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권黃權

자 공형(公衡) · 미상 ~ 240년 · 익주 파서군 낭중현 · 유장 휘하

황권 초상

주군을 향한 끝없는 충절과 뛰어난 식견을 지녔던 비운의 책사

능력치

통솔76무력59지력85정치79매력80

카드

공격력 4체력 4비용 3값어치 10직군 모사
충천 비용 3
아군 전체 체력 +2 (영구)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황권전과 배송지 주의 서중의 평 · 『한위춘추』 · 『촉기』 · 유장전 · 선주전 · 법정전 · 방통전 · 양희전의 「계한보신찬」 · 위서 문제기와 배송지 주의 『위서』 · 삼소제기 · 오서 육손전 · 『화양국지』 파지 · 공손술유이목지 · 유선주지 · 유후주지

황권은 자가 공형이며 파서군 낭중 사람입니다. 젊어서 군의 관리가 되었고, 익주목 유장이 그를 불러 주부로 삼았습니다. 『화양국지』 파지는 파서가 낳은 인물들을 꼽으며 그를 형편에 맞추어 변통할 줄 아는 사람으로 들었습니다.

건안 16년(211) 별가 장송이 유비를 맞아들여 한중의 장로를 치게 하자고 하자, 황권은 「좌장군은 날래다는 이름이 있으니 불러들여 부하로 대하면 그 마음을 채우지 못하고, 손님의 예로 대하면 한 나라에 두 임금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손님이 태산처럼 편안하면 주인은 알을 쌓은 듯 위태로워지니, 그저 경계를 닫고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리십시오」 하고 간했습니다. 유장은 듣지 않고 사자를 보내 유비를 맞았으며 황권을 광한현장으로 내보냈습니다. 유장전은 그때 종사 왕루가 스스로 주의 성문에 거꾸로 매달려 간했으나 유장이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뒤에 유비가 유장을 치고 장수들이 군현을 나누어 떨어뜨리자 고을들이 앞다투어 붙었으나, 황권은 성을 닫고 굳게 지키다가 건안 19년(214) 유장이 머리를 숙인 뒤에야 유비에게 가서 항복했습니다. 유비는 그를 편장군으로 삼았습니다. 배송지 주에 실린 서중의 평은 주인에게 충성으로 간하고 성을 닫아 지킨 것이 임금 섬기는 예를 얻은 것이라 하면서, 편장군은 그 절개를 드러내기에 너무 가볍다고 했습니다.

건안 20년(215) 조조가 장로를 깨뜨려 장로가 파중으로 달아나자, 황권은 「한중을 잃으면 삼파가 떨치지 못하니 이는 촉의 팔다리를 베어 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유비는 그를 호군으로 삼아 장수들을 거느리고 장로를 맞게 했으나, 장로는 이미 남정으로 돌아가 북쪽의 조조에게 항복한 뒤였습니다. 『화양국지』는 이때 황권이 조조가 세운 삼파의 태수 두호 · 박호 · 원약 등을 깨뜨렸다고 적습니다. 황권전은 뒤에 두호와 박호를 깨뜨리고 하후연을 죽여 한중을 차지한 것이 모두 황권의 본래 계책이었다고 적는데, 법정전은 건안 22년(217) 한중을 치자는 계책을 낸 이도, 정군산에서 칠 때를 일러 준 이도 법정이라고 적습니다.

건안 24년(219) 유비가 한중왕이 되고도 익주목을 겸하자 황권은 치중종사가 되었습니다. 유비가 황제가 되어 동쪽으로 오를 치려 하자 황권은 「오나라 사람은 싸움에 사납고 우리 수군은 물길을 따라 내려가니, 나아가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렵습니다. 신이 앞장서 적을 맞을 터이니 폐하는 뒤에서 진을 치십시오」 하고 간했습니다. 『화양국지』는 이 간언을 장무 2년(222) 2월의 일로 둡니다. 유비는 듣지 않고 그를 진북장군으로 삼아 강북의 군사를 거느리고 위의 군사를 막게 했으며, 자신은 강남에 있었습니다. 선주전은 그가 강북의 여러 군을 거느리고 이릉 길에서 오군과 맞섰다고 적습니다.

오의 장수 육의(육손)가 물길을 타고 내려와 포위를 끊자 강남의 군이 크게 무너졌고 유비는 물러났습니다. 길이 끊겨 돌아갈 수 없게 된 황권은 거느린 군사를 이끌고 위에 항복했고, 방통의 아우 방림도 이때 그를 따라 위로 들어갔습니다. 담당 관원이 법에 따라 황권의 처자를 잡아들이자고 아뢰자 유비는 「내가 황권을 저버렸지 황권이 나를 저버린 것이 아니다」 하며 그들을 전처럼 대했습니다. 배송지는 헛된 말을 믿고 장수 이릉의 집안을 없앤 한 무제와 견주어, 법관의 청을 물리치고 황권의 집안을 너그러이 둔 유비와는 득실이 아득히 멀다고 했습니다.

