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맹탁(孟卓) · 미상 ~ 195년 · 연주 동평국 수장현 · 여포 휘하
조조의 오랜 벗이었으나 여포를 연주로 맞아들여 등을 돌린 진류태수
출전 · 『삼국지』 위서 장막전(여포전에 붙음)과 배송지 주의 『헌제춘추』 · 무제기 · 동탁전 · 원소전 · 순욱전 · 전위전 · 장홍전 · 『후한서』 여포전 · 당고열전
장막은 자가 맹탁이며 동평국 수장현 사람입니다. 『삼국지』는 그의 전을 여포전 뒤에 붙였고, 『후한서』 당고열전도 「장막은 여포전에 붙는다」고 밝힙니다. 젊어서 협객으로 이름이 났는데, 곤궁한 이를 건지고 다급한 이를 구하느라 집안 재산을 기울여도 아까워하지 않아 선비들이 많이 그에게 모였습니다. 당고열전은 그를 도상 · 왕고 · 유유 · 호모반 등과 함께 재물로 남을 구한다는 뜻의 「팔주」로 꼽습니다. 조조와 원소가 모두 그의 벗이었습니다. 삼공의 관청에 불려 성적이 뛰어나 기도위가 되었고 진류태수로 옮겼습니다. 『삼국지』 동탁전은 동탁이 믿던 주비 · 오경이 천거한 한복 · 유대 · 공주 · 장막 등을 주와 군으로 내보냈는데, 이들이 저마다 군사를 모아 동탁을 쳤다고 적습니다.
동탁의 난에 조조와 장막은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초평 원년(190) 장막은 유대 · 교모 · 원유와 함께 산조에 진을 쳤습니다. 장수들이 동탁의 군세를 꺼려 나아가지 못하자 조조가 홀로 서쪽으로 나섰고, 장막은 장수 위자에게 군사를 나누어 그를 따르게 했으나 조조는 형양의 변수에서 서영에게 크게 졌습니다. 『삼국지』 전위전은 장막이 의병을 일으키자 전위가 그 군사가 되어, 남이 들지 못하던 큰 아문기를 한 손으로 세웠다고 적습니다.
맹주가 된 원소가 교만한 빛을 보이자 장막은 바른 말로 그를 꾸짖었습니다. 원소가 조조에게 장막을 죽이라 하자 조조는 「맹탁은 가까운 벗이니 옳든 그르든 품어야 합니다. 지금 천하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우리끼리 서로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듣지 않았고, 이를 안 장막은 조조를 더욱 고맙게 여겼습니다. 원소에게 기주를 내준 한복은 두려워 장막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원소의 사자가 장막과 귓속말을 나누자 자기를 해치려는 꾀로 여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초평 4년(193) 조조는 도겸을 치러 나서며 집안사람들에게 「내가 돌아오지 못하거든 맹탁에게 가서 의지하라」고 일렀고, 돌아와 장막을 만나자 둘은 마주 보고 울었습니다.
그러나 원소를 떠나 하내의 장양에게 가던 여포가 진류를 지나며 장막과 작별할 때 손을 맞잡고 맹세하자, 이를 들은 원소가 크게 한을 품었습니다. 장막은 조조가 끝내 원소를 위해 자기를 치리라 두려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흥평 원년(194) 조조가 다시 도겸을 치러 가자, 장막의 아우 장초가 조조의 장수 진궁, 종사중랑 허사 · 왕해와 함께 배반을 꾀했습니다. 진궁은 장막에게 천 리의 무리를 거느리고 사방이 싸움터인 땅에 있으면서 도리어 남에게 매여 있으니 부끄럽지 않으냐 하고, 주의 군사가 동쪽으로 가 비었으니 싸움에 앞을 막을 이가 없는 여포를 잠시 맞아 함께 연주를 다스리며 천하의 형세를 보자고 했습니다. 장막은 이 말을 따랐습니다. 여포를 연주목으로 맞아 복양을 차지하자 군현이 모두 호응했고, 조조를 위해 남은 곳은 견성 · 동아 · 범뿐이었습니다. 『삼국지』 순욱전은 장막이 유익을 보내 순욱에게 여 장군이 도겸 치는 일을 도우러 왔으니 서둘러 군량을 대라고 했으나, 순욱은 그가 난을 일으킨 줄 알아차리고 군사를 단속했다고 적습니다.
