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계상(季常) · 187년 ~ 222년 · 형주 양양군 의성현 · 유비 휘하
마씨 5형제 중 가장 뛰어나 '백미(白眉)'라는 고사성어를 탄생시킨 참모
출전 · 『삼국지』 촉서 마량전과 배송지 주 · 선주전 · 요립전 · 강유전 · 양희전의 『계한보신찬』과 배송지 주의 『양양기』 · 오서 오주전
마량은 자가 계상이며 양양군 의성현 사람입니다. 형제 다섯이 모두 재주로 이름이 나서 고을 사람들은 「마씨의 다섯 상 가운데 흰 눈썹이 가장 낫다」는 말을 지어 불렀는데, 마량의 눈썹 속에 흰 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우 마속의 자는 유상입니다. 같은 고을의 향랑은 예전에 마량 형제를 받들며 성인이라 일컬었다고, 뒷날 요립이 향랑을 헐뜯으며 한 말이 요립전에 남아 있습니다.
오주전은 건안 14년(209) 유비가 형주목이 되어 공안에 머물렀다고 적는데, 마량전은 유비가 형주를 맡자 마량을 불러 종사로 삼았다고 합니다. 유비가 익주로 들어가고 제갈량도 뒤따라가자 마량은 형주에 남았습니다. 건안 19년(214) 여름 낙성이 떨어지자 마량은 제갈량에게 글을 보내 「낙성이 이미 떨어졌다니 이는 하늘이 내린 복입니다」라 하고 그를 「존형」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인재를 가려 쓰는 일은 그때에 맞아야 한다 하고, 정치를 고르게 하는 일을 음악에 빗대어 높고 묘한 소리를 고르고 정 · 위의 소리를 바로잡으면 백아와 사광의 가락이 될 것이니, 자신이 종자기는 아니어도 장단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배송지는 마량이 제갈량과 의형제를 맺었거나 인척이었던 듯하며, 제갈량이 나이가 많아 존형이라 불렀을 것이라고 풀었습니다. 그 뒤 유비는 마량을 좌장군의 연(속관)으로 삼았습니다.
뒤에 오에 사신으로 가게 되자 마량은 제갈량에게 「이제 나라의 명을 받들어 두 집안을 화목하게 하러 가니, 저를 손 장군에게 소개해 주십시오」라고 청했습니다. 제갈량이 「그대가 직접 글을 지어 보시오」라 하자, 마량은 곧 스스로 소개의 글을 지었습니다. 저희 임금이 연 마량을 보내 옛 우호를 잇게 하니 곤오와 시위의 공을 잇고자 함이며, 이 사람은 형초의 좋은 선비로 서두르는 화려함은 적으나 끝까지 해내는 아름다움이 있으니 마음을 낮추어 받아들여 달라는 글이었습니다. 손권은 그를 공경하여 대접했습니다.
장무 원년(221) 유비가 황제에 오르자 마량은 시중이 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유비가 오를 치러 나서자 무릉의 오계 만이가 사신을 보내 군사를 청했습니다. 유비는 마량을 무릉에 들여보내 오계의 만이를 불러 달래게 했고, 만이의 우두머리들은 모두 인수와 칭호를 받아 뜻대로 따랐습니다. 선주전은 장무 2년(222) 2월 유비가 효정에 진을 치고 시중 마량을 보내 오계의 만이를 위로하자 모두 서로 이끌고 호응했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그해 유비가 이릉에서 크게 지자 마량도 해를 입었으니, 나이 서른여섯이었습니다. 판본에 따라서는 서른다섯으로 적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유비는 마량의 아들 마병을 기도위로 삼았습니다.
아우 마속은 형주종사로 유비를 따라 촉에 들어가 재주로 제갈량의 아낌을 받았으나, 건흥 6년(228) 가정에서 장합에게 크게 졌습니다. 마량전은 마속이 옥에 갇혀 죽었다고 적고 제갈량전은 제갈량이 그를 죽여 무리에게 사죄했다고 적어 기록이 갈립니다.