위의 문제기는 그의 항복을 그해 8월에 적고, 배송지가 끌어온 『위서』는 황권과 남군태수 사합 등 318명이 형주자사에게 촉에서 받은 인수와 깃발을 바쳤으며 조비가 잔치를 열어 그들을 맞았다고 전합니다. 조비가 「그대는 역적을 버리고 순리를 따랐으니 진평과 한신을 좇으려는가」 하고 묻자, 황권은 「신은 유주에게 과분한 대우를 받아 오에 항복할 수 없었고 촉으로 돌아갈 길이 없어 목숨을 맡겼을 뿐입니다. 싸움에 진 장수는 죽음을 면한 것만도 다행인데 어찌 옛사람을 흠모하겠습니까」 하고 답했습니다. 조비는 그 말을 좋게 여겨 그를 진남장군으로 삼고 육양후에 봉했으며, 시중을 더하고 수레에 함께 태웠습니다.

촉에서 항복해 온 이가 유비가 황권의 처자를 죽였다고 했으나 황권은 거짓임을 알고 상을 치르지 않았고, 뒤에 알아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배송지가 끌어온 『한위춘추』는 조비가 상을 치르라 하자 황권이 유비 · 제갈량과는 정성으로 서로 믿는 사이라 그들이 제 본뜻을 안다며 뒤의 소식을 기다리겠다고 답했다고 전합니다. 황초 4년(223) 유비가 죽었다는 소식이 이르자 위의 신하들이 모두 축하했으나 황권만은 축하하지 않았습니다. 조비는 그의 도량을 알아보고 놀라게 해 보려고 사람을 보내 불렀는데, 이르기 전에 재촉하는 사자가 잇달아 말들이 길에서 엇갈리니 관속들이 모두 넋을 잃었으나 황권은 몸가짐과 낯빛이 태연했습니다.

뒤에 그는 익주자사를 겸하고 하남으로 옮겨 살았습니다. 대장군 사마의는 그를 깊이 알아주어 「촉에는 그대 같은 이가 몇이나 있소」 하고 물었고, 황권은 웃으며 「명공께서 이토록 무겁게 보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보낸 편지에 「황공형은 시원스러운 사람이라 앉으나 서나 그대를 기리며 입에서 떼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경초 3년(239) 거기장군 · 의동삼사에 올랐고, 이듬해 정시 원년(240) 4월에 죽으니 시호는 경후입니다.

위에서 뒤를 이은 아들 황옹은 아들이 없어 대가 끊겼습니다. 촉에 남은 아들 황숭은 상서랑이 되어 경요 6년(263) 위장군 제갈첨을 따라 등애를 막으러 나갔습니다. 부현에서 제갈첨이 머뭇거리자 황숭은 서둘러 험한 곳을 차지해 적이 평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고 거듭 권하다 눈물까지 흘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면죽에서 군사를 다그쳐 반드시 죽기를 기약하고 싸우다 진 앞에서 죽었습니다. 양희의 「계한보신찬」은 그를 생각이 민첩하고 헤아림에 방도가 있었다고 기리며, 동쪽 한 모퉁이를 맡았다가 끝이 상서롭지 못해 먼 땅에 떠돌게 된 것을 슬퍼했습니다. 진수는 「황권은 도량이 넓고 고아하며 생각이 깊었다」고 평했습니다.

黃權弘雅思量
황권은 도량이 넓고 고아하며 생각이 깊었다『삼국지』 촉서 황이여마왕장전 평
孤負黃權,權不負孤也
내가 황권을 저버렸지, 황권이 나를 저버린 것이 아니다『삼국지』 촉서 황권전 · 유비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60회 · 제62회 · 제64~65회 · 제80~85회

연의에서 황권은 제60회에 처음 나옵니다. 장송이 유장에게 형주의 유비를 불러들여 조조와 장로를 막자고 하자, 한 사람이 땀을 흘리며 뛰어들어 장송의 말을 들으면 마흔한 주가 남의 것이 된다고 외치니, 연의는 그를 유장의 주부 황권이라 소개합니다. 그는 유비를 부하로 대하면 몸을 낮추려 하겠느냐, 손님으로 대하면 한 나라에 두 임금을 둘 수 없다며 먼저 장송을 베라 하고, 경계를 닫고 때가 맑아지기를 기다리자고 합니다. 유장이 몸소 부성으로 나가 유비를 맞으려 하자 황권은 다시 머리를 찧어 피를 흘리며 간하고, 다가가 유장의 옷자락을 입에 물고 놓지 않다가 유장이 옷을 떨치고 일어서는 바람에 앞니 두 개가 빠집니다. 연의는 이어 성문에 거꾸로 매달려 간하다 떨어져 죽는 왕루를 그리고, 앞니를 잃고도 끝내 유비에게 항복한 황권의 절개가 왕루만 하겠느냐는 시를 붙입니다.

