘어놓자 제 생각과 같다며 맞장구를 치고, 제22회에서는 원소와 화친하자는 공융에게 원소 신하들의 흠을 하나하나 짚어 보입니다. 제23회에서 예형이 조조의 모사들을 헐뜯을 때는 「순욱은 조문과 문병이나 시킬 만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제30회에서 관도의 조조가 군량이 다해 허창으로 물러날지 묻자, 순욱은 원소가 무리를 다 모아 승부를 내려 하니 지금은 기이한 꾀를 쓸 때라며 버티라는 답장을 보냅니다. 이어 조조가 순욱에게 군량을 서둘러 대라고 보낸 편지는 원소 쪽에 잡혀 허유의 손에 들어가고, 허유는 그 편지를 들고 조조에게 와서 오소를 치라고 일러 줍니다. 그 뒤로도 순욱은 허도를 지키며 관우의 마음이 유비에게 있음을 일깨우고 남쪽 원정의 때를 헤아리는 등 곳곳에서 조조를 돕습니다.

제61회에서 동소가 조조를 위공으로 올리고 구석을 더하자고 하자, 시중 순욱은 승상은 본래 의병을 일으켜 한실을 붙들었으니 충정의 뜻과 겸양의 절개를 지켜야 한다며 반대하고, 조조는 낯빛이 바뀌어 그를 깊이 원망합니다. 건안 17년 겨울 10월 조조가 강남으로 내려가며 그를 데려가자, 자신을 죽이려는 마음을 눈치챈 순욱은 병을 핑계로 수춘에 머뭅니다. 조조가 친필로 봉한 음식 합을 보내오고 열어 보니 아무것도 없자, 순욱은 그 뜻을 알아채고 독을 마셔 쉰의 나이로 죽습니다. 아들 순운이 부고를 올리자 조조는 몹시 뉘우치며 후히 장사 지내게 하고, 시호는 경후입니다. 연의에서 순욱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제66회에서 위왕 추대에 반대한 순유를 두고 조조가 「이 사람이 순욱을 본받으려 하는가」 하고 노하는 등 뒤에는 그 이름만 불립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89효렴으로 천거되어 수궁령이 되었고, 동탁의 난에 항보령으로 나갔다가 벼슬을 버렸습니다.
  2. 191원소를 떠나 동군의 조조에게 가서 「나의 자방」이라는 말을 듣고 사마가 되었습니다.
  3. 194장막과 진궁이 여포를 맞아들이자 견성 · 범 · 동아 세 성을 지켜 조조를 기다렸습니다.
  4. 195서주를 먼저 치려는 조조를 말려 여포를 깨뜨리고 연주를 평정하게 했습니다.
  5. 196천자를 받들라 권해 조조가 헌제를 맞아 허에 도읍했고, 시중으로 상서령의 일을 맡았습니다.허창의 천자
  6. 197원소의 오만한 편지에 노한 조조에게 원소를 이길 네 가지를 들어 보였습니다.
  7. 200관도에서 물러나려는 조조에게 지금이 기이한 꾀를 쓸 때라는 편지를 보내 버티게 했습니다.관도대전
  8. 201원소를 두고 유표를 치려는 조조를 말려 하북을 먼저 치게 했습니다.
  9. 203조조가 앞뒤의 공을 모아 표를 올려 만세정후에 봉해졌습니다.
  10. 204옛 구주를 되살리자는 의논을 멈추게 하고 먼저 하북을 평정하라고 했습니다.
  11. 207봉읍 1천 호를 더 받아 모두 2천 호가 되었습니다.
  12. 208유표를 칠 때 완과 섭으로 드러내 나가되 샛길로 가볍게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13. 212동소 등의 국공 추대에 반대한 뒤 수춘에 머물다 쉰의 나이로 죽었습니다.빈 찬합
  14. 265함희 2년에 태위로 추증되었다고 배송지 주가 적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순곤 · 아내(중상시 당형의 딸) · 형 순연 · 아들 순운 · 순우 · 순선 · 순의 · 조카 순유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한실의 신하가 나왔소.

말을 열며

왕좌의 재주라 하셨소? 값을 하겠소.

되받으며

한실의 신하로서 답하겠소.

말문이 막혀

…뜻이 어긋나는구려.

말문이 막혀

내가 섬긴 것은 무엇이었나.

설전을 이기고

큰 뜻은 바른 자리에서 나오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빈 그릇 하나면 족하오.

이긴 뒤

한실의 이름으로 이겼소.

진 뒤

…빈 그릇을 받을 날이 가깝구려.

쓰러지며

빈 그릇이라… 뜻을 알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