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미상 · 미상 ~ 미상 (208년 이후) · 연주 산양군 고평현 · 유표 휘하
싸우지 않고 형주를 들어 조조에게 항복한 유표의 작은아들
출전 · 『삼국지』 위서 유표전(유종 붙음)과 배송지 주의 『전론』 · 『한진춘추』 · 『위무고사』 · 『후한서』 유표전과 논 · 『삼국지』 위서 무제기 · 왕찬전과 배송지 주의 『문사전』 · 문빙전 · 최염전 배송지 주의 『오서』 · 촉서 선주전과 배송지 주의 『한위춘추』 · 제갈량전
유종은 형주목 유표의 작은아들입니다. 유표는 자가 경승이며 산양군 고평현 사람이고, 『후한서』 유표전은 그에게 유기와 유종 두 아들이 있었다고 적습니다. 유종의 자와 태어난 해는 사서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후한서』에 따르면 유표는 처음에 맏아들 유기가 자기를 닮았다 하여 몹시 아꼈으나, 뒤에 유종에게 후처 채씨의 조카를 아내로 맞게 하자 채씨가 유종을 아끼고 유기를 미워해 헐뜯고 기리는 말이 날마다 유표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채씨의 아우 채모와 유표의 생질 장윤도 유표의 총애를 받으며 유종과 가까웠습니다.
『삼국지』 유표전은 유표와 그 아내가 작은아들 유종을 아껴 뒤를 잇게 하려 했고, 채모와 장윤이 그 무리가 되어 맏아들 유기를 강하태수로 내보냈다고 적습니다. 제갈량전은 유기가 제갈량의 말을 듣고 스스로 나가기를 구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전론』은 유표가 병들어 유기가 문병하러 돌아왔을 때, 채모와 장윤이 부자가 마주 보면 뒷일을 다시 맡길까 두려워 「강하를 맡기신 명을 버리고 오셨으니 꾸중을 들어 병만 더할 것」이라며 문 밖에서 막아 유기가 울며 떠났다고 적습니다.
건안 13년(208) 7월 조조가 유표를 치러 남쪽으로 나섰고, 8월 유표가 죽자 유종이 뒤를 이어 양양에 머물렀고 유비는 번에 있었습니다. 유표전은 이로써 유기와 유종이 원수가 되었다고 적습니다. 『후한서』에 따르면 유종이 후의 인수를 유기에게 보내자 유기는 노하여 그것을 땅에 던지고 문상을 틈타 일을 꾸미려 했으나, 조조의 군사가 신야에 이르자 강남으로 달아났습니다.
괴월 · 한숭과 동조연 부손 등이 조조에게 돌아가라고 권하자 유종은 「지금 여러분과 함께 온 초나라 땅을 차지하고 선군의 업을 지키며 천하를 지켜보는 것이 어찌 안 되겠소」 하고 물었습니다. 부손은 신하로서 임금을 막는 것은 거스름이고, 새로 선 초나라로 나라를 막는 것과 유비로 조공을 대적하는 것은 형세가 맞지 않으니 셋이 다 모자라다고 했습니다. 이어 「장군께서 스스로 헤아리시기에 유비와 견주어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유종은 「내가 못하오」라고 답했습니다. 왕찬전에 따르면 왕찬도 항복을 권했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문사전』은 조공과 견주어 어떠냐는 왕찬의 물음에 유종이 대답하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9월 조조가 신야에 이르자 유종은 주를 들어 항복했습니다. 선주전에 따르면 번에 있던 유비는 조조가 완에 이른 뒤에야 이를 알고 무리를 이끌고 떠났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위춘추』는 유종이 항복을 청하고도 유비에게 감히 알리지 못하다가, 유비가 사람을 보내 묻자 송충을 보내 뜻을 전했다고 적습니다. 양양을 지날 때 제갈량이 유종을 치면 형주를 얻을 수 있다고 권했으나 유비는 차마 못 하겠다며 말을 세우고 유종을 불렀습니다. 유종은 두려워 일어나지 못했고, 유종의 측근과 형주 사람이 많이 유비에게 갔습니다. 『한진춘추』는 방심한 조조를 기습할 군사 수천으로 험한 곳에서 치자는 왕위의 계책을 유종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오서』는 유종이 부절을 들려 조조를 맞게 했다고 전합니다. 유종이 함께 가자고 부르자 대장 문빙은 주를 온전히 지키지 못했으니 죄를 기다릴 뿐이라며 따라나서지 않았습니다.
조조는 유종을 청주자사로 삼고 열후에 봉했으며, 괴월 등 열다섯 사람을 후에 봉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무고사』의 영에서 조조는 청주자사 유종이 마음이 높고 뜻이 깨끗하며 지혜가 깊고 생각이 넓으며, 영화를 가볍게 여기고 의리를 무겁게 여겨 만 리의 업과 삼군의 무리를 가벼이 보았다고 기렸습니다. 그리고 자사의 자리를 돌려드리겠다는 그의 글을 받아들여 간의대부로 삼고 군사의 일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그 뒤의 일과 죽은 해는 사서에 없습니다.
