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미상 · 미상 ~ 미상 (271년 이후) · 유주 탁군 탁현 · 유비 휘하
신흥왕에 봉해졌다가 낙양에서 아버지의 안락공 작위를 이은 유선의 아들
출전 · 『삼국지』 촉서 후주전과 배송지 주의 왕은 『촉기』 · 이주비자전 배송지 주의 손성 『촉세보』 · 위서 등애전 · 『화양국지』 후현지 문립전 · 『진서』 효회제기
유순은 촉한의 후주 유선의 아들입니다. 자와 태어난 해, 어머니는 전하지 않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손성의 『촉세보』는 태자 유선의 아우로 유요 · 유종 · 유찬 · 유심 · 유순 · 유거를 차례로 적으니, 이 차례대로면 일곱 아들 가운데 여섯째입니다. 『삼국지』 후주전은 경요 2년(259) 그를 신흥왕에 봉했다고 적습니다.
경요 6년(263) 아버지가 등애에게 항복하던 날 형 북지왕 유심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등애는 조정의 명을 빌려 여러 왕을 부마도위로 삼았습니다. 이듬해(264) 그는 온 집안과 함께 낙양으로 옮겨 갔습니다.
태시 7년(271) 아버지가 죽자, 배송지 주에 인용된 왕은의 『촉기』는 아들 유순이 뒤를 이었다고 적습니다. 『화양국지』 문립전은 이름을 적지 않고 이렇게 전합니다. 안락사공의 세자가 일찍 죽어 다음 아들이 이어야 했으나 사공은 아끼던 아들을 세웠고, 문립이 여러 번 간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 아들은 교만하고 사나워 두 주의 선비들이 폐하자고 했으나, 문립은 「그가 사나운 것은 제 집안뿐이고 백성에게는 미치지 않는다」며 말렸습니다. 뒤에 안락공이 음란하고 무도해지자 하반 등이 글을 보내 꾸짖으며 문립의 말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사서에 남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촉세보』는 영가의 큰 난리에 유선의 자손이 끊기고, 유선의 아우 유영의 손자 유현만 촉으로 달아나 이웅에게서 안락공의 이름을 받았다고 적습니다. 『진서』 효회제기는 영가 5년(311) 유요와 왕미가 낙양에 들어왔다고 적으나(이 유요는 유순의 형과 다른 사람입니다), 유순이 그때 살아 있었는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어느 사서에도 없습니다.
諡曰思公,子恂嗣蜀敗,諶自殺,餘皆內徙。值永嘉大亂,子孫絕滅『삼국연의』 제118회
연의에서 유순은 제118회에 이름만 나옵니다. 초주의 말을 따라 항복하려는 후주 앞에 다섯째 아들 북지왕 유심이 나서자, 연의는 후주에게 아들이 일곱 있어 맏이 유선, 둘째 유요, 셋째 유종, 넷째 유찬, 다섯째 북지왕 유심, 여섯째 유순, 일곱째 유거라 하고, 일곱 가운데 유심만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나머지는 다 나약하고 순했다고 적습니다. 유심은 성을 등지고 한 번 싸우자고 울며 간하다 궁문 밖으로 쫓겨나고, 항복할 날이 정해지자 아내 최부인이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죽은 뒤 세 아들을 죽이고 소열제의 사당에서 곡한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튿날 후주는 태자와 여러 왕, 신하 예순 남짓을 거느리고 몸을 묶은 채 북문 밖 십 리에서 항복합니다. 제119회에서 낙양에 온 후주가 안락공에 봉해질 때 연의가 제후가 되었다고 이름을 드는 아들은 유요뿐이고, 유순의 이름은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후주 유선 · 형 다섯(태자 유선 · 유요 · 유종 · 유찬 · 북지왕 유심) · 아우 유거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한의 핏줄이오.
촉은 잃었어도 예법은 잃지 않았소.
나라 잃은 설움을 아시오?
…아버님 생각이 나는구려.
그래도 자리는 지키오.
유씨의 이름은 아직 남아 있소.
난세는 어디까지 쫓아오는가….
한의 이름이 아직 살아 있소.
…핏줄이 여기서 끊기는가.
한의 마지막 핏줄이 끊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