진수는 평에서 「마량은 곧고 참되어 훌륭한 선비로 일컬어졌다」고 했습니다. 양희는 『계한보신찬』에서 「계상은 어질고 참되다」로 시작하는 찬을 지어 그를 비롯한 여섯 사람을 초 땅의 난초 향기라 기렸습니다. 건흥 6년 강유를 얻은 제갈량은 장예와 장완에게 보낸 글에서 이소나 마량 같은 이들도 강유만 못하다고 했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양양기』는 습정의 이름이 방통 다음가고 마량보다 위였다고 적습니다.
馬良貞實,稱為令士馬氏五常,白眉最良『삼국연의』 제52~85회
연의에서 마량은 제52회에 처음 나옵니다. 적벽 뒤 형주를 얻은 유비에게 이적은 형주를 오래 지킬 계책을 어진 선비에게 물으라며, 재주로 이름난 마씨 다섯 형제를 들고 「마씨 오상 가운데 흰 눈썹이 가장 낫다」는 고을의 말과 함께 마량을 천거합니다. 이때 막내 마속의 이름도 함께 나옵니다. 불려 온 마량은 형양이 사방에서 적을 받는 땅이라 오래 지키기 어렵다며, 공자 유기를 형주자사로 표주해 민심을 달래고 남쪽의 무릉 · 장사 · 계양 · 영릉 네 군을 쳐서 돈과 양식을 쌓아 근본으로 삼으라 하고, 영릉을 먼저 치라는 차례까지 짚습니다. 유비는 그를 종사로 삼고 이적을 버금으로 붙입니다.
제63회에서 마량은 제갈량의 글을 가지고 부관의 유비를 찾아가 태백성이 낙성에 걸렸으니 조심하라는 뜻을 전하고, 방통이 죽은 뒤 촉으로 떠나는 제갈량은 그를 이적 · 향랑 등과 함께 남겨 관우를 도와 형주를 지키게 합니다. 제66회에서는 노숙의 초청에 홀로 가려는 관우를 말리고, 제73회에서는 이적과 함께 참군이 되어 번성 원정에 나섭니다. 제75회에서 관우는 화타가 독화살 맞은 팔의 뼈를 긁어내는 동안에도 마량과 바둑을 둡니다. 형주를 잃은 관우는 제76회에서 마량과 이적을 성도로 보내 구원을 청하고, 두 사람은 제77회에 성도에 닿습니다.
제81회에서 마량은 오를 치러 가는 유비의 군중에서 진진과 함께 문서를 맡습니다. 제83회에서는 오의 사신 정병이 화친을 청하러 왔음을 아뢰고, 육손의 재주가 주유 못지않으니 가볍게 보지 말라고 간합니다. 유비가 더위를 피해 진영을 숲속으로 옮기자, 마량은 두루 들으면 밝고 한쪽만 들으면 어둡다며 옮긴 진영을 그림으로 그려 동천에 있는 제갈량에게 물어보자고 하고, 유비는 그에게 몸소 그림을 들고 가게 합니다. 제84회에서 그림을 본 제갈량은 책상을 치며 누가 이렇게 진을 치게 했느냐, 그자를 베어야 한다고 하고, 벌판과 험한 곳을 끼고 진을 친 것은 병가의 큰 금기라 불로 치면 막을 길이 없다며 서둘러 돌아가 진영을 고치게 하라고 이릅니다. 제85회에서 마량이 돌아왔을 때 유비는 이미 크게 져 백제성에 물러나 있었고, 마량이 제갈량의 말을 전하자 유비는 승상의 말을 일찍 들었다면 오늘의 패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탄식합니다. 연의에서 마량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제87회에서 형 마량이 막 죽어 상복을 입었다는 마속의 모습으로 그의 죽음이 전해질 뿐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우 마속 · 아들 마병(형제는 모두 다섯)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백미가 왔소.
마씨 다섯 중 으뜸은 흰 눈썹이라 하오.
흰 눈썹이 괜한 이름이 아니오.
…형제들 볼 낯이 없군.
차분히 다시 논하겠소.
백미의 이름값이오.
아우들에게는 비밀로 해 주시오.
흰 눈썹이 헛되지 않았소.
…불길을 못 피했구려.
…흰 눈썹도 불길은 못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