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공소(公昭) · 미상 ~ 249년 · 형주 남양군 · 조조 휘하
사마의의 완벽한 치매 연기에 속아 넘어가 조상 일파를 파멸로 이끈 문관
출전 · 『삼국지』 위서 조상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위말전』 · 위서 삼소제기 · 부하전 주의 『부자』 · 『진서』 선제기
이승은 자가 공소이며 남양 사람입니다. 『삼국지』에는 그의 전이 없고 조상전에 이름이 몇 번 나오며, 그의 내력은 조상전 주에 인용된 『위략』에 있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아버지 이휴는 자가 자랑으로 지략이 있었고, 장로의 사마로 남정에 살았습니다. 한중에 감로가 내리자 이휴는 한나라의 붉은 기운이 오래 쇠했으니 누런 집안이 일어날 것이라며 장로에게 칭호를 세우라고 권했으나 장로는 듣지 않았습니다. 장로가 무너지자 조조는 그가 장로에게 귀순을 권했다 하여 관내후로 삼았고, 이휴는 뒤에 상당과 거록의 태수를 지냈습니다.
이승은 젊어서 도읍에서 노닐며 재주와 지혜가 있었고 조상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명제가 겉치레만 좇는 부화한 무리를 금하자, 누군가 이승의 집에 「사창팔달」이 있어 저마다 주인의 이름이 붙었다고 고발했습니다. 이승은 그 일로 붙잡혔으나 얽힌 사람이 많아 용서받았고, 몇 해 동안 벼슬길이 막혔습니다. 『위략』은 등양도 이승 등과 부화한 벗이었다가 이 일로 쫓겨났다고 적습니다.
명제가 죽고 조상이 정사를 보필하자 이승은 낙양령이 되었습니다. 하후현이 정서장군이 되자 이승을 장사로 삼았는데, 하후현도 본디 그와 가까웠습니다. 『위략』은 낙곡의 싸움이 이승에게서 나온 의논이었으므로 사마의가 그를 언짢게 여겼다고 적고, 『진서』 선제기도 등양과 이승 등이 조상에게 공을 세우라며 촉을 치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조상전에 따르면 참군 양위는 싸움터에서 「등양과 이승이 나랏일을 그르칠 것이니 벨 만하다」고 했습니다. 이승은 형양태수를 거쳐 하남윤에 올랐습니다. 『위략』은 그가 앞뒤로 맡은 고을마다 직분에 걸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하지만, 부하전 주의 『부자』는 하남윤 이승이 늘 지키던 법을 허물어 한때의 명성을 거두었다고 적습니다. 『위략』은 또 그가 하남윤으로 한 해 남짓 있을 때 청사 앞의 지붕을 고치다 작은 재목 하나가 튀어 떨어져 부절을 받던 아전 석호의 머리를 쳤고, 그 열흘 뒤 이승이 형주자사가 되었다고 적습니다.
정시 9년(248) 겨울 이승은 형주로 떠나기에 앞서 사마의에게 인사하러 갔는데, 사마의는 병이 깊은 척 여윈 모습을 보였고 이승은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위말전』에 따르면 조상 등이 이승에게 하직을 핑계로 사마의를 살피게 했습니다. 사마의는 두 여종에게 옷을 들게 했으나 옷이 흘러내렸고, 입을 가리켜 목마르다 하여 여종이 죽을 올리자 죽이 다 흘러 가슴을 적셨습니다. 이승이 가엾게 여겨 눈물을 흘리자 사마의는 그가 병주로 간다며 오랑캐와 가까우니 잘 대비하라 했고, 이승이 본주인 형주로 간다고 두 번이나 고쳐 말해도 병주라고 되풀이하다가 겨우 알아들은 척하며 두 아들 사마사 · 사마소를 부탁했습니다. 이승은 돌아와 조상 등에게 「태부는 말이 어긋나고 입으로 잔을 물지 못하며 남쪽을 북쪽이라 한다」고 전하고, 태부의 병은 다시 낫지 못할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진서』 선제기는 이승이 「사마공은 송장에 남은 숨일 뿐이라 몸과 넋이 이미 떠났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고, 그 뒤로 조상 등이 대비를 풀었다고 적습니다.
이승은 형주에 부임하기 전에 일이 터졌습니다. 가평 원년(249) 정월 고평릉의 변이 일어나고, 장당의 공초로 조상과 하안 등이 모반을 꾀했다는 죄를 입자 형주자사 이승도 함께 죽고 삼족이 멸해졌습니다. 그가 몇 살이었는지와 자식이 있었는지는 사서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勝前後所宰守,未嘗不稱職司馬公尸居餘氣,形神已離,不足慮矣『삼국연의』 제106~107회
연의에서 이승은 제106회에 조상의 문하 손님 5백 가운데 부화를 숭상하던 다섯 사람의 하나로, 자는 공소라고 소개됩니다. 조상이 권세를 잡자 하남윤이 됩니다. 정시 10년을 가평 원년으로 고친 뒤 위주는 이승을 형주자사로 삼고, 조상은 그에게 사마의를 하직하며 소식을 살피게 합니다. 사마의는 조상이 병의 허실을 살피러 보낸 것이라며 관을 벗고 머리를 풀어 이불을 두르고 앉아, 두 여종의 부축을 받으며 이승을 맞습니다.
형주자사가 되어 인사하러 왔다는 이승에게 사마의는 병주는 북방과 가까우니 잘 대비하라 하고, 이승이 형주라고 고쳐 말해도 병주에서 왔느냐, 청주에서 왔느냐 하며 엉뚱하게 받습니다. 곁의 사람들이 태부는 귀가 먹었다고 하자 이승은 종이와 붓을 청해 글로 적어 올리고, 사마의는 그제야 웃으며 귀가 먹었다고 합니다. 이어 사마의는 탕을 마시다 흘려 옷깃을 적시고, 목이 메인 소리로 늙고 병들어 곧 죽을 것이니 두 아들을 잘 봐 달라고 부탁하고는 침상에 쓰러져 헐떡입니다. 이승이 돌아가 자세히 전하자 조상은 「이 늙은이가 죽으면 나는 걱정이 없다」며 크게 기뻐하고, 사마의는 이승이 떠나자 일어나 두 아들에게 이제 조상이 자신을 꺼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107회에서 이승은 조상을 따라 고평릉으로 나갑니다. 장당의 공초에 하안 · 등양 · 필범 · 정밀과 함께 이름이 오르자 붙잡혀 3월에 반역하려 했다고 자백하고, 조상 형제와 함께 저자에서 베여 삼족이 멸해집니다. 연의에서 이승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이휴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소식은 내가 나르오.
형주로 가는 길에 인사차 들렀소이다.
이 눈은 못 속이오. …아마도.
…또 속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이번엔 똑똑히 보았소.
보시오, 나도 볼 줄 아오.
그 병상 연기에 온 천하가 속았소….
전할 소식이 좋구려.
…그 노인에게 또 속았구려.
…그 노인이 나를 속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