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 ~ 208년 · 미상 · 한 세력의 주인
현산에서 손견을 죽게 하고 손권에게 목이 베인 유표의 강하태수
출전 · 『삼국지』 오서 손견전 · 손책전과 배송지 주의 『전략』 · 『영웅기』 · 『강표전』 · 『오록』 · 오서 오주전 · 감녕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동습전 · 능통전 · 서성전 · 여몽전 · 주유전 · 오범전 · 『후한서』 예형전 · 유표전
황조는 『삼국지』에 제 전이 없고, 손견 · 손책 · 손권 · 감녕 · 동습 등의 전과 『후한서』 예형전 · 유표전에 그 일이 흩어져 있습니다. 자와 출신, 태어난 해는 전하지 않습니다. 『후한서』는 그를 형주목 유표의 장수인 강하태수라 적고, 성미가 급했다고 합니다.
초평 3년(192) 원술이 손견을 시켜 유표를 치게 하자, 유표는 황조를 보내 번과 등 사이에서 맞게 했습니다. 손견은 황조를 깨뜨리고 한수를 건너 양양을 에웠으나, 홀로 말을 타고 현산을 가다 황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전략』에 따르면 유표가 밤에 몰래 내보낸 황조가 돌아오다 손견에게 져 현산 속으로 숨었고, 밤에 뒤쫓던 손견을 황조의 군사가 대숲 사이에서 쏘아 죽였습니다. 『영웅기』는 유표의 장수 여공의 군사가 굴린 돌에 맞았다고 하고 죽은 때도 초평 4년 정월이라 해 기록이 갈립니다.
『후한서』 예형전에 따르면 유표는 자신을 업신여기는 예형을 견디지 못해 성미 급한 황조에게 보냈는데, 황조도 그를 잘 대했습니다. 예형이 문서를 맡자 무겁고 가벼움과 성기고 촘촘함이 다 알맞아, 황조는 그 손을 잡고 「바로 내 뜻을 얻었으니 내 뱃속에서 하고 싶던 말 같다」며 기뻐했습니다. 맏아들인 장릉태수 황역은 예형과 더욱 가까웠습니다. 뒤에 황조가 몽충 배 위에서 손님들을 크게 모았을 때 예형이 불손한 말을 하고 꾸짖는 그에게 도리어 욕을 하자, 크게 노한 황조는 그를 죽이라 했고 예형을 미워하던 주부가 곧바로 죽였습니다. 황역이 맨발로 달려왔으나 늦었고, 황조도 뉘우쳐 후하게 장사 지냈습니다.
건안 4년(199) 손책은 여강의 유훈을 깨뜨리고 황조를 쳤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황조는 아들 황역에게 배 군사 5천으로 유훈을 돕게 했으나 황역은 달아났고, 유표도 조카 유호와 남양의 한희에게 긴 창 군사 5천을 주어 황조의 선봉으로 보냈습니다. 『오록』에 실린 손책의 표는 12월 황조가 둔친 사선현에 이르러 주유 · 여범 · 정보 · 손권 · 한당 · 황개 등과 함께 나아가 그를 무너뜨렸다고 적습니다. 한희 이하 2만여를 베고 물에 빠진 이가 1만여였으며, 배 6천여 척과 황조의 아내와 자식 남녀 일곱을 얻었으나 황조는 홀로 달아났습니다. 손책은 이 표에서 그를 「본디 교활하여 유표의 심복이 되고 밖에 나가 발톱과 어금니가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손권이 뒤를 잇자 황조와의 싸움은 이어졌습니다. 서성전에 따르면 황역이 수천을 이끌고 내려와 시상을 치다 서성에게 크게 진 뒤 다시는 쳐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건안 8년(203) 손권은 황조의 배 군사를 깨뜨렸으나 성은 떨어뜨리지 못했는데, 『오서』에 따르면 이때 황조 밑의 감녕이 뒤를 막으며 교위 능조를 쏘아 죽여 황조가 빠져나갔습니다. 그래도 황조는 감녕을 여전히 보통 사람으로 대했고, 감녕은 도독 소비의 도움으로 주현의 장이 되어 떠난 뒤 오로 갔습니다. 건안 11년(206) 황조의 장수 등룡이 수천을 이끌고 시상에 들어왔다가 주유에게 사로잡혔고, 이듬해(207) 손권은 다시 황조를 쳐 백성을 사로잡아 돌아갔습니다.
