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방糜芳

자 자방(子方) · 미상 ~ 미상 (223년 이후) · 서주 동해국 구현 · 유비 휘하

미방 초상

관우를 등지고 오나라에 성문을 열어주어 촉한을 나락으로 빠뜨린 배신자

능력치

통솔54무력61지력31정치23매력18

카드

공격력 4체력 3비용 2값어치 7직군 맹장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미축전 · 관우전 · 양희전의 『계한보신찬』 · 오서 오주전 · 여몽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오록』 · 우번전 · 하제전

미방은 자가 자방이며 동해 사람으로, 미축의 아우입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형 미축의 전과 관우전 · 오주전 · 여몽전 · 우번전 · 하제전, 그리고 양희의 『계한보신찬』에 진수가 덧붙인 글에 몇 줄씩 나옵니다. 사서는 대개 이 집안의 성을 「고라니 미」 자로 적는데, 연의는 「죽 미」 자로 적습니다.

건안 원년(196) 형 미축이 누이를 유비에게 부인으로 바치고 재물을 내어 군자를 도운 뒤, 조조가 표를 올려 미축을 영군태수로 삼을 때 미방은 팽성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는 모두 벼슬을 버리고 유비를 따라 떠돌았습니다. 뒤에 미방은 남군태수가 되어 강릉에 머물며 형주를 맡은 관우와 함께 일했습니다.

건안 24년(219) 관우가 번성의 조인을 치러 나가자, 미방과 공안에 머물던 장군 사인은 군수품을 힘껏 대어 돕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평소 관우가 자기들을 가볍게 여긴다며 꺼려 왔는데, 관우가 「돌아가면 다스리겠다」고 하자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록』은 일찍이 남군 성 안에 불이 나 무기를 꽤 태우자 관우가 미방을 꾸짖었고, 속으로 두려워하던 미방을 손권이 소식을 듣고 꾀자 미방이 몰래 손권과 통했다고 적습니다. 관우전도 손권이 몰래 두 사람을 꾀었고 두 사람이 사람을 보내 손권을 맞았다고 적습니다.

그해 윤달 손권은 여몽을 앞세워 관우를 쳤습니다. 여몽은 먼저 공안의 사인을 항복시킨 뒤 그를 데리고 남군으로 가서 성을 지키던 미방에게 보였고, 미방은 마침내 항복했습니다. 『오록』은 그가 소와 술을 가지고 나가 항복했다고 적습니다. 우번전에 따르면 미방이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하자 여몽은 성에 들기 전에 모래톱에서 풍악을 벌였는데, 우번이 「지금 한마음인 이는 미 장군뿐이고 성 안 사람들을 다 믿을 수는 없다」며 서둘러 성에 들라고 권했고, 그때 성 안에 숨어 있던 꾀가 이 덕에 틀어졌다고 합니다. 강릉을 잃은 관우의 군사는 흩어졌고, 관우는 그해 12월 장향에서 사로잡혀 죽었습니다. 미축전은 미방이 두 마음을 품고 손권을 맞아들여 관우가 무너졌다고 적고, 형 미축은 스스로 몸을 묶고 죄를 청했다가 부끄러움과 분함으로 병을 얻어 죽었습니다.

오에 들어간 미방은 장군이 되었습니다. 황무 2년(223) 희구의 수장 진종이 장수 왕직을 죽이고 무리를 이끌고 위로 넘어가 기춘태수가 되어 여러 번 국경을 어지럽히자, 손권은 장군 하제 · 미방 · 유소 등을 보내 기춘을 치게 했고 유소 등이 진종을 사로잡았습니다. 하제전은 하제가 미방 · 선우단 등을 거느렸다고 적습니다. 우번전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배를 타고 가던 우번이 미방의 배와 마주치자 미방 쪽 사람들이 「장군의 배를 비켜라」 하고 외쳤는데, 우번이 「충과 신을 잃고서 무엇으로 임금을 섬기는가. 남의 두 성을 넘기고서 장군이라 일컫는 것이 옳은가」 하고 꾸짖자 미방은 문을 닫고 대꾸하지 않은 채 서둘러 비켜 갔습니다. 또 수레를 타고 가던 우번이 미방의 군영 앞을 지날 때 관리가 문을 닫아 수레가 지나가지 못하자, 우번이 「닫아야 할 때는 열고 열어야 할 때는 닫으니 어찌 일이 마땅하겠는가」 하고 성을 냈고 미방은 이를 듣고 부끄러워했습니다.