돌아온 조조는 복양에서 여포와 백여 일을 맞섰고, 가뭄과 누리로 백성이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 되자 여포는 산양으로 옮겼습니다. 흥평 2년(195) 조조가 거야에서 여포를 깨뜨리자 여포는 유비에게로 달아났고, 장막은 여포를 따라가며 아우 장초에게 가족을 거느리고 옹구에 머물게 했습니다. 조조는 그해 8월 옹구를 에워싸 12월에 떨어뜨렸고 장막의 삼족을 멸했습니다. 무제기는 장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고, 장막전은 장초와 그 집안을 베었다고 적습니다. 장막은 원술에게 구원을 청하러 가다가 이르기 전에 제 군사에게 죽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헌제춘추』는 원술이 황제를 일컬으려 하자 장막이 말렸다고 하나, 배송지는 본전과 맞지 않아 어느 쪽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진수는 평에서 「옛날 한의 광무제는 방맹을 잘못 보았고, 가까이는 위 태조도 장막에게 가려졌다」고 했습니다.
昔漢光武謬於龐萌,近魏太祖亦蔽於張邈。知人則哲,唯帝難之,信矣孟卓,親友也,是非當容之。今天下未定,不宜自相危也『삼국연의』 제5회 · 제7회 · 제10~12회
연의에서 장막은 제5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의 격문에 응한 열일곱 진 가운데 여섯째가 진류태수 장막이고, 아우 장초도 광릉태수로 열한째에 섭니다. 제7회에서는 원소에게 기주를 빼앗긴 한복이 가족을 버리고 홀로 말을 달려 진류태수 장막에게 몸을 맡기러 갑니다.
제10회에서 하후돈은 조조에게 전위를 천거하며, 그가 본디 장막을 따랐으나 장막 휘하 사람들과 사이가 나빠 손수 수십 명을 죽이고 산속으로 달아났다고 소개합니다. 같은 회에서 서주의 백성을 다 죽이려는 조조를 말리다 물리침을 당한 진궁은 「나도 도겸을 볼 낯이 없다」며 진류태수 장막에게로 갑니다.
제11회에서는 장안에서 쫓겨난 여포가 장양을 버리고 장막에게 오고, 마침 아우 장초가 진궁을 데리고 장막을 찾아옵니다. 진궁은 천 리의 무리를 거느리고도 남에게 매여 있으니 부끄럽지 않으냐 하고, 조조가 동쪽을 치러 가 연주가 비었으니 당대의 용사 여포와 함께 연주를 차지하면 패업을 꾀할 수 있다고 권합니다. 장막은 크게 기뻐하며 여포에게 연주를 쳐 깨뜨리게 하고 복양을 차지하며, 견성 · 동아 · 범 세 곳만 순욱과 정욱이 꾀를 내어 지켜 냅니다.
제12회에서 장막과 장초는 여포와 함께 정도성에 있다가, 조조가 정도를 깨뜨리자 장초는 스스로 불에 타 죽고 장막은 원술에게로 달아납니다. 연의에서 장막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우 장초(광릉태수)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진류태수 장막이오. 의병은 여기 있소.
천 리의 무리를 거느린 몸이오. 남에게 매여 말하지는 않겠소.
옳든 그르든 품어 준 벗이 있었소. 그대는 무엇을 품겠소?
…맹탁에게 가라던 그 말이 아직 귀에 남아 있소.
칼을 어루만지며 둘러보니 사방이 다 싸움터로구려.
맹주라 해도 교만하면 바른 말을 들어야 하오.
벗을 등진 값이 이리 무거울 줄은 몰랐소.
연주의 군현이 다 응했소. 길은 이미 열렸소.
원술에게 가야겠소. 구원만 온다면….
옹구의 아우를… 끝내 못 구했구나.