오로 간 감녕은 황조가 늙어 정신이 흐리고 재물만 탐하며 배와 싸움 기구를 손보지 않으니 치면 반드시 깨뜨린다고 아뢰었습니다. 건안 13년(208) 봄 손권이 다시 쳐들어오자, 황조는 몽충 두 척을 가로질러 면구를 막고 종려 껍질로 꼰 굵은 밧줄에 돌을 매달아 닻으로 삼았으며, 배 위의 천 명이 쇠뇌를 번갈아 쏘아 오군이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동습과 능통이 각각 결사대 백 명을 이끌고 뛰어들어 동습이 두 밧줄을 칼로 끊자 몽충이 떠내려갔고, 여몽은 황조의 수군 도독 진취를 베었으며 능통은 앞장서 성을 쳤습니다. 진취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황조는 성을 버리고 달아났고, 오주전은 몸만 빠져 달아나던 그를 기병 풍칙이 쫓아가 목을 베었다고 적습니다. 감녕전은 손권이 황조를 사로잡았다 하고 오범전은 밤에 달아난 그를 오경에 잡았다고 적어, 끝의 모습은 조금씩 갈립니다. 손권은 남녀 수만을 사로잡아 돌아갔습니다.
祖宿狡猾,爲表腹心,出作爪牙祖今年老,昏耄已甚,財穀並乏,左右欺弄,務於貨利『삼국연의』 제7~8회 · 제23회 · 제38~39회
연의에서 황조는 제7회에 처음 나옵니다. 원술의 편지를 받은 손견이 유표를 치러 오자, 괴량의 말에 따라 강하의 군사를 이끌고 앞장섭니다. 그는 강가에 궁노수를 숨겨 다가오는 배에 사흘 동안 화살을 퍼붓지만, 손견은 배를 붙였다 떼었다 하며 화살을 받아 내고 그것이 다하자 배에 꽂힌 십수만 대의 화살을 거꾸로 쏘며 뭍에 오릅니다. 정보 · 황개 · 한당의 협공에 번성을 버리고 등성으로 물러난 황조는 장호 · 진생을 내보내 손견을 꾸짖지만, 진생은 손책의 화살에, 장호는 한당의 칼에 죽고 자신은 투구와 말을 버린 채 보졸 사이에 섞여 달아납니다. 여공의 매복으로 손견이 죽은 뒤 성에서 나와 싸우다 황개에게 사로잡히고, 제8회에서 유표는 「황조와 나는 심복의 사귐」이라며 그를 손견의 시신과 맞바꾸어 돌려받습니다.
제23회에서는 유표가 보낸 예형을 맞습니다. 둘이 함께 취해 술을 마실 때 허도의 인물을 묻던 황조가 「나는 어떠하냐」고 하자 예형이 「사당 안의 신처럼 제사는 받으나 영험이 없다」고 답하니, 황조는 크게 노해 그를 베고 유표는 예형을 앵무주 가에 묻게 합니다.
제38회에서 건안 8년 손권이 쳐들어오자 그의 부장 감녕이 앞장선 능조를 쏘아 죽이지만, 황조는 감녕을 강을 터는 도적이라며 쓰지 않고 감녕은 소비의 도움으로 떠나 오로 갑니다. 손권이 10만으로 다시 쳐 오자 그는 소비를 대장으로, 진취 · 등룡을 선봉으로 삼아 몽충 두 척을 큰 밧줄로 묶어 면구를 막지만, 감녕이 작은 배로 밧줄을 끊고 등룡을 베며 여몽이 진취를 베고 소비도 사로잡힙니다. 제39회에서 하구를 버리고 형주로 달아나던 황조는 동문 밖에 숨어 기다린 감녕을 만나 「전에 너를 박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감녕은 자신을 강을 터는 도적으로 대했다며 쫓아와 정보가 공을 다툴까 봐 등 뒤로 쏘아 떨어뜨리고 머리를 벱니다. 손권은 그 머리를 나무 상자에 담아 돌아가 아버지 손견의 영전에 바칩니다. 연의에서 황조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황역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강하는 내가 지킨다.
손씨 삼대가 이를 가는 이름, 황조요.
십 년을 버틴 성이오. 쉽게 안 무너지오.
…강동 놈들이 또 오는군.
강하는 아직 내 것이오.
손문대도 내 앞에선 갔소.
감녕… 그자를 놓친 것이 한이오.
강하는 십 년째 내 것이다.
…강하도 저무는가.
…강하를 십 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