미방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전하지 않습니다. 양희는 『계한보신찬』에서 미방 · 사인 · 학보 · 반준을 한데 묶어, 원망이 맡은 관원에게서 일어나 큰 덕을 돌아보지 않았고 바로잡아 구하지도 못한 채 등을 돌려 달아나, 스스로 사람들과 끊어지고 두 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靡有匡救,倍成奔北,自絕於人,作笑二國
바로잡아 구하지도 못하고 등을 돌려 달아나, 스스로 사람들과 끊어지고 두 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삼국지』 촉서 양희전 『계한보신찬』 가운데 미방 · 사인 · 학보 · 반준의 찬
失忠與信,何以事君?傾人二城,而稱將軍,可乎?
충과 신을 잃고서 무엇으로 임금을 섬기는가? 남의 두 성을 넘기고서 장군이라 일컬으니 옳은가?『삼국지』 오서 우번전 · 우번이 미방을 꾸짖은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8~83회

연의에서 미방은 제18회에 처음 나옵니다. 여포의 장수 고순이 소패로 쳐들어오자 유비는 미축과 그 아우 미방에게 가운데 진영을 지켜 식구들을 보호하게 하는데, 연의는 미축의 누이가 유비의 둘째 부인이어서 처남과 매부 사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제22회에서는 손건 · 간옹 · 미축과 함께 서주를 지키고, 제28회에서는 서주에서 흩어진 뒤 형과 함께 고성의 장비를 찾아와 다시 모입니다. 제40회에서는 신야에서 유봉과 함께 붉고 푸른 깃발로 조조군을 헷갈리게 하고, 제41회 장판에서는 화살을 여러 대 맞고 돌아와 「조자룡이 조조에게 돌아서 항복해 갔다」며 서북쪽으로 가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하지만 유비는 믿지 않습니다. 제49회 적벽에서는 형 · 유봉과 함께 배를 몰아 패잔병을 사로잡고, 제63회에서는 무장으로 관우를 도와 형주에 남습니다.

제73회에서 관우는 번성을 치러 나서며 부사인과 미방을 선봉으로 삼지만, 두 사람이 술을 마시다 진영에 불을 내 무기와 군량이 타 버리자 목을 베려다 비시의 만류로 곤장 마흔 대씩을 치고 선봉에서 쫓아내 미방에게 남군을, 부사인에게 공안을 지키게 합니다. 제76회에서 먼저 항복한 부사인이 남군으로 와서 함께 항복하자고 하자, 미방은 한중왕의 큰 은혜를 입었고 형제가 오래 섬겼다며 망설입니다. 그때 관우의 사자가 와서 군량 십만 석을 서둘러 보내지 않으면 베겠다는 명을 전하고, 부사인이 그 자리에서 사자를 베어 버리자 미방은 여몽이 성 아래 이르렀다는 말에 부사인과 함께 나가 항복합니다. 제81회에서 유비는 오를 치며 부사인 · 미방을 이를 갈 원수로 꼽습니다.

제83회에서 이릉으로 밀고 온 유비의 기세에 군사들이 두 사람을 죽이고 촉으로 가려 한다는 말을 엿들은 미방은, 태자 아두가 자기 생질이니 유비가 해치지 않으리라며 부사인과 함께 오의 장수 마충을 죽여 그 목을 들고 유비에게 갑니다. 그러나 유비는 여태 오지 않다가 형세가 위태로워지자 교묘한 말로 목숨을 구한다며 노하고, 관우의 영위를 차려 마충의 머리로 제사를 지낸 뒤 두 사람의 옷을 벗겨 영위 앞에 꿇리고 칼로 저며 죽여 관우의 제사를 지냅니다. 연의에서 미방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19관우가 번성을 치러 나간 사이 군수품을 힘껏 대지 않아 「돌아가면 다스리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 219여몽이 항복한 사인을 데려와 보이자 남군을 들어 손권에게 항복했습니다.미씨 형제
  3. 223오의 장군으로 하제 · 유소 등과 함께 위로 넘어간 진종이 있는 기춘을 쳤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형 미축 · 누이(유비의 부인)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문은 열려 있소.

말을 열며

그날의 일은… 사정이 있었소.

되받으며

형님 볼 낯이 없는 몸이나 입은 있소.

말문이 막혀

…또 성문이 열리는 기분이군.

말문이 막혀

변명이라도 해야겠소.

설전을 이기고

이겨도 낯이 서지 않는구려.

설전에 지고

역시 나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오.

이긴 뒤

이 문은 안 열었소.

진 뒤

…또 문을 여는가.

쓰러지며

성문을 연 손이 이 손이다.

같은 기치 아래

관우제갈량조운장비위연방통장완서서왕평관색마속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