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표劉表

자 경승(景升) · 미상 ~ 208년 · 연주 산양군 고평현 · 한 세력의 주인

유표 초상

형주를 평화롭게 다스렸으나 후계자 문제로 멸망을 자초한 학자 군벌

능력치

통솔48무력31지력71정치83매력85

카드

공격력 3체력 3비용 2값어치 8직군 능리
징집 비용 2
아군 하나를 비용 없이 소환한다. 고른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유표전과 배송지 주의 사마표 『전략』 · 『부자』 · 『한진춘추』 · 『전론』 · 『위서』 · 『영웅기』 · 『세어』 · 위서 무제기 · 가후전 · 오서 손견전 · 손책전과 『강표전』 · 촉서 선주전 · 『후한서』 유표전 · 당고전

유표는 자가 경승이며 산양군 고평현 사람으로, 『후한서』는 그가 노공왕의 후손이라 적습니다. 키가 여덟 자 남짓에 풍채가 훌륭했습니다. 『삼국지』는 그가 젊어서 이름이 알려져 「팔준」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후한서』 유표전은 같은 군의 장검 등과 함께 비방을 받아 「팔고」로 불렸다고 하고, 『후한서』 당고전은 천하의 명사를 일컫는 칭호에서 그를 「팔급」의 하나로 적어 기록이 갈립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사승의 『후한서』에 따르면 그는 같은 군의 왕창에게 배웠고, 열일곱 살 때 남양태수 왕창이 지나치게 검소하자 「사치는 윗사람을 넘보지 않고 검소함은 아랫사람을 핍박하지 않는 것이 중용의 길」이라며 간했습니다. 조정이 당인을 잡아들일 때 달아나 화를 면했고, 당고가 풀리자 대장군 하진의 연리를 거쳐 북군중후가 되었습니다.

초평 원년(190) 장사태수 손견이 형주자사 왕예를 죽이자 유표가 조서를 받아 형주자사가 되었습니다. 그때 강남에는 종족이 무리 지어 도적이 된 이들이 들끓었고 원술이 노양에 진을 치고 있어 부임할 수 없었으므로, 유표는 홀로 말을 타고 의성에 들어가 남군의 괴월과 양양의 채모를 청해 함께 꾀했습니다. 괴월은 「다스려진 때에는 인의를 앞세우고 어지러운 때에는 권모를 앞세운다」며 이익을 보여 도적 우두머리들을 꾀어내자고 했고, 유표는 괴월을 시켜 우두머리들을 불러 온 열다섯 명을 모두 베고 그 무리를 빼앗았습니다. 양양성을 차지한 강하의 도적 장호 · 진생은 괴월과 방계를 보내 달래어 항복받았고, 강남이 모두 평정되었습니다.

원술이 손견을 보내 유표를 치자, 손견은 황조를 깨뜨리고 양양을 에워쌌으나 『삼국지』 손견전에 따르면 홀로 말을 타고 현산을 지나다 황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배송지 주의 『영웅기』는 유표의 장수 여공의 군사가 굴린 돌에 맞았다고 적어 기록이 갈립니다. 이각 등이 장안에 들어오자 유표는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고, 이각은 그를 진남장군 · 형주목으로 삼고 성무후에 봉했습니다. 건안 원년(196) 장제가 양성을 치다 화살에 맞아 죽자 형주의 관리들이 축하했는데, 유표는 「장제는 궁해서 왔는데 주인이 예를 갖추지 못해 싸움에 이르렀으니 목의 뜻이 아니다. 조문은 받되 축하는 받지 않겠다」 하고 그 무리를 받아들이니 무리가 기뻐하며 따랐습니다. 장사태수 장선이 등을 돌리자 여러 해 에워싸 그가 병으로 죽은 뒤 아들 장역까지 쳐서 평정했고, 남쪽으로 오령에 닿고 북쪽으로 한천을 차지해 땅이 사방 수천 리에 갑옷 입은 군사가 10만이 넘었습니다. 『후한서』는 관서와 연주 · 예주에서 피란해 온 학사가 천을 헤아렸는데 유표가 이들을 돌보고 학교를 세웠으며, 기무개 · 송충 등에게 오경의 장구를 짓게 했다고 적습니다.