제62회에서 황권은 유비에게 군사와 양식을 주지 말라고 다시 애써 간하고, 장송이 죽은 뒤에는 관문마다 군사를 늘려 형주 사람을 한 명도 들이지 말자고 하며, 유비가 부수관을 빼앗자 낙성에 군사를 두어 목을 막자고 합니다. 제64회에서는 유장의 사자로 한중에 가서 장로의 모사 양송에게 스무 주를 떼어 주겠다며 구원을 얻어 내고, 제65회에서 샛길로 돌아옵니다. 성도가 에워싸이자 항복을 권하는 초주를 유파와 함께 베려 하고, 유장이 항복한 뒤에는 유파와 함께 문을 닫고 나오지 않습니다. 성난 장수들이 그들을 죽이려 하자 유비는 두 사람을 해치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며 몸소 문을 찾아가 불러내고, 황권을 우장군으로 삼습니다.

제80회에서 황권은 광록경으로 유비에게 제위를 권하는 신하들 가운데 서고, 제81회에서 유비가 오를 칠 때 정기와 함께 참모가 됩니다. 제82회에서는 오의 사자 제갈근을 만나 보라고 권하고, 제83회에서 유비가 여덟 길로 나아갈 때 물길을 맡습니다. 제84회에서 황권은 수군이 강을 따라 내려가면 나아가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려우니 자신이 앞장서고 폐하는 뒤에 계시라고 간하지만, 유비는 오의 도적은 간담이 떨어졌다며 듣지 않고 그에게 강북의 군을 맡겨 위를 막게 합니다. 위의 첩자는 황권이 강북에서 날마다 백여 리씩 순찰을 나가는데 뜻을 알 수 없다고 조비에게 알립니다.

제85회에서 유비가 크게 진 뒤 가까운 신하가 위에 항복한 황권의 식구를 벌하자고 하자, 유비는 오군에 길이 끊겨 돌아올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니 내가 황권을 저버린 것이라며 도리어 녹미를 내려 식구를 먹여 살립니다. 조비가 진평과 한신을 좇으려느냐고 묻자 황권은 울면서 오에 항복할 수는 없고 촉으로 돌아갈 길은 없어 왔다고, 싸움에 진 장수가 죽음을 면하면 다행이라고 답합니다. 조비가 진남장군을 내리자 황권은 굳이 사양하고, 촉의 임금이 식구를 모두 죽였다는 말이 들려오자 서로 정성으로 믿는 사이이니 그럴 리 없다고 합니다. 연의는 그 끝에 오에는 항복하지 못한다며 조조의 나라에 항복했으니 한 번 죽기를 아낀 황권을 자양(주희)의 붓이 가벼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시를 붙입니다. 연의에서 황권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11유비를 불러들이지 말라고 유장에게 간했다가 광한현장으로 밀려났습니다.촉을 지키라던 말
  2. 214유장이 항복할 때까지 광한의 성을 닫고 지키다가 유비에게 가서 편장군이 되었습니다.
  3. 215호군으로 장로를 맞으러 나갔으나 장로는 이미 조조에게 항복한 뒤였습니다.
  4. 219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치중종사가 되었습니다.
  5. 222진북장군으로 강북의 군을 거느리다 길이 끊겨 거느린 군사와 함께 위에 항복했습니다.돌아갈 길이 끊기다
  6. 222조비에게서 진남장군 · 육양후를 받고 시중이 되었습니다.
  7. 223유비가 죽었다는 소식에 위의 신하들 가운데 홀로 축하하지 않았습니다.
  8. 239거기장군 · 의동삼사에 올랐습니다.
  9. 2404월에 죽어 경후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10. 263촉에 남은 아들 황숭이 면죽에서 등애와 싸우다 죽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황옹 · 황숭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촉의 황공형이오.

말을 열며

먼저 살피고 나서 말하는 사람이오.

되받으며

경솔한 답은 드리지 않겠소.

말문이 막혀

…돌아갈 길이 끊겼구려.

말문이 막혀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가는군.

설전을 이기고

앞을 보고 걷는 자는 넘어지지 않소.

설전에 지고

…주공을 뵐 낯이 없구려.

이긴 뒤

충절은 값을 하는 법이오.

진 뒤

…돌아갈 길이 또 막혔소.

쓰러지며

…돌아갈 길이 끝내 없었다.

같은 기치 아래

장임엄안유언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