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미상 · 미상 ~ 184년 · 기주 거록군 · 한 세력의 주인
태평도를 창시하여 천하를 뒤흔든 황건적의 대수령
출전 · 『후한서』 황보숭전 · 영제기 · 노식전 · 동탁전 · 양해전 · 하진전 · 환자열전 · 『삼국지』 오서 손견전과 배송지 주의 『헌제춘추』 · 위서 장로전 배송지 주의 『전략』
장각은 거록 사람입니다. 자와 태어난 해는 전하지 않습니다. 『후한서』와 『삼국지』 어디에도 그의 전은 없고, 그를 친 황보숭의 전과 영제기, 『삼국지』 손견전에 그 행적이 붙어 남아 있습니다.
『후한서』 황보숭전에 따르면 장각은 스스로 「대현량사」라 일컫고 황로의 도를 받들며 제자를 길렀습니다. 무릎 꿇고 절하며 허물을 털어놓게 하고 부적 물과 주문으로 병을 고쳤는데, 병자가 자못 나으니 백성이 그를 믿고 따랐습니다. 제자 여덟을 사방에 보내 착한 도로 천하를 가르친다며 서로 꾀어 들이게 하니, 십여 년 사이에 무리가 수십만이 되어 청 · 서 · 유 · 기 · 형 · 양 · 연 · 예 여덟 주의 사람이 모두 응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전략』은 그 도를 태평도라 부르고, 스승이 아홉 마디 지팡이를 들고 부적과 주문을 쓰며 병자에게 머리를 조아려 허물을 뉘우치게 한 뒤 부적 물을 마시게 했다고 적습니다. 『후한서』 양해전은 순제 때 궁숭이 조정에 바쳤다가 요망하다 하여 거두어 둔 『태평청령서』를 뒷날 장각이 꽤 지니고 있었다고 적습니다.
장각은 서른여섯 방을 두었습니다. 방은 장군의 칭호와 같아서 큰 방은 1만여 명, 작은 방은 6~7천 명이었고 저마다 우두머리를 세웠습니다.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누런 하늘이 서리라. 해가 갑자에 있으니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라는 말을 퍼뜨리고, 흰 흙으로 도읍의 관청 문과 주군의 관부에 「갑자」 두 글자를 썼습니다. 큰 방의 우두머리 마원의는 형주와 양주의 무리 수만을 모아 업에서 일어나기로 하고, 여러 번 도읍을 오가며 중상시 봉서 · 서봉 등을 안에서 호응할 사람으로 삼아 3월 5일에 안팎에서 함께 일어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터지기 전에 장각의 제자인 제남 사람 당주가 글을 올려 고했고, 마원의는 낙양에서 거열형을 당했습니다. 조정이 궁궐의 호위와 백성 가운데 장각의 도를 섬기는 이들을 캐내어 천여 명을 죽이고 기주로 장각 등을 쫓자, 일이 드러난 것을 안 장각은 밤낮으로 여러 방에 알려 한꺼번에 일어났습니다. 모두 누런 수건을 표지로 둘러 사람들은 「황건」이라 불렀습니다. 장각은 「천공장군」, 아우 장보는 「지공장군」, 장보의 아우 장량은 「인공장군」이라 일컬었고, 이르는 곳마다 관부를 불사르고 마을을 노략하니 열흘 사이에 천하가 응해 도읍이 흔들렸습니다. 영제기는 이 일을 중평 원년(184) 2월에 두고 장각이 스스로 「황천」이라 일컬었으며 그 무리 36만이 모두 누런 수건을 두르고 같은 날 일어났다고 적습니다. 『삼국지』 손견전은 장각이 위군에서 일어나 「황천태평」이라 일컬었고 3월 갑자일에 한꺼번에 일어났다고 적어 달이 다릅니다.
조정은 당인을 크게 사면하면서도 장각만은 용서하지 않았고, 북중랑장 노식을 보내 장각을 치게 했습니다. 노식은 잇달아 장각을 깨뜨려 1만여 명을 베거나 사로잡았고, 장각 등이 광종으로 물러나 지키자 에워싸고 구름사다리를 만들어 곧 성을 떨어뜨릴 참이었으나 좌풍의 참소로 불려 갔습니다. 뒤를 이은 동중랑장 동탁도 이기지 못했는데, 『후한서』 동탁전은 동탁이 하곡양에서 장각을 쳤다가 졌다고 적습니다.