건안 5년(200)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맞서자, 유표는 원소의 청을 허락하고도 군사를 보내지 않았고 조조도 돕지 않은 채 강수와 한수 사이를 지키며 천하의 변화를 지켜보았습니다. 종사중랑 한숭과 별가 유선이 형주를 들어 조조에게 붙으라 권했고 대장 괴월도 권했으나 유표는 망설이다가 한숭을 허로 보내 형세를 살피게 했습니다. 한숭이 조정에서 시중 · 영릉태수 벼슬을 받고 돌아와 조조의 위엄과 덕을 칭송하며 아들을 볼모로 보내라 하자, 유표는 두 마음을 품었다며 크게 노해 베려 했습니다. 아내 채씨가 「한숭은 초나라의 인망」이라며 말려 가두는 데 그쳤고, 진수는 유표가 겉모습은 선비다웠으나 속은 의심과 시기가 많았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의 『선현행장』은 유표가 하늘과 땅에 교사를 지내자 한숭이 바로 간했으나 듣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건안 6년(201) 원소에게 있던 유비가 오자 유표는 교외까지 나가 맞아 상빈의 예로 대하고 신야에 머물게 했으나, 형주의 호걸들이 날로 유비에게 모여들자 그를 의심해 은근히 막았습니다. 건안 12년(207) 조조가 오환을 치러 북으로 가자 유비가 허를 치자고 권했으나 유표는 따르지 않았고, 『한진춘추』에 따르면 조조가 돌아온 뒤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아 이 큰 기회를 놓쳤다」고 했습니다. 『부자』에 따르면 일찍이 유표를 만난 가후는 「태평한 세상이라면 삼공감이나, 일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 의심이 많아 결단이 없으니 이룰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표는 처음 생김새가 자신을 닮은 맏아들 유기를 아꼈습니다. 그러나 『후한서』에 따르면 작은아들 유종이 후처 채씨의 조카딸을 아내로 맞은 뒤로 채씨가 유종을 아끼고 유기를 미워해 날마다 헐뜯는 말을 했고, 유표는 후처를 아껴 그 말을 믿었습니다. 채씨의 아우 채모와 생질 장윤도 유종의 편에 섰고, 유기는 강하태수로 나갔습니다. 건안 13년(208) 7월 조조가 남쪽으로 유표를 치러 나섰는데, 이르기 전인 8월 유표는 등에 종기가 터져 죽었습니다. 『후한서』는 그가 형주에 스무 해 가까이 있었으나 집에 남은 재물이 없었다고 적습니다. 병문안을 온 유기는 채모 · 장윤에게 막혀 아버지를 보지 못했고, 뒤를 이은 유종은 9월 조조에게 형주를 들어 항복했습니다. 배송지 주의 『위서』는 유표가 병이 깊어 유비에게 형주를 맡기려 했다고 하나, 배송지는 유표 부부가 오래 유종을 아꼈으니 그럴 리 없다고 했습니다.

진수는 원소와 유표를 두고 겉은 너그러우나 속은 시기했고 꾀를 좋아하나 결단이 없었으며, 맏이를 버리고 아랫자식을 세워 뒤가 무너지고 나라가 기울었으니 불행 때문이 아니라고 평했습니다. 범엽은 유표가 남보다 나은 도도 없이 누운 채 하늘의 운수를 거두어 천하를 나누려 했다며 나무로 깎은 인형과 같다고 하면서도, 찬에서는 「유표 또한 덕 있는 어른이었다」고 했습니다.

廢嫡立庶,舍禮崇愛,至于後嗣顛蹙,社稷傾覆,非不幸也
맏이를 폐하고 아랫자식을 세워 예를 버리고 사랑을 높이다가, 뒤가 무너지고 나라가 기울었으니 불행 때문이 아니다『삼국지』 위서 원소 · 유표전 평
表,平世三公才也;不見事變,多疑無決,無能爲也
유표는 태평한 세상의 삼공감이다. 일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 의심이 많아 결단이 없으니 이룰 것이 없다『삼국지』 가후전 배송지 주의 『부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6~8회 · 제18회 · 제23회 · 제31회 · 제34~35회 · 제39~40회

연의에서 유표는 제6회에 처음 나옵니다. 연의는 그를 한실의 종친으로, 젊어서 명사 일곱과 벗하여 「강하팔준」이라 불렸다고 소개하고, 괴량 · 괴월 · 채모가 그를 돕는다고 합니다. 옥새를 숨겼다는 원소의 편지를 받은 유표는 괴월 · 채모를 보내 낙양에서 돌아가는 손견의 길을 막고, 몸소 나와 짐을 뒤져 보겠다고 하다가 손견을 에워쌉니다. 제7회에서 원술의 편지를 받은 손견이 원수를 갚으러 쳐들어오자, 황조는 크게 지고 채모도 패하지만, 괴량의 계책을 받은 여공이 현산에 매복해 돌과 화살로 손견을 죽입니다. 제8회에서 유표는 강동을 치자는 괴량의 말을 물리치고 사로잡힌 황조와 손견의 시신을 바꾸어 화해합니다.