진수는 원소와 유표를 함께 평하며 적자를 버리고 서자를 세워 예를 버리고 사랑을 높인 탓에 뒤를 이은 이가 넘어지고 나라가 무너졌으니 불행 때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범엽도 『후한서』의 논에서 적자가 가볍고 서자가 무거우면 망할 조짐이라는 한비의 말을 들었습니다.
廢嫡立庶,舍禮崇愛,至于後嗣顛蹙,社稷傾覆,非不幸也青州刺史琮,心高志潔,智深慮廣,輕榮重義,薄利厚德『삼국연의』 제34회 · 제40~43회
연의에서 유종은 제34회에 처음 나옵니다. 유표는 유비에게 앞 아내 진씨가 낳은 맏아들 유기는 어질지만 나약해 큰일을 맡기 어렵고, 뒤 아내 채씨가 낳은 작은아들 유종은 꽤 총명하다며 맏아들을 폐하고 작은아들을 세울지 망설인다고 털어놓습니다. 유비가 맏아들을 폐하고 작은아들을 세우는 것은 어지러움을 부르는 길이라 하자, 병풍 뒤에서 엿듣던 채부인이 유비를 미워하게 됩니다. 같은 회에서 유기와 유종 두 공자는 문무 관원을 이끌고 나와 유비를 맞습니다.
제40회에서 유표가 죽자 채부인은 채모 · 장윤과 함께 유언을 거짓으로 꾸며 둘째 아들 유종을 형주의 주인으로 세웁니다. 이때 열네 살인 유종은 꽤 총명하여 「형님은 강하에 있고 숙부 현덕은 신야에 있는데, 나를 세웠다가 그들이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물으면 무어라 풀겠소」 하고 묻고, 맏공자를 세우자던 막관 이규는 채모에게 베입니다. 양양으로 옮긴 유종에게 부손이 형주를 조조에게 바치자고 하자 유종은 선군의 업을 받아 자리도 아직 굳지 않았는데 어찌 남에게 버리겠느냐며 꾸짖지만, 괴월이 거스름과 따름의 큰 줄기를 말하고 왕찬이 조공과 견주어 어떠냐고 묻자 「못하오」 하고 답합니다. 어머니께 여쭙겠다는 유종 앞에 병풍 뒤에서 나온 채부인이 세 사람의 뜻이 같으니 물을 것이 없다고 하자, 유종은 항복의 글을 써서 송충에게 들려 보냅니다. 송충은 돌아오는 길에 관우에게 잡혀 유비 앞에서 모든 일을 털어놓습니다.
제41회에서 백성을 이끌고 양양 동문에 이른 유비가 「유종 현질」을 부르며 문을 열라고 하자, 유종은 두려워 나오지 못하고 채모와 장윤이 화살을 퍼붓습니다. 조조가 부르자 유종은 두려워 가지 못하고 채모와 장윤이 대신 가며, 왕위가 조조를 기습하자고 하자 유종은 그 말을 채모에게 전했다가 채모의 꾸짖음에 묻힙니다. 조조가 형주의 주인으로 길이 두겠다고 했다는 말에 기뻐한 유종은 어머니와 함께 인수와 병부를 받들고 강을 건너 조조를 맞지만, 조조는 그를 청주자사로 삼아 곧 떠나라 합니다. 유종은 벼슬을 바라지 않고 부모의 고향을 지키고 싶다고 사양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옛 장수 왕위만 따른 채 어머니와 청주로 가다가 조조의 명을 받고 뒤쫓아 온 우금의 군사에게 어머니와 함께 죽습니다. 그 뒤 제42~43회에서는 손권 쪽에 닿은 소식과 조조의 편지, 제갈량의 말 속에 항복한 이로만 오르내립니다. 연의에서 유종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제118회의 유종은 후주 유선의 셋째 아들로 다른 사람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유표 · 형 유기 · 아내는 유표의 후처 채씨의 조카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유종이오. 형주목의 아들이오.
선군의 업을 지키며 천하를 지켜보는 것이 어찌 안 되오.
내가 못하다는 것은 아오. 그래도 끝까지 들어 보겠소.
…형님께 보낸 인수가 땅에 떨어졌다 들었소.
온 초나라 땅을 쥐고도 지킬 칼이 내게 없구려.
오늘은 선군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았소.
내가 못하오. 그것을 아는 것도 셈이오.
형주의 군사도 싸울 줄은 아오.
부절을 들려 보내겠소. 더는 못 싸우오.
형주를… 끝내 못 지켰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