그해 8월 조정은 황보숭에게 북으로 장각을 치게 했습니다. 10월 황보숭이 광종에서 장량을 깨뜨렸을 때 장각은 이미 병으로 죽은 뒤였고, 황보숭은 관을 쪼개 주검을 욕보이고 그 머리를 도읍으로 보냈습니다. 영제기의 이현 주는 관을 열어 머리를 잘라 말 시장으로 보냈다고 풀이합니다. 11월에는 하곡양에서 장보도 베였고, 조정은 황건이 평정되었다 하여 12월 연호를 중평으로 고쳤습니다.
사서는 장각을 따로 평하지 않습니다. 다만 『후한서』 환자열전에 실린 낭중 장균의 글은 장각이 군사를 일으키고 만민이 즐겨 그를 따른 근원이 모두 십상시가 부형과 자제, 혼인으로 맺은 이와 빈객을 주군에 내보내 재물을 긁어모으고 백성을 침탈한 데 있다고 아뢰었습니다.
蒼天已死,黃天當立,歲在甲子,天下大吉符水呪說以療病,病者頗愈,百姓信向之『삼국연의』 제1~2회 · 제28회
연의에서 장각은 제1회에 처음 나옵니다. 거록군의 세 형제 가운데 맏이로 과거에 떨어진 수재였는데, 산에 약초를 캐러 들어갔다가 푸른 눈에 아이 같은 얼굴을 한 노인에게서 『태평요술』이라는 천서 세 권을 받습니다. 노인은 「하늘을 대신해 교화를 펴고 세상 사람을 널리 구하되, 다른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나쁜 갚음을 받으리라」 이르고 자신이 남화노선이라 밝힌 뒤 맑은 바람이 되어 사라집니다. 장각은 밤낮으로 익혀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할 수 있게 되어 「태평도인」이라 불리고, 중평 원년 정월 돌림병이 돌자 부적 물을 나누어 병을 고치며 「대현량사」라 일컫습니다. 제자 오백여 명이 사방을 돌며 부적을 쓰고 주문을 외우고, 서른여섯 방을 세워 「창천은 이미 죽었으니 황천이 서리라」는 말을 퍼뜨리니 여덟 주의 집집마다 대현량사 장각의 이름을 받듭니다.
장각은 두 아우와 「얻기 가장 어려운 것이 민심인데 이미 민심이 따르니, 이 기세를 타서 천하를 얻지 않으면 참으로 아깝다」고 의논하고, 마원의에게 금과 비단을 들려 환관 봉서와 손잡게 합니다. 그런데 봉서에게 글을 전하라고 보낸 제자 당주가 곧장 궁중으로 가서 일을 고했고, 하진이 마원의를 잡아 벱니다. 일이 드러나자 장각은 밤을 도와 군사를 일으키고 스스로 천공장군, 장보는 지공장군, 장량은 인공장군이라 일컬으며 「한의 운수가 다하고 큰 성인이 나왔다」고 외치니, 누런 수건을 두르고 따른 백성이 사오십만이었습니다. 하진의 아룀으로 노식 · 황보숭 · 주준이 세 길로 나서고, 유주 땅을 범한 장각의 한 갈래 군사와의 싸움에서 유비 · 관우 · 장비가 처음 이름을 얻습니다.
광종에서 장각은 무리 15만으로 노식의 군사 5만과 맞서고, 노식은 장각이 요술을 써서 곧바로 이기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노식이 불려 간 뒤 대신 온 동탁을 쳐서 이기고 뒤쫓던 장각은 「천공장군」 깃발 아래서 유비 삼형제의 돌격을 받아 크게 어지러워져 50여 리를 물러납니다. 제2회에서 장각은 소식으로만 나옵니다. 동탁 대신 나선 황보숭이 이르렀을 때 장각은 이미 죽었고, 황보숭은 곡양에서 장량을 벤 뒤 장각의 관을 파내어 주검을 욕보이고 목을 베어 도읍으로 보냅니다. 연의는 장각이 어떻게 죽었는지 적지 않습니다. 제28회에서 관우 앞에 나타난 배원소는 자신이 천공장군 장각의 부장이었고 장각이 죽은 뒤 주인 없이 산림에 모여 있었다고 말합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우 장보 · 장량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황천이 이제 선다!
푸른 하늘은 죽고 누런 하늘이 서리라.
천하의 백성이 내 뒤에 서 있다.
…부적이 듣지 않는가.
하늘이 아직 때가 아니라 하는가.
갑자년이 곧 새 하늘의 해이니라.
…누런 하늘은 끝내 오지 않는가.
황천이 마침내 섰다!
…태평의 날은 아직인가.
황천은… 아직 서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