제18회에서 유표는 장수와 함께 안중에서 조조의 뒤를 끊으려다 지고, 가후의 말대로 다시 쫓아 이긴 장수를 보고 그 슬기에 감탄합니다. 제23회에서는 조조가 보낸 예형이 자신을 비꼬자 황조에게 보내 죽게 하고, 허에 다녀와 조조를 칭송한 한숭을 베려다 괴량의 말로 용서합니다. 제31회에서 원소를 떠난 유비가 손건을 보내 오자 채모의 반대를 물리치고 성 밖 30리까지 나가 그를 맞습니다.

제34회에서 유표는 장무 · 진손의 난을 평정한 유비에게 적로마를 받았다가 괴월의 말에 돌려주고 신야에 머물게 합니다. 조조가 북쪽으로 간 틈에 허를 치자는 유비의 말을 「나는 형주에 앉아 있으면 족하다」며 물리쳤다가 뒤에 뉘우치고, 전처 진씨가 낳은 유기와 후처 채씨가 낳은 유종 사이에서 뒤를 정하지 못해 눈물을 흘립니다. 이 말을 엿들은 채부인과 채모가 유비를 죽이려 하고, 벽에 쓴 반역의 시를 보고 칼을 뽑았던 유표도 곧 거짓임을 깨닫고 시를 깎아 냅니다. 채모가 꾸민 양양의 잔치에서 유비는 적로를 타고 단계를 뛰어 건너 달아나며, 제35회에서 유표는 채모를 베려다 채부인의 울음에 용서합니다.

제39회에서 황조가 죽자 유표는 늙고 병들었다며 자신이 죽은 뒤 유비가 형주의 주인이 되라 하고, 유기를 강하로 보냅니다. 제40회에서 병이 깊어진 유표는 유비에게 「내 아들들은 재주가 없으니 내가 죽은 뒤 아우가 형주를 맡으라」고 아이들을 부탁하고, 유기를 형주의 주인으로 세우는 유언을 쓰게 합니다. 그러나 채부인이 문을 닫아 병문안 온 유기를 돌려보내고, 유표는 8월 무신일에 몇 번 크게 외치고 죽습니다. 채부인과 채모는 유언을 거짓으로 꾸며 유종을 세웁니다. 연의에서 유표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69조정이 당인을 크게 잡아들이자 달아나 화를 면했습니다.
  2. 184당고가 풀리자 대장군 하진의 연리가 되었습니다.
  3. 190형주자사가 되어 홀로 의성에 들어가 괴월 · 채모와 함께 종적을 평정했습니다.
  4. 192쳐들어온 손견을 막았고, 손견은 현산에서 황조의 군사가 쏜 화살에 죽었습니다.
  5. 192이각이 그를 진남장군 · 형주목으로 삼고 성무후에 봉했습니다.
  6. 196양성에서 죽은 장제의 일에 조문만 받고 그 무리를 받아들였습니다.
  7. 198등을 돌린 장사태수 장선을 쳐서 여러 해 만에 평정했습니다.
  8. 199황조를 도우러 보낸 조카 유호 등이 사선에서 손책에게 크게 졌습니다.강하를 맡기다
  9. 200관도에서 원소를 돕겠다 하고도 군사를 보내지 않았고, 한숭을 허로 보냈다가 가두었습니다.
  10. 201원소를 떠나 온 유비를 맞아 신야에 머물게 했습니다.
  11. 207조조가 오환을 치는 틈에 허를 치자는 유비의 권유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12. 208후처를 아껴 유종을 뒤로 삼으려 했고 맏아들 유기는 강하태수로 나갔습니다.아버지와 맏아들
  13. 208조조가 남쪽으로 쳐 오는 길에 등에 난 종기로 죽었습니다.뒷일을 못 정하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후처 채씨 · 아들 유기 · 유종 · 처남 채모 · 생질 장윤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형주의 주인이오.

말을 열며

형주 팔군을 말로 다스린 몸이오.

되받으며

혈기로는 강산을 못 지키오.

말문이 막혀

…자리를 지키는 것도 힘들구려.

말문이 막혀

무리하지 않는 것이 내 법이오.

설전을 이기고

가만히 앉아도 이기는 수가 있소.

설전에 지고

지키기만 한 것이 한이 되는구려.

이긴 뒤

형주는 평온하오.

진 뒤

…지키기만 해서는 안 되는가.

쓰러지며

형주를… 지키기만 하였구나.

같은 기치 아래

문빙채모장윤